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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신조가 메이커는 안 입어도 먹는 건 잘 묵자 이건디, 오늘 옷을 입었네유

조회수 2020. 8. 3. 18:2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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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뉴그레이가 만난 66번 째 아빠의 이야기와 사진을 담았습니다.
장영선(60, 용접공)

내 신조가 메이커는 안 입어도 먹는 건 잘 묵자 이건디, 오늘 이래 좋은 옷을 입어보네요

주산학원을 운영했다. 주산학원의 선생님이었다. 세상이 디지털로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그는 운영했던 학원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용접공이 되었다. 포기하기까지가 분명히 쉽지 않았을 것이다. 용접공이 된 후로는 전국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 며느리 되실 분이 신청해주셨다고요.

+ 아들이 둘 있어요. 큰아들 며느리 될 아이가 이것을 신청해줬어요. 당첨이 됐다고 서울 좀 가라 카는디, 솔직하게 말하자면 후회를 쪼까 했는디요. 어짜것어요. 결혼도 안한 아가씨가 내한티 처음으로 부탁을 하는디 어떻게 거절을 하겠어요. 고지식한 사람이라 이런 거 안 하는디..

+ 며느리를 둘 보게 될 거고, 며느리들을 딸같이 대해주고 싶은데 내가 아들만 둘이자너요. 어케 대해줄지를 몰겄어요. '우리 딸’ 하고 부르기는 하는데, 아기들이 그걸 좋아할랑가는 모르겠네요이.


- 아드님들은 어떻게 대해주셨어요.

+ 근데 그것이 그래요. 남자들이 젊었을 때는, 결혼을 해보면 알겠지만요, 대게 그래요잉. 애들 엄마한테도 아기들한테도 잘해줄 기회가 없었어요잉. 바쁘니께. 그 핑계로 해준 것도 없고, 알아서 잘 컸어요잉. 곧 결혼도 하니까요. 인자 자식농사는 다 지었지요.

+ 돌이켜보믄, 저도 촌에 살다 중학교 때부터 시내 나와서 학교를 댕겼기 때문에 아버지와 추억이 별로 없고, 편하게 어울리지도 못했던 것 같아예. 그래도 뭐 존경할 만한 아버지라고는 생각하는 데요잉. 그래도 후회는 하지요. 후회 없는 인생이 어디 존재하겠어요?


젊었을 때의 그는 길을 걸으면 아내의 손도 잡지 않을 정도로 고지식한 사람이었다. 들쑥날쑥한 월급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삶을 살며 아내를 많이 외롭게도 했다. 자식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지금은 그게 가장 후회가 된다고 했다. 앞으로는 오늘처럼 추억도 많이 쌓고, 시간도 함께 보내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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