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소 고지" 총을 들지 않고 싸운 전쟁영웅

조회수 2017. 3. 1.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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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전쟁 영화, 하지만 사실은 '종교 영화'

※ 이 글은 영화 <핵소 고지>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감독 멜 깁슨이 돌아왔다. <아포칼립토>(2006) 이후 10년 만이다. <브레이브하트>(1995)의 동성애 혐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2004)의 반유대주의, <아포칼립토>의 원초적 폭력 등 마초 기질이 다분한 영화들로 항상 논란의 중심에 서온 그가 이번에 선택한 소재는 제2차 세계대전의 미국인 전쟁 영웅이다.


사람을 죽이지 않는다는 종교적 신념에도 불구하고 '일본놈'에 침략당하는 미국을 두고 볼 수 없어 자원해 참전한 데스먼드 도스의 실화를 영화화했다.


가히 트럼프식 ‘아메리카 퍼스트’ 시대에 걸맞는 전쟁영화 <핵소 고지>를 살펴보자.

영화는 데스먼드 도스(앤드류 가필드)의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가정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으로 인해 그는 집총을 거부하는 종교적 신념을 갖게 된다. 첫눈에 반한 여자친구 도로시(테레사 팔머)와 결혼을 약속한 뒤 그는 홀연히 군대에 자원입대한다.


하지만 집총을 거부하면서도 참전하겠다는 병사는 펜 없이 글 쓰겠다는 작가만큼이나 돌아이 취급을 당한다. 데스먼드는 군법 위반으로 재판까지 가는 우여곡절 끝에 오키나와 전투에 의무병으로 참전하는데 뺏고 뺏기기를 반복하던 핵소 고지 전투에서 홀로 75명을 구해 영웅으로 떠오른다.


일단 영화의 제목에 주목해보자. 제목이 ‘데스먼드 도스’가 아닌 ‘핵소 고지’인 이유는 이 영화에서 장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핵소 고지는 1945년 오키나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미군 입장에선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일본군 입장에선 배수의 진을 친 장소였다.


당시 오키나와는 미군 4만6000명, 일본군 11만 명, 오키나와 주민 12만 명의 사망자를 낼 만큼 피비린내가 진동했던 전장이다. 핵소 고지에서 미군이 승리함으로써 일본군은 백기 투항했고, 남은 일본군은 주민들에게 할복을 강요해 오키나와는 시체들로 즐비했다.

멜 깁슨이 치열한 전장에서 주목한 인물은 기독교적 신념으로 무장한 데스먼드 도스다. 그는 온갖 핍박과 고난 속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신념을 지켜 참전하고 끝내 자신을 무시했던 동료들마저 구출해낸다.


이런 행위를 보고 연상되는 단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예수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일본군은 로마군이고 그를 무시한 동료들은 유대인이다. <핵소 고지>는 전형적인 전쟁 영화처럼 보이지만 한편으론 논란이 될 만한 상징을 바탕에 깔고 있는 종교영화이기도 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데스먼드 혹은 예수에게 바치는 헌사인데 한때 그를 무시하던 전우들이 일렬로 서서 데스먼드를 맞이한다. 데스먼드는 골고다 언덕을 오르는 예수처럼 군인들을 사열한다. 데스먼드는 최후의 전투가 끝나기 전 동료에게 급박한 상황 속에서도 성경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한다.


성경 속에는 여자친구 도로시의 사진이 들어 있는데, 공교롭게도 도로시 역을 맡은 테레사 팔머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그림에 등장하는 막달라 마리아와 닮았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아내였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멜 깁슨에게 성경은 영감의 원천인가 보다. 그가 만든 거의 모든 영화는 종교와 연관되어 있으니 말이다. 전쟁영화인 <핵소 고지>에서조차 영웅 서사에 접목한 예수를 만나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영화의 전반적인 감성은 옛날 영화를 보는 느낌이 강하다. 군인들의 대사나 국가를 위한 사명감을 강조할 때 흐르는 장중한 음악은 <진주만>(2001) <영광의 깃발>(1989) 같은 애국주의 영화를 연상시킨다.


영화 속 오키나와 전투는 다분히 미군의 관점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인 관객이라면 영화를 보기가 무척 불편할 것이다.

영화의 최대 장점은 실감 나는 전투 장면이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가 전쟁영화의 한 획을 그은 이후 긴박감을 강조하는 방식은 대부분 그 영화의 모방처럼 보였는데, <핵소 고지>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리지널리티에 가장 근접하게 다가간다. 총알이 빗발치는 전투 과정에서 누가 총에 맞을지 모를 만큼 긴장감을 느낀 영화는 참 오랜만이다.


멜 깁슨 감독은 10년 만에 선보인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6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며 건재를 과시했다. <브레이브하트>로 오스카를 석권한 이후 21년 만이다.


데스먼드 도스 역을 맡은 앤드류 가필드는 <스파이더맨> 이미지에서 탈피해 비폭력 군인에 걸맞게 살을 빼고 신념에 찬 새로운 얼굴을 보여준다.


핵소 고지 ★★★

전쟁영화도 종교영화처럼 만든 멜 깁슨의 뚝심.


원문: 유창의 무비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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