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알면 최소 95년생) 2G폰으로 일주일 살아보기

조회수 2018. 7. 3. 08: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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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할 것도 없으면서 계속 스마트폰만 들여다봤다. 중독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 건 2년인가 3년쯤 전부터다. 자려고 이불 속에 누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다보면 한두 시간 지나는 건 금방이었다.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를 오가다 밤 11시가 되면 네이버웹툰에 들어갔다. 신의 탑, 노블레스, 고수, 언덕 위의 제임스, 외모지상주의 등을 좋아한다. 최근엔 유미의 세포들을 정주행했다.


특히 유튜브에 한번 접속하면 갯벌에 발을 담근 것처럼 빠져나오기가 어려웠다. BJ들이 엄청난 양의 음식을 흡입하는 먹방을 볼 때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건가, 한심해하면서 계속 봤다.

“스마트폰에 너무 많은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요. 스마트폰 없이 생활할 수 있을까요?”


이번 의뢰는 망설여졌다.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스마트폰 없는 생활의 불편을 감당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사회생활이 가능할까 걱정됐다.


회사가 작년 초부터 내게 부여한 임무는 독자들이 SNS 등으로 의뢰한 내용을 취재해서 기사를 쓰는 거다. 의뢰가 들어왔으니 하긴 해야겠는데 SNS를 끊었다가 밥줄마저 끊기는 건 아닌가 싶어 나름의 기준을 정했다.


<어차피 SNS는 PC로도 할 수 있으니까 일과시간에 PC로 하는 건 OK. 스마트폰 사용은 NO.> 이렇게 시작됐다. ‘2G폰으로 생활하기.’ 

   

2G폰을 어디다 뒀더라. 서랍 깊숙한 곳에서 찾았다. 충전을 하고 전원 버튼을 길게 눌렀다. 흰색 스카이폰은 시체처럼 굳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사용한 게 2011년 3월. 나의 2G폰은 7년여 세월동안 어둡고 차가운 서랍 속에서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을 터였다.


우리 팀 일러스트를 담당하는 디자이너의 2G폰을 빌려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대리점을 찾았다. 

회사 건물 1층에 있는 휴대폰대리점

“2G폰으로 기기 변경하려고요.” 

   

당황한 직원이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이곳에서 지난해 5월부터 일했는데 2G폰으로 갈아탄 사람은 내가 처음이랬다. 기존 스마트폰 약정이 두 달 정도 남았기 때문에 2만7000원 정도를 뱉어내야 했다.


이젠 연락처를 옮길 차례. 그런데 다 안 들어갔다. 3662개의 연락처 중 1199개만 저장됐다. ‘괜찮으면 계속 2G폰을 써볼까’하는 생각은 시작하자마자 무너졌다. 

   

데이터 쓸 일이 없으니 요금제도 바꿔야했다. 기본료 1만2100원에 음성통화 1초당 1.98원, 문자 한통에 22원짜리 기본요금제로 변경했다. 한 달 동안 매일 한 시간씩 통화하면 1.98원×60초×60분×30일=21만3840원(기본료 제외).


학창 시절 2G폰을 쓸 때는 여자친구와 통화하면서 통화시간을 확인했었다. 갑자기 들리지 않는 척 “뭐라고? 뭐라고? 안 들려” 이러다가 종료 버튼을 누른 뒤 전화가 오길 기다렸던 기억이 떠올라 피식했다.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 모든 절차가 마무리 됐다. 앞으로 내가 쓸 핸드폰은 스카이 IMB-1000. 전원을 켰다. 핸드폰이 경쾌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카이, 이츠 디퍼런트.(SKY, It's different.)” 

디퍼런트해도 이건 너무 디퍼런트했다. 걷다보면 자꾸 엉덩이가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야! 전화를 걸었으면 말을 하라고!” 주머니 속에서 누군가의 절규가 개미 소리처럼 들리면 난 얼른 휴대폰을 꺼내 사과했다. 미안해, 내가 건 게 아니라 엉덩이가 걸었어.


엉덩이는 가끔 자동응답 버튼도 눌렀다. 전화를 건 이들은 ‘운전 중이라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라는 안내를 받았을 거다. 운전 중 통화는 불법이지만 고백컨대 난 운전하느라 전화를 안받아 본 역사가 없다. 원래대로 되돌리는 방법을 몰라서 계속 콜백을 했다.


홀드 기능(버튼을 눌러도 반응하지 않는 기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3일 뒤였다. 문자를 적는 것도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용건이 있으면 1초당 1.98원을 써가며 그냥 전화를 걸었다. 한 후배 기자는 “선배, 기능의 반의 반 정도 쓰고 있는 거 같네요ㅋㅋ”라고 했다. 


내가 정말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산 적이 있긴 했던 걸까. 기기를 바꾼 지 하루도 안돼 2G폰 체험 취재를 접고 싶은 마음이 아니 뗀 굴뚝같았지만 이미 엎질러진 2G폰이었다. 

엎질러진 2G폰을 연출해 봤다.

키패드 별(*) 옆에 에티켓이라고 적혀 있었다. 꾹 누르니 진동모드로 전환됐다. 낡은 핸드폰은 진동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란 각오로 죽을힘을 다해 움직이고 있습니다’라고 호소하는 듯 했다.


샵(#) 옆에는 자물쇠 모양이 그려져 있었는데 이걸 누르니 핸드폰이 잠겼다. 비밀번호를 모르는데 큰일이라고 생각하면서 0000을 눌렀더니 잠금이 풀렸다. 디자이너, 네가 단순해서 참 다행이야.

단순해서 다행인 이재민 '취재대행소 왱' 디자이너

지하철을 탔다. 손에 스마트폰이 없으니 뭘 해야 할 지 모르겠더라. 그러다 눈에 들어온 ‘준(June)’. 응? 이거 인터넷 되는 거 아닌가?


버튼을 누르니 첫 화면에 요금 부과 기준이 나왔다. 요금 폭탄을 맞진 않을까 꼼꼼히 정독한 뒤 ‘접속하기’를 눌렀다. ‘서비스가 종료됐습니다.’


지하철 안에서 벽에 붙은 광고를 한 글자 한 글자 정독했다. ‘건희야, 이번엔 꼭 집에 가자.’소아암을 앓고 있는 건희를 후원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이곳에 붙은 지는 꽤 됐겠지만 읽은 건 처음이었다.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관찰했다. 약속이라도 한 듯 하나같이 고개를 숙인 채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이 모습을 기록하려고 카메라를 켰다. 에티켓 모드로 촬영해도 소리가 나려나. 시험 삼아 바닥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봤다. '찰칵.' 소리가 나는 게 에티켓’이라고 야단을 치듯 엄청 큰 효과음이 울렸다. 정부는 2004년부터 도둑촬영 방지를 위해 휴대폰 카메라 촬영음을 의무화했다.

2G폰으로 찍은 사진을 컴퓨터로 옮길 수 없어 스마트폰으로 촬영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난 지하철에서 뭘 했더라. 주로 음악을 들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2G폰으로 바꾼 뒤 음악을 한 번도 안 들었다. MP3플레이어나 라디오도 이미 스마트폰으로 흡수돼 버린 탓이다.

서울중앙지검에 취재가 있는 날이었다. 잘 때 깨우는 건 에티켓이 아니라는 듯 모닝콜도 에티켓 모드로 울렸다. 부랴부랴 옷을 챙겨 입고 서울중앙지검에 갔다. 피고인이 들어올 때 멀리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엄지와 검지를 화면에 댄 뒤 벌렸다. 화면이 커질리 없었다.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다른 부서 부장이다.


“너 지금 카톡 안돼?”

“네, 2G폰 쓰고 있어서 안돼요.”

“응, 아무튼 지금 서초동이라매? 피고인 들어오는 거 영상 찍어서 바로 보내주렴.” 

   

이걸 어떻게 보내야 하나. 이런 상황을 팀원들에게 알려야 하는데 단체 카톡방에 글을 남길 방법이 없었다. 대신 전해달라고 문자 한통을 적는데 5분이 걸렸다.


예를 들어 ‘박’이란 글자를 적을 건데 ‘바’까지 적고 ‘ㄱ'을 찾고 있으면 커서가 움직여 ‘바ㄱ’이 됐다. 영상은 취재하기 바쁜 검찰 출입기자가 대신 찍었다.

스마트폰 없이 화장실을 간다는 건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던 일이다. 변기에 앉았는데 딱히 할 게 없으니 싸는데 집중할 수 있었다. 온 힘을 다해, 느긋하게. 어거지로 밀어내는 게 아니라 덩어리들이 출구를 향해 우아하게 미끄러져 가는 느낌.


나는 변기에 앉아 힘을 주면서 “언젠가 똥이 가치를 지니게 된다면 가난한 자들은 그들의 항문마저도 잃게 될 것이다.”라는 헨리 밀러의 말을 떠올렸다. 

   

(똥 얘기하다 갑자기 음식 얘기가 나와서 유감이지만) 저녁에 이태원에서 약속이 있었다. 처음 가보는 음식점이었다. 2G폰엔 지도 어플이 없다. 지하철역에서 내린 뒤 한 여성을 붙잡고 물었다. “이 음식점에 가려면 어떻게 가야하는지 아세요?"


여성은 도도한 표정으로 지도 어플에 접속해 방향을 알려줬지만 나는 얼마 못 가 또 다시 길을 잃었다. 만나기로 한 상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문자로 설명해줬다. 문자에 귀찮음이 묻어있었다.

음식점 가는 길을 설명해 준 문자. 너무 많아서 일부만 편집했다.


문자가 도착할 때마다 휴대폰에서 ‘전화 왔다~메시지인데 속았지?’라고 울렸다. 한번도 안 속았다. 문자는 100개까지만 저장할 수 있었다. 거의 다 차면 먼저 온 문자를 일일이 지워야했다. 그래서 예전엔‘사랑 고백’같은 소중한 문자를 문자보관함에 따로 보관하곤 했다.

집에 들어오니 밤 11시쯤. 녹초가 된 몸을 이불 속에 구겨 넣었다. 2G폰도 힘들었나보더라. 배터리 표시등을 깜박이며 “밥 주세요”라고 호소했다. 링거를 투여하듯 핸드폰 옆구리 부분에 충전 잭을 꽂고 오랜만에 책을 폈다. 20페이지쯤 읽으니 잠이 왔다. 꾸벅꾸벅 졸면서 하루가 지나갔다. 이렇게 스마트폰 없이 일주일을 보냈다.

스마트폰을 처음 구입한 건 2011년. 스마트폰 없는 세상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게 변하기까진 7년 정도면 충분했다. 가끔 이런 상상을 한 적은 있다.

‘스마트폰을 버리면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아니다. 족쇄가 풀리기는커녕 손발에 포박까지 당하는 것 같았다. 문득 밀려오는 두려움. 체험기가 끝내고 다시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지만, 이제는 앞으로 스마트폰에 구속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게 두려웠다. 루화난은 그의 책 ‘인생철학’에서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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