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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리의 투머치 리뷰] 채식주의자①

조회수 2020. 9. 11. 10: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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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없다…’


애당초 신념이나 소신으로 시작한 채식이 아니었기에 유제품과 정제설탕조차 허용하지 않는 비건(Vegan) 식단은, 체험 시작 당시 강력한 무(無)맛으로 힘들었던 게 사실이다.


Part 1. 채식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 과일, 해초 등의 식물성 음식만 섭취하는 식습관인 채식은 섭취를 금하는 식품에 따라 세미 베지테리언, 락토-오보, 페스코, 비건 등으로 나뉜다. 특히 ‘비건’은 인위적으로 암소를 임신시켜 얻는 우유도, 우유를 통해 생산하는 버터와 치즈의 섭취도 허용하지 않는다.


약 5년 전, 잠시나마 자연보호운동에 관심을 두고 동물의 생명권 보호에 사명감을 느꼈던 기자는 얼마 가량 ‘페스코’로 생활한 적이 있다. 소·돼지 등의 포유류는 금하지만, 생선을 비롯한 어패류와 유제품, 달걀의 섭취가 허용되는 페스코 생활은 예상외로 순조로웠는데 당시에는 스테이크와 삼겹살 정도만 안 먹으면 되는 것으로 생각해 라면도 먹고 젤리도 먹고 초밥에 우동도 곁들여 먹고 그랬다. 그 안에 포함된 소고기 파우더, 돼지로부터 얻은 젤라틴 성분 등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로 “나 요즘 채식하고 있어”라고 주변에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어학연수를 떠나며 2주 만에 종결됐다.


그 후로 5년, 나이가 든 만큼 본 것도 들은 것도 피곤할 정도로 많아졌다. 더 이상 자연보호운동은 신경쓰지 않고, 어설프게 식단을 조절해 채식주의자 시늉을 하며 자기만족에 빠지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지키고 싶은 가치라든지 하는 것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며 싸우는 일도 애를 쓰는 일도 줄었다. ‘세상만사 둥글게 살면 그만인 것을’ 같은 마음으로 거의 모든 것에 적당히 대처하며 살고 있다. 반려묘 3마리와 반려견 1마리, 나 자신을 챙기기도 벅차다.


출처: 동그라미 표시된 사람이 이번 기획의 발단이 된 친구. 오랜만에 연락했다. 지금도 채식 중이라고.

Part 2. 비건


열흘 정도 전 밤의 일이다. 퇴근 후 옛 사진들이나 훑어보던 중 해외 체류 중 알게 됐던 친구의 사진을 발견했다. 그 친구는 채식주의자였다.


자신을 ‘비건’이라고 소개했던 그 친구는 모임에 참석할 때도, 일행들과 함께 모여 술을 마실 때도, 매번 자신의 제한적인 식습관 때문에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굳이 불편하게 만들곤 했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느냐”, “나 역시 동물을 좋아하고 한때는 채식을 시도했지만, 나 하나 때문에 바뀌는 건 많지 않더라” 등 핀잔에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괜히 눈에 거슬리긴 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멋지다’라고 생각했다.


기간은 7일. 유통에 기반한 체험기. 국내 비건 인구가 최근 150만명을 넘어섰다고 한다. 다소 반칙을 저지르긴 했었지만 나는 ‘페스코’도 해본 사람이다. 그깟 비건 한 번 돼보기 어렵겠나. 그 친구가, 그리고 150만명의 사람들이, 그렇게까지 해서 지키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졌다. 나도 ‘비건’ 한 번 해보자. 이번 체험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일주일의 비건 체험. 동물성 0%의 비건제품들/촬영=김주리 기자

Part 3. ‘비건’을 위한 마트는 없다?


-9월4일(1일차)


다음날인 5일은 우연히 내시경 검사를 예약한 날이었다. 딱 좋다. 깨끗한 위장으로 온전한 채식 체험을 할 수 있겠다. 유통가 소식을 들여다보니 마침 최근 이마트에 ‘채식주의존’이 오픈했단다. 기회는 지금이다. 괜스레 들뜨기도 하고 ‘고기는 아니지만 고기 맛이 난다’는 대체 식품들에도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지만 문제는 첫째 날 아침부터 일어났다. 냉장고에는 커피와 함께 먹으려고 사 놓은 브라우니가 있었지만, 매장에 물어보니 당연하게도 버터와 우유가 들어갔다고 한다. 가뜩이나 속이 쓰려 내시경 검사받는데 빈속에 커피도 안 될 일이다. 잠시 패닉에 빠졌다 일단 제과점과 편의점 등이 모여있는 역 근처로 향했다.

출처: 롯데리아 리아미라클 버거. 급작스럽게, 다소 괴상한 아침 식사가 준비됐다/촬영=김주리 기자

편의점 몇 군데를 탐색했지만 당장은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먹어도 되는지 확신이 드는 제품을 찾기가 힘들었다. 아침 간편식용으로 나온 샐러드나 시리얼 제품은 제법 있었지만 우유와 정제설탕이 계속 말썽이었다. 제과점에서 호밀빵이나 통곡물빵을 사고자 했지만 혹시 모를 첨가물이 들어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손이 망설여졌다. 확실하게 ‘비건용’이라고 설명이 붙어있는 제품은 없었다. 결국 역전을 서성이다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비건들 사이에서 평이 준수한, 롯데리아의 ‘리아 미라클 버거’를 구매키로 했다.


지난 2월 출시된 리아미라클 버거는 “고기 없이 고기 맛이 나는 기적”이라는 홍보문구를 내세우며 출시됐다. 통밀과 콩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만든 식물성 패티, 빵과 소스도 식물성 재료로 만들어진, 롯데푸드가 개발한 국내 햄버거 프랜차이즈 시장 첫 시도라고 한다. 일단 텅 빈 속에 뭐라도 먹긴 해야해서 허겁지겁 먹었다. 맛있다. 슬로건과는 달리 고기 없는 맛이 느껴지긴 하지만 패티 자체의 2% 부족한 고기맛을 소스가 채워준다. 패티 특유의 스모키한 맛은 어떻게 냈는지 궁금하다. 커피와 버거의 조합은 조금 에러였지만, ‘처음이니까, 딱 한 끼니만 유제품을 허용할까’라는 유혹은 물리쳤다. 다만 먹고나니 후식으로 냉장고에 있는 브라우니가 먹고 싶어져 슬펐다.

출처: 이마트 영등포점에 마련된 ‘채식주의존/촬영=김주리 기자

우여곡절 아침 식사를 마친 뒤 회사 출근 및 일정을 끝낸 다음 채식주의존이 입점했다는 이마트 영등포점에 들렀다. 예상으로는 코너 전면에 커다랗게 비건 스낵부터 대체육, 음료까지 화려하게 진열돼있을 줄 알았지만, 냉동식품 코너 한쪽에 아담하게 마련된 채식주의존 ‘한 칸’. 종류도 몇 개 없다. 일단 다 장바구니에 담았다. 야채 만두는 익숙하지만, 대체육으로 만든 함박 스테이크부터 너겟, 다진 고기 등은 제법 그럴싸해 보인다.


매장은 축구장만큼 크고 식자재로 가득한데, 채식주의존에 있는 상품을 담고 나니 뭘 더 사야 할지 모르겠다. 평소 웬만한 끼니는 배달음식으로 때우는지라 냉장고에 비건을 위한 요리 거리는 물론 일반식용 재료도 없다. 야채며 두부며 나물을 사서 어떻게든 해먹을 수는 있겠지만, 자취하는 직장인이 수 시간을 들여 해보지도 않은 조리법(비건용)으로 요리할 여유는 며칠간 없을 것 같다. 일단 시리얼이든 뭐든 동물성이 0.01%도 들어가지 않은 제품을 찾으러 나섰다.


정제설탕과 정제소금이 들어간 제품은 금지다. 설탕이나 소금을 정제할 때 재료를 태우는 과정에서 동물의 뼈를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어 많은 비건들이 이를 유의한다고 한다. 딱 보기에 건강식으로 보이는 모든 제품을 뒤집어 하나하나 성분표를 확인해봤다. 2시간이 훌쩍 지났고, 장바구니에는 아직도 채식주의존에서 고른 냉동식품들만 담겨있었다. 살 수 있는 게 없다. 죄다 우유에 계란에 정제설탕, 소금이 함유돼있다.


냉장식품도 스낵도 김치도 반찬류도, 조미료에 들어간 고기 분말과 발효음식 속 액젓류에서 계속 막혔다. 7일 동안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해졌다. 결국 견과류 판매대에서 캐슈너트를 대량으로(판매하시는 분을 통해 첨가물이 들거갔는지 몇 번을 확인했다) 구입하고, 통곡물 시리얼을 겨우 찾아 마트를 나섰다. 먹을 수 있는 음식 찾다가 시간이 다 갔다. 다리 아프고 배도 고프다. 캐슈너트를 한 움큼 집어먹으며 기운 빠진 상태로 귀가하며, 채식 첫날이 지났다.

출처: 음식은 이렇게 많은데, 비건이 먹을 수 있는 건 하나도 없다/촬영=김주리 기자

9월5일(2일차)


예정했던 내시경 검사가 끝난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써브웨이에서 판매를 개시한 채식 샌드위치를 구입했다. 이번 달 출시된 대체육으로 만든 ‘얼티밋 샌드위치’ 역시 리아미라클 버거에 이은 식물성 고기 샌드위치다. 여기서 잠깐. 비건과 채식주의자는 써브웨이 샌드위치류 주문시 주의사항이 있다. 빵과 소스를 각각 선택할 수 있는 써브웨이에는 우유와 동물성 재료 등의 함정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빵을 고를 때는 금지 성분이 포함되지 않은 하티이탈리안과 화이트로, 소스는 머스타드, 레드와인식초, 올리브오일, 소금, 후추 중 고르도록 하자. 기자는 하티이탈리안과 머스타드 소스를 선택했다.


개인적으로는 리아미라클버거보다 맛있었다. 고기 특유의 불향은 미라클 버거보다 덜했지만 대체육이 상당히 그럴 듯 하다. 곡류의 고소한 맛도 느껴지고 얇게 저며진 대체육은 흡사 불고기를 먹는 듯 하다. 얼티밋 대체육은 대두와 밀 단백, 퀴노아, 병아리콩, 렌틸콩 등 슈퍼푸드 곡물로 만들어졌다. 일반 소고기와 비교했을 때 칼로리는 현저히 낮고 포화지방은 절반 수준, 콜레스테롤과 트랜스지방은 0(제로)라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맛있다.

출처: 비건 체험 둘째날 아침식사. 음료는 스타벅스 비건음료인 망고 바나나 블렌디드/촬영=김주리 기자

※ ‘채식주의자’ 2편은 다음주 목요일에 발행됩니다.


[아무거나 리퀘스트]


Q. 대장 내시경 후기 부탁드려도 될까요. 많이 힘든가요?(기자의 지인)


A. 해본 사람만 안다는 전날 밤의 긴박과 급박의 괴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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