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젊은 PD, '노자와 21세기'부터 '다큐프라임'까지 EBS를 뒤엎은 비결: 김유열 PD 인터뷰

조회수 2020. 09. 16. 18:3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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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의 혁신을 낳은 독특한 생각법은?
출처: 장대군 사진작가
EBS PD, 전 학교교육본부장 김유열 PD

EBS 하면 무엇이 떠오를까? 어릴 적 어린이 방송을 많이 본 사람, 혹은 부모라면 〈방귀대장 뿡뿡이〉가 떠오를 것이다. 지적인 사람들은 〈EBS 다큐프라임〉이 떠오를 테고. EBS 역대 시청률 1위를 기록한 〈노자와 21세기〉는 30대 이상이라면 누구나 “아, 그게 있었지…”란 생각을 가질만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 3개의 프로그램 모두가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 것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에 『딜리트』라는 책을 펴낸 김유열 EBS PD, 전 학교교육본부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EBS에 본격적으로 어린이 프로그램을 늘린 편성기획부장이었으며 〈다큐프라임〉에 기존 다큐멘터리 제작비의 3배 이상을 투입하며 다큐멘터리의 새 장을 열어가기도 했다. 또한 〈노자와 21세기〉는 아예 그 스스로 제작한 프로그램이다.


그는 어떤 생각으로 이러한 EBS의 혁신을 낳았을까? 그 독특한 생각법을 인터뷰를 통해 읽어봤다.



1. 방송사 프로그램의 70%를 갈아치운 편성왕 이야기


이승환(ㅍㅍㅅㅅ 대표, 이하 리): 요즘은 EBS에서 어떤 일을 하나요?


김유열(EBS PD/전 학교교육본부장): 2019년 6월에 방송할 다큐프라임 6부작 〈진정성 시대〉를 1년째 준비해요.


리: 어쩌다 또 현장으로 돌아가신 거예요?


김유열: EBS 다큐프라임을 제가 만들었잖아요. 애정도 있고, 원래부터 현장에 있고 싶은 욕구가 너무 강해서, 이전에 편성기획부장 때도 사장님한테 특별히 양해 구하며 〈앙코르와트 3D〉 〈위대한 바빌론 3D〉를 직접 연출했어요.

그의 손끝에서 시작된 전설…

리: 크으… 다큐프라임뿐 아니라, 현재 EBS의 기틀을 만들었다 들었는데 자랑 좀 해보십시오.


김유열: 2000년에 EBS 역사에서 가장 큰 변화가 일어났어요. 그 이전까지는 교육부 산하였는데, 공사로 독립됐거든요. 교육부로부터 독립하며 방송의 자율권과 편성의 독립권이 확보됐어요. 그 이전에는 편성안을 교육부에 보고했거든요. 공사 이후 첫 편성이었던 만큼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70%를 폐지하고 새로 설계했어요.


리: 70%????


김유열: 그 당시 KBS1, KBS2, SBS, MBC, 저희까지 공중파 5개 채널이 있었어요. 그런데 5개 채널 중 어린이 방송도 저희가 시청률 꼴등이었어요. 그래서 다 필요 없고 최소한 어린이 채널이라도 우리가 1등 먹자, 이런 모토로 편성 비율을 굉장히 높였어요. 12%에 머물러 있던 걸 나중에 45%까지 높였죠. 매년 등수가 올라가더니 2011년 이후에 어린이 프로는 시청률 1위가 되었어요. 시청률과 편성비율의 관계가 반드시 정비례 관계는 아니지만, 상당 정도 상관성이 있어요. 애들은 프로그램을 하나하나 찾아다니기보다, 채널 하나에 꽂히면 채널을 고정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리: 크으… 방송왕 김유열…


김유열: 제가 잘해서는 아니에요. 당시 공사화가 되면서 제작비가 늘었거든요. 그래서 강의 중심이었던 어린이 프로그램을 애니메이션, 엔터테인먼트로 재개편했어요. 덕택에 PD들도 만들고 싶은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었고요. 그러면서 〈모여라 딩동댕〉 〈방귀대장 뿡뿡이〉 등이 나왔죠. 방귀대장 뿡뿡이는 뒤에 나온 뽀로로보다 시청률이 높을 정도로 히트했죠. 그러면서 확고부동한 어린이 방송 이미지를 굳혔어요. 방송사는 그런 이미지가 되게 중요해요. 지금 tvN이 딱 그렇잖아요.

나오는 프로그램 이름마다 쟁쟁하다

2. 〈노자와 21세기〉, EBS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비밀


리: 그나저나 프로그램 70%를 갈아엎는다고 하면 반발이 심했을 것 같습니다. PD들 다들 자존심 셀 텐데…


김유열: 그렇죠. 다른 프로그램 만들라는 건, 곧 기존 프로그램을 뺏는다는 뜻이잖아요. 저도 제작해봐서 아는데, 자기 프로그램 뺏기면 상실감이 커요. 제가 제작비 5배까지 늘려줄게, 이래도 설득이 쉽지 않았어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래서 ‘Killing the baby’라고 하잖아요. 그래도 그때는 30대 혈기왕성할 나이니까 가능했던 거 같아요.


리: 30대에 부장 타이틀 달고 이래라저래라하면 엄청 싫어했을 것 같긴 하네요.


김유열: 그렇죠, 방송사에 좀 위계질서가 있잖아요. 그 절차도 글쎄, 저도 모르게 차장도 안 거치고 부장 인사가 난 거예요. 사장님이 저를 임명하면서 “누구에게도 타협하지 말고 소신껏 하라” 그러시길래, 사장님께 100% 폐지할 수도 있다는 약속을 받아냈죠. 사장님이 버팀목이 되어주셔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리: 아니 그런데, 그 보수적인 방송사에서 어떻게 그 젊은 나이에 발탁이 됐어요?


김유열: 저도 그것을 알 수 없어요. 나중에도 말씀해주시지 않더라고요. 딱 한 가지가 너무 컸어요. 〈노자와 21세기〉를 제가 기획했어요. 도올 선생님도 섭외했고요. 지금까지도 EBS에서 가장 센세이셔널한 프로그램이었죠. 전국 평균 시청률이 3% 가까이 나왔고, 전성기에는 전국 7%, 수도권 10%가 나왔어요. 〈방귀대장 뿡뿡이〉도 8% 정도였거든요. 그야말로 센세이셔널했어요. 어느 정도였냐면 격려하는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편성기획부가 마비 상태였어요. 사장실에도 전화 엄청 오고…

여기에서부터 ‘도올 열풍’이 시작되었다

리: 저도 그때가 기억나요. 그 프로그램은 어쩌다 탄생한 거죠?


김유열: 당시 방송사뿐 아니라 전 세계가 새천년을 맞이한다는 사실로 난리였거든요. 근데 그때는 EBS가 공사가 되기 전이었어요. 회사에 돈은 없는데 2000년 뉴 밀레니엄을 맞이해야 하는 거예요. 주어진 건 제작비 300만 원. 이걸로 뭘 할까? 남들처럼 빵빵한 영상을 만들 수 없다면, 아예 고전으로 돌아가자. 생각해보면 뉴 밀레니엄이란 게 퍼스트 밀레니엄 후 1,000년이 지나서 온 세컨드 밀레니엄이잖아요. 그때까지 살아남은 것에 주목해 보자. 아무리 기술이 발전해도 지금까지 살아있는 건 이유가 있을 거다. 새로운 것이 아닌 원형질을 건드리자. 그래서 고전에 주목하게 된 거죠.


리: 그래서 도올 선생님께 연락을…!


김유열: 그렇죠. 선생님이 또 되게 거칠어요. 그냥 이야기하실 때도 진짜 강의하듯이 막 신나서 이야기하거든요. 선생님이 노자 이야기를 꺼내는데, 제가 서울대 동양사학과 출신이다 보니 마침 책꽂이에 그 책이 있었어요. 그래서 마치 암기하듯 한자로 읊으니까, 깜짝 놀라며 정중하게 말투가 바뀌시더라고요. 사실 전 그냥 읽었을 뿐인데.



3. PD가 읽어야 할 것, 트렌드가 아닌 시대정신


리: 역시 사람은 약간의 구라를 섞는 게 굉장히 중요한 것 같군요.


김유열: 뭐 저도 대학 다닐 때부터 노자는 많이 읽었어요. (웃음) 마침 노자가 시기적으로 되게 좋았던 게, 그때가 외환위기 직후였잖아요? 시대가 약간 암울했어요. 그럴 때 시대정신이 굉장히 중요해요. 초과잉사회, 초경쟁사회에 이르면 불현듯 죽림칠현이 나타나요. 정치에 대한 혐오, 현세적인 것에 대한 혐오… 이렇게 사람들이 도망가고 싶어 해요.


리: 그렇게 따지면 지금도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요.


김유열: 더 심해졌어요. 지금 프로그램의 전반적인 경향 중 ‘먹방’ ‘야외방송’이 있잖아요. 이게 다 현실로부터 벗어나는 프로예요. 〈1박2일〉 〈삼시세끼〉가 잘 보여주잖아요. 평화로운 곳에 가서 먹고 놀고… 옛날엔 다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는데, 요즘은 다 바깥으로 나가죠. 그런 면에서 나영석이 굉장히 훌륭한 PD에요. 정말 시대를 읽는 능력이 있어요. 단순히 유행, 트렌드가 아니라 시대정신을 읽을 줄 알죠. 아까 말했던 초과잉사회 속의 현실 도피적인 삶, 이런 것들은 제가 보기엔 인류사회에서 가속화되면 가속화됐지,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거예요. 〈노자와 21세기〉 〈세계테마기행〉 〈한국기행〉 같은 다큐도 시대정신을 반영한 거라고 봐요.

2018년, 지친 한국의 젊은이라면 이 매력적인 이미지를 거부하기 쉽지 않을 것

리: 어찌 보면 아날로그로의 회귀라 볼 수도 있을까요?


김유열: 그렇죠. 테크놀로지의 정반대 길로 가는 거거든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는 점점점 커질 겁니다. 젊은 친구들이 직장을 그만두고 조그만 집을 짓고 사는 게 전 세계에 유행처럼 퍼져요. 모두 탈근대, 탈도시를 꿈꾸는 것이죠. 전 이게 단순한 트렌드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거대한 시대정신 속에서 일어나는 일이죠. 반유교적인, 반경쟁적인 시대정신이죠.


리: 말씀하시는 것 보니까 오히려 또 고전으로 회귀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유열: 복고가 지금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나타나잖아요? 예를 들어 신원호 PD의 〈응답하라〉 시리즈만 해도 그래요. 이게 그냥 나타나는 현상들이 아니에요. 큰 흐름 속에서 이어지는 일이죠. 스테디하게 흥행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들은 단순히 크리에이티브하기보다는 시대를 면밀하게 읽는 사람들이에요. 아까 말했던 나영석 PD가 딱 그런 사람이죠.



4. 방송국, 24시간 채우려 하지 말고 BIG IMPACT를 고려할 때


리: 하지만 시대정신과 별개로, 파편화도 동시에 진행됩니다. 요즘 사람들 유튜브 많이 보는데, 사람마다 추천 영상이 천차만별이에요. 이런 시대에 방송국, 특히 공중파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김유열: 모든 공영방송사의 시청률이 떨어지는 건 아니에요. BBC와 KBS를 비교하면 KBS 시청률이 훨씬 빠르게 떨어졌어요. 제가 2013년에 편성기획부를 나오며 “멀티플랫폼 시대에 지상파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해 이야기했어요. 한국은 굉장히 뒤처져 있지만, BBC는 이미 2천년대 초반에 대개혁을 했어요. BBC는 “A smaller BBC Big Impact”라는 기본적인 비전을 이야기했어요. 작지만 임팩트 큰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거죠.


리: 그 결과는 어땠나요?


김유열: 그런 철학으로 나온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플래닛 어스(Planet Earth)〉예요. 메이킹 필름까지 11부작이죠. 이거 하나 만드는데 360억이 들어갔어요. 그런데 5년 동안 매출이 1,200억 났어요. 10부작 하나로 엄청난 수익을 낸 거죠. 모든 플랫폼에 유통됐어요. IP, 모바일, 위성, 케이블 가릴 것 없이요. 그러니까 BBC의 “A smaller BBC Big Impact”라는 전략이 멀티플랫폼 전략인 거죠.

현재도 넷플릭스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리: 요즘 모바일 최적화 이야기가 많은데, 반대로 가는 느낌이네요?


김유열: 플랫폼에 종속된 콘텐츠를 만들면 안 돼요. 핸드폰에 유통시킬 콘텐츠로 개인 크리에이터를 이길 수 있을까요? 강아지가 풀을 뜯어 먹는 영상, 이런 건 막 1억 뷰가 나와요. 근데 얘네들은 그걸 돈도 안 들이고 찍잖아요. 어떻게 경쟁할 수 있겠어요. BBC에선 그런 걸 안 만들죠. BBC뿐 아니라 디스커버리, HBO도 다 알고 Big impact 프로그램을 만든 거예요. BBC에서 〈닥터 후〉 시리즈 만드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BBC가 가진 플랫폼이 16개 정도 돼요. 닥터 후 한 번 만들 때 제대로 만들고 여러 채널에, 다른 시간대에 태우는 거죠. 또 다른 방송사에 판권도 팔고, 넷플릭스에도 팔고. 방송사는 이런 빅 임팩트로 가야지, 자잘한 거 만든다고 해서 안 돼요.

리: HBO나 BBC는 정말 돈을 때려 박아서 어마어마한 블록버스터를 만든다는 게 성립이 되지만, 한국에서 가능할까요…


김유열: 제가 2007년 편성기획부로 복귀해서 다큐프라임에 썼던 전략도 마찬가지예요. 당시 EBS에 회당 제작비 1,000만 원 넘는 프로가 3개 정도 있었어요. 그러면 1년 52주니까 5억 2,000만 원 나갈 거 아닙니까? 그걸 제작비 3배로 늘리고 대신 재방송 두 번 틀겠다. 아니면 아예 5,000만 원 줄 테니 다섯 번 틀자. 그렇게 재방송 전략을 짰죠. 실제로 다큐프라임 재방송은 시청률이 안 떨어졌어요. 당시 제작예산도 역사상 가장 작았어요. EBS가 처음으로 적자가 났어요. 제작비도 확 삭감당했죠. 전체 제작비는 줄였는데 시청률이 급상승한 거죠.


리: EBS 외에 성공한 사례가 또 있을까요?


김유열: 공중파 드라마와 예능이 왜 안 먹히냐? 시청자들이 모두 TV 앞에 앉아있을 시절의 기존 방송 문법을 벗어나지 못해서예요. 그러면 〈응답하라〉 시리즈는 왜 먹히냐? 예능 PD, 예능 작가가 붙었기 때문입니다. 지상파와 tvN은 드라마라는 같은 장르로 묶이지만, 구성원이 다르기 때문에 완전히 다른 드라마가 나올 수밖에 없어요. tvN은 그걸 또 여러 채널에서 수십 번 틀죠. 매주 같은 시간대에 TV에 앉게 만든다는 건 과거의 문법에 젖어 있는 거예요.


리: 근데 사실 공중파를 보는 사람 자체가 나이 드니까, 더더욱 그쪽에 맞출 수밖에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김유열: 저는 거꾸로라고 생각해요. 그렇게 사람들이 떠날 때야말로 실험해야죠. 이미 big impact 실험은 세계 여러 방송국이 성공한 방법이고, 한국에서도 조금씩 성공했어요. 반면 모바일용, 인터넷용 콘텐츠에서는 방송사와 다른 ‘작은 사업자’들이 더 큰 성과를 보이죠. 그러면 종합 편성하는 곳은 빅 임팩트형 주는 프로그램들을 만들어서 차라리 두 번 틀라 이거죠.

리: 잠시 제작 이야기로 넘어가서… 그냥 예산만 늘려준다고 퀄리티가 담보될까요?


김유열: 그래서 돈만 많이 준 게 아니고 제작방식 자체를 변경했어요. 방송 나가기 전에 모든 게 다 완성되는 전작제를 채택했죠. 우리나라가 유독 전작제를 안 하는 나라에요. 드라마에서 쪽대본 얘기한 지 아주 오래됐잖아요. 잘못된 관행이에요. 외국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BBC는 다큐멘터리 만들 때 2년씩 잡고 만들 때도 있어요. 제가 다큐프라임을 만들 때도 타 방송사 제작 기간의 서너 배를 보장하겠다 했어요. 그러니까 실험을 할 수 있죠. 2부작에서 3부작 정도면 넉넉하게 1년을 줘요. 이걸 여러 번 재방송하는데, 평균 시청률은 올라갔어요.


리: 옳은 이야기 같지만 방송국 내부 설득이 굉장히 힘들단 생각이 듭니다.


김유열: 저는 콘텐츠를 고정자산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 중 하나예요. 고정자산은 감가상각이 이뤄지잖아요. 10억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다음 해에는 9억, 그다음 해에는 8억의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근데 한국 사람들은 콘텐츠를 소모품이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장기적인 가치가 제대로 평가되지 않죠. 고정자산으로 보면 정말 계속해서 활용할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 텐데, 소모품이라 생각하고 만드니까 한 번 보고 나서 안 보는 게 나와요. 조금만 유행 지나면 볼 수 없단 말이에요. 그래서 EBS는 클래식에 접근한 거예요 2,000년간 읽혀온 고전이, 2,000년간 주목받은 역사 유산이 2,000년 더 지난다고 사라지지는 않을 거 아니에요.



5. 언론사, 진짜 필요한 건 술과 외향성이 아닌 통찰력


리: 시대를 돌려서, 어쩌다 EBS에 입사하게 된 거죠?


김유열: 원래 과학을 좋아했는데, 아인슈타인 전기 읽고 나니까 과학은 천재들만 하는 것 같아서… 동양사학을 전공하게 됐죠. 83학번이었는데, 그때는 시대가 워낙 험해서 지하에서 학생운동도 일어나곤 했어요. 그 과정에서 동기들이랑 후배들이 많이 죽었어요. 박종철이 바로 아래 84학번이었고, 김세진, 이재호도 그쯤이었던 것 같고… 선배 하나는 도서관에서 투신자살하고… 사람이 매년 죽는 거예요.


리: 음… 그 비극의 현장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나요?


김유열: 전 니힐리스트였던 거 같아요. 당시 모든 게 허무했어요. 사람은 죽어 나가고 고등학교 때 배운 게 거짓말 같았어요. 니체의 니힐리즘적인 저항정신에 가까운 생각이 싹텄던 것 같아요. 이번에 쓴 책의 기본 정신에 해당되는 거죠. 기성 체제에 대한 불신과 반발을 키우며 대학을 다녔어요. 니체는 최고의 가치를 부정하라고 하잖아요. 그래서 신도 죽었다고 한 거죠. 기독교 가치와 모랄을 죽인 거예요. 저도 당시에는 모든 기성 가치를 부정하고 싶었고 니체는 그런 제게 적격이었죠.


리: 이후 취업이나 대학원 등 고민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김유열: 원래는 학문에 대한 열망이 있었지만, 석박사 다 끝내려면 마흔이 넘어야겠더라고요. 졸업하자마자 집안 부양해야 했으니 그럴 수는 없었죠. 마무리나 잘 짓자는 의미로 졸업논문 쓰고 기자 시험을 봤는데, 준비한 게 없으니 메이저는 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서 농업 관련 전문지에 들어갔죠. 돈이 없으니 한 달에 40만 원만 주면 뭐든 하겠다고 해서 취업했어요. 그러다 2년 반 뒤에 제 기사를 광고주 압력으로 안 실어준다는 이유로 나왔죠.


리: 그러다가 갑자기 PD로 가신 건가요?


김유열: 애초에 PD를 할 운명이었던 것 같기는 해요. 그만두고 바로 종합지 시험을 보는데 또 다 떨어져요. 그렇게 술만 먹고 다니다가 누가 EBS 이야기를 하기에 PD가 무슨 일 하는지도 모르고 시험을 봤는데, 떡 하니 붙어버렸어요. 월급만 주면 내가 뭘 못하랴 이렇게 들어간 거죠.


리: 대체 뭘 보고 뽑은 거죠(…)


김유열: 근데 원래 기자하고 PD가 비슷한 자질을 가진 것 같아요. 제가 지금은 이렇게 수다스럽지만, 원래는 수줍음 많이 타고 말도 잘 안 했어요. 그래서 기자가 됐을 때 걱정이 많았죠. 술 잘 먹고 출입처 가서 막 개기면 유능한 기자라는 통념이 있었거든요. 반면 PD는 엄청 유쾌한 사람에다 연예인들 잘 맞춰줘야 유능하다고 생각하는 통념이 있었고요. 전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어요.


리: 뭐, 지금도 다들 그렇게 생각하죠.


김유열: 그런데 그게 아니다 싶더라고요. 사슴을 잡으려면 사슴 뒤를 쫓으면 안 돼요. 사슴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기다려야죠. 그런데 기자건 PD건 그 길목을 알아보는 눈이 참 중요해요. ‘지금 뭐가 먹힐까? 세상 사람들은 무엇을 생각할까?’ 이런 생각을 하는 능력이 훨씬 더 본질적이지, 내가 어디 가서 숫기 있게 잘 논다고 해서 아이템 잘 잡고 연출 잘하는 게 아니더라고요. 경험적으로도 후배들만 봐도 통찰력 있는 친구들, 세상 읽는 능력이 있는 친구들이 잘해요.

결국 PD도 세상을 읽는 능력, 즉 ‘인사이트’의 싸움이다.

6. 통찰력을 극대화하는 법: 딜리트


리: 그러면 그 통찰력은 어디서 얻을 수 있을까요?


김유열: 사람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크리에이티브를 기다려요. 하지만 저는 그런 거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책에도 그렇게 썼지만, 생각을 많이 하는 게 가장 중요해요. 가장 쉬운 방법은 책을 읽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기존의 생각과 새로운 정보가 부딪혀요. 그게 자연스럽게 크리에이티브로 발현되죠. 그 방법을 책에서 ‘딜리트’라고 정의했어요.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지금 비타500을 마시잖아요? 비타500에서 뚜껑을 없애는 방법은 없을까요? 병이 꼭 둥글어야 할까요? 병이 꼭 유리로 만들어야 할까요, 유리를 제거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게 ‘딜리트’에요. 기존 고정관념 하나를 제거할 때마다 전혀 다른 뭔가가 떠오르는 거죠.

‘지움(delete)’에는 힘이 있다.

리: 딜리트 매트릭스는 실제로도 잘 활용하나요?


김유열: 저는 익숙하니까 머릿속으로 다 처리해요. 이걸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거죠. 다만 여기서 어떤 걸 제거해야 될까, 그러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 생각은 늘 하면서 살죠. 〈노자와 21세기〉도 그렇게 탄생했어요. 뉴 밀레니엄은 IT가 막 뜨는 시기인데, 여기서 IT를 제거하면 어떨까? 디지털로 승부 봐야 한다고 하는데, 디지털을 버리고 아날로그로 가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생각을 했죠.


리: 〈노자와 21세기〉는 내용도 그렇지만 포맷도 참 독특했어요. 지금이야 유행하지만 그때만 해도 성인 강연을 공중파에서 보긴 힘들었잖아요.


김유열: 인문학은 공중파 전체에서 처음이었어요. 이후 KBS에서도 도올 선생님을 모셔서 비슷한 콘셉트의 논어 강의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 큰 재미는 못 봤어요. EBS에서 이미 한 번 했으니 신선도도 떨어졌고, 공자는 당시 시대정신에도 안 맞았어요. 같은 고전이라 해도, 공자는 현 체제를 유지하고 세련화하는 학문이에요. 노자는 현 체제를 부정하고 단순화하는 학문이고요. 당연히 뉴밀레니엄에 공자는 맞지 않았겠죠.

리: ‘딜리트’라는 개념을 보면서, 본질만 빼고 다 없애서 차별화와 브랜딩을 동시에 하는 것…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김유열: 꼭 그런 것만은 아니고, 테크니컬한 부분도 있어요. 애플TV 리모콘 봤어요? 버튼이 3개밖에 없어요. IPTV 리모콘 보면 버튼 너무 많잖아요. 이건 과감하게 기능을 줄인 거예요. 기획 회의 하면서 이런 의견 나왔겠죠. “야, 타이머는 안 넣어? 레코딩 기능 넣어야 하는 거 아냐?” 이런 걸 피처 크리프(feature creep) 현상이라고 해요. 기능이 끝없이 늘어나고 완성은 안 되는 거죠. 반대로 줄여야 해결돼요. 〈백종원의 골목식당〉 보면 있던 메뉴도 확 줄이잖아요. 이런 게 다 딜리트적인 사고관이에요. 그러다 보면 ‘병 없는 물’ 같은 혁신도 나오는 거죠. 뭔가를 줄여나가는 딜리트적 사고관은 아이디어를 촉발시키는 트리거 역할을 합니다.



7. 딜리트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 고독과 여행


리: 줄이기 위해서는 먼저 관찰을 잘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유열: 그렇죠, 저에게 영향을 제일 많이 미친 사람이 데카르트예요. 방법적 회의죠. 니힐리스트들이 허무주의자로 불리지만, 당시의 관점으로 보면 과학자들입니다. 일단 의심해야 창조적 파괴가 나오거든요.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선 파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의심해야 하고요. 여기서 에고까지 지울 수 있다면 정말 대상이 새롭게 보여요.


리: 에고를 버리고 다른 시각으로 보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김유열: 누구로부터도 간섭받지 않는 시간과 공간을 확보하는 거죠. 절대 고독이에요. 자아까지 지우라고 이야기한 노자도 ‘수정독(守靜篤)’, 고요함을 지키라는 걸 강조해요. 그렇게 자신을 텅 비워야 자연스럽게 에고가 없어지는 거죠. 우리는 살면서 온갖 정보와 감각의 편향에 이끌립니다. 이런 요소들을 비우고 사물을 바라봐야 한다고 봐요. 여기에는 여러 방법이 있지만 전 산책을 선호합니다.


리: 저는 책에서 되게 와 닿았던 부분이 여행을 가란 거였어요. 여행 가면 시공간을 딜리트할 수 있다고.


김유열: 여행은 굉장히 효과적인 방법이에요. 우리 두뇌는 기존의 정보와 새로운 정보가 항상 싸워요. 인풋이 있으면, 기존의 정보가 얘를 어떤 식으로든 조정해요. 뇌는 불안정보다 안정을 원하니까요. 하지만 여행을 가면 자기 문화 속에서 보지 못하는 걸 목격하게 돼요. 기존 정보에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는 거죠. 르코르뷔지에의 건축, 피카소의 큐비즘, 스티브 잡스의 다자인 모두 이런 여행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뇌가 인식하지도 못하는 사이에 기존에 가진 정보를 딜리트하는 거죠.

괜히 현재 트렌드가 여행인 게 아니다.

리: 혹시 이걸 EBS 직원들에게 적용해본 예가 있나요?


김유열: 다큐프라임 제작진과 3주간 합숙한 적이 있어요. 주말 제외하면 양평에서 다 같이 보냈죠. 대한민국 연수 시스템은 다 엉망이에요. 스킬이랑 실무를 동시에 가르치는데, 기사 쓰는 법 가르친다고 기사를 잘 쓰게 되지 않거든요? 그것보다는, 술 먹으면서 네가 이 기사를 써서 세상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알려주면서 동기부여 하는 게 훨씬 나아요. 마음이 동하면 알아서 수단과 방법을 찾거든요. 그런데 한국은 꽉꽉 채우는 교육을 하려 하죠. 다 소용없어요. 


리: 어떻게 보면 딜리트를 되게 강조하시지만, 역으로 한 번 성공한 거면 쉽게 못 바꾸잖아요. 이 딜레마는 어떻게 봐야 할까요?


김유열: 그 부분이 정말 어렵죠. 정말 지금까지 잘해온 건데 문제가 있다고 해서 접기는 힘들어요. 『혁신기업의 딜레마』를 쓴 크리스텐슨 교수가 하는 말이 그거잖아요. “성공한 사람은 성공했기 때문에 망한다”, 맞는 말인 것 같아요. 이를 위해서는 분권 조직으로 가야죠. 하나 망한다고 다 망하지 않게.



반항적인 사람까지 품을 수 있는 조직의 딜리트가 필요할 때


리: 책에서는 ‘반항적’인 사람이 새로운 걸 내놓을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그런데 뭔가 새로운 거를 뾰족하게 내놓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냥 미친개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유열: 반항적인 모든 게 선은 아니죠. 반항적인 사람 가운데 1%가 성공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은 드네요. 반항적인 문화를 제도화하는 게 필요해요. 예를 들어서 3M이나 구글 같은 조직은 업무 시간 안에서 일정 시간 자유롭게 자기 일을 만들어 할 수 있게 장려해요. 체제 속에서 다른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제도적으로 부여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게 G메일이죠. 반항아가 무조건 다 뜨는 건 아니에요. 하지만 그 반항 기질이 있는 사람을 배제하지 않는 문화는 있어야 해요. 그 사람들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 문화, 이런 게 우리나라에는 많이 부족한 것 같아요.


리: 자, 그러면 전 본부장님은 EBS에서 어떤 장치를 만듭니까.


김유열: 제가 만든 건 아닌데, EBS는 책임 묻는 시스템이 없어요. 인사이동은 하지만, 좀 자유롭죠. 다른 방송보다 덜 관료적인 것 같아요. 시청률에 덜 연연해 하니깐요. 대신 우리 타깃만 확실히 지키자는 거죠. 어차피 우리가 타 공중파나 해외 방송사처럼 돈을 끌어올 수 없다면, 확실히 우리만의 색과 퀄리티를 가져가자는 거죠.


리: 일종의 니치 미디어 전략이군요.


김유열: ‘니치버스터’라는 말이 있어요. 니치 시장에서도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죠. 세계 3만 명도 안 되는 희귀병을 앓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신약을 개발해도 몇억 달러를 벌 수 있다고 해요. 시장이 크다고 돈을 버는 건 아니죠. 디스커버리를 설립한 존 헨드릭스는 역사와 과학 다큐와 같은 지적인 프로그램을 좋아하는 사람이 25%면 충분하다고 했어요. 교양 장르를 가지고 니치버스터가 된 거죠. 그런데 지금 디스커버리는 HBO보다 매출이 더 높아요. 매출이 7조 정도고, 그중 영업이익이 2조가 넘어요. 요즘 사람들은 엔터테인먼트 채널만 돈을 번다고 말하는데, 작은 거 하나만 제대로 잡아도 그 수익이 적지 않아요. 특정 시장 장악한 중소기업들, 히든 챔피언이라고 돈 엄청 벌잖아요.


리: 하지만 모든 걸 딜리트하고 딱 한 놈만 팬다, 이 전략을 잘못 쓰다가는 순식간에 회사가 날아갈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김유열: 그렇죠. 망한 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수많은 기업들이 그랬겠죠. 결국 리더가 어떤 통찰력을 갖느냐의 문제라 생각합니다. 그런 면에서 전 EBS 황금기에 참 좋은 사장님들을 모셨죠.

김유열 PD의 통찰이 담긴 신간 『딜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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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당 기사는 쌤앤파커스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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