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 안전 검침하다 성추행을 당했습니다"
저는 도시가스 검침원입니다. 맞아요 매달 여러분의 집을 방문해 가스 검침을 하는 사람입니다.
결혼 전에는 회사에서 행정 업무를 봤는데, 애들 키우다 보니 더 이상 저 같은 경력단절자는 받아주지 않더라고요. 어느 날 동네에 가스검침원 자리가 났다는 얘길 듣고 ‘여기다!’ 싶은 마음에 바로 지원했어요. 출퇴근이 자유롭고 동네를 돌면서 일하는 거니깐, 틈틈이 애 돌보고 집안일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현실은 달랐어요. 검침원들은 고지서를 돌리고, 도시가스 계량, 안전점검 등을 해요. 검침은 매달, 점검은 6개월에 한 번씩이요. 저는 총 3400세대를 맡았는데, 매달 100% 검침을 하려면 밤 11시까지 일해도 도저히 끝낼 수 없는 거예요. 주말도 쉴 수 없어요. 어찌나 주말에 와달라는 사람이 많은지.
“낮엔 사람 없고 밤 10시에 오세요”
“일요일에 오면 안 돼요?”
요즘엔 1인 가구가 많아서 한 번에 검침을 성공하기도 어려워요. 어떤 집은 10번 이상 찾아간 적도 있어요. 자유로운 출퇴근이라고 해서 시작한 일인데 실상은 ‘종일 출근’ 상태와 다름없어요.
제가 8년 차인데 이렇게 한 달을 일해서 받는 돈이 고작 120만 원이에요. 최저임금이 될까 말까 한 돈이죠. 어째 월급이 이렇게 짜나 했더니, 회사에서는 우리가 언제 일을 시작하고 끝나는지 알 수 없다면서 ‘하루 8시간, 주5일 근무’한 것으로 일괄 처리하더라고요.
회사에 항의도 해봤죠. 적어도 내가 일한 만큼 돈을 달라고요. 그랬더니 뭐라고 하는지 아세요?
주부니, 가장이니 그런 게 무슨 상관인가요. 제가 주부라서 월급을 덜 받아야 하는 이유가 있나요? 저는 그저 일한 만큼 돈을 달라는 요구한 건데요.
요즘에는 목숨 내놓고 다니는 기분이에요. 여성이라고 만만하게 보고 다짜고짜 욕부터 하는 건 다반사고요. 특히 성추행하는 남자들 때문에 무서워 죽겠어요. 행여 남자만 여러 명 있는 집을 방문하거나, 집에 술에 잔뜩 취한 남자가 있으면 소름부터 쫙 돋아요. 괜히 집적거리면서 음담패설을 늘어놓거나 ‘애인하자’며 희롱하는 인간들이 많거든요.
울산 A 도시가스 검침원 박OO씨
서울 B 도시가스 검침원 김XX씨
서울 C 도시가스 검침원 전△△씨
하도 이런 일이 잦으니깐, 2년 전에 가스검침원들이 들고 다니는 검침용 PDA에 ‘위급상황용 버튼’을 달았어요. 버튼을 누르면 회사에 바로 연락이 간대요. 하지만 오작동이 잦아서 실제 상황에서는 별 도움이 안 돼요. 어떤 회사에서는 ‘성희롱 대처 내부 매뉴얼’을 만들었다는데… 읽어보니 ‘어쩔 수 없으니까 니가 참아라’는 소리던 데요.
2. 고객이 신체적 접촉을 시도할 경우?
-신속히 다음 장소로 이동해야 함을 알리며 자리를 피한다.
3. 고객이 음담패설을 할 경우?
-당황하지 않고 못 들은 척 담담하게 업무적으로 말을 돌린다.
-고객님 안들은 걸로 하겠습니다.
도시가스 검침원의 공식 이름은 ‘안전매니저’입니다. 글쎄요. 제 안전에는 항상 빨간 불이 들어와 있는데 누군가의 안전을 온전히 책임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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