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29) – 사라진 아바타를 찾아서

조회수 2018. 3. 21. 15:4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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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컴퓨터박물관 | 아바타, 하늘에서 내려온 자 2

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사라진 아바타를 찾아서

 

얼마 전 "그 많던 아바타는 어디로 갔을까?" 연재 이후 포털 뉴스에 "아바타" 이야기가 떠서 저는 제 글이 대박을 친 줄 알았습니다. 알고 보니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바타 소개팅"을 했더군요. 조금은 섭섭한 마음을 뒤로하고 살펴보니, 한 명의 아바타가 특정인의 지령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소개팅을 진행하더군요. 소개팅의 주체는 ‘나’, 그러나 지령을 수행하는 객체는 ‘아바타’로 설정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수행 기능의 아바타는 우리 주변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는데요, 이와 관련해서는 잠시 후에 알아보도록 하고 우선 지난 연재물에 미처 다하지 못한 2030세대의 추억 이야기를 마저 해보도록 하죠.

 

2000년대로 시계를 돌려봅시다. 그 시절 우리는 다들 내 집 하나쯤 가지고 있었습니다. 미니홈피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일기를 쓰고, 사진을 올리면 서로의 집에 방문한 나의 ‘일촌’ 친구들이 스티커를 붙여주고 방명록을 남기곤 했습니다. ‘미니룸’이라는 공간을 꾸미고 나의 아바타인 ‘미니미’를 배치해 직관적으로 ‘이곳은 내 집, 이 미니미는 바로 나’라는 표현이 가능했죠.

추억이 된 싸이월드 미니홈피. 메뉴 옆 주황색으로 나타나던 새 글 알람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이 작은 ‘집’은 우리에게 사이버 세상에서 나만의 공간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이전의 커뮤니티나 게시판, 채팅프로그램처럼 열린 소통의 광장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사이버 공간의 탄생이었습니다. 그러나 도토리를 주고받으며 ‘집’과 ‘나’를 꾸미고, 배경음악까지 깔아가며 열성을 다해 채우던 우리의 공간은 어느 순간부터인가 잊혀 가고 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전시팀 E모님 : 싸이월드는… 고향 집 같은 느낌이죠. 옛날 사진들 잔뜩 모아둔 앨범 같다고 해야 하나. 추억이 가득한 곳. 근데 고향 시골집에 어쩌다 한번 내려가는 건 반갑고 새로워도 좀 오래 있으면 지겹죠. 심심하기도 하고, 친구도 별로 없고요. 시골에 일주일에 한 번씩 내려가지는 않잖아요. 그냥 가끔 생각날 때, 시간 내서 잠깐 들러보거나 아예 가기로 작정하고 맘먹어야 갈 수 있는, 멀게 느껴지는 곳. 싸이월드도 비슷한 것 같아요. 굳이 아이디랑 비번 찾아가며 로그인하기는 귀찮기도 하면서 그래도 막상 열어보면 당시 생각이 새록새록 떠오르죠. 그래도 다시 막 활발히 하고 싶은 생각은 안 들어요. 주변 친구들도 아무도 안 하는데요 뭐.​



싸이월드와 같이 오프라인 관계의 신뢰를 기반으로 한 온라인 친목 공간은, 조금 더 빠르고 쉽게 소통하고자 하는 인터넷 사용자들의 욕구를 완전히 해소하기는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서로의 집을 방문해 남기는 방명록보다 파랑새가 전해주는 쪽지가 어느 순간 더 인기를 끌게 되죠. 

굳이 집을 꾸며 공간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이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만 있으면 이야기가 가능한 플랫폼들이 등장했고, 이는 결국 ‘나’의 분신인 아바타 없이 사이버 세상에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운영팀 F님 : 사실 이제 인터넷에 홈페이지니 미니홈피니 잘 안 만드는 것 같아요. 처음에 ‘핫’할 때야 너도나도 html 써가면서 나모웹에디터 같은 거로 홈페이지 만들고 그랬지만... 요즘 대세는 그냥 쫙 내리면서 한 번에 볼 수 있는 뉴스피드죠. 누가 번거롭게 개인 홈페이지 같은 거 만들고 관리하면서 써요. 앱 하나면 수십 명, 수백 명이 올리는 사진이나 정보 확인할 수 있는데요.​



인터넷이 시작되고, 사이버 세상에 처음 발 디딘 사람들은 마치 신세계를 발견한 개척자들과 같았습니다. 처음 미지의 땅에 깃발을 꽂은 후 집을 짓고, 서로의 공간을 오가며 안부를 묻던 사람들이 점차 더 많은 이들과 교류하면서 다양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고 멀리 떨어진 마을 사람의 소식을 전하며, 더 나아가 다른 나라의 사람들과 폭넓은 의견을 나누게 된 것처럼 말이죠. 사이버 세상에 자신의 '공간'을 '찜'해 두고 아바타라는 명패를 내걸던 사람들은 이제는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기 시작했습니다. 인터넷에 나의 공간을 선보이고, 내 모습을 표현하는 것보다 더 중시되는 것들이 생겨났습니다. 자연스레 아바타와 미니홈피에 대한 관심도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홍보마케팅팀 G님 : 이제 사이버 세상에 ‘나’를 표출하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트위터에 넘쳐나는 ‘알계’들이 왜 있겠어요(*알계: 트위터를 생성하면 알 모양 그림이 기본 프로필로 설정되는데, 이를 바꾸지 않은 계정들을 일컫는 말). 오히려 예전보다 익명성이 더 중시되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기도 해요. 옛날에 아바타를 앞세우고 하던 익명 채팅이랑은 또 다른 게, 그 시절 아바타랑 유치한 닉네임으로 하던 커뮤니티나 채팅은 “자, 이게 내 모습이야! 이걸 나라고 생각해줘!”라면 요즘 익명 SNS는 “이게 나다!” 보다는 “내가 누군지 알리고 싶지는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거다!”에 가까운 느낌?​



# 그럼 아바타는 이제 우리 주변에서 찾아볼 수 없는 건가요?

 

감히 그렇지 않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이미 우리 생활 속으로 들어온 아바타들이 존재합니다. 싸이월드나 세이클럽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가상공간의 가상 나’로서의 아바타와는 다른 형태로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아바타가 있습니다. 바로 잠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의 대부분 손에서 놓지 않는 ‘휴대전화’에 탑재된 AI(인공지능, Artificial Intelligence) 비서 아바타입니다. 사실 많은 사람이 매일 우리를 대신해서 지령을 수행하는 이 대리인 아바타의 이름을 부르고 있죠. “시리야(Hey, Siri)!”라던가, “오케이, 구글(OK, Google)” 이라고요.

이러한 아바타는 이 전의 세이클럽, 싸이월드의 아바타들과 달리 이미지를 통해 본체의 정체성을 표현하거나 실제의 모습을 숨기는 가면적 속성을 갖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형태가 없는 소프트웨어인 경우가 많죠. 그 때문에 일반적으로 ‘아바타’ 하면 떠오르는 ‘날 닮은 모습의 이미지’가 아니다 보니, “시리가 아바타라고?” 하시는 분들도 많겠습니다.

 

그러나 시리나 구글 어시스턴트 같은 AI 비서 애플리케이션은 마치 소개팅에 나 대신 나가 있는 TV 프로그램의 소개팅 아바타처럼 생활 속 많은 일을 대신 수행해 줍니다. 오늘 비가 올지 안 올지 알아봐 주는 것부터, 중요한 회의가 몇 시에 있는지 확인해주는 것처럼요. 나의 ‘모습’을 대신 보여주던 이상형의 모습을 보여주는 분신이 아니라 실제 나의 대리인으로서 역할을 나누는 분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쉽게 표현하기 위해 지난 '그 많던 아바타는 다 어디로 갔을까?'에서 언급했던 ‘아바타’의 본래 뜻, '지상에 내려온 신의 분신'이라는 말에 대입해 볼게요. 싸이월드의 미니미가 '미니 홈(지상)에 들어있는 내(신) 모습(분신)'이라면, 시리는 '휴대전화(지상)로 내(신) 일을 대신 해주는 AI(분신)'라는 거죠.​ 

이 아바타의 특징은 바로 '다른 아바타들과 함께 일한다'는 점인데요. 예를 들어, 내가 친구에게 꾼 돈 10만 원을 갚아야 한다고 가정해보죠. 요즘은 내가 직접 은행에 가서 번호표를 뽑아 은행원을 마주하고, 계좌에서 10만 원을 출금한 후 친구를 만나 돈을 전달하지 않고 AI 비서를 불러 휴대 전화 속 은행 어플리케이션을 사용해 친구의 계좌로 10만 원을 '쏴' 줍니다. 이 과정에서 나의 대리인 AI 비서 아바타는 은행 어플리케이션이라는 은행원의 대리인 아바타와 협업해 내가 친구에게 편리하게 10만 원을 갚을 수 있게 도와줍니다.

  

물론 대리인 아바타들은 인터넷에 연결된 온라인 상태가 아닌 경우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현실 속 나와 끊임없이 소통하며 긴밀한 관계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기존의 미니홈피, 채팅 프로그램의 아바타와 차별화된 부분이 있죠. 한 단계 더 나아가, 이 ‘대리인’ 아바타는 나의 일방적 지시를 따르는 것을 넘어서 나를 분석하고 데이터화하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검색 엔진과 SNS의 광고를 들 수 있겠네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공통된 상품에 대한 광고를 생산해 제공하는 기존의 광고업체들과 달리, 최근 주목받고 있는 SNS ‘광고업체 대행’ 아바타 AI는 해당 SNS를 사용하는 개인의 취향을 검색 내용, 해시태그 등 다양한 데이터를 분석해 사용자의 취향과 니즈를 ‘저격’하는 광고를 띄웁니다. 뜨개질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DIY 뜨개 세트를 선보이고, 드론 조립이 취미인 사람에게는 드론과 관련된 제품을 SNS 피드에 팝업시키는 형식이죠. 이러한 기술 발전과 함께 사람과 아바타는 더는 일방적인 주종관계가 아닌 상호 소통하는 관계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나를 표현해 주지만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소통이라는 기능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추억의 아바타들. 나와 더욱 가까워졌지만, 이제는 '나만의 것'이라는 느낌을 주지 못하는 대리인 아바타들. 이 중간에서 더욱 특별해지는 또 다른 아바타가 있습니다. 바로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들인데요. 내 소중한 게임 캐릭터의 이야기는 여러분의 댓글과 공감으로 힘을 충전해 다음 연재물에서 함께 나누어보겠습니다.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 제주에서, 넥슨컴퓨터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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