김구 외종손이 일본군 역을 맡게 된 사연

조회수 2016. 02. 19. 14: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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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목숨값으로 만들어진 영화 <귀향>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불에 타는 위안부 소녀들의 모습을 재현하는 장면
영화 <귀향>에서 ‘죽음의 불씨’를 던지는 일본군을 연기한 사람은 임성철(39)씨다. 
미술을 전공한 그는 배우 활동을 준비하다 우연히 조정래 감독을 만났다. 성철씨의 눈빛을 읽어낸 감독은 영화 <귀향>의 일본군 역을 제안한다.
“머릿속에서 <귀향>을 수만 번 찍어보지 않았다면 2시간 동안 한 번도 쉬지 않고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감독이 성철씨를 이 영화에 이끌었지만, 점점 성철씨가 감독의 단단한 버팀목이 되어갔다. 투자를 받지 못해 촬영이 늦춰지던 2013년, 영화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갔다. 곁을 지켰던 성철씨가 감독이 쓰러지지 않도록 잡아주었다.
"아직도 지지하는 내가 있으니 이 영화를 만들 수 있어."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소녀를 끌고 가는 일본군 역의 임성철 씨

온 가족이 매달린 영화 <귀향>

앞서 그는 자신의 친형에게도 이 영화를 소개했다. 원철씨는 미술을 전공한 뒤 한옥 대목수 일을 하고 있었다. 
왼쪽부터 임성철 PD, 아내 이혜미씨(아트워크팀), 형 임원철씨(미술감독)
“소녀를 데려오자”는 감독의 말에 원철씨의 마음도 크게 움직였다. 그는 영화에서 미술감독을 맡아 합류했다.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위안소 세트장을 거닐고 있는 소녀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영화를 찍을 수 없게 되자, 성철씨는 그림을 보여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미술학원을 운영하던 그는 제자, 학원강사, 후배들을 데리고 위안부 문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그림을 그려나갔다.
인하진 作
인하진 作
김정애 作
평소 그림 작업을 해왔던 그의 아내도 동참했다. 아내는 어린 딸과 아들이 자는 밤과 새벽을 이용해 작업을 진행했다. 
이혜미 作
이혜미 作
이혜미 作
“나는 ‘대필화가’라고 생각했어요. 할머니들의 고통을 내가 감히 다 표현할 수 없기 때문이죠. 죄송하면서도 위로하는 마음을 담아 그렸어요."
아내는 이후에도 아트워크팀으로 영화에 참여했다. 장모님은 담보 대출을 받아 제작비에 보탰다. 성철씨는 <귀향>에 매달리면서 “좀 가난해졌다”며 웃었다. 그는 전셋집에서 나와 월세를 내는 집으로 옮겼다. 

아픈 것도 감사하다

그는 지난해 4월 본격적인 촬영을 앞두고 제작비를 끌어오는 일을 책임지는 PD까지 맡게 됐다. 시민들의 제작비 후원이 급증하면서 촬영에 들어가긴 했지만, 세트 제작비 등으로 인해 촬영 초반부터 후원금이 빠르게 고갈됐다. 
그 무렵 그의 몸은 바람이 들어간 풍선처럼 퉁퉁 부어올랐다. 몸이 살짝 부딪혀도 피멍이 올라왔고, 걸을 때 가시밭길을 걷는 것처럼 뾰족한 통증이 몸을 찔렀다.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귀향> 촬영 장면
그때까지도 성철씨가 희귀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몰랐다.
"오히려 아픈 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죠. 불쌍해서라도 도와주시지 않을까 싶어 나중엔 아픈 것도 감사했어요.”

임성철 PD의 목숨값으로 만들어진 영화

무녀 역을 맡은 최 리씨와 임성철 PD
PD, 일본군 배역 등 1인 다역을 해낸 그는 촬영을 모두 마친 뒤 증세가 악화돼 재입원했다. 병명은 ‘쿠싱병’. 심한 스트레스는 쿠싱병을 일으킨 원인 가운데 하나다. 이미 오래전에 모든 걸 중단했어야 하는 지경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그는 종양을 제거하는 큰 수술을 받았다. 아내 혜미씨는 말했다.
“남편이 수술실에 들어가니까 너무 떨려 혼자 병실에 가서 기도하며 기다렸다”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전국 1차 후원시사회 마지막 장소인 서울극장에서 감독, 배우들이 무대인사 하는 모습
당시 조정래 감독은 미국 연방의회 의원회관에서 <귀향>의 하이라이트 영상을 틀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있었다. “수술 잘 끝났어요.” 전화로 결과를 전한 성철씨의 형과 감독은 한참 울기만 했다. 그때부터 조 감독은 “<귀향>은 임성철 PD의 목숨값으로 만들어진 영화”란 말을 자주 한다.

 이 영화는 임 PD 가족의 손길이 곳곳에 묻어 있다. 형 원철씨는 도면으로만 남아 있는 과거 일본군 위안소 관련 자료를 토대로 영화의 중요한 무대인 위안소 세트장을 지었다. 
임원철 씨가 제작한 위안소 세트장
제작비를 끌어온 동생 성철씨는 공포스러운 눈빛을 지닌 일본군으로도 출연해 화면을 채운다.
출처: 제이오엔터테인먼트
일본군 역의 임성철씨
그는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주석을 지낸 백범 김구 선생의 외종손이다. 
“할아버지(김구)만큼은 아니어도 부끄럽게 살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이런 영화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나중에 하늘에 가서 할아버지를 뵈었을 때 부끄럽지 않을 것 같았어요.”
이 가족이 겪어온 지난 몇 년은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 그러나 성철씨도, 아내 혜미씨도 “당시엔 힘들었지만 사실 지금은 기억이 안 나요”라며 웃었다. 
“많은 시민들이 후원하고 투자해 (시민들 스스로) 멋진 일을 해냈다고 생각하는데 이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극장에 많이 걸렸으면 좋겠다” l 임성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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