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마지막 편지
암으로 수년간 투병하던 친구가 모처럼 평온한 얼굴로 찾아와 바다가 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겉옷을 챙겨 입히고서 주상 절리가 펼쳐진 해파랑 길을 함께 걸었죠.
처음 암이란 걸 알았을 때만 해도 울며불며 온 세상을 원망하더니 그날은 아픈 사람 같지 않게 해맑았습니다. 우리의 철없던 시절을 떠올리며 길섶에 핀 들꽃을 보고 아이처럼 좋아했습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걷다, 느린 우체통이 덩그러니 있어 안내문을 보니, 편지를 넣으면 여행의 감흥이 추억으로 남을 무렵에 배달된다고 써 있습니다.
“우리 서로에게 편지 쓰자.” 라고 친구에게 제안했습니다. 그러자 친구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습니다.
“내가 그 편지를 받을 수 있을까?”
우리는 봄볕이 곱게 내리쬐는 의자에 앉아 편지를 썼습니다. 나는 친구가 아닌 친구의 딸에게 썼습니다.
엄마가 먼 길 떠날 준비하면서 딸 걱정을 아주 많이 했다는 걸 말해 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느린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선 우리는 헤어졌습니다.
그 여행 이후 두 달 뒤 친구는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편지가 왔습니다. 마치 친구가 하늘나라에서 보낸 것 같아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뜯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네 딸 키우다 겪을 고비마다 내 딸도 한 번씩 챙겨 봐 줄래?”
이 구절을 읽다 그만 펑펑 울고 말았습니다.
그날 내가 쓴 편지도 지금쯤 친구의 딸이 받았으리라 생각하니 감정이 더욱 북받쳤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조금씩 잊겠지만 친구의 부탁만은 꼭 지키리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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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경북 경주시에서 조정임님이 보내 주신 사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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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생각 목소리 서포터즈 1기
'미요'님의 목소리로 녹음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