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덕후들이 추천하는 인문교양 도서 5권!

조회수 2017. 08. 30. 16:0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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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100권 이상 읽는 책덕후들은 어떤 책을 추천할까?

책을 1년에 100권 이상 읽는다는 책덕후들은 어떤 책을 추천할까?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책덕후들이 추천하는 인문교양 도서 5권’을 소개해본다.

#고원효(문학동네 인문팀 편집장)

: 문학동네 인문팀에서 책 만드는 일을 합니다. 끊긴 회로를 찾아다닙니다.

<벤야민과 브레히트―예술과 정치의 실험실>


1920년대 벤야민은 외관상 연전연패의 나날을 보냈다. 교수자격논문 『독일 비애극의 기원』은 심사위원들의 몰이해에 자진 철회했고 아내와의 이혼소송은 지리멸렬했으며 모스크바까지 찾아간 사랑하는 러시아 여성에겐 퇴짜를 맞고 장난감만 잔뜩 사서 돌아왔다. 모스크바 일기 속의 심약함을 보노라면 눈물이 돌 지경이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으로 가자는 숄렘의 권유도 뿌리칠 만큼 비평가로 입신하겠다는 포부가 강했다. 몇몇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아이와 청소년을 위한 라디오 방송에 관여하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 암중모색의 시기에 그는 실험적 연극으로 성공을 거둔 브레히트를 찾았다.


벤야민과 브레히트의 만남

이 두 사람은 파시즘의 암울한 그림자가 깔린 1930년대를 우정의 힘으로 뚫고 나온다. 그러나 벤야민의 지인들은 “품위 있는 벤야민과 제멋대로인 브레히트, 두 천재의 기묘한 조합”이라며 이들의 관계를 탐탁지 않아 했다. 아렌트 정도만이 “가장 위대한 독일 작가와 가장 훌륭한 비평가의 관계”라며 긍정했을 뿐이다. 1933년 제1당이 된 나치스는 이들을 파리로, 덴마크로, 이탈리아로 떠돌게 했다. 1940년 브레히트는 한참 끊겼던 벤야민의 소식을 마침내 접하게 된다. 프랑스-에스파냐 국경 피레네산맥 근처에서 자신의 체스 상대였던 친구 벤야민이 생을 마감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책은 1929년부터 1938년까지 그러한 만남의 전 기간을 놀랍도록 정교하게 복원한다. 흥미롭게도 역자를 섭외했을 때, 그 원서에 자신의 박사학위 논문이 들어 있다고 넌지시 알려주었다. 정말, 참고문헌 맨 끄트머리에서는 역자의 영문자 이름과 독일어 논문 『브레히트의 벗 벤야민―가깝고도 먼 역설의 사귐』을 볼 수 있다.


#김도윤(‘무라카미 하루키 되기 카페’ 운영자)

: 책을 읽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강남역 인근에서 참담한 사건이 일어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이 일을 계기로 자주 언급되는 키워드 중 하나인 페미니즘. 부끄럽게도 나는 그동안 '페미니즘' 하면 센 여성들의 자기주장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여성을 상대로 벌어지고 있는 잔혹한 사건들을 보면서 페미니즘이란 평범한 남자들에게 더 필요한, 아니 모두가 알아야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모호했다. 과연 페미니즘이란 뭘까? 가장 기본적인 정의부터 알아야겠다는 생각에 페미니즘의 교과서라 불리는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었다. 저자 벨 훅스는 전투적이거나 공격적이지도 않고 오히려 부드럽고 간결하게 있는 그대로의 페미니즘에 대해 설명했다.


저자는 간단하게 말한다. 페미니즘이란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을 끝내려는 운동이라고 말이다. 외부의 적에 맞서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 안에 있는 내면의 적부터 변화시켜야 한다. 자신의 문제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진단, 사회 안에서 자신이 기대하는 모습, 혹은 타인에게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했을 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이해와 공부가 필요하다. 알아야 한다. 알아야 오해가 없다. 오해가 없어야 이해가 된다.

<불편해도 괜찮아>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지만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말씀은 귓가에 선하다. 자신의 적성 따위는 간주될 대상이 아니다. 나 역시 그 강압적인 교육 현장의 희생양이었지만 알게 모르게 주입된 생각대로 행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고등학교 교실 안의 학생들은 인권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 그저 대학 입학을 위한 공부 기계였던 셈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런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불편해도 괜찮아>를 읽고 나서였다는 점이다. 학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강압적으로라도 공부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했을 뿐, 학생의 인권 같은 건 머릿속에 존재하지 않는 단어였다.  


이 책은 성소수자, 여성, 장애인 등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행해지는 차별에 관한 인권 문제들을 조목조목 짚어내고 있다. 예로 든 영화나 다큐멘터리 등의 에피소드 덕에 쉽고 간결하며 재미있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 왼손과 오른손은 그저 위치만 다를 뿐이다. 인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상대방과 나의 위치만 다를 뿐이다. '차별'와 '다름'을 구별하는 것에서 인권은 시작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생각과 행동이 바뀔 것이다.


#윤성의 (S전자 마케팅팀 / 전 구글코리아 팀장)

: 다양한 장르의 (나무에 미안하지 않은) 책을 좋아하며, 속도보다 깊이 있는 독서를 추구한다.

<자유 죽음>


많은 사람이 자살을 한다.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지만 남은 사람들은 '살아 있는 자'의 이름으로 자살의 경박함과 무책임함을 비난하고, 사회는 종교와 철학과 과학의 이름으로 자살을 단죄한다. 생명은 소중하고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자살을 주변인과 공동체에 커다란 아픔을 주는 이기적인 행동이라고 이야기한다. '어른스럽지 못한' 나약함의 소산이라고도 하고, 몸이 건강하지 못한 것과 같이 정신이 건강하지 못한 증좌라며 심리적, 생리적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까지 곁들여진다. 대체 무엇이 그를 그런 극단적인 판단에까지 이르게 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개개인마다 다를 거다. 다르지만 또 같을지도 모른다. 저자는 하나의 단어를 제시한다. 에셰크(Lechec), 치욕적인 꼴을 감수하며 살아야 하는 것. 죽음이 그를 세상으로부터 몰아내기 전에 이미 세상이 그를 버렸다. 더 이상 삶을 이어간다는 것은 자신의 인간성과 존엄성을 저버리는 행위라고 느끼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그렇다고 저자는 자살을 찬양하지는 않는다. 그는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 자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삶의 욕구'와 '자유에 대한 갈망'을 주목하려고 한다. 꾸역꾸역 생존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살아내겠다는 다짐에 충실하고자, 삶의 가치와 인간적 존엄을 지켜낼 자유를 극한으로 수행하고자, 맹목적으로 살아남는 대신 차라리 인간으로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살은 오히려 '인간성'과 '존엄성'에 기댄 최후의 선택일 수 있다. 인간의 자유와 존엄성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권리의 하나로 '자살할 권리'는 인정되고 존중되어야 한다. 자살을 결심하고 수행하기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게 스스로의 자유를 체감하고 밀도 높은 삶을 살았다고 본인이 느낀다면 본인 이외 다른 누가 그 삶에 대해 주제넘은 훈계와 손가락질을 할 수 있을까.


#장선아(네이버 ‘책’ 분야 파워블로그)

: 20년째 1000편이 넘는 독서록을 쓰고 있으며 아이를 키우면서도 책을 읽을 수 있음에 기뻐하는 평범한 아줌마.

<반 고흐 인생 수업>


이 책을 읽다 보니 그간 내가 빈센트의 삶과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관련된 책을 많이 읽었지만 내 마음을 울리는 책은 좀처럼 만날 수 없었다. 빈센트의 그림은 무척 좋아했지만 그의 삶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그의 삶을 통해 그림에 대한 이해까지 깊어진 것 같았다. 우선 그에게서 인생을 배웠다는 저자의 접근 방식이 좋았고, 깊이 들여다보니 빈센트는 참 행복한 사람이었다는 저자의 결론이 마음에 와 닿았다.  


저자는 국내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프랑스 유학을 떠난 이야기 그리고 다시 돌아와 밥벌이를 하면서 겪었던 여러 가지 고충과 일상의 파편들을 때론 생뚱맞게 나열하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진솔함과 때문에 빈센트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도, 그가 배움의 기회로 삼았다던 빈센트의 삶도 더 피부에 와 닿았다. 빈센트의 삶과 그림이 저자의 인생에 진득하게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들었고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정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빈센트가 행복했다고 말하고 있다. 삶의 방법이 좀 서툴렀을 뿐 후회 없이 열정을 불태운 결과물이 현재 우리가 감탄하며 바라보고 있는 그림들이라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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