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배틀로얄 게이머들, 왜 '에이펙스: 레전드'만 할까?

조회수 2019. 2. 21. 17:5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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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로얄의 새로운 공식, 에이펙스: 레전드

리스폰 엔터테인먼트의 지난 작 ‘타이탄폴 2’의 비참했던 출시 첫 주를 고려하면 ‘에이펙스: 레전드’의 출시 첫 주는 경이로움을 넘어 경외심마저 느껴진다. 더군다나 한국에선 특별한 홍보조차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입소문만으로 피시방 점유율을 차지해가고 있으니, ‘에이펙스: 레전드’의 흥행기록은 그저 수치에 불과하고 진짜 흥행은 이제 막 시작되려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제 배틀로얄은 의무적인 콘텐츠다. 지난 1년간 발매된 게임들을 보면 배틀로얄로 나와도 이상하지 않은 게임부터 대체 왜 배틀로얄로 만드는지 의문스러운 게임까지, 정말 다양한 배틀로얄 게임이 발매됐다. 그러나 대부분은 몇몇 개선점을 제외하면 ‘어느 게임들’을 교과서로 삼은 듯한 플레이 구조를 답습할 뿐이다. 그러한 게임들을 보면 회사 주가를 위해서인지, 팬들의 요구인지, 그냥 재밌을 것 같아서 배틀로얄 콘텐츠를 넣었는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배틀로얄 장르가 어떻게 답습되어 오며 얼마나 형식적인지 돌이켜 볼 수 있다.

  

그럼 타이탄 없는 타이탄폴과 배틀로얄의 조합은 어떻게 보이는가? 어색하다. ‘타이탄폴 2’의 게임성을 고려해도 의무적으로 만든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수밖에 없다. 게다가 파쿠르도 제한적이니, 타이탄폴의 상징적 요소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할 정도다. ‘타이탄폴 2’의 무기와 파일럿 능력들 그리고 게임 리소스까지 재활용해 만든 게임인 점은 그러한 의심을 더욱 가중했다.

  

그러나 ‘에이펙스: 레전드’를 플레이한 뒤 게임에 대한 의심은 모두 사라졌다. 오히려 왜 출시 당일에 해보지 않았나 후회가 들 뿐이었다. ‘에이펙스: 레전드’에서 배틀로얄 장르의 정석이 답습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오히려 배틀로얄 장르의 오랜 관습들이 우습게 느껴지게 되었다.

‘타이탄폴 2’의 경쾌하고 시원한 조작감은 여전하다. 비록 ‘타이탄폴 2’에 비하면 다소 제약이 있는 편이나. 배틀로얄 장르임을 고려하면 파쿠르나 벽 타기 등에 제약을 주는 변화는 마땅하다고 생각하며, 이런 변화로 게임이 어색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다.

  

그러나 이보다 더 멋있는 건 ‘에이펙스: 레전드’의 전투 페이스다. 몇 분간 힘겹게 모은 아이템을 떨굴 걱정 때문에 전투를 지양하는 태도는 ‘에이펙스: 레전드’에서 빛을 볼 수 없다. 파밍만으로는 원하는 아이템을 모두 모으기 힘들게 구성된 점도 전투를 지향해야 할 이유 중 하나지만, 반격과 부활의 기회를 계속해서 주기에 전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점이 가장 크다고 생각한다.

다른 배틀로얄 게임들도 쓰러진 아군을 소생시키는 기능이 있으나 사망한 아군을 되살릴 수 있는 게임은 없는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에이펙스: 레전드’에서는 사망한 아군의 인식표를 획득한 뒤, 사망한 아군을 부활 신호기를 통해 다시 전장으로 투입할 수 있다. 아군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지속된 교전은 더 많은 보상을 얻을 기회가 되며, 분대원을 적극적으로 보조해야 할 필요성도 부각된다. 또한 사소한 장점이겠다만 먼저 죽은 친구가 잔소리꾼이 되거나 유튜브를 보기 위해 잠수를 타버리는 상황도 방지한다. 아군과의 협동도 강조하고 전투의 보상도 합리적으로 만드는 시스템이다.

  

대부분의 전투는 대치전으로 상대의 전력을 갉아먹기 시작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적에게 달려들어 끝장을 보는 형태로 이뤄지는데. 저격총의 위력이 다른 게임들보다 낮은 편인지라, 결국 한 자리에서 시간을 죽이기보다는 기동성을 적극적으로 살릴 수 있는 근거리 교전에서 승패가 좌우된다. 또한 몇몇 무기를 제외하면 적을 죽이기 위해 여러 발을 맞춰야 하고 (좋은 방어구를 장착했다면 한 탄창을 비워야 할 때도 있다), 빠른 이동속도와 다양한 이동 능력은 적과의 교전을 더더욱 어렵게 한다. 대치전에서는 탄탄한 맷집 덕으로 전략을 짜거나 상황을 대처할 기회를 많이 주는 한편, 근거리 교전에서는 플레이어와 분대원이 모든 기술을 동원하게끔 한다.

교전을 어떻게 진행할지는 사용하는 무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어떤 레전드를 플레이하고 있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레전드는 ‘타이탄폴 2’의 파일럿 혹은 ‘블랙 옵스 3’의 스페셜리스트나 ‘오버워치’의 영웅처럼, ‘에이펙스: 레전드’ 속의 각기 다른 기술을 가진 캐릭터들을 말한다. 가령 적이 남긴 흔적을 추적하는 기술을 가진 블러드하운드는 적의 위치를 파악하고 기습을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사냥꾼 레전드다. 갈고리를 사용해 지형지물을 넘나드는 로봇인 패스파인더는 지형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레전드이며. 홀로그램 분신을 사용하는 미라지는 분신으로 적을 혼란에 빠트리는 기만전술에 능한 레전드이다.

  

‘에이펙스: 레전드’에서 레전드의 조합은 매우 중요하다. 마치 ‘레인보우 식스: 시즈’에서 오퍼레이터를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팀의 강점과 한계가 정해지듯이 말이다. 특히 ‘에이펙스: 레전드’는 3명으로 구성된 팀으로 플레이하는 모드만 존재하기 때문에, 총 8개의 레전드를 어떻게 조합하는지는 게임 플레이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요소다.

  

가령 위에서 설명한 블러드하운드와 패스파인더 그리고 미라지로 구성된 팀은 적을 기습하고 혼란에 빠트리는 근거리 교전에 유리하지만, 전투를 오래 지속할수록 기습의 이점을 살리기 어렵고 팀원을 지원하는 능력이 약한 조합이기도 하다. 이처럼 팀의 강점과 한계를 이해하고, 적 팀이 어떤 레전드로 조합되어 있으며 어떤 상황에 유리할지 이해하는 능력은 ‘에이펙스: 레전드’에서 조준 실력 못지않게 중요한 능력이라 할 수 있다. 

편리한 인터페이스는 ‘에이펙스: 레전드’의 가장 강력한 장점이자, 배틀로얄 장르의 고질병을 해결한 요소이기도 하다. 배틀로얄 장르 게임들 대부분은 의도적으로 소통을 불편하게 구성해두고 있는데. 배틀로얄 장르의 모티브가 된 ‘DayZ’야 불편한 정보습득과 의사소통이 의도된 경험이라 하더라도, 다른 게임들도 굳이 같은 노선을 택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제약이 현실적이고 하드코어한 경험을 주는 데 많은 도움은 되지만, 의사소통을 쉽게 할 수 있고 아이템 창을 쉽게 정리할 수 있으면 현실적인 경험을 줄 수 없고 캐쥬얼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는가?

  

작금에는 그러한 인터페이스 구성이 오히려 게임 플레이에 제약만 주고 있을 뿐이다. 조준 실력 못지않게 ‘정확히 어느 나무에서 쏘는지’ 파악하고 전달하는 능력이 왜 강요되는가? 이런 점에서 ‘에이펙스: 레전드’의 편리한 소통 시스템은 칭찬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다. ‘에이펙스: 레전드’의 핑 시스템은 ‘도타 2’나 ‘리그 오브 레전드’의 챗 휠처럼, 간단한 조작만으로 원하는 정보를 전달하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팀원과 더욱더 빠른 의사소통을 가능케 하고, 적이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다 시간을 헛되이 보내는 일을 방지하게 해준다.

  

핑 시스템을 통한 의사소통 외에도 원하는 아이템을 요청하는 기능이나, 무기 부속품을 자동으로 부착하는 기능도 매우 편리하다. 물론 획득한 부속품을 장착 가능한 무기에 바로 장착하는 시스템은 기존에도 존재했다. 그러나 ‘에이펙스: 레전드’의 편리한 인터페이스는 조작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으로만 끝나지 않고, 배틀로얄의 군더더기를 최소화하는 데까지 성공했다는 점에서 다른 작품들의 인터페이스 디자인과 궤를 달리하고 있다. 왜 이제서야 이런 인터페이스가 등장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하며, 앞으로는 ‘에이펙스: 레전드’와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수없이 볼 것 같은 예감도 든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앞서 언급한 요소 외에도 배틀로얄 장르의 군더더기를 최소화하면서 새로운 시스템들을 대거 도입했는데. 가령 점프 마스터 시스템은 게임을 시작할 때 팀의 리더가 팀원들을 통솔할 수 있는 편리한 시스템이며. 이전 라운드에서 괄목한 성적을 낸 팀을 알려주는 챔피언 시스템, 가장 많은 사살을 기록한 플레이어를 알려주는 킬 리더 시스템은 ‘배틀로얄’의 경험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시스템이기도 하다.

  

군더더기를 없앤 점을 더 꼽자면 간략하였는지만 알 찬 맵 디자인과 탈 것의 부재를 꼽고 싶다. 배틀로얄 장르 하면 넓은 맵과 탈 것이 공식이나 다름없었으나. 플레이 타임의 대부분을 넓은 맵을 이동하는 데 시간을 보내게 되고, 탈 것의 부재로 경기지역 밖에서 고통받는 상황은 그다지 재밌는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

  

반면 ‘에이펙스: 레전드’는 전장을 좁게 만든 대신에 장소마다 개성을 확실히 부여하고 의미 없는 개활지를 최소화한 작품이다. 각 랜드마크들은 각기 다른 지형 환경을 보여주며, 이에 따라 장소마다 효율적인 교전 방식과 어떤 레전드가 유용한지도 달라진다. 탈 것의 부재는 레전드의 이동 기술이나 추적 능력의 가치를 더욱 부각한다.

밸런스와 게임 지속성은 첫 시즌 즈음에라도 개선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런칭 직후에는 흥미와 다양함을 중심으로 게임이 진행되지만, 플레이어들의 경험이 쌓인 뒤로는 최대한 효율적인 방식으로 플레이 양상이 자리 잡게 된다. 연구가 계속될수록 메타가 형성되고, 결국에는 판에 박힌 구조의 반복적 게임 플레이만 남게 되어 ‘에이펙스: 레전드’가 지니는 다양함이 무색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 현 버전만 하더라도 매판마다 방갈로르와 라이프라인은 지나칠 정도로 자주 기용되며, 피스키퍼는 안 쓰면 바보 소리를 듣고 있는 판국이니 말이다.

   

한편 ‘에이펙스: 레전드’의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악성 유저라 생각한다. EA의 다른 게임이 그러하듯, ‘에이펙스: 레전드’는 핵 사용자를 신고하기가 매우 번거로우며 처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도 확인할 수 없다. 출시가 1달이 채 안 된 시점임에도 핵 사용자를 가끔 만나게 되는 만큼, 악성 유저에 대한 적극적 대처는 반드시 필요하다. 특히 ‘배틀필드 V’의 선례를 고려하면 더더욱 필요한 조치다.

  

‘배틀프론트 2’의 교훈 덕인지, ‘에이펙스: 레전드’의 루트박스는 납득 가능한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루트박스를 통해서 레전드와 무기의 스킨부터 프로필 배너나 레전드로 기록한 정보를 표기하는 트래커 등을 획득할 수 있는데. F2P 게임인 점을 고려하면 레벨을 올릴수록 루트박스의 획득이 점차 어려워지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적어도 ‘배틀프론트 2’나 ‘어드밴스드 워페어’처럼 루트박스 없이는 게임 플레이가 불가능하지는 않으니, 스킨에 욕심이 없다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부차적인 문제다. 한동안 루트박스로 홍역을 앓았던 EA인 만큼, 최소한 루트박스와 스킨이 합리적으로 구성되어 있고 게임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인식이라도 심어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주변의 입소문과 권유로 ‘에이펙스: 레전드’를 고려 중인 게이머들이 꽤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구매가 필요 없는 F2P 게임인지라 부담 없이 도전해볼 수 있는 건 매력적이다. 하지만 새로운 게임에 적응하는 일은 마냥 쉬운 일도 아닌 데다가, ‘고인물’의 희생양만 되고 팀원에겐 짐짝만 될까 걱정하는 게이머들도 적지 않을 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주제넘은 발언을 해보자면 ‘에이펙스: 레전드’는 한 번이라도 해봐야 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다. ‘에이펙스: 레전드’를 해보지 않고 배틀로얄을 운운한다면 바보나 마찬가지다. ‘에이펙스: 레전드’는 배틀로얄 장르의 혁명이자 새로운 공식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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