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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면 임자라는 말이 무섭게 들리는 두 영화 비교

조회수 2020. 2. 7.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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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플레이 성찬얼 기자

<남산의 부장들>이 400만 능선을 넘었다. 제작 착수 때부터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중요한 분수령이 된 사건을 다뤄 주목받았던 작품답게 빠른 속도로 관객을 모았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 사건, 일명 ‘10.26사건’은 당시 복합적인 정치 상황이나 실존 인물에 대한 평가 등의 문제로 영화에선 거의 다뤄진 적 없다. 그나마 임상수 감독이 <그때 그사람들>을 연출해 관심을 환기하려 했으나, 당시 법원의 다큐멘터리 장면 삭제 판결로 작품 외의 주목을 받았을 뿐이다. 법원의 명령이 철회돼 <그때 그사람들> 또한 원본으로 만날 수 있는 지금, 10.26 사건을 정면으로 그린 <남산의 부장들>과 <그때 그사람들>은 어떻게 다를까 살펴봤다.

개봉 당시 법원의 명령으로 삭제한 <그때 그사람들>의 다큐멘터리 장면. 현재 서비스 중인 VOD나 스트리밍 버전에선 복원됐다.
※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사람들>의 캐릭터를 연기한 배우 이름은 ( )로,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 이름은 [ ]로 표기한다.

40일, 아니면 1일

출처: <남산의 부장들>
박용각

<남산의 부장들>은 1979년 10월 26일에서 오프닝을 열고 40일 전으로 돌아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푼다. 박용각(곽도원)이 미국의 청문회에서 박통(이성민)을 폭로하는 시점. 실제로는 1977년의 일이지만, 영화는 김규평(이병헌)과 박통의 관계에서 박용각의 행적 또한 크게 작용했을 거라 상정하고 40일 전으로 시간대를 변경했다.

출처: <그때 그사람들>
주 과장(가운데)

<그때 그사람들>은 반대로 1979년 10월 26일 당일만 다룬다. (문제시됐던) 다큐멘터리 장면 이후 대통령 각하(송재호)나 김 부장(백윤식)도 아닌 주 과장이 등장한다. 대통령 각하를 다시 만나게 해달라는 철없는 윤희 모녀와 만나고 있는 장면. 국가적 사건을 다루는 영화치고는 엉뚱한 시작이다. 정치적 부분이 아닌 박정희 대통령의 주색잡기에 관한 장면으로 오프닝을 꾸며 <그때 그사람들>의 풍자적인 측면을 강조한 것이다.


박용각, 혹은 주 과장

출처: <남산의 부장들>
박용각(곽도원)

주요 시간대와 함께 두 영화의 가장 큰 차이점. 묘사하고 있는 핵심 인물이 다르다. 김규평-김 부장[김재규], 박통-대통령 각하[박정희 대통령], 곽상천-차 실장[차지철]까지는 동일하나 <남산의 부장들>은 박용각[김형욱]을 끌어와 세 사람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그렸고, <그때 그사람들>은 김 부장의 부하 주 과장[박선호]를 내세워 사건의 전반적인 흐름을 강조했다.

출처: <그때 그사람들>
주 과장(한석규)

그외에도 각 영화에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인물을 뽑자면 <남산의 부장들>은 로비스트 데보라 심(김소진), <그때 그사람들>은 김 부장의 수행비서 민 대령(김응수)과 만찬장 집사 심상효(조상건)일 것이다. 데보라 심은 박용각과 김규평을 연결하는 인물이고, 민 대령이나 심상효는 당시 김 부장을 보좌하며 신뢰했던 인물이다. 즉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 간의 관계를, <그때 그사람들>은 그때의 시간과 공간을 더 강조한 걸 주요 인물 구성만으로도 읽을 수 있다.

출처: <남산의 부장들>
데보라 심(김소진)
출처: <그때 그사람들>
심상효(조상건), 민 대령(김응수)

의리와 정치, 아니면 가십과 사건

영화의 지향점, 등장하는 인물의 비중이 다르니 자연스럽게 각 인물을 묘사하는 시선도 다르다. 역설적이게도 박통과 김규평의 신의가 무너지는 과정을 그린 <남산의 부장들>은 당시 대한민국을 둘러싼 정세가 도드라지고, 반대로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전면에 세운 <그때 그사람들>은 실존 인물들의 비화를 10월 26일 하루에 응축해 캐릭터성을 부각했다. 그래서 <그때 그사람들>보다 <남산의 부장들>이 훨씬 비장하게, <남산의 부장들>보다 <그때 그사람들>이 훨씬 간결하게 느껴진다.

출처: <그때 그사람들>
대통령 각하(송재호)

구체적으로 비교해보기 위해 ‘그분’을 예로 들겠다. <그때 그사람들>에서 대통령은 부하들이 총리에 대해 농담하는 장면에서 등장한다. 그는 “배꼽 아래 일은 원래 문제 삼는 거 아냐”라고 (일본어로) 농담에 맞장구친다. 극에서 대통령으로서 업무를 보는 묘사도 거의 없다. 10월 26일 하루만 그린 영화라서 그는 만찬장 술자리에서 부하들과 놀다가 암살당한다. 요컨대 <그때 그사람들>은 박정희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오히려 암살당한 이후에야 그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질 정도로 <그때 그사람들>의 대통령은 하나의 상징으로 존재한다.

출처: <남산의 부장들>
박통(이성민)

그에 비해 <남산의 부장들>은 박통과 김규평의 관계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대통령 본인에게도 캐릭터성을 부여한다. 자신이 하야해야 할지 물어보고, 적적하니 술 상대를 해달라 할 만큼 돈독한 사이였다가도 일이 틀어지면 머리를 후려치는 등, 자기중심적인 성격. 돈과 권력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이는 <그때 그사람들> 대통령과 달리 박통은 오히려 두 가지에 지대한 관심을 두고 있는 편. 그는 사건이 흘러가게 하는 원동력으로서 자신의 기능을 다한다.

다른 인물들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연기한 배우들의 영향을 꽤 받는다. 김규평과 김 부장 둘 다 김재규를 모티브로 했지만, 김규평은 이병헌이 연기해 적은 진폭으로 요동치는 감정을 표현해 그의 진중한 성격을 살렸다면 김 부장은 백윤식만의 능글스러우면서 의뭉스러운 연기로 실존 인물의 모호한 의중을 캐릭터로 승화한다. 차지철이 모티브인 곽상천과 차 실장은 상대적으로 성격이 비슷하지만, 곽상천은 이희준을 통해 젊은 패기와 자만심을 드러냈고 차 실장은 정원중이 독선적이고 은근히 멍청한 성격을 명확하게 표현해 블랙코미디를 유발한다.


사건을 들여다본 망원경과 현미경

출처: <그때 그사람들>

시리즈는 아닌데 같은 사건을 다룬 영화라 괜히 뭘 먼저 봐야 하나 고민된다면? 취향별로 보면 된다. 아니면 보고 싶은 것부터. <남산의 부장들>은 평생을 충성한 상사와 자신의 이상 사이에서 벌어진 누아르고, <그때 그사람들>은 비장해야 할 순간을 어설픈 캐릭터들로 채우며 웃음을 유발한 블랙코미디다. 이렇게 두 영화의 지향점, 배경이 되는 시점 등이 천지 차이라서 어떤 걸 미리 봤다고 기시감이나 흥미가 저하되는 느낌은 거의 없다. 다만 어떤 영화라도 먼저 본다면, 두 영화가 만나는 ‘10월 26일’을 훨씬 더 재밌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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