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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것은 이제 윤리적인 문제"..'잡식가족의 딜레마' 황윤 감독

조회수 2018. 8. 21. 12: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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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가 이렇게 귀여울 수가..

2015년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아시나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포스터
이 영화는 구제역 살처분 뉴스가 대한민국을 휩쓸던 때, 공장식 축산의 위기와 그로 인해 채식의 길을 걷게 된 한 가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출처: 황윤 감독 [사진=리얼푸드]
'작별', '어느 길 위에서'의 황윤 감독의 작품이고요.

황윤 감독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출처: 비로소채식모임에서 상영 중인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개봉 당시에도 화제를 모았지만, 영화는 현재에도 많은 채식인들이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건강을 위해, 가치관으로 인해, 환경이나 동물복지를 위해 채식의 길로 접어든 사람들이 지치지 않고 채식을 이어갈 수 있게 해주는 추동 엔진이 돼주는 영화입니다.

이 특별한 영화를 만든 황윤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출처: 황윤 감독 [사진=리얼푸드]
영화를 만든 계기는 특별했습니다. 2010년 말, 구제역으로 인해 살처분 당한 돼지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여러 경로를 통해 살처분 현장의 영상을 보게 됐어요. 백주대낮에 아무렇지 않게 살생이 이뤄지고 있다는 데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동물에 대한 윤리는 말할 것도 없고,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이렇게 폭력적이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도 육식을 전면적으로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진 못했어요.

그 즈음 임순례 감독(‘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리틀 포레스트’ ㆍ동물보호단체 카라 대표)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고 합니다. 


“누군가는 이런 것을 다큐로 찍어야 하지 않겠냐”는 제안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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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야생동물에만 관심이 있었지, 돼지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어요. 그 때까지 돼지를 저금통이나 돈까스 이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한참을 고민하다 황윤 감독은 돼지를 찾아나섰습니다.

황윤 감독 가족의 기록이기도 한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전후해서 그에겐 아주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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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채식 이전 황윤 감독의 삶은 그야말로 ‘잡식형 인간’이었습니다.



고기 킬러는 아니었지만, 돈까스를 특히 좋아했고, 술안주로 족발도 즐겨 먹었어요. 커피우유는 거의 중독 수준이었죠.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황윤 감독이 육식을 처음 끊었던 것은 것은 2008년이었습니다.

“그 때 전후로 2년 정도 붉은 고기만 먹지 않았던 적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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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포 선라이즈’를 만든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푸드의 제국’이라는 영화를 본 것이 계기가 됐습니다.


‘패스트푸드 제국’은 도축장 이주 노동자들의 비인도적인 노동조건에 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며, 햄버거로 대표되는 패스트푸드의 위험성을 고발합니다.


이미지를 불러올 수 없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것은 마지막 신이었어요. 소가 난도질 당한 뒤 고기 덩어리로 변해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가는 장면이었죠. 그게 계기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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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엔 채식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 했지만, 결심은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남편 친구의 돌잔치에서 나온 스테이크 한 덩어리에 결심이 무너졌죠.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하지만 구제역 살처분 현장을 목격하고 돌아온 날부터 황 감독은 채식인의 삶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는 ‘윤리적 이유’와 ‘생존의 문제’였다고 말했습니다.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집으로 돌아오니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이 있었어요. 그제서야 그 책을 읽게 됐죠. 영화 촬영을 위해 자료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축산업이 우리의 몸을 병들게 하고, 이 작은 별을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몰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축산의 폭력적이고 가학적 시스템에 가담하고 싶지 않아 육식을 끊었어요.”

출처: 황윤 감독과 아들 도영 군이 유기농 당근을 돌보고 있다.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엄마로서의 절박함도 있었습니다.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끝장이 나고 있구나, 이렇게는 지속할 수 없구나, 이건 생존의 문제라는 것을 절감하게 됐어요. 그 모든 것을 오감으로 느끼니 흔들림 없이 채식을 할 수 있었어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황윤 감독은 ‘잡식가족의 딜레마’를 통해 공장식 축산의 문제점은 물론 동물들의 삶, 인간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동물을 착취하는 삶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한 삶의 조건인가를 고민했어요. 모두의 안녕을 위한 영화라고 생각했어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게다가 생산능력 향상을 위해 착취당하는 여성 동물의 삶도 돌아봅니다.

“영화 속 어미 돼지인 십순이가 아기 돼지를 키우는 과정은 제가 도영이를 키우는 모습과 다르지 않았어요.”    

출처: 친환경 돼지농장에서 아기 돼지와 놀고 있는 황윤 감독의 아들 도영 군.
새끼가 거세당하는 일을 겪게 하지 않으려 볏집에 숨기는 모성애는 절절했습니다. 8마리의 새끼 돼지 중 막내 돈수가 어미에게 장난을 치고, 젖 달라고 칭얼대는 모습에서 황 감독은 아들 도영 군이 자라는 모습을 봤다고 했습니다.
출처: 친환경 돼지농장 원가자농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엄마 돼지 십순이.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개와 고양이를 사랑하는 분들이 본다면 같다고 느끼실 거예요. 돼지도 우리가 사랑하는 반려동물처럼 희노애락이 있고 감정을 가진 동물이라는 것을요. 이렇게 고통받고 싶어하지 않는 생명체를 공장식 축산으로 사육하고 도축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질문하게 될 거예요.
출처: 황윤 감독의 남편.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영화에선 ‘잡식 가족’인 황윤 감독 가족 간의 갈등도 적지 않게 그려집니다.

‘무엇이든 먹을 권리가 있다’는 남편과 황윤 감독의 갈등은 채식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영화 개봉 이후 3년여가 흐른 지금은 상당한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이젠 정말 든든한 아군이 됐어요. 채식을 옹호하는 잡식동물이랄까요.”

남편이 변한 계기는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국립생태원에서 근무 중인 황윤 감독의 남편은 수년째 이어지는 조류독감 사태를 겪으며 공장식 축산과 싼값에 고기를 많이 소비하는 시스템이 인간뿐 아니라 야생 생태계에도 치명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합니다.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아들 도영 군은 엄마보다 더 깐깐한 채식주의자가 됐습니다.

“도영이에겐 어떻게 먹어야 한다고 절대로 강요하지 않아요. 가끔 돈까스를 찾기도 해요. 그럴 땐 사주죠. 언젠가 스스로 판단할 거라 생각하니까요.” 도영 군은 현재 95% 비건이 됐습니다. “아이의 취향 자체가 채식으로 돌아섰어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어느덧 채식 8년차, 황윤 감독도 눈에 띄는 변화를 마주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달고 살던 아토피도 사라졌고, 40대 중반에도 맑고 깨끗한 피부 덕에 ‘나이보다 어려보인다’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듣는다고 합니다. 채식 생활도 보다 깊어졌고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무엇을 먹느냐는 더이상 개인의 취향이 아니에요. 이제 완전히 윤리적인 문제로 넘어왔어요. 동물에 대한 폭력은 그 이유 중 하나일 뿐이죠. 환경에 미치는 양향이 너무나 심각해요.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축산업으로 인한 사막화와 온실가스 배출은 지구를 병들게 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입니다.

황윤 감독은 “세계 곡물의 80% 이상이 가축 사료로 소비되고 그 고기를 먹고 20억 인구가 비만과 고지혈증을 앓고 있다”며 “그러면서도 기아로 굶주리거나 죽어가는 사람이 매해 20억 명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아이러니한 일”이라고 꼬집었습니다.
출처: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스틸
육식 위주의 식습관에서 우리는 직접적인 가해자이자 피해자가 됐어요. 이젠 윤리적인 생존이냐 공멸이냐를 두고 선택해야 하는 순간인 것 같아요. 채식이 한때는 취향이었는지 몰라도 이제는 70억 인구와 동식물들이 살아가야 하는 생존과 정의, 인권, 평화의 문제이자, 우리 모두를 살리는 가장 빠르고 강력한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리얼푸드=고승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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