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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세는 아날로그, 흑백의 미학

조회수 2020. 3. 24. 10:5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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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 현란함 없이 담백하게..흑백으로 감동 전한 영화

온갖 촬영 기술과 CG, 현란한 색감이 넘쳐나는 가운데,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듯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이들은 화려한 시각 효과를 뒤로한 채 담백한 흑백 영상만으로 관객에게 깊은 울림을 남긴다. 흑백 영화는 과거 시대의 특별한 분위기를 묘사하기도 하고, 명암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냉정한 현실을 표현하기도 한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도 마찬가지다. 연출을 맡은 바츨라프 마르호울 감독은 더없이 차갑고 암담했던 상황을 흑백 화면을 통해 섬세하게 그려냈다.

영화 ‘페인티드 버드’(2019)는 폴란드 출신 작가 저지 코진스키가 집필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차 세계대전 시기 동유럽에서 살아가는 유대인 소년의 생존을 위한 사투를 그렸다. 영화는 지난해 제76회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공개돼 호평과 함께 홀로코스트를 그린 기념비적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과거 유대인이 겪어야 했던 혐오와 적대, 광기를 그린 작품은 여럿 있었지만, ‘페인티드 버드’는 그들과는 다른 충격을 선사했다. 어떤 색감도 없이 오로지 밝음과 어둠으로 구성돼 지루해 보이는 화면이 오히려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거칠고 단순한 흑백 필름이 명암을 극명하게 대비해 암울한 시대 단편을 여실히 들춰냈다. 흑백으로 구현된 당시는 넘실대는 광기를 주체하지 못한 채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고통을 토하는 지옥도와 다름없다.
‘페인티드 버드’가 흑백의 대비를 통해 유대인이 겪었던 아픔을 전달했다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작품 ‘쉰들러 리스트’(1993)는 나치가 발한 폭력과 홀로코스트의 실상을 보다 직접적이며 사실적으로 그렸다. 영화는 토마스 케닐리가 집필한 소설 ‘쉰들러의 방주’를 원작으로, 독일군에게 목숨을 위협받던 유대인들을 구해낸 오스카 쉰들러의 일대기를 담았다.

‘쉰들러 리스트’는 흑백 화면을 통해 당시의 실존적 공포와 비애를 효과적으로 전달했던 것은 물론, 실제 사건이 발생했던 시대를 연상시키며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듯한 감상을 남겼다. 일부 장면에서 컬러가 활용되기도 했는데, 이는 유대인들의 생명을 상징한다. 무채색의 화면만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일하게 생명력을 유지하던 붉은 코트를 입은 소녀가 끝내 죽음에 이르는 장면은 당대의 비인간성에 대한 좌절과 분노를 자아냈다.
이준익 감독 작품 ‘동주’(2015) 역시 시대상을 대변하기 위해 흑백 화면을 활용했다. 이준익 감독은 일제강점기를 살아가던 윤동주(강하늘)와 송몽규(박정민)를 흑백 영상을 통해 담담히 그렸다. 그들이 겪었던 시대와 아픔은 흑백이기에 더 여실히 전달됐다. 무채색 영상이 인물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내면 자체에 집중하게 만들었던 이유다. 영화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시인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일생을 그렸다.

노아 바움백 감독 작품 ‘프란시스 하’(2012)는 흑백 화면을 통해 화려함의 극치라 할 수 있는 도시 뉴욕을 단출하게 표현했다. 여타 작품들에서 분주하고 빽빽하게만 그려졌던 뉴욕은 ‘프란시스 하’에서 때로 냉담하고 고달프지만 동시에 소박한 매력을 풍기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영화는 무용수를 꿈꾸던 철없는 20대 프란시스(그레타 거윅)가 세상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화려하고 다채로운 색감으로 무장한 온갖 볼거리가 사방에서 시선을 사로잡지만, 흑백 필름은 그만의 매력을 통해 관객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온갖 미사여구보다 담백하게 절제된 말 한마디가 울림을 전달하듯, 흑백 영상은 얼핏 초라해 보이다가도 우리 삶의 한 장면을 절묘하게 포착해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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