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톨스토이, 그는 최악의 남편이었다

조회수 2020. 03. 12.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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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문학은 아내의 희생으로 완성되었다.

* 2016년 1월 11일 직썰에 게재된 글입니다.

영화 <전쟁과 평화>(1956)의 한 장면

어린 시절, 우리 집에는 국민서관에서 출판했던 60권 짜리 세계문학전집이 있었다. 그 60권을 완독하던 날의 뿌듯함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나는데, 그 때 읽은 책들은 이후의 삶을 살아오는 동안 내 문학적 지식의 기반이 되었다. 책이야 수십년 전에 폐품 더미 속에 사라졌지만, 머릿 속에는 여전히 그 책에 묻었던 손때와 추억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그 전집이 소개한 작가 중 레프 톨스토이가 있었다. 아동용 전집이니 <안나 카레니나> 같은 어려운 소설은 없었고, <톨스토이 동화>라는 이름으로 ‘바보 이반’이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같은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었는데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 때 톨스토이라는 이름에 익숙해진 건 후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나 <부활> 같은 그의 작품들을 기꺼이 찾아 읽도록 했던 계기가 되었다. 


이 대문호의 삶은 어땠을까. 아마 삶보다는 죽음을 먼저 되새기는 것이 나을 듯 하다. 1910년 11월 7일, 톨스토이는 휘황한 대저택의 침실에서가 아니라 우랄 철도의 작은 역, 아스타포보의 역장 관사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당시 그는 가출 중이었다. 아내에게 “나를 찾지 말라”는 편지를 쓰고 집을 빠져나온 톨스토이는 아내가 자신을 찾아내는 것을 피하려 3등 완행열차를 타고 다니는 등 일종의 밀행을 거듭했다. 


하지만 러시아는 너무 넓고 추웠다. 의사가 동행한 여행이긴 했으나 여든 두 살의 귀족 노인이 감당하기에 여행은 지나치게 길었고 그가 묵은 3등칸의 불결한 환경은 그의 건강을 해쳤다. 아스타포보 역장은 고열에 시달리는 노인을 보고 기절초풍했다. “아니, 톨스토이 백작님 아니십니까.” 그는 자신의 관사로 톨스토이를 옮겼다.

아스타포보 역

이후 러시아의 시골 역이었던 아스타포보는 일약 세계적 뉴스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온갖 가십지의 기자들부터 당시 한창 주가를 올리던 프랑스 뉴스 영화 촬영팀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작은 역으로 몰려들었다. 물론 톨스토이의 가족들과 아내 소피아도 달려왔다. 하지만 그녀는 톨스토이를 바로 만나지 못했다. 톨스토이의 골수 추종자들이 그녀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톨스토이 자신이 만남을 원치 않았다는 말도 있지만. 어쨌든 톨스토이 추종자들의 눈에 소피아는 톨스토이의 뜻을 가로막는 악녀에 남편을 핍박한 악처 정도로 보였을 테니.


실제로 세계 몇 대 무엇무엇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세계 역사상 3대 악처로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테페,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와 함께 톨스토이의 아내 소피아를 꼽는데, 사실 세 여자 모두 억울함이 많을 것 같다. 특히 소피아의 경우는 더욱더. 


톨스토이는 나이 서른 네 살에 18세인 친구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그는 귀엽고 발랄했던 소녀 소피아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전쟁과 평화> 여주인공 나타샤의 모델이 바로 아내 소피아다. 유명한 영화 음악 <나타샤 왈츠>와 함께 톨스토이가 묘사한 나타샤의 무도회 데뷔 풍경을 떠올려 보면, 소녀 시절의 그녀가 어떤 사람이었을지 짐작해볼 수 있다.

"공단 무도화를 신은 나타샤의 귀여운 발은 그녀의 명령을 기다리지 않고 제멋대로 민첩하고 경쾌하게 움직였으며 얼굴은 행복의 기쁨으로 빛나고 있었다."

- <전쟁과 평화> 중

그런데 결혼한 후, 톨스토이는 이 어린 신부에게 엄청난 문서를 내밀었다. 톨스토이 자신의 과거 방황과, 유혹과 범죄에 가까운 실수들을 장황하고 생생하게 써 놓은 일종의 고백문이었다. 그 글에는 매음굴을 찾아갔던 것은 이야기거리조차 되지 않을, 온갖 여자와의 염문에 농노 여자를 임신시켰던 일마저 적혀 있었다. 딴엔 고백이라고 내밀었겠으나, 소피아로서는 사기를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문서를 내밀면서, 톨스토이는 대문호다운 애매하고 절묘한 맹세(?)를 했다.

"앞으로 내가 스스로 만들지도, 그렇다고 피하지도 않을 아주 드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우리 영지에 여자를 들이지 않겠소."

짧게 말하면,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바람피지 않겠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굳이 여자를 피하지는 않겠다는 말까지 있다. 이것이 선언인지 맹세인지 알 수가 없다.


톨스토이는 비정상 수준으로 성적 욕망이 강한 사람이었다. 소피아는 무려 13명의 아이를 낳아야 했다. 임신 기간만 13년에 육박한 셈이지만, 소피아는 똑똑한 여자였기에 그 와중에도 엄청난 일을 병행했다. 천재는 악필이라는 말에 걸맞게 톨스토이는 대단한 악필이었는데, 그 글을 일일이 다듬고 교정해서 출판사로 보낸 게 바로 아내 소피아였다.

톨스토이와 소피아

<전쟁과 평화> < 안나 카레니나> 같은 인류사에 빛나는 걸작들은 소피아를 거쳐 빛을 보았다. 아무도 그녀의 공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녀는 아이 열셋을 낳고 직접 젖을 먹여 기르는 와중에 (톨스토이는 아이는 엄마가 길러야 한다며 유모를 못 두게 했다) 남편의 악필을 눈에 불을 켜고 들여다봐야 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이상을 자 본 적이 없다는 소피아의 글에서, 그녀의 고뇌와 허무함을 읽을 수 있다.

"나는 자동인형처럼 살고 있다. 걷고 먹고 잠자고 목욕하고 남편의 글을 옮겨 쓴다. 사생활이란 없고 독서도 놀이도 할 수 없으며 생각에 잠길 수도 없다..... 이게 도대체 무슨 삶일까?"

그런데 난봉꾼 톨스토이는 나이가 들면서 금욕주의자로 변신했다. 하지만 이도 딱히 자아성찰의 결과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방탕함을 반성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혹에 빠뜨렸다'는 이유로 여자들을 혐오했다. 막심 고리키가 “톨스토이는 여자에 대해 무자비할만큼 적대적”이라며 혀를 찰만큼.


그가 보인 또 한 번의 반전. 평생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았던 러시아 백작 톨스토이는 말년에 이르러 조직화된 정부와 일체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농부의 삶을 선택하고자 했다. 그는 일종의 기독교를 근간으로 한 무정부주의자 (그가 자처한 적은 없으나)가 됐고 교회로부터도 파문당했다. 그는 전재산을 버릴 생각까지 하게 되는데, 바로 이 지점에서 소피아와 격렬하게 부딪혔다. 개인적으로는 솔직히 소피아 편을 들 수밖에 없다. 소피아는 일생동안 그의 모순을 보고 살아왔으니. 


젊어서는 난봉꾼 노릇을 하다 결혼 후엔 ‘결혼은 합법적인 매춘’이라며 아내의 위신을 땅에 떨어뜨린 톨스토이. 그는 고결한 신념을 지키기 위해 전재산을 버릴 각오까지 했으나, 정작 자신의 뒷바라지에 삶을 바친 아내의 희생은 철저히 무시했다. 그녀는 더 참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뒷 사정은 알 것 없이, 톨스토이의 고결함을 존경하는 이들에게 소피아의 앙칼진 모습은 당연히 ‘악처’로 비쳐졌을 터다. 늙은 톨스토이가 16살이나 어린 아내에게 들볶이는 모습은 일종의 노인학대(?)로 비쳐졌을 것이고. 재미있는 건 내가 어릴 적 본 <톨스토이 동화>의 대부분은 이때 쓰여진 것들이라는 점이다. 


톨스토이는 자신의 작품 저작권을 두고도 소피아와 갈등을 벌였다. 톨스토이는 집안에서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 주던 막내딸 알렉산드라에게 저작권의 일체를 준다는 유언장을 비밀리에 작성했는데 소피아가 이를 안 것이다. 소피아는 눈에 불을 켠 채 그 유언장을 찾았고, 이 모양을 본 톨스토이는 마침내 최후의 가출을 감행했다. “아내가 나와 내 집안을 망치고 있다!”고 절규하면서. 글쎄, 가정을 망친 건 누구였을까. 


그러나 톨스토이의 죽음 이후, 톨스토이 전집을 펴내기 위해 마지막까지 진력한 사람 또한 그의 아내 소피아였다. ‘악처’라는 비난 속에 그녀는 뭔가 사무친 듯한 글을 남기기도 했다.

"진실로 위대한 한 남자와 천재의 아내로 살기에는 너무도 부족했던 이 여인을 세상 사람들이 부디 따뜻한 시선으로 봐주기를 바란다."

애처롭게도, 그녀는 남편을 사랑했다. 하지만 대문호 톨스토이는 남편으로서는 최악의 인물이었다. 하지만 알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은 그녀의 그릇이 작다며 탓했고, 톨스토이가 아깝다고 혀를 찼다. 그 탓에 소피아는 악처라는 누명까지 쓰게 됐다. 50년 가까이 함께 살았던 둘은 죽어서도 떨어져 묻혀 있다.


소피아의 삶이 어땠는지를 알게 되었다면, 억울함을 품고도 결국은 모든 불화를 자신의 부족함으로 돌려야 했던 그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녀를 악처라 부르는 일은 그만두어야 하지 않을까. 그녀는 결코 악처가 아니었다.

* 외부 필진 김형민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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