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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방울 레이더스, 1996년을 강타한 외인구단

조회수 2017. 6. 7. 20:0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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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그의 이방인'이었던 레이더스, 그들의 야구가 찬란하게 빛나던 96년

정규시즌 126경기를 치르는 동안 (내년부터는 133경기로 늘어날 예정) 70승 이상을 거두는 팀의 공통분모를 유추해 본다면…

1번, 15승 이상을 거두는 믿음직한 에이스
2번, 30세이브 이상은 거뜬히 책임지는 든든한 뒷문 지기
3번, 15개 이상의 공을 담장으로 넘기고 80타점 이상은 올려줄 수 있는 4번 타자
4번, 필요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일 년에 30개의 베이스를 훔쳐낼 수 있는 준족

이 정도로 요약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위에 제시한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지 못하고도 한 시즌에 정확히 70승을 채우면서 리그에 깜짝 돌풍을 일으킨 팀이 있었다.


바로 1996년 시즌의 쌍방울 레이더스이다.

깜찍☆

무려 540만 명의 관중을 야구장으로 불러모으며 최고의 르네상스를 구가했던 95시즌 프로야구. 540만의 저변에는 3만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는 '빅마켓 구단' 베어스, 트윈스, 자이언츠가 정규시즌에서 나란히 1위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서울을 연고로 하는 트윈스와 베어스가 94, 95시즌을 연달아 제패하면서 이른바 서울 구단 전성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당시 양 구단의 전력구성으로 보아 96시즌에도 트윈스, 베어스의 돌풍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었다. 별다른 전력 누수가 없었고, 오히려 알찬 신인 보강을 통해 (특히 95시즌 우승팀 베어스의 경우 국가대표 출신 포수 최기문, 초고교급 대형투수 박명환을 동시에 영입하여 든든한 전력보강에 성공한다. 반면 임선동을 놓친 트윈스는 그 대안으로 이정길, 손혁 등 초대형은 아니지만 중박 이상은 해줄 것으로 기대를 모은 선수들을 영입한다) 96시즌 제패에 대한 꿈을 키워간다.



그때, 거품이 극한에 치달았던 그 시절


96시즌은 한편으론 신인들의 계약금의 거품이 절정에 달한 시즌이었다. 불과 2년 뒤에 신인들의 몸값이 웬만한 특급 선수들을 제외하곤 절반 수준으로 내려가게 될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95시즌의 폭발적인 활황세 및 당시 경기의 호황과 더불어(물론 거품임이 금세 드러나게 되지만) 각 구단들은 중박 이상급의 신인 선수들로 판단되면 주머니를 아낌없이 풀었다. 지나고 나서 아쉬운 점은, 호황기를 누릴 당시 구장 신축 및 관련 법규 개정이 과감하게 이루어졌어야 한다는 것 정도이다.


몸값 거품의 주역은 다름 아닌 현대 유니콘스였다. 이미 1년 전 문동환,안희봉, 박재홍, 조경환 등 거물급 아마추어 선수들을 대거 싹쓸이하며 '현대 피닉스'를 창단한 현대. 그들은 결국 96시즌을 앞두고 태평양 돌핀스를 무려 470억 원에 인수하며 프로 무대 입성에 성공한다.

얘도 깜찍

현대 유니콘스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출범한 현대구단은 기존 현대 피닉스 소속이었던 대어급 선수들을 고스란히 안고 왔다. 그중 대표적인 선수가 96시즌 최고의 괴물 신인이었던 박재홍이었다. 연고 구단이었던 타이거즈는 천정부지로 치솟은 몸값을 감당할 여력이 없어 결국 유니콘스의 최상덕과 현금을 대신 받는 '울며 겨자먹기식' 트레이드를 감수해야만 했다.


현대 피닉스는 당시 웬만한 이름값을 지닌 선수들에게 1억 원은 기본으로 안겨주며 몸값 인플레를 주도한다. 결국, 이 '몸값 바이러스'에 제대로 감염된 구단은 다름 아닌 재계 라이벌 LG 트윈스와 삼성 라이온즈였다. 지금도 '먹튀'하면 회자되는 연세대 출신의 이정길은 당시로선 파격적인 4억 원(연봉포함)에 트윈스와 입단 계약을 맺으며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한다.


임선동을 놓친 트윈스가 대안으로 선택한 선수라고 하지만 당시의 지명도를 감안할 때 4억 원은 다소 괴리감이 있는 금액이었다.


라이온즈 또한 만만치 않았다. 투수력 보강에 목이 마른 나머지 대어급에는 다소 못 미쳤던 전병호, 최재호 등을 입단시키며 각각 3억 원(연봉포함)을 안겨 주게 된다. 왠만한 고졸 신인 선수들도 계약금 1억 원은 가뿐히 넘기게 되는 풍토가 조성된 것이다. 야구 시장 규모에 비해 과연 적절한 계약금 수준이었지에 대해선 지금도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



리그의 이방인 레이더스, 무서운 '외인구단'으로 거듭나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곳으로 흘렀는데, 막강한 재력을 보유한 삼성,LG,현대 등이 돈 보따리를 융숭하게 풀면서 시작부터 화제를 모았던 96시즌의 정규시즌 1, 2위는 참으로 극명한 결과를 낳았다.


전문가들의 예상을 무색하게 만든 결과였는데, 1위는 전통의 강호 타이거즈가 7월부터 막강한 포스를 발휘하며 차지하였고, 2위는 만년 하위 팀으로 분류된 '리그의 이방인' 레이더스가 차지한 것이다. 3위는 LG,삼성,OB가 아닌 세대교체에 성공한 한화 이글스가 차지하였고, 4위는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신생구단 돌풍을 일으킨 현대 유니콘스의 차지였다. 역대 시즌 중에서 가장 예상외의 결과를 낳으며 팬들에게 야구 보는 또 다른 묘미를 안겨준 시즌으로 볼 수 있다.


역시 4강 팀 중에 가장 돌풍의 팀이라면 창단 후 처음으로 가을에도 야구를 하게 된 레이더스였다. 이 무서운 외인구단의 저력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의 SK 와이번스 야구의 초기 버전이라 할 수 있는 '토털 베이스볼' 이었다. 89년 돌핀스의 기적을 일궈낸 김성근 감독은 김기태,조규제,박노준,김광림,김원형 정도를 제외하곤 특출한 스타가 없이 고만고만한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던 레이더스의 전력 업그레이드를 위해 이른바 '벌떼 야구' 카드를 들었다.


돌핀스에선 박정현-최창호-정명원이라는 든든한 3인방을 주축으로 투수진을 꾸려나간 것과는 달리 상대를 압도할 만한 원, 투펀치가 없는 레이더스에선 모든 투수들이 항상 출격 대기를 기다리는 이른바 '출첵 로테이션'을 구사한다.

팀 내에서 정규이닝을 넘긴 투수는 성영재 (148이닝, 10승 5패, 평균자책점 2.37), 오봉옥 (135.1이닝 9승 7패, 평균자책점 3.06), 김원형 (126.2 이닝 5승 8패, 평균자책점 4.12) 등 3명에 불과하다. 또한 팀 내 최다승을 거둔 투수도 팀 내 유일한 두 자릿수 승수인 성영재인데 10승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96시즌 3.33의 팀 평균자책점으로 전체 3위를 기록한 레이더스 마운드의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2중, 3중으로 겹겹이 둘러싸인 지극히 두꺼운 허리였다. 허리가 두꺼우면 생활에 상당한 지장을 초래하는 사람의 신체와는 달리, 현대 야구에서 투수진의 허리는 선발진과 마무리 못지않은 큰 비중을 차지하고 갈수록 그 비중은 증대하고 있다.


선발과 중간을 가리지 않고 등판했던 '마당쇠' 김기덕(9승), '중간 에이스' 최정환(6승), 박주언(4승), 김현욱(4승), 박진석(3승) 등이 두터운 허리를 형성하며 상대적으로 선발 투수치곤 승수가 부족했던 박성기(5승), 김원형 (5승), 유현승(5승)의 뒤를 든든하게 지원 사격하였다.


상대를 압도할 만한 투수가 없는 팀의 투수력을 극대화 시킨 김성근 감독의 '벌떼 전술'은 맞춤형 전략의 극치라 할 수 있다. 속된 말로 '고만고만한' 투수들이 모여 만리장성 못지않은 두터운 성을 쌓은 것이다.

레이더스 투수 중에 눈에 띄는 투수는 '돌하루방' 오봉옥이다. 92년 라이온즈 입단 당시 김성근 감독의 조련 속에 깜짝 돌풍을 일으키며 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100% 승률왕(13승)에 등극했던 그는 이후 '사부' 김성근 감독이 팀을 떠나자 마치 약발이 다한 배터리 마냥 좀처럼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한 채 사고뭉치로 전락하였다.


그러나 96시즌 자신을 키워준 '사부' 김성근 감독을 다시 만나면서 92시즌 이후 최고의 활약을 선보이며 레이더스 투수진의 핵심으로 활약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8개 구단 중 두 번째로 가장 높은 팀타율(0.264)을 기록한 타선이다. 더군다나 팀 홈런은 58개로 당시 홈런 1, 2위 박재홍(30개), 양준혁(28개)의 홈런 개수를 합쳐 놓은 숫자에 불과한 상황이었다.(당연히 8개 구단 중 팀 홈런 꼴찌였다)


그러나 야구는 홈런만이 능사가 아님을 레이더스 타선은 확실하게 입증하였다. 95시즌 타격왕 김광림은 96시즌에도 3할 이상을 쳐내며 (0.303) 팀 타선의 선봉에 나섰고, 김실(0.291), 심성보(0.275), 최태원(0.258) 등이 '똑딱이 타선'의 주축을 이루었다. 안방마님 박경완은 비록 타율은 저조했으나(0.218) 팀 내 최다 홈런인 15개를 쳐내며 클러치 능력을 과시하였고, 팀의 간판 김기태도 부상으로 인해 규정타석을 채우지 못했지만 12개의 홈런을 쳐내며 거포 부재에 시달리던 팀 타선에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모든 이의 예상을 뒤엎고 상위 팀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70승을 정확히 채우면서 창단 최초로 가을 무대에 진출한 레이더스. 당시 레이더스의 프런트들은 처음으로 맞이하게 된 가을 잔치 준비를 위해 이글스와 유니콘스의 준플레이오프 현장을 직접 참관하면서 노하우를 익히고, 추워진 날씨에 대비해 서둘러 선수들과 코칭 스탭들을 위한 파카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등 분주하게 뛰어다녔다.


접전이 될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MVP 구대성이 버틴 이글스를 2경기 만에 가볍게 제압한 유니콘스가 플레이오프 레이더스의 파트너로 결정된다.



레이더스팀 역사상 가장 아쉬웠던 순간


당시 언론에서는 레이더스가 한국시리즈에 진출하게 되면 이미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타이거즈와 사상 최초로 '호남선 시리즈'를 치르게 된다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놓기도 하였다.


그 기대는 2차전까지는 확실시되는 분위기였다. 1차전 은퇴를 앞둔 노장 박철우가 자신의 선수 생명 연장을 확정 짓고 나아가 팀 승리를 결정짓는 끝내기 홈런포로 창단 첫 포스트시즌 승리를 기록한 레이더스는 2차전도 김기덕의 호투로 2-1의 신승을 거둔다. 당시 플레이오프 1차전 승리팀이 100%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던 상황이었고, 더군다나 2연승을 거뒀기에 레이더스의 한국시리즈 진출은 거의 확정된 듯 보였다.


그러나 에이스 성영재의 부상이 레이더스 전력에 균열을 가져온다. 팀 내에 가장 믿을만하고 오래 던질 수 있는 성영재의 부재는 출장 빈도가 잦은 중간투수진에 과부하를 불러온다. 더군다나 상대 유니콘스 타선은 당시 언더핸드 투수에 철저하게 약점을 드러내던 상황이었다. 그래서 성영재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졌고, 결국 김기덕에게 큰 부담이 돌아가게 되었다. 더군다나 1, 2차전 통틀어 고작 3점밖에 뽑아내지 못한 타선은 좀처럼 원기를 회복하지 못한다.


결국 원정 2경기를 내준 레이더스는 5차전 잠실에서 운명의 승부를 펼치게 된다. 꽉 들어찬 만원 관중 앞에서 레이더스는 좀체 기를 펴지 못하고 기세가 오른 유니콘스에게 결국 한국시리즈 티켓을 내주고 만다. 레이더스팀 역사상 가장 아쉬운 순간이었다.


당시 첫 한국시리즈 도전을 노리던 김성근 감독은 단 1경기만 잡았어도 잡을 수 있었던 한국시리즈행 티켓을 허망하게 놓치게 된다. 이후 한국시리즈 무대에 올라서기까지 김성근 감독은 6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역대 구단 유니폼 중 가장 인상적인 유니폼으로 필자의 뇌리에 남은 레이더스 유니폼. 창단 초기 나름대로 세련미를 구사했던 레이더스 로고를 과감하게 지우고 대신 가슴에 대문짝만하게 '쌍방울' 세 글자를 선명하게 새겨놓은 유니폼은 촌스러우면서도 왠지 정감이 가는 유니폼이었다. 극단적인 촌티 컨셉으로 오히려 야구팬들의 뇌리에 유니폼을 강렬하게 인식시킨 유니폼이라 할 수 있다.

영원히 포스트 시즌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돌핀스와 레이더스를 부임 첫해 포스트 시즌으로 이끈 김성근 감독의 지도력은 오늘날 와이번스에서 화려하게 승화되어 한국야구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같은 호남지역의 맹주 타이거즈의 위세에 눌려 좀처럼 기를 펴지 못하던 레이더스. 그러나 96시즌 만큼은 타이거즈의 존재감을 훌쩍 넘어 '투혼의 돌격대이자 외인부대' 레이더스의 존재감을 야구팬들에게 강력하게 인식시키에 충분하였다.

출처: 나루세의 不老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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