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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인간관계가 힘든 진짜 이유

조회수 2020. 5. 19. 15: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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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에 맞는 바운더리를 찾아야 한다
  • '바운더리 심리학' 문요한 의사
  • 부모·자식, 직장동료 등 관계에서 오는 문제 파악
  • 관계는 2인3각, 호흡 맞추기 위해 노력하면 회복 가능

"저는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남의 얘기를 듣거나 다른 사람이 하자는 대로 따르는 편이에요. 부탁은 물론 거절도 잘 못 해요. 차라리 제가 손해를 보거나 양보하면 불편함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학원 시간표를 짤 때도 동료 강사가 선호하는 시간을 다 가져가면 남는 시간을 맡아요. 갈수록 누구나 하기 싫어하는 수업, 불리한 시간을 맡게 돼요.


그러다보니 학부모와 학생도 절 무시하는 느낌이에요. 학생들은 숙제를 잘해오지 않고 학부모는 보충수업을 아무렇지도 않게 요구하죠. 당당하게 거절하겠다는 생각만 할 뿐 막상 상황이 닥치면 입이 떨어지지 않아요."

수학 강사 정훈씨의 이야기다. 그는 누군가와 불편해지는 걸 꺼리는 '순응형'이다. 이 유형의 사람들은 관계에서 결국 자기가 희생하게 된다.


더 큰 문제는 자신이 뭘 원하는지 잘 모른다는 것이다. 순응형은 일그러진 '바운더리(boundary)'를 가진 사람의 유형 중 하나다.


바운더리란 인간관계에서 '나'와 '나 아닌 것'을 구분하는 자아의 경계이자 타인과 관계 교류가 일어나는 통로다.

출처: 정신의학신문

문요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는 인간관계에 바운더리 개념으로 접근해 문제를 찾고 해법을 찾는다.


그는 "심리치료를 하다보니 많은 사람들이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찾아왔다"며 "이들의 관계방식을 들여다보고 이해하고 변화를 제시하고 싶었다"고 한다.


문요한 의사에게 '바운더리 심리학'으로 바라본 인간관계를 들어봤다.

◇ 튼튼하면서 열려 있어야 하는 '바운더리'

  • 바운더리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한마디로 정의하면 '인간관계에서 나타나는 자아와 대상과의 경계이자 통로'다. 이 바운더리가 있어 내 생각과 상대의 생각, 내 취향과 상대의 취향, 내 감정과 상대의 감정 등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바운더리는 명확하지 않다. 인간은 타인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런 환경에서 바운더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 감정, 욕구, 가치관 등 중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걸러낼 건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조금 더 세분화하자면 '자타식별', '자기보호', '상호교류', '자기표현'의 기능을 한다."

  • 바운더리의 가장 이상적인 형태는 어떤 것인가요?

"자신을 보호할 만큼 튼튼하면서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류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어야 한다. 자아를 보호하면서 외부와의 교류를 위한 통로가 돼줘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조금이라도 벗어난다면 바운더리에 이상이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이때 '희미한 바운더리'와 '경직된 바운더리'로 나뉜다. 바운더리가 희미하다면 자기 세계가 약하고 주위 환경에 휩쓸리기 쉽다. 반대로 경직돼있다면 교류 없이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내게 되는 것이다. 지나칠 정도로 방어적이거나 자기 주장만 내세우게 되는 것이다."

◇ 어린시절 생긴 애착손상이 원인

인간의 바운더리에 이상이 생기는 이유는 애착손상 때문이라고 한다. 애착손상은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것이 크다고 한다.

"한 전문직 여성이 이혼 문제로 나를 찾아왔다. 이혼을 원했지만 결단 내리기를 어려워하고 있었다. 이혼은 인생의 실패라고 여겼고 친정어머니는 위로가 되지 않는 다고 말했다. 


'내가 뭐랬냐. 그 사람은 아니라고 했지? 내가 이럴 줄 알았다.'


그가 결혼하고 1년 후 부부싸움을 하고 엄마를 찾았을 때 들었던 첫 마디다. 그리고 어머니는 나가버렸다고 한다. 이 여성과 어머니와의 관계는 어린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학창시절 친구랑 다툰 얘기를 하면 어머니는 위로와 공감보다는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우선이었다. 어머니 마음에 들지 않으면 면박을 줬다. 딸의 감정, 생각, 취향 등에 공감하거나 이해해준 적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어린 시절 양육자와의 관계에서 ‘공감의 실패’이자 ‘애착욕구의 좌절’은 상처가 돼 '애착손상', '자아 발달 왜곡'의 원인이 된다. 양육자와의 관계가 큰 원인 중 하나지만 아이 성향에 따라서도 애착손상이 나타난다.


평범한 부모라도 아이가 유전적으로 불안성향이 높다면 애착손상이 생기기 쉬운 것이다.”

한편 애착손상은 아예 피할 수도 없고 아이러니하게도 적절한 애착손상이 필요하다고 한다. 적절한 애착손상은 독립심을 길러주고 상호적 관계를 맺을 기초 등이 되기 때문이다. 문요한 의사는 여기서 중요한 건 자신의 바운더리를 파악하고 회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 한국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흔한 ‘돌봄형’

건강하지 않은 바운더리로 관계에 문제를 가진 사람은 네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순응형', '돌봄형', '방어형', '지배형'이다.


 '순응형'은 수학강사 정훈씨처럼 누군가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을 견디지 못한다. 갈등이 생기지 않게 불편함을 감수하고 혹여나 갈등이 생기면 빨리 해소하기 위해 먼저 사과하거나 상대 요구에 따른다. 


'돌봄형'은 상대를 자신에게 의존하게 만들어 결국 양쪽 모두 힘들어지는 관계 '공동의존'에서 나타난다. 한국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방어형'은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에서 나온다. 누군가 다가오면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 믿는다.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친밀감이 아니라 위협으로 느낀다.


 '지배형'은 어떤 관계에서든 자신이 중심이길 원한다. 자존감이 아닌 반복적인 애착손상으로 인한 병적인 자기애가 원인이다."

  • 이미 성인이 된 후에도 바운더리를 다시 건강하게 만들 수도 있나요?

“그렇다. 바운더리를 건강하게 다시 세운다는 건 ‘나도 존중하고 상대도 존중하는 상호존중의 태도’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P.A.C.E’ 네 단계를 거쳐야 한다. 

P.A.C.E는 ‘멈춤(Pause)-자각(Awareness)-조절(Control)-표현(Expression)’을 뜻한다.


먼저 특정 상황에서 반사적으로 나오는 자동적인 반응을 멈추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가 느끼는 게 사실인지, 나를 무시한 건 아닌지 등을 확인해야 한다.


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대화를 시도해야 한다. 이후 거기서 오는 내 신체에서 오는 신호를 알아차리고 어떤 감정이고 왜 느껴지는지를 알아야 한다.


그다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나의 반응을 조절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솔직하지만 정중하게 내가 느낀 것을 표현해야 한다. 이렇게 바운더리를 다시 세웠다면 작은 것부터 결정권을 찾아오는 연습, 자기세계를 만드는 연습을 해야 할 것이다.”

  • 쉽지 않아 보이는데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인가요?

“우리는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과정을 통해 인간이 돼가는 것이다.


인간이 과거의 영향을 받을 뿐, 과거의 지배를 받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내게서 반복되는 관계의 역사를 이해하고 스스로 관계방식을 바꿔나가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의 관계는 좀 더 건강해집니다.


2인 3각 경기를 떠올려보라. 처음에는 걸려 넘어져 답답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구령을 붙이고 호흡을 맞춰 잘 뛰어간다. 혼자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호흡을 맞추기 위해 노력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


"모든 관계에는
저마다 건강한 거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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