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 의료진이 '코로나19' 위기 맞은 이탈리아로 향한 이유

조회수 2020. 3. 26. 14: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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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국제 연대"라는 찬사가 나온다.
▲ 지난 3월 22일 이탈리아 코로나19 사태를 지원하기 위해 말 펜사 공항에 도착한 쿠바 의사와 간호사들

코로나19가 유럽을 가히 초토화 직전으로 몰아가는 가운데, ‘의료 강국’으로 불리는 쿠바가, 의료체계의 붕괴로 사투를 벌이는 이탈리아와 중남미 5개국에 의료진을 파견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만 2,300달러에 불과한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G7의 일원인, GDP 3만 8,100달러의 이탈리아(이상 미국 중앙정보국 월드 팩트북) 지원에 나선 것이다.

쿠바 의료진, GDP 3배 많은 이탈리아 지원

코로나19 청정지역도 아닌 쿠바(확진자 35명, 사망 1명)가 더 힘든 나라를 향해 지원에 나선 것 자체가 이례적인 일이다. “진정한 국제 연대”(영국 <인더펜던트>)라거나 “인류에 대한 엄청난 가치의 봉사”(뉴스통신사 <프레센자>)라는 찬사가 지나치지 않은 것이다.


지난 22일, 쿠바 의료진 52명은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주에 도착해 이탈리아인들의 환영을 받았다. 현재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있는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는 의료진 감염이 심각하다. 그런데도 감염률이 자국보다 훨씬 높은 지역에 의료진을 보낸 것은, 쿠바가 오랫동안 국제사회에 해온 인도주의 지원의 일부다. 


1959년 혁명 이래, 쿠바에서 의료는 교육 다음으로 중요시되는 분야다. 의료 분야에 국민총생산의 7% 이상을 지출했는데, 이는 ‘쿠바 혁명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상징이다. 혁명은 의료를 모든 인간이 누려야 할 기본권으로 인식했다. 그 결과는 세계보건기구(WHO)도 인정하는 유아사망률, 예방 의학, 1차 진료, 평균수명, 의료연구, 생명공학의 발전 등 지표에서 괄목할 만한 수치로 나타났다. 미국의 5분의 1이 조금 넘는 GDP로, 미국과 비슷한 수준의 영아 사망률과 평균수명을 달성해 낸 것이다. 


쿠바는 예방 의학을 도입함으로써 의료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을 택했다. 쿠바의 가정은 평생 같은 가정의의 보살핌을 받는다. 모든 지역에 의료인을 배치하고, GDP의 10% 이상을 과학 기술 연구 분야에 지출함으로써 의료 장비나 의약품 등에서 수입 의존도를 줄였다. 그 결과, 쿠바는 산업적 형태로 인터페론(Interferon)을 생산하는 유일한 제3세계 국가가 됐다. 


중국에서 코로나19 치료에 쓰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최근 조명받는 뎅기열 치료제인 ‘인터페론 알파 2B’도 쿠바가 개발 생산한 약품이다. 반세기(1961~2015) 넘게 이어진 미국의 경제 제재와 공산주의 체제의 한계 등으로 쿠바 경제는 힘겨운 상황을 견뎌왔다.

의료 분야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뒀지만, 삶의 질과 관련한 ‘보건’ 분야의 상황이 부정적인 것은 이 때문이다. 주택이나 도시환경, 영양 섭취 등은 의료분야의 수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의 최신 의료시스템에 미치지 못해도, 쿠바 의료시스템의 효율성은 대단히 높다.


세계은행 자료에 따르면 쿠바는 인구 1,000명당 의사 수가 8.2명(2017년)으로 세계 가장 높다. 우리나라는 2.4명, 이탈리아는 4.1명(이상 2017), 미국은 2.6명(2016)이다. 라틴아메리카 최고의 의료수준과 우수한 의료인력으로 쿠바는 라틴아메리카와 협력해 왔다. 2000년 무역협정 이후 베네수엘라에 1만 4,000여 명의 의사를 파견한 것을 비롯해 ‘기적의 작전(Misión Milagro)’은 놀라운 성과를 이뤄냈다.

‘쿠바 혁명의 자부심’이 펼치는 국제 연대

수술을 받지 못하는 라틴아메리카의 시각장애인에게 쿠바의 의료기술로 수술을 시행하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백내장과 녹내장 등과 같은 안과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 수만 명이 눈을 떴다. 1965년, 체 게바라를 처형한 볼리비아 병사도 눈을 치료하고자 쿠바를 찾았으나, 쿠바 정부가 이를 문제 삼지 않아, 무사히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1998년, 허리케인이 중남미 지역을 할퀴고 지나가자 쿠바는 즉각 주변 국가에 의료원조팀을 파견했다. 그러나 각 나라의 의료취약지역이 뜻밖에 광범위해 쿠바 의료진이 철수하면 초래될 의료 공백을 메우고자 쿠바는 해군기지를 개조한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의 문을 열었다. ‘연대성, 통합성, 인도주의’를 표방한 이 학교의 목적은 남미의 의료취약지역에서 활동할 의사를 양성하는 것이다. 


쿠바 정부에서 음식, 교복, 교과서, 생활비 등 대부분을 부담하는 이 학교에는 수십 개국의 학생들이 공부하고 있는데, 이는 자국의 의료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가 아닌, 순수한 국제적 지원 활동의 일부이다. 콜레라가 유행한 2010년 아이티와 에볼라가 창궐한 2014년 이후의 서아프리카에도 어김없이 쿠바 의료진이 나섰다. 국제 여론이 이들에 우호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 ‘연대성, 통합성, 인도주의’를 표방하는 라틴아메리카 의과대학. 남미 의료취약지역에서 활동할 의사를 양성한다.
출처: ⓒ식코
▲ 다큐멘터리 <식코>의 한 장면. 식코의 환자들은 쿠바에서 VIP 치료를 받았다.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SiCKO, 2007)는 영화 뒷부분에서 미국 의료보험 체계에선 보호받지 못한 9·11 당시 활약한 소방관과 응급 구조 요원들이 ‘미국의 적’으로 멸시해 온 쿠바에서 ‘거의 무료’로 치료받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 기막힌 대조는 미국의 의료 보험 제도의 취약성을 고발했지만, 역으로 쿠바의 인본주의적 의료를 부각해줬다.


쿠바 의료진이 앞으로 사실상 의료시스템이 무너져버린 이탈리아에서 어떤 활약을 펼칠 것인지 궁금하다. 이들의 노력이 이탈리아의 혼란과 공황 상태를 당장 해결해 줄 수는 없겠지만, ‘함께 싸우자’는 연대의 메시지와 함께 이탈리아에 또 다른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한편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쿠바의 의료시스템은 ‘빈곤과 건강의 역학 관계’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를 환기해 준다. 또 사회적 약자의 건강권을 어떻게 유지·보전할 것인지, 소득과 무관하게 사회적 건강을 관리하는 보건 의료 정책을 어떻게 구상하고 펼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 유효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 외부 필진 낮달 님의 기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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