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에서 용접기능장으로, 제2의 인생을 만난 그녀

조회수 2020. 7. 24. 15:1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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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꽂이보다는 과학상자가 좋았던 소녀

20살에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 캐드 기사로 근무

우연히 용접 접한 후 교수까지 도전


결혼한 40대 여성이 배움의 터전에 뛰어드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가 있으면 더욱 그렇다. 사회적 편견도 무시 못할 요소다. 이선숙(45)씨는 용접이 배우고 싶어 주변의 만류를 뿌리치고 불혹의 나이에 폴리텍대에 진학했다. 부엌보다는 용접불이 더 좋았던 만학도는 현재 모교에서 외래 강사로 활약하고 있다.


◇동생이 망가뜨린 전화기 단숨에 조립했던 소녀

출처: 본인 제공
폴리텍대 익산캠퍼스 진학 후 용접기능장을 취득한 이선숙 씨. 사진은 2017년 여름 자격증 준비할 때 모습


꽃꽂이나 인형놀이 보다는 기계 분해와 볼트 조이는 걸 좋아하는 소녀였다. “어릴 적 부모님이 남동생 준다고 산 과학상자를 제가 가지고 놀았습니다. 동생이 호기심에 전화기를 뜯어 놓고 못 끼우면 제가 조립하며 누나 노릇했죠.”


세계를 무대로 누비는 일꾼이 되고 싶어 고등학생 때 무역학과 진학을 꿈꿨다. 하지만 이과 머리가 있었고 그쪽에 관심이 더 많았다. 꿈과 재능 사이에서 저울질하며 행복한 고민을 하던 찰나 시련이 닥쳤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형편이 급격히 어려워졌습니다. 등록금으로 쓰려고 아낀 돈을 생활비에 쓸 수밖에 없어 대학 진학을 미뤘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2017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가을 용화산 등반행사 때 교수 및 학생들과 함께 한 모습


20살 앳된 나이에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첫 직장은 무전기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거기서 반도체 칩 붙이는 일을 하며 야간에는 캐드(CAD)를 배우러 다녔습니다. 당시 익산에 캐드 기사 자리가 없었는데, 마침 자리가 나서 직장을 옮겼습니다.”


전북 익산의 작은 공장에 현장보조원 겸 캐드 기사로 취업했다. 이곳에서 배움의 불씨가 타올랐다. “똑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일만 하다가 현장에서 기술을 활용해보니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산업설비와 소각로 제작을 하는 회사였는데 기계의 다양한 메커니즘을 배울 수 있었고 현장 직원들이 했던 제관과 설비제작 등을 직접 하기도 했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폴리텍대 재학 당시 프로젝트 작품 발표회 현장에서 동기들과 함께 한 모습


그러면서 용접까지 알게 됐다. “기계 제작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서 사장님이 용접을 직접 가르쳐 주셨습니다. 특히 알곤 용접에 큰 흥미를 느꼈습니다. 다만 체계적으로 배운 건 아니라 한계가 있었습니다. 어깨 너머로 보면서 보는 눈은 높아졌는데, 정작 진짜 원하는 용접 실력은 답보 상태라 답답했습니다.”


◇어깨너머 배운 용접, 용접기능장으로 성장


여성 용접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꿈이 컸지만, 결혼과 육아로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러다 마흔이 넘어 우연히 폴리텍을 접했다. “2016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 산학협력처의 지역산업맞춤형인력양성 설비보전과정을 수강했습니다. 8월부터 12월까지 기계와 선반, 밀링, 전기, 공압과 유압, 전자, PLC, 용접 등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4개월이 순식간에 흘러갔죠.”

출처: 본인 제공
프로젝트 작품을 만드는 이선숙 씨


눈을 반짝거리며 용접 연습하던 이씨를 눈여겨 본 산업설비과의 교수가 용접을 더 깊이 배워보라고 제안했다. 그렇게 2017년 한국폴리텍대학 익산캠퍼스의 전문기술과정 산업설비과에 입학했다. “주변의 반대와 만류가 만만치 않았습니다. 여자가, 그것도 40대에 특수 용접을 배운다고 하니 걱정됐나 봅니다. 심지어 남편도 반대했습니다. 처음 반대에 흔들렸지만 ‘열심히 배워서 기술력을 높이고, 원하는 곳에 취업해서 걱정을 없애 주겠다’는 다짐으로 마음을 잡았습니다. 결국 남편이 해외근무 간 틈을 타 원서를 접수했습니다.”


폴리텍 진학 후 실무 위주의 교육을 받았다. 지도교수와 동기들의 권유로 기능장에 도전했다. “맞춤형 지도로 단기간에 실력을 향상시킬 수 있었습니다. 방학에도 연습할 수 있도록 학과 실습장을 개방 해주셨습니다. 격려와 작은 움직임까지도 꼼꼼히 지도해주시는 교수님 덕에 결국 용접기능장 자격 취득에 성공했습니다.”

출처: 본인제공
선숙씨가 취득한 직업능력개발훈련교사 자격증(왼쪽)과 용접기능장(오른쪽). 이 씨는 이 외에도 용접산업기사, 공조냉동기계기능사, 용접기능사, 설비보전기능사, 특수용접기능사 등을 보유하고 있다.


기능장 취득 후 다양한 기업에서 러브콜을 받았다. “폴리텍 졸업 후 처음 입사한 회사의 사장님이 ‘열심히 하는 저의 모습이 자격증에 다 드러난다며 반드시 저를 채용하려고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열심히 노력했던 시간들을 보상 받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모교서 제자 육성하며 지도의 보람 느껴

출처: 본인 제공
2017년 프로젝트 작품 발표회가 끝나고 동기들과 함께 한 모습


현재는 잠시 퇴사를 하고 폴리텍 대학 익산캠퍼스에서 시간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제가 가진 노하우를 후배들에게 전달하는 것도 매우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은 전기용접과 캐드를 지도하고 있죠."


정교수가 돼 자신이 받았던 배움을 더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싶다. “학생들의 연령은 10대 학생부터 50~60대 중장년까지 다양합니다. 제 지도로 성장하는 학생들을 보니 과거의 제가 떠오릅니다. 이들의 능력 향상에 도움되는 일을 해서 행복합니다. 다만, 시간 강사로 할 수 있는 일이 한정적이라 자격증을 더 따고 석사 학위도 취득해 정교수가 될 계획입니다. 오랜 시간 학생들과 함께 하며 이들에게 적극적으로 도움 줄 수 있는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출처: 본인 제공
현재 가르치는 산업설비과 학생들과 회식자리


-여성 용접기술자, 생소하지만 멋집니다.

“의외로 용접하는 여성이 많습니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월 300만원 정도로 수입도 괜찮아요. 용접 분야에서 여성의 꼼꼼함은 큰 장점이 됩니다. 특히 섬세한 용접이 필요한 자동차 등 분야에서 여성 용접기술자 수요가 많습니다. 그래서 지금 제자 중에도 여학생들이 있습니다.”


-동료 여성 기술자나 꿈나무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주변의 시선에 휩쓸리지 마세요. 저도 처음 나이 40넘어 기술 배운다고 하니 질타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들 저를 부러워해요. 남의 시선보다는 자신의 욕구에 집중해야 합니다. 간절한 의지만 있다면 여성들도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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