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비우고, 마음은 채우다

조회수 2020. 6. 25. 07: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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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 전원주택

호남의 명산 무등산이 손 뻗으면 닿을 거리에 날렵한 주택이 있다. 겉은 가냘픈 모습이지만, 속은 튼튼하고 견고한 중량목구조다. 사람으로 치자면 외유내강을 갖춘 집이다.

글 사진 백홍기 기자

HOUSE NOTE

DATA  

위치 전남 화순군 이서면

건축구조 중목구조

용도 보전관리지역

대지면적 629.20㎡(190.66평)

건축면적 71.74㎡(21.73평)

연면적 108.50㎡(32.87평)

  1층 71.74㎡(21.73평)

  2층 36.76㎡(11.13평)

건폐율 11.40%

용적률 17.24%

설계기간 2015년 5월 ~ 2015년 6월

공사기간 2015년 9월 ~ 2015년 12월


MATERIAL  

외부마감 

  지붕 - 라파즈 기와

  외벽 - 스타코

내부마감 

  벽 - 규조토, 타일, 레드파인 루버

  천장 - 노출 서까래

  바닥 - 강화마루

  창호 - 시스템 창호

단열재 

  지붕 - 글라스울 R30

  벽 - 글라스울 R19

설계 우일건축사사무소

시공 아스카목조주택 1688-2975 www.askaconst.com 

무등산에서 경관 좋기로 이름난 규봉암. 화순 대표 관광지 적벽이 있는 동복호. 두 코스를 한 줄로 잇는 중간 지점에 건축주 부부의 집이 있다. 해발 200m에 있는 집은 서쪽으로 무등산이 든든하게 받쳐주고 남과 북, 동쪽으론 모후산과 백아산, 넓은 들판까지 시야가 열려있다.

고해상도 화면처럼 선명한 날에 이곳을 찾는다면, 자연스레 번뇌에서 벗어나리라. 

현관에서 눈여겨 볼 건 두 가지다. 현관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창과 앉을 수 있게 마련한 의자다.
책과 음반이 많은 건축주는 곳곳에 빈 벽면을 활용해 책꽂이를 배치했다. 적재적소에 배치한 책꽂이는 디자인과 색상으로 집안 분위기를 유도한다.
거실은 먼 산까지 경치를 감상하기에 좋은 위치다. 목재와 흰색으로 전체 색감을 맞춰 깔끔한 거실은 자칫 지루한 느낌을 줄 수 있지만, 러그 하나가 재치있는 공간으로 만들었다.
주방 콘셉트는 절제와 여백의 미다. 냉장고가 시야를 약간 답답하게 만들어 아쉽지만, 군더더기 없이, 부족함 없이 완벽한 짜임새를 보여준다. 조명은 공간 인테리어를 완성하는 중요한 소품이다. 형태와 색, 조도에 따라 다양한 느낌을 준다.

추억에서 꺼내 완성한 집

건축주는 독일에서 10년간 유학생활을 했다. 고국에 돌아와선 최근까지 전남대학교 독일언어문학과 교수로 지냈다. 순조로운 일상이었지만, 정년을 3년 남겨두고 퇴임을 서둘렀다. 탈출이었다. 먼지, 소음, 넘치는 빛의 해로부터 탈출이다. 의도적인 탈출이기에 이주계획은 톱니바퀴처럼 착착 맞물려 진행됐다.


뾰쪽하게 솟은 맞배지붕. 귀엽게 얹어 놓은 다락 창. 아기자기한 테라스. 동화에 등장할법한 작고 아담한 집은 건축주가 유학할 당시 묻혀있던 추억에서 꺼내 살뜰히 매만진 것이다. 집이란 ‘총체적 삶의 스타일’이라고 말하는 건축주는 “집을 짓는 건축가는 건물에 형태를 부여하지만, 집에 사는 주인은 조형물로 이뤄진 공간에 영혼의 생기를 불어넣는 역할을 한다”고 전한다.


철학가인 아내와 의기투합해 선택한 전원생활에 대해선 “전원생활의 의미는 단순하게 복잡한 도시를 탈출해 자연에 거주하며 유유자적한다는 뜻만 아니라, 기존 생활방식, 가치와 삶의 태도에 변화를 주는 것이고, 그동안 길들여진 기성의 문화질서를 대폭 수정해 생의 방향을 자연으로 전환 하는 것” 이라고 답했다.


‘절제와 중용’을 강조한 부부의 전원생활은 벗고, 버리고, 지운 뒤 자연과 교감하고 영혼을 채우기 위함이다. 그러니 소박함에서 충만함을 얻고, 비움에서 충족을 느낀다. 안방은 편리함 위주로 설계하고, 수면만을 위한 공간이라 거추장스러운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다. 

안방은 편리함 위주로 설계하고, 수면만을 위한 공간이라 거추장스러운 요소는 최대한 배제했다.
나무의 세월이 드러난 결, 점점이 박힌 거뭇거뭇한 옹이를 보면서 건축주는 자연의 숨결과 아름다움을 교감한다.
몸을 관리하고 치장하는 화장실은 꾸밈없이 깔끔하다. 2층 화장실은 불편함 없이 사용할 만큼 공간을 확보했다.
2층 서재는 부부의 애정으로 가득하다. 이국적인 분위기를 전하는 뾰족한 지붕, 시야에 거스리지 않게 낮은 벽면 따라 배치한 책장, 안락의자와 다도세트가 놓여진 창가 등 아파트에선 누릴 수 없던 즐거움을 자극한다.

작지만 여유넘치는 공간

집은 가벼워 보이지만, 단단한 통나무로 만든 중량목구조다. 내부로 들어서면 한 뼘이 넘는 구조재가 그대로 드러나 밖에서 볼 때와 색다르다. 가구는 목재로 맞추고 벽 마감은 흰색으로 통일해 차분하다. 평소라면 모르고 지나갈 TV와 전자레인지의 검은색이 차분함 속에 유난이 도드라져 보인다.


주방은 단출하다. 주방 상부엔 머그컵 네 개만 놓을 수 있는 선반 두 개가 전부다. 하부엔 아담한 싱크대를 갖췄다. 넓진 않지만, 여유로워보인다. 주방의 분위기는 식탁을 은은하게 비추는 펜던트 조명과 레일 조명으로 아늑한 공간으로 완성했다. 아내가 좋아하는 주방에 이어 남편이 추천한 2층 서재를 둘러봤다. 천장이 높아 여유롭다. 창으로 들어온 햇빛은 실내를 포근하게 비춘다. 서재 맞은편은 아내의 공간이고,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테라스와 연결된다.


“아파트에서 생활할 땐 없던 서재를 마련해 가장 좋아요. 천창으로 하늘이 열려있고 쾌적해서 공부와 휴식하는 데 부족함이 없습니다.”


경쾌하게 둘러본 집에는 방이 하나다. 서울에서 생활하는 자녀가 간혹 찾지만, 그들을 위한 공간은 없다. 집은 오롯히 부부를 위한 공간이다. 집은 “상시 머무는 거주자 중심으로 설계해야 공간을 낭비하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계획했다. 

신발을 벗고 생활하는 데크는 거실의 연장선이다. 한옥의 툇마루처럼 이동과 휴식, 놀이 공간이다. 난간은 낮고 넓게 만들어 앉아서 쉴 수 있게 만들었다.
진심에서 우러난 신뢰, 완성도 높여

부족함이 없다. 집을 둘러보고 느낀 점이다. 집에 대한 부부의 솔직한 감정이 집의 완성도와 더해져 고스란히 전해졌다. 만족도가 120%라고 말하는 부부에게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물었다. 아내가 말했다. “공사비용을 줄이기 위해 다용도실을 조금 줄였다”며, “그래서 냉장고를 주방에둘 수밖에 없었다”고 살짝 아쉬움을 비쳤다.


완성도 높은 집을 지을 수 있었던 원인에 대한 질문에는 ‘신뢰’라고 답했다. 신뢰는 현장 기술자의 노련함과 태도에서 얻었다. 젊은 목수들로 꾸려진 팀원들은 시종일관 밝은 모습과 야무진 솜씨를 보여 부부는 편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시공을 맡은 아스카목조주택은 건축주 부부의 신뢰에 보답하듯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내놨다. 부부는 후배가 집을 지을 때 아스카목조주택을 소개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부부의 집 뒤에서 한창 공사 중인 집이 후배의 집이다. 부부의 전원생활을 보고 그들도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구름, 하늘, 노을, 바람, 별과 달빛이 배움의 스승이라고 하니 낯선 땅에서도 이들의 삶은 자연스러웠다. 처음부터 있었던 것처럼 익숙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충만한 삶을 즐기는 부부에게서 시간은 흐르는 강이 아닌 고됨으로 쌓아올린 탑처럼 보였다. 이들의 천탑이 완성되는 날을 기대하며 가벼운 발걸음으로 돌아섰다. 

이국적인 느낌의 뾰족한 지붕, 귀엽게 튀어나온 삼각형 지붕 창, 아기자기한 테라스 등 작고 예쁜 집은 동화책에서 막 뛰쳐나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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