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GOUT Review] 아름다운 이별, 은퇴식

조회수 2019. 9. 19. 12: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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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는 법. 처음의 낯섦과 설렘이 무뎌지고 점차 익숙해지는 만큼 마지막도 훌쩍 다가오는 것이 우리의 삶이다. 모두가 그걸 알지만, 이별의 아쉬움과 먹먹한 감정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은퇴를 앞둔 선수는 어떨까. 프로를 동경하던 소년 시절부터 야구에 온 청춘을 바쳤기에 정든 그라운드를 떠나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이다. 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속 영웅이 선수로 활약하는 모습을 더는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눈물짓는다. 이처럼 많은 이를 슬프게 하는 이별. 우리는 그 아쉬움을 달래고자 은퇴식으로 아름다운 작별 인사를 나눈다.


에디터 이찬우 사진 KT 위즈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야구가 주는 수많은 울림, 그중 선수가 한 팀의 구성원으로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팬들을 향한 진정성 있는 감사, 형제 같은 동료들을 위한 희생과 배려, 집이나 다름없는 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 진심들이 더해지며 구단과 선수는 가족과 식구가 되고 바라보는 팬의 감정도 특별해진다. 이처럼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가 된 베테랑의 은퇴식은 크나큰 감동을 선사할 터. 마지막까지 무한한 사랑을 느끼며 안녕을 고하고,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는 훈훈한 마무리로 팬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자리매김한다. 아름다웠던 드라마를 완결 짓는 최고의 해피엔딩이다.


하지만 그 영예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는 특별한 배웅 없이 조용히 마침표를 찍는다. 약 20년의 긴 시간 동안 좋은 성적은 물론, 투철한 프로의식으로 타의 모범이 된 소수만이 환호 속에 떠나는 특권을 얻을 수 있다. 슬픈 현실이지만, 그렇기에 은퇴식의 가치는 더욱 빛난다. 훌륭한 선수였음을 증명하는 훈장이라고나 할까. 지난날의 활약과 헌신을 인정받으며 자신을 아껴준 사람들 앞에서 끝인사를 전할 수 있는 무대. 많은 이가 목표로 삼는 명예로운 자리다.


#별들의 작별 인사 


쉽게 허락되는 행사가 아닌 만큼, 38년째 수많은 별이 거쳐 간 KBO리그에서 은퇴식은 100번도 채 열리지 않았다. 2019년 7월 기준, 지금까지 그 영광을 누린 자는 총 84명. 그 첫 번째 주인공은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인 윤동균이다. 중심타자로서 팀의 첫 우승에 혁혁한 공을 세운 그는 최초의 은퇴식을 가진 선수로 역사에 남게 됐다.


현역 때 환상적인 플레이로 환호를 이끌던 레전드들은 마지막 순간까지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OB의 첫 정상 등극과 암흑기, 이후 두 번째 우승까지 경험한 ‘불사조’ 박철순의 퇴장은 베어스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이제 그라운드를 떠나지만, 영원히 팬들 곁에 남을 것이라는 고별사를 올린 후 마운드에 입 맞추는 모습은 참으로 숭고했다. 시간이 흘러 2017년 두산 베어스의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자로서 21년 전 끝인사를 다시 한번 팬들에게 전하며 그의 은퇴식이 회자되기도 했다.


삼성 라이온즈 양준혁의 뒷모습도 감동을 안겼다. 2010년 행사 직전 열린 그의 고별 경기. 언제나 최선을 다한 프로답게 마지막 타석에서 땅볼을 친 후에도 1루를 향해 전력 질주한 플레이는 누구보다 멋졌다. 훌륭한 선수를 보내야 하는 심정을 하늘도 눈치 챈 걸까. 성대했던 은퇴식의 시작과 함께 비가 내리며 영화의 한 장면을 만들어냈다. 마찬가지로 삼성의 전설이자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인 이승엽의 마무리도 역대급이었다. 박수 칠 때 떠나기로 했던 국민타자는 은퇴 경기에서 무려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화려하게 선수 생활을 마쳤다. 야구장이 떠나갈 것 같은 우렁찬 응원가를 들으며 뜨거운 눈물을 흘린 그였다.


전 구단 팬들이 다 함께 레전드의 은퇴를 기념한 사례도 있었다. 바로 코리안 특급 박찬호. 1990년대 후반 힘겨웠던 시기에 긍정의 메시지를 전해준 영웅인 만큼 많은 축하를 받았다. 2014년 그의 마지막 스테이지는 바로 프로야구 올스타전. 그 시절 타지에서 한국을 대표해 영광이었다는 인사와 또 앞으로 새로운 위치에서 국내 야구 발전을 위해 힘쓰겠다는 각오는 모두를 뭉클하게 했다. 별들의 축젯날 한자리에 모인 각 팀 선수들은 헹가래로 전설에 존경을 표했다.


#진화하는 감동


흔히 은퇴식 하면 눈물바다가 된 현장을 떠올리기 쉽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뜻깊은 퍼포먼스와 함께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마무리하는 게 추세다. 지난 7월 13일 열린 KIA 타이거즈의 꽃, 이범호의 은퇴식, ‘최다 만루포’의 타이틀을 가진 그에게 특별한 타석이 마련됐다. 동료들이 모든 누에 나가 만루 상황이 만들어졌고, 상징과도 같은 그랜드슬램을 때려낼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그는 몇 번의 스윙 만에 배팅볼 투수 김선빈의 공을 통타해 담장 밖으로 넘겼다. 환호 속에 베이스를 도는 모습을 보며 장내에 모인 모두가 미소를 머금었다.


행사 막바지의 또 하나의 이벤트는 바로 등번호 인계식이었다. 그의 등번호 25번을 팀의 떠오르는 희망인 박찬호에게 물려준 것이다. 새로운 배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직접 입혀주며 격려하는 모습은 뭉클하면서도 의미가 남달랐다. 지난 10년을 이끌어 온 번호가 다음 10년을 책임질 기대주에 넘겨지는 것을 보며 팬들은 감상 속에 새로운 시대를 맞이했다. 후배 선수에게도 베테랑의 뒤를 잇겠다는 책임감과 함께 한 단계 더 발전할 계기가 되지 않았을까.


같은 달 28일에 열린 KT 위즈의 국민 우익수 이진영의 은퇴식에도 특별한 순서가 있었다. 이날 상대편은 긴 시간 몸담았던 전 소속팀 LG 트윈스. 두 구단에서 모범을 보이며 사랑받은 만큼, 홈과 원정 팬 할 거 없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다. 그리고 5회 말 종료 후 클리닝타임, 양 팀이 합동해 레전드에게 박수를 보냈다. 먼저 그의 LG 시절 응원가가 흘러나왔고, 팬들은 몇 년 만에 듣는 추억의 노래를 힘차게 불렀다. 이어서 나온 KT 응원가를 외치는 목소리엔 그간의 헌신에 대한 고마움이 가득 차 있었다. 그라운드에선 양 치어리더들이 함께 안무를 맞췄고 모든 선수는 기념사진을 찍으며 멋진 마무리를 선물했다. 한 점 차 승부가 이어지던 치열한 상황이었지만, 선배의 마지막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뭉쳐 경쟁을 잊은 따뜻함이 연출됐다. 그 외에도 헌정 영상엔 줄무늬 유니폼을 입던 시절도 굉장히 비중 있게 다뤄졌는데, 대부분의 은퇴식이 홈 팀에서의 활약에 최대한 초점을 둔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례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려가 있었기에 끈끈한 화합 속에 더욱 아름다운 순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


#마지막은 기억에 남기에


은퇴식의 희소가치는 여전하지만 점차 과거에 비해 많은 선수가 영예를 누리고 있다. 베테랑을 예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각 구단도 스토리를 쌓기 위해 노력하며 노장들이 박수 속에 유니폼을 벗을 환경이 만들어졌다. 일례로 올해 KT는 작년을 끝으로 은퇴한 투수 김사율을 초대했다. 통산 5.11의 평균자책점과 9.40의 대체 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를 기록한 그는 분명 눈에 띄는 선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팀은 1군 진입부터 추억을 함께 나눈 식구이자, 현역 500경기에 출전하며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마지막을 잊지 않았다. 김사율은 “스타도 소속 코치도 아닌 제게 뜻깊은 행사를 마련해 준 구단에 감사하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성적이 우선시되는 냉정한 프로의 세계에서 잔잔한 울림을 준 일화였다.


최근 NC 다이노스로 트레이드된 외야수 이명기도 전 팀 KIA로부터 잊지 못할 선물을 받았다. 은퇴가 아닌 타 팀으로의 이적이고 함께한 기간도 2년으로 길지 않았지만, 송별식이라는 무대가 마련됐다. 이로써 그는 앞으로도 친정 팬들에게 사랑받을 이름이 됐다. 선수 역시 지난 시간을 평생 소중하게 여길 것이다. 아름다운 끝맺음으로 완성된 훈훈한 이야기다.


하지만 뛰어난 실력으로 역사의 한 페이지에 이름을 새겼음에도 쓸쓸한 뒷모습으로 회상되는 이들도 있다. 두목곰 김동주, 사이드암의 전설 임창용, 꾸준함의 대명사 박한이 등이다. 물론 화려한 마무리를 갖지 못한 데는 그만한 각자의 이유가 있다. 이와 별개로 그들이 야구계에 공헌한 바가 크고, 많은 팬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을 선물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지난날의 과실이 그동안의 좋은 평가를 완전히 덮어버릴 것이 아니라면, 조금 늦더라도 의미 있는 자리를 만들어준다면 어떨까. 성대하진 않더라도 공식적인 인사를 전할 수 있는 정도라면 조금이나마 아쉬움을 덜어낼 수 있을 것이다. 조심스럽지만 이들의 드라마에 마침표를 찍어 선수와 팬 모두가 따뜻함을 느낀다면 좋겠다.


흔히 우리는 마지막의 이미지를 가슴속에 새긴다. 마냥 좋진 않았던 추억이 잔상에 남는 무언가로 인해 미화된다. 반대로 행복했던 관계도 슬픈 결말과 함께 악몽으로 변할 수 있다. 그렇기에 인생의 수많은 경험에 아름다운 끝맺음이 요구된다. 스포츠도 비슷하다. 조용히 잊힐 뻔한 조연이 소중한 인연으로 남거나, 이름만으로 가슴 뛰던 팀의 상징이 아픈 손가락이 되기도 한다. 선수와 함께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큰 감동이 되는 야구. 감명 깊은 스토리를 위해 꼭 필요한 해피엔딩. 은퇴식이 단순한 작별 인사를 넘어 특별함을 갖는 이유다.


위 기사는 더그아웃 매거진 2019년 101호(9월 호)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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