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초현장'서 비속어·의심 극복하고 딴 '한국최초' 타이틀

조회수 2020. 09. 25. 20:2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무쇠보다 단단한 건 사람의 마음" 한국 최초 여성 용접공 박은혜
한국 최초 여성 용접 기능장
배관기능장·직업훈련교사도 취득
40대에 기술 현장 총괄하는 박은혜 차장

불꽃 튀는 용접 현장. 마스크를 벗자 60대 용접공의 표정이 굳어있다. “아부지, 전류값 좀 낮춰보면 어떨까?” 옆에 서 있던 40대 여성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인다. 전류를 조절하자 크게 튀던 파편이 잦아든다. 20살 이상 차이나는 고참 용접공들도 현장에서는 그녀의 지휘를 따른다. 그녀는 현장에서 무쇠보다 더 단단하다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용접공이다.


“나이가 어려도 제가 하는 말씀은 들어주세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도시가스 시공관리자로 입사해 가스관 연결부터 현장에서 배웠습니다. 지치고 뜻대로 안되는 저분들 마음 누구보다 잘 알죠.”

출처: jobsN

박은혜(44·한양ENG) 차장은 한국 최초 여성 용접공이다. 도시가스 회사 경리로 입사해 도시가스시공관리자로 근무하며 용접을 배웠다. 2004년 용접기능장을 취득해 2005년 직업훈련교사 2급, 2007년 배관기능장까지 분야를 넓혔다. 영성산업, 평화ENG 등 산업 업체 근무 경력만 17년이다. 2009년부터 기업체, 공고, 폴리텍 대학 등에서 기술을 지도하고 취업 멘토로 활동했다. “사람들의 시선과 편견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는 그녀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베테랑 기술인이다.


선배 쫓아다니며 “기술 알려달라”


박은혜씨 고향은 서울 화곡동이다. 위로 언니만 3명 있었던 집안 분위기는 엄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해 ‘빨리 돈 벌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던 10대였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공부는 소질에 맞지 않았다. 손재주가 있다고 생각한 그녀는 상고에 진학했다. 졸업 후 1995년 영성산업에 입사한다.


“경리직으로 회사에 들어갔어요. 일을 잘 했는데 표가 안났죠. 기술직들은 작업이 끝날 때마다 이름 밑에 총 계약 얼마, 이익 얼마 이렇게 숫자로 실적을 증명합니다. 그걸 보고 ‘기술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단 도시가스 시공 관리자로 시작해 설계도면부터 읽었어요. 가스관 누수 테스트를 다닐 때마다 ‘용접은 어떻게 하는 거냐’며 선배들을 붙잡고 물었죠. 그렇게 현장에서 하나하나 익혔습니다.”

출처: 조선DB
"건설 현장에서 기술을 익혔다"는 박은혜 용접공

기술을 터득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도시가스 관리자로 현장을 방문하는 일조차 어려울 때가 많았다.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속어가 날아왔다. 일도 고생스러웠다. 가스관 매립은 야간에 작업한다. 새벽까지 현장에 머물다 다음날 아침 바로 출근하는 일과였다. 가족들은 ‘그만두라’며 말렸다. 그녀의 도전을 막을 수는 없었다. 용접봉을 잡을 때면 잡생각이 사라지며 작업에 빠져들었다.


“퇴근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하루 작업이 끝날 때까지 지키고 있어야 하는 거죠. 사실 힘들다는 생각 없이 정말 신나서 일을 배웠어요. 도시가스 관리자로 현장을 지켜보는 것도 좋았고 기술을 하나씩 다룰 때마다 짜릿한 기분이었습니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이 있죠. 제20대가 그랬어요. 정말 좋아하는 걸 하면 그렇게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아요.”


자정까지 도서관 지켰던 두아이 엄마


언젠가 쓸 날이 있을 것 같아 배워뒀던 기술이었다. 자격증을 얻고 전문 기술인으로 일할 생각은 없었다. 1998년 결혼해 두 아이를 낳았다. 불황으로 남편이 실직하자 형편이 기울었다. 막내가 기저귀를 뗄 때였다. 당장 돈이 절실했다. 시화공단 식당에서 일하기도 했다. 돈이 조금 모이자 기술직으로 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2005년 대한민국 여성 최초로 용접 기능장 자격증을 취득했다. 1년 후 직업훈련교사 2급 자격증, 2007년 배관기능장까지 합격한다.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 때였죠. 언니가 그랬어요. 은혜야 더 이상 나빠질게 없잖아. 그 말이 인생에서 들은 말 중 가장 큰 위안이었어요. 기술직으로 일하며 돈 벌자는 생각이 들었죠. 용접 자격증은 현장에서 쌓은 실무 경험이 있으니까 금방 취득했는데 배관은 시간이 걸렸어요. 아이들 키울 때라 더 힘들었죠. 아기 재우면서 냉장고에 기기 명칭들을 적은 종이를 붙여놓고 암기했죠. 야간대학을 마칠 수 있었던 건 남편 도움 덕분입니다. 밤 12시에 도서관이 닫는데 매일 끝까지 남아서 공부했어요.”

출처: EBS 캡처
"용접을 할 때면 완전히 빠져든다"고 말하는 박은혜 용접기능인

현장보다 더 치열했던 산업현장교수


배관기능장까지 취득한 뒤에는 영성산업에서 기술부 과장으로 근무했다. 현장에서 차분하게 동료들을 배려하는 그녀를 본 기술 교육 담당자가 강의를 제안했다. 2009년부터 철도산업개발 등의 기업에 출강해 특수용접부터 피복아크, 로봇용접 등 이론과 실기를 가르쳤다. 2014년 폴리텍대학에서 산업현장 교수로 아이들에게 기술과 진로를 지도했다. 한국 산업 협회 소속으로 NCS 학습 모듈을 개발했다.


“자격증을 취득하고 강의를 하면서 제2의 인생이 펼쳐졌죠. 언론에 자주 등장하니까 주위 시선이 바뀌었어요. 여자라 특혜 받는다는 시선도 있었고 힘들어도 내색하지 않고 버티니까 ‘꿍꿍이가 있다’는 의심도 받았어요. 그냥 제 할 일만 했습니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 본관에 여자화장실이 딱 한 개였어요. 왕복 30분 넘게 걸렸죠. 하루에 화장실을 한 번도 못 갈 때가 많았어요. 먹지도 마시지도 못했죠. 여자니까 이해해달라는 말은 하고 싶지 않았어요.”

출처: jobsN
한양ENG에서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박은혜 차장

흔들리지 않았던 그녀의 뚝심은 빛을 발했다. 그녀가 가르친 폴리텍 대학교 학생들은 90퍼센트 넘게 취업했다. 잘못된 자세로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고참 기술자들도 그녀의 조언은 귀담아들었다. 2016년 고용노동부 장관 표창, 2017년 7월 명가명품대상 시상식에서 용접부문 명인명장을 수상한다. 같은 해 9월 노동부는 그녀를 우수 숙련기술자로 선정했다. 현재 한양ENG에서 기술교육자 및 시험품질 관리자로 근무하고 있는 그녀의 사명감과 포부는 남다르다.


“남들은 어떻게 그렇게 오래 현장에 있었냐 묻죠.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 싶어요. 가장 행복했던 때를 꼽으라면 20년 전 현장 소장님하고 막걸리랑 김치 안주를 놓고 잠깐 쉬던 시간입니다. 건설 현장에 있으면 수많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을 만나요. 그분들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동료이고 싶어요. 앞으로도 쇠보다 사람 마음을 움직이는 용접공 박은혜로 살 생각입니다.”


글 jobsN 김지아 인턴

jobarajob@naver.com

잡스엔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