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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조원 만지는 한국인이 말하는 돈 만드는 비법

조회수 2020. 9. 18. 15: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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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수표, 상품권…국내 모든 지폐 인쇄한 국가명장

해고 뒤 복직, 일하고 싶었던 열정 인쇄에 쏟아

'완벽한 돈' 칭찬 들으면 힘


“돈이요? 수조원이라도 돈이 아니죠."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지폐(紙幣)는 모두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조폐공사 화폐본부에서 나온다. 1000원짜리 지폐부터 5만원권까지. 수표와 각종 상품권 모두 여기서 찍는다.


정병진 과장은 이곳에서 돈이 제대로 만들어지는지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조언을 한다. 그는 2010년 최연소로 대통령이 지정하는 국가품질명장 자리에 올랐다. 당시 나이 37세였다.


국가품질명장은 자기가 맡은 분야에서 뛰어난 성과를 내면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사람을 추천 받아 산업통산자원부가 주관해 선발한다. 선발 인원이 정해진 것이 아니어서 매년 뽑히는 수가 다르지만, 해마다 20여명 내외의 새로운 명장이 태어난다. 


출처: 정병진 과장 제공
정병진 조폐공사 화폐본부 과장.

26년간 조폐공사에서 근무한 김 과장은 "지폐를 인쇄하는 일에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많이 찍어내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의 기술로 돈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뿌듯합니다.”


그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지폐는 거의 다 인쇄해봤다”고 말했다. 롯데, 신세계, 이마트 상품권도 대부분 경산 화폐본부에서 만든다. “과거에는 백화점들이 해외에서 상품권을 만들어 유통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저희에게 맡기죠. 우리 기술력이 세계적이란 의미죠.”


◇돈, 수표, 상품권…국내 모든 지폐 인쇄한 국가명장

충남기계공업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중이던 그는 1991년 고3 여름방학에 조폐공사에 입사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좋은 곳'이라며 가보라고 하시더군요.”


처음부터 조폐공사 입사를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사실은 자동차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기왕이면 수도권으로 올라가 직장생활을 하고 싶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의 권유로 조폐공사에 실습을 나갔던 것이 인생을 결정했다. 당시 실업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3학년 2학기에 실습을 나가는 일이 많았다. 6개월가량 회사로 출퇴근하며 기술을 배우는데, 회사에서 인정을 받으면 졸업과 동시에 취업할 수 있었다. 그는 고졸 조폐공사 정직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었다.


-돈은 어떻게 만듭니까

“종이를 만드는 일부터 인쇄까지 여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제가 있는 공장에서는 인쇄에만 담당합니다. 종이는 충남 부여에 있는 조폐공사 제지본부에서 가지고 옵니다. 그 위에 그림을 입히고 홀로그램을 씌우죠. 그렇게 인쇄하는 과정만 약 40일이 걸립니다.”


지폐 인쇄 과정은 프린트기에서 A4용지를 뽑아내는 것처럼 단순하지 않다. 여러 번에 걸쳐 단계별로 진행한다. 

출처: 정병진 과장 제공
인쇄기에서 나오는 상품권을 확인하는 정병진 과장 모습

예를 들어 5만원권을 인쇄한다고 가정하면 가장 먼저 전지에 신사임당 얼굴의 윤곽 등 밑그림을 넣는다. 약 일주일 동안 잉크를 말린다. 그다음 ‘5만원’이라는 글자를 인쇄한다. 이때 특수잉크를 사용하는데 글자를 어느 각도로 보느냐에 따라 색깔이 달라 보이게 하는 위·변조 방지 기술을 적용한다.


다시 3~4일을 말린 뒤 홀로그램을 덧씌운다. 다음 손으로 돈을 만졌을 때 올록볼록한 느낌을 주도록 하는 요판인쇄를 한다. 뒷면을 먼저 이렇게 만든다. 다음 앞면도 같은 방식으로 인쇄한다. 마지막으로 완성도를 체크하고 지폐 고유 번호 등을 넣는다.


화폐본부에서 사용하는 특수 인쇄기는 1시간당 8000장을 뽑아낸다. 여기서 말하는 ‘한 장’은 커다란 전지를 말한다. 이 전지 한 장에는 1000원, 5000원, 1만원권 지폐 45장이 들어가 있다. 이것을 규격대로 잘라내면 ‘돈’이다. 5만원짜리는 화폐 전지 한 장에 28장이 들어간다.


이렇게 돈을 인쇄하는 사람이 조폐공사에 약 500명 정도다.


-그동안 찍어낸 돈을 환산하면 어느 정도나 됩니까

“너무 많아서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만약 5만원권을 하루 8시간 동안 인쇄한다면 하루 896억원, 365일 동안 5만원짜리만 뽑아낸다면 약 32조 7000억원어치가 나온다. 26년간 인쇄기 앞에 서 있던 그에게 돈이 돈처럼 안 보이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출처: 조선DB
경상북도 경산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에서 직원이 5만원권 지폐의 품질을 점검하고 있는 모습

◇해고 뒤 복직, 일하고 싶었던 열정 인쇄에 쏟아

-힘든 일은 없었습니까

“1997년에 회사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죠."


그는 당시 조폐공사 화폐본부와 조폐창의 통폐합을 반대하면서 노조에 가입하고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해고 처분을 받았다고 했다. 조폐공사 화폐본부는 충북 옥천, 조폐창은 경북 경산에 있었는데 경산으로 통합되는 상황이었다.


"1년 동안 현장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내 직장이 저기 있는데, 내가 있어야 할 곳은 저곳인데…’ 회사 앞에 서서 농성을 하면서 동료들이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을 지켜 볼 때 부럽기도 하고 가슴 아프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다시 들어올 수 있었습니까

“회사 임원진들이 파업을 유도해 해고 처분에 문제가 있었다는 결론이 나오면서 1년 만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 일하고 싶었던 공장에 열정을 바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출처: 정병진 과장 제공
정병진 과장이 동료들과 인쇄 기술 개선을 위해 스터디 하는 모습

◇'완벽한 돈' 칭찬 들으면 힘

-언제 보람을 느낍니까

“일하는 게 보람입니다. 돈이라는 게 조금만 잘못되거나 위조지폐가 나와도 사회적으로 혼란을 일으키지 않습니까. 그래서 불량이 나지 않도록 신경을 씁니다. 가끔 외국 기술자들이 와서 우리 기술자들이 일하는 것을 보고는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만들어야 하느냐’고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화폐 불량률은 제로 거든요. 해외에서는 불량 지폐가 시중에 나오는 일이 종종있다고 합니다. 외국 기술자들이 우리 기술력을 칭찬한 겁니다."


-보안이 엄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아무나 회사에 올 수 없습니다. 미리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조폐공사 직원들도 자신이 속한 현장을 떠나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예를 들면 수표 제작 노동자가 일반 은행권 제작 구역으로 들어가는 것도 쉽지 않다. 사전 승인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 과장 예외다. ‘명장’으로 여러 사업장에서 조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사전 승인을 따로 받지 않아도 움직일 수 있다.


노동자들이 출근해 자기 일터로 가는 데에도 절차가 있다. 1차 탈의실에서 사복을 벗고 속옷만 입은 채로 작업복이 있는 2차 탈의실로 이동한다. 그곳에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어야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장품을 휴대한 여직원은 투명 봉지에 화장품을 넣은 뒤 청원경찰의 검사를 받아야 작업장으로 들어갈 수 있다.


화폐본부 사무직원들의 근무시간은 오전 8시~오후 5시다. 공장 노동자들은 12시간 2교대 근무를 한다. 만약 월요일 오전 8시에 출근해 저녁 8시에 퇴근했다면 다음날엔 저녁 8시에 출근해 오전 8시에 퇴근하는 식이다.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 가장 바쁜 날 중 하나다. 야근이나 휴일 근무를 할 때도 있다.


-계획이나 목표가 있습니까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지금 하는 일에 만족합니다. 명장이 되려는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선배가 될 수 있다면 가장 보람 있는 일일 것 같습니다.”


-조폐공사에 입사를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요즘 청년들이 취업 때문에 힘들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저는 90년대 초에 운 좋게 입사해 어떤 말을 해야 도움이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스스로 ‘실패’ 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해고를 당했다가 다시 복직했고, 명장이라는 명예도 얻었습니다.

해고당했을 때 인생에 실패했다고 생각하고 포기했다면 지금의 저는 없었을 겁니다. 어려움이 있어도 계속 도전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한국조폐공사는 고졸 전형 채용을 유지하고있다. 2017년 상반기에 고졸전형 11명을 선발했다. 기계·전자기술 9명, 금속기술 1명, 화공기술 1명 이다. 서류전형과 직업기초능력평가·인성검사를 거쳐 직무기반면접을 통과해야 한다. 인턴으로 우선 선발한 뒤 근무성적평가를 받아 졍규직으로 전환된다. 지원시 나이나 성별은 따지지 않지만 지원분야와 관련한 전문지식이나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2016년 기준 임직원 평균 연봉은 8859만원이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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