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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거품경제의 산물이며 재벌의 자존심이었던 그 '스키장'

조회수 2018. 2. 23. 12:2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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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스키장들은 어찌저찌 동계올림픽까지 왔다.

1. 스키장은 90년대 거품경제의 산물이자 재벌의 자존심


80년대 후반부터 ‘스키’라는 게 조금씩 보편화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스키를 타는 사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원인은 스키장은 용평이나 알프스 등 영동지방까지 가야만 즐길 수 있었는데 거기까지 가려면 자동차가 필수였던 문제가 크다. 스키를 탈 만한 젊은이들 가운데 자동차를 소유하거나 몰고 다니는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그러다 90년대 들어 차량 보급이 늘어나고, 일부 젊은 계층의 과시적 소비가 본격화되면서(이때 등장한 게 오렌지족) 스키는 그 이전보다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겨울철 스키 캐리어를 지붕에 얹은 차를 보면 ‘좀 노는 놈이군’하던 시절이다. 워커힐 아래 한강변 괴르츠에서 한 접시에 만원 가까이하던 떡볶이가 잘 팔리던 시절이기도.

힙하기 짝이 없는 90년대 오렌지족

이렇게 스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수요가 증가하면서 재벌들은 경쟁적으로 스키장 건설에 나섰다. B/C분석 이런 것은 다 필요 없고, ‘남의 동네(용평은 쌍용 것이었으니)에 가서 놀기 쪽팔린다’는 이유가 주된 추진 이유 중 하나였다. 그렇지만 소비산업에 재벌이 나서면 욕먹기 쉬우니 방계를 동원하게 되었다. 그래서 현대의 방계인 성우가 나서서 둔내에 성우리조트를, 삼성의 방계인 보광이 나서서 보광피닉스를 짓게 되었다.


수요에 비해 과도한 공급이었지만, 당시 재벌과 거품경제의 사회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2. 수도권의 올망졸망 스키장은 왜?


천마산 스키장으로 대표되는 수도권 스키장의 경우 여러 가지 이유가 있으나 교통 여건의 불비함을 노려서 상대적으로 가까운 거리의 장점으로 덕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계산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재벌들의 스키장이 더 좋은 시설과 설질을 강조하는 반면, 당시 수도권의 스키장들은 서울과 가까움을 강조하였다. 멀리 나가기 불편하고 시간이 오래 걸리니 퇴근하고 나서 야간스키 타고 돌아가세요, 이런 컨셉.


그러나 불행히도 당시 폭발적으로 늘어난 차량 보급은 장거리 이동의 어려움을 감소시켜줬고, 재벌 스키장 시설의 월등함은 수도권 소규모 스키장을 압도하였다. 여기다 90년대 초반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영동고속도로 4차선 확장이 추진되면서(그런데 당시의 2차선 고속도로에서 배추 트럭을 앞지르기 위해 목숨을 건 앞지르기를 수십 번 하던 시절이나, 지금의 4~8차선이나 서울 강릉은 여전히 3시간…) 결국 이들 스키장들은 수익저하로 인해 고전하다 여러 번의 손바뀜을 겪거나 문을 닫게 되었다.



3. 투자금은 1조 원대, 매출은 100억대


재벌들이 지은 스키장은 당연히 많은 돈이 들어갔다. 어디에서 그렇게 돈이 나왔을까? 당연히 관련 기업들의 출자나 지급보증으로 대출을 받았다. 그렇게 해서 막대한 돈을 투자했고, 그 규모는 1조 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그런데 그런 투자를 통해서 얻은 수익은? 콘도 판매를 통해 목돈을 회수하긴 했으나, 어찌 됐든 스키장 자체의 수익은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그렇지만 대규모 투자를 통해서 당초 매입가격에 비해 장부상 가격이 상승하였으므로 자산가격 상승으로 얻는 이득이 투자비를 압도할 것이 다들 전망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 IMF가 왔다.

모두가 줄줄이 부도하던 그 시절에도…

지급보증에 의해 버텨나가던, 자체적으로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저런 시설들은 정상적 사고라면 버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재벌들은 남은 여력을 다 집어넣어 자신들이 만들어놓은 놀이터를 지켰다. 대표적으로 보광피닉스의 경우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출자전환으로 위기를 넘겼는데, 이 결과 2000년대 초반 보광의 자본금은 1조 원이 훌쩍 넘게 되었다.


IMF로 얼어붙은 심리가 좀 풀리고, 시즌권이 본격적으로 풀리던 2000년대 초반의 리프트권 매출 목표가 100억원이었다.(수익이 아니다!) 어쨌거나 우여곡절 끝에 보광은 살아남았고, 성우와 용평은 손바뀜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4. 공공부문의 역습


살아남았으니 좋은 시절을 보내야 하지만, 엉뚱하게 공공부문에서 지은 스키장들이 새로 등장하면서 경쟁을 격화시켰다.


올림픽 유치를 목적으로 지은 알펜시아, 카지노 부대사업으로 만들어진 하이원이 그것이다. 강원랜드와 강원도라는 든든한 물주(알펜시아는 결국 대한민국을 물주로 만든 셈)가 있으니 민간부문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투자와 가격 경쟁력으로 경쟁에 나섰다.


90년대 중반 조성되었으니 2000년대 중반에는 대대적인 리노베이션과 업그레이드가 필요했지만 여력이 없어 최소한으로 마무리하고 넘어가던 기존 스키장으로서는 죽을 맛이었고, 여기에 수요의 위축이 겹치면서 스키장으로 돈을 버는 것은 불가능한 이야기로 접어들게 되었다.

평창 알펜시아 리조트. 요새 심심하면 TV를 타고 있다.



5. 그래도 재벌이다


그래도 90년대 이전에 쌍용이 용평을, 90년대 현대와 삼성이 성우와 보광을 통해 스키장이라는 것을 지어놨기에 우여곡절 끝에 동계올림픽까지 하게 된셈이다.


돌이켜보면 서울 시내 특급호텔도 다 재벌의 자존심 경쟁이었다. 수익성을 생각해보면 지어질 수 없던 상황에서 만들어지고 유지되었다. 삼성의 신라, 대우의 힐튼, 선경(SK)의 워커힐이 그런 존재들이다.


제주 섭지코지에 있는 보광피닉스도 수익이 아닌 오너의 의지로 그 자리에 그렇게 지어질 수 있었고, 한화의 아쿠아 플래닛도 들어설 수 있었다. 이들이 아니었다면 섭지코지는 여전히 소똥 냄새나는 바닷가에 난개발로 들어선 올망졸망한 펜션들과 횟집으로 가득 찾을것이다.


자존심과 무모한 판단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대한민국의 관광 인프라를 한 단계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이들의 공은 인정해줘야 하지 않을까?


원문: 최준영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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