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조무사라는 비속어: 여성 소방공무원에 대한 기사를 보며

조회수 2017. 9. 28. 16:3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높으신 분들'이 여성 비하의 풍토를 부추기고 있다

조무사


우선, 아는 분은 그냥 넘어가셔도 될 배경 설명부터 하겠다. 조무사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유행 중인 비하적인 표현이다.


그 근원을 찾아 올라가자면, 2013년경 복지부의 간호 인력 개편안일 것이다. 여기엔 간호조무사도 일정 경력(예를 들어, 10년)을 쌓고 시험에 합격하면 간호사가 되게 해 준다는 내용이 담겼다.


몇몇 사람들은 이 안이 비전문가, 비의료인을 전문가, 의료인으로 승급시키는 것이라며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여기에서 소위 ‘깜’도 안 되면서 흉내만 내는 사람들을 ‘조무사’라 비하하는 유행이 탄생했다.


처음부터 간호조무사란 직업인들을 비하하는 데서 시작된 질 나쁜 유행인데, 심지어 이 단어는 점차 여성을 비하하는 목적으로 더 자주 사용되게 된다. 여성 경찰을 ‘치안조무사’ 라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여성 경찰을 이렇게 비하하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여성 경찰이 실질적인 경찰 업무, 단속 및 검거 업무 등에 투입되는 대신 홍보나 행정 등 부차적인 업무에 주로 투입된다는 것. 그러면서도 홍보를 잘 했다며 특진 포상을 받거나, 언론 보도의 상찬이 집중된다는 것.

“여성은 현장보다 내근”


사실 이런 이유로 간호조무사란 직업군을 비하하고 여성을 비하하는 것이 온당할 수는 없다. 다만 이런 인식이 발생한 이유를 단순히 “찌질한 한남들 때문”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것도 아쉬움이 있었는데, 마침 오늘 포털 메인에 이런 기사가 등장했다.


꾸준히 증가하는 女소방공무원..화재현장선 ‘딜레마’, 머니투데이


기사에 따르면, 여성 소방공무원은 약 7% 수준이며 이 비율은 지난 5년간 매년 증가하고 있는데, 소방청은 여성 공무원 증가는 불가피하므로 신체적 특성을 고려한 근무 배치를 고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종묵 소방청장은 “여성 소방 공무원을 현장보다는 행정직(내근)이나 구급 분야로 배치하도록 적극 유도할 방침”이라고도 했고.


물론, 징병제와 같이 인구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 경우, 인구집단의 특성을 고려하는 게 효율적일 수 있다. 남성이 ‘대체적으로’ 혹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신체적 능력이 앞서므로, 남성만을 징병한다는 식이다. (다만, 나는 이것도 ‘합당하다’고 여기진 않는다.)


하지만 소방업무는 애당초 그 업무를 수행할 만한 신체적 능력 기준이 있어야 하고, 그 기준을 통과해 이를 만족한 사람이 채용되는 것이다. ‘대체적이고’ ‘평균적인’ 사람을 랜덤으로 뽑는 게 아니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력검사에서부터 남녀 기준이 비정상적으로 다르게 설정되어 있는데, 유연성을 평가하는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를 제외하면 여성은 남성의 약 50~80% 정도만 수행하면 동점을 받게 되어 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왕복 이어달리기에서 60회를 수행해야 3점을 받지만, 여성은 30회만 수행해도 3점을 받는 식이다.

모든 여성이 남성과 똑같이 왕복 이어달리기를 60회 해야만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신체적 능력이 중시되는 특정 직종에 지원한 여성이라면, 마땅히 남성에 비해서도 뒤떨어지지 않는 신체 능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다.


무슨 메이웨더와 싸워 이기라는 것도 아니고, 남성 운동선수와 똑같은 퍼포먼스를 내라는 것도 아니다. 이건 소방업무에 필수적인 체력을 검증하는 대단히 온건한 수준의 기준이 아닌가.


 

결국 결정권자의 책임


치안조무사니 소방조무사니 하는 비하는 당연히 근절되어야 한다. 당연히 그런 폄훼를 함부로 말하는 세태부터 탓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그와 함께, ‘높으신 분들’이 바로 그런 여성 비하의 풍토를 부추기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여성을 배려한다는 명목으로 말이다.


나는 아무래도 저 발언으로부터, 성 평등이란 요구에 못이겨 여성도 일정 비율 할당해야 하긴 하는데, 험한 일에는 여자는 쓰면 안 되지 – 라는 불평등한 사고가 읽히는 것이다.


물론 성 평등은 아직도 요원한 목표다. 우리는 더 나아가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여성을 우선하고 여성을 배려하는 인위적인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배려’가 이런 것이어서는 안 된다. 결정권자들이 여성을 더 안전한 일에, 더 편한 일에, 덜 기피받는 일에 투입하는 것이 그 해법이 되어선 안 된다. 그건 여성을 배려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을 2등급 인력으로 취급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원문: YEINZ.NET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