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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계 출신 개발자가 우버 본사에서 일하게 되기까지

조회수 2020. 9. 30. 01:0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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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견디는 대신 재미를 찾아 15번 이직한, 우버 강태훈 엔지니어

실리콘밸리 우버 본사에서 일하고 있는데 스스로를 '흙수저 개발자'라고 부르는 분이 있습니다. 불우했던 집안 환경, 실업계 졸업, 웬만한 정상급 투수의 방어율보다 낮은 학점까지, 누군가 그의 지난한 역사를 들으면 도대체 어떻게 실리콘밸리까지 진출할 수 있었느냐고 반문할 겁니다.


그런데도 그는 겸손과 노력, 그리고 자신감이 균형 있게 담겨 있는 답변만 내놓을 뿐입니다. 어릴 때 특별한 재주가 없어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만날 기회를 얻을 수 있었다, 이력서를 100군데 보내서 조금이라도 답이 오면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등... 보통 사람이라면 일찍이 비관적인 생각으로 점철될 만한 상황들 속에서도 긍정의 힘을 발휘하며 업계에서 20년 동안 달려온 강태훈 엔지니어의 커리어 패스와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 있는 스타트업 우버에서 일하고 있는 강태훈입니다. 8년간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습니다. 그전까지는 한국에서 10년 정도 일했고요. 특이 사항이 있다면 우버가 14번째 직장이에요.

Q. 어떻게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되셨나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저만의 재능을 찾지 못했습니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었는데, 만약 다른 재능이 있었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뛰어들 생각을 못 했을 것 같아요.


이후에 집안에 빚이 많은 일명 '흙수저'이다 보니 빨리 돈을 벌기 위해 실업계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졸업할 때 즈음에 취직을 해야 했는데, 취업 쪽으로 잘 풀리지 않아서 동명대학교 정보통신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학교에 다니던 중에 등록금을 낼 수 없게 된 거예요. 거기다 별명이 'F guy'일 정도로 대학 첫 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F 학점을 엄청 많이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때가 마침 컴퓨터를 조금만 만져본 사람이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닷컴 버블 시기였어요.


자연스럽게 저도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어요. 인터뷰에 가면 프로그래밍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는데, 그때는 사실 할 줄 몰라도 일단 할 줄 안다고 이야기했어요. 그렇게 조금은 무모하게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했습니다.

Q. 한국에서 어떤 커리어를 쌓아 오셨고, 미국 실리콘밸리에는 어떻게 건너가게 되셨나요?


한국에서 총 7번에 걸쳐 이직을 했습니다. 다음, 네이버 같은 포털 회사에서도 일했고, 실리콘밸리로 넘어갈 때는 네오플이라는 게임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때 회사가 넥슨에 인수된 지 얼마 안 된 시점이었는데, 원년 멤버가 대부분 퇴사한 상태였어요. 제 프로젝트도 진행되지 않을 확률이 높았어요. 이직을 고민했고, 마침 실리콘밸리의 작은 스타트업이 우리와 함께 일해보지 않겠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우연한 기회였다 보니 길어봐야 3~6개월 정도 가볍게 다녀오겠거니 생각하고 실리콘밸리에 넘어갔어요.

Q. 실리콘밸리에서도 이직을 한국만큼 하셨는데, 어떤 이유로 직장을 자주 옮기셨던 건가요?


회사 다니는 게 재미가 없으면 너무 고통스럽더라고요. 누군가는 흥미 없는 일을 하고 있다면 직접 환경을 바꾸라고 말합니다. 아니면 꾹 참고 오래 일해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고 나서 본인이 바라보는 이상향을 만들라고 말합니다. 한편으로는 모두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저는 오랫동안 고통을 견디며 일을 한다는 게 인생의 낭비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스스로 재미와 흥미를 느끼는 이상향을 그때그때 찾아다니며 여러 회사에 몸담았어요.

Q. 한국의 개발자로서 겪은 실리콘밸리의 근무 환경은 어땠나요?


정말 다른 세상이었습니다. 개발자에 대한 정의가 제가 알고 있던 것과 많이 달랐습니다. 가장 큰 차이점은 기획자의 존재 유무였어요. 한국에서 개발자는 기획자가 어느 정도 구체화 해놓은 아이디어를 코드로 옮기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는 기획자가 따로 없고, 개발자가 곧 문제를 발견하고 해결까지 하는 사람이에요. 그만큼 사회적 지위도 무척 다릅니다. 그곳에서 개발자,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는 세상의 변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인식되고, 금전적인 대우도 어마어마하게 받습니다.

Q. 꼭 개발자가 아니더라도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넓은 관점에서 실리콘밸리의 문화를 더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많은 분이 실리콘밸리는 업무 강도가 높지 않으냐고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그곳에서 일해 본 사람으로서 저는 많은 것을 자유롭게 누렸어요. 한국에서 일한 경험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너무 여유로워요.


출퇴근 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고, 휴가도 무제한이고, 일하는 공간도 구애받지 않으니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거든요. 업무 효율이 높다 보니 6개월, 1년 단위로 결과물을 놓고 보면 이전보다 적은 시간을 활용했는데도 더 높은 퀄리티를 낼 수 있습니다.


근무 제도가 자유로운 것뿐만 아니라 회사에서 일 이외의 다른 요소를 일절 바라지 않아요. 오로지 일만 생각할 수 있게끔 온갖 지원을 다 해줍니다. 저는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자임과 동시에 훌륭한 직장인이 되기를 강요받았어요. 개발에만 신경 쓰지 못 하고 흔히 말하는 '조직 생활' 속에서 상사와의 관계를 더 신경 썼던 것 같아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기보다 상사에게 잘 보여서 승진하기 위해 일을 할 때가 많았어요.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런 부수적인 요소들을 고려하지 않아도 돼요.


물론, 저를 관리하는 매니저는 있습니다. 대신 매니저는 직원을 도와주는 역할에 가까워요. 매주 직원들과 1:1 면담을 진행하며 불편한 점이나 도와줄 수 있는 점을 물어보는데, 상사라는 개념과 거리가 멀어요. 애초에 윗사람이 아니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저보다 높은 회사의 누군가를 위해서 무언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일하며 결과물을 내다 보니 실리콘밸리가 세상에 큰 영향을 끼치고, 많은 변화를 끌어내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Q. 사고방식 측면에서 실리콘밸리가 계속해서 혁신하는 이유로는 또 무엇이 있을까요?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기술 스타트업의 미션은 기존의 문제를 기술로 해결하는 것인데, 문제 해결을 하려면 일단 문제가 무엇인지부터 제대로 살펴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 문제를 한 가지 시각으로만 보면 본질을 파악할 수 없고, 혁신을 할 수 없어요. 실리콘밸리에서는 명쾌한 답이 있다고 생각했던 부분까지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토론해요.


모바일 앱을 예로 들면, "여기 로그인 버튼을 넣자"라고 말하고 끝내면 되는데, 그곳에서는 로그인이 무엇인지, 또 가입은 무엇인지를 두고 논쟁을 벌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논쟁이 쓸데없고 비효율적이라고 생각했어요. 나중에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 그리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Q. 실리콘밸리에서 일하고 싶은 한국의 개발자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저는 예전에 어느 정도의 선을 그어 놓고 삶을 살았습니다. 그 선 이상을 넘지 못할 거라고 치부하고, 50살 정도까지 연봉을 그럭저럭 많이 주는 회사에 다닐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까지 모은 돈으로 빚을 전부 갚고, 아파트 하나를 장만하는 게 목표였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렇게만 살기에 인생이 허무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분명히 더 계실 텐데요. 만약 한국에서 개발자로서 한계에 부딪히고 있고, 지금보다 더 큰 꿈을 꾸고 있다면 누구나 실리콘밸리에서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당장에는 한국에 살고 있으니 내로라하는 인재들이 많은 실리콘밸리 하면 지레 겁을 먹을 수도 있는데요. 저는 어떤 관점으로 보면 실리콘밸리가 한국 사회보다 진입 장벽이 더 낮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자신과 동떨어진 곳이라며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마시고, 도전해서 제가 누린 실리콘밸리의 좋은 것들을 함께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다만, 나와 100% 혹은 그 이상으로 부합하는 회사를 찾는다는 마인드로 구직에 접근하시는 게 좋습니다. 한국에는 특정한 시험이나 영어 점수, 자격증 여부 같은 기준점을 넘었을 때 합격이라는 개념이 있잖아요. 실리콘밸리에서는 그보다 그 사람만의 개인적인 특성을 더 많이 봅니다. 학교에서 학생을 선발할 때도 객관적인 지표보다 개성을 더 많이 봐요. 어떤 회사에 합격하지 못하더라도 '내가 어느 정도의 기준을 넘었는데 왜 안 뽑히냐'라는 불만을 갖기보다 '핏이 안 맞는다고 봤구나'라고 생각하길 바랍니다.


확실히 기회는 한국보다 훨씬 많습니다.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몰리기 때문에 하나의 회사에서 뽑는 수는 적지만, 실리콘밸리 전체로 보면 인력난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사람이 부족하거든요. 그러니 초반에 몇 군데 지원하다가 안 된다고 좌절하지 마시고, 계속해서 시도하길 권해 드려요.


마지막으로 한국에서 100개 회사에 지원해야 한 곳 정도 합격할 수 있다면, 실리콘밸리에서는 1,000개 회사 이상 지원해야 결실을 볼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며 인내심 있게 도전하시길 바랍니다. 정 안 될 때는 저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시면 제가 도울 수 있는 선에서 도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본 인터뷰는 강태훈 님이 우버의 엔지니어로 재직 중인 2018년에 진행되었습니다. 강태훈 님은 이후 카카오모빌리티를 거쳤으며, 현재 자율주행 자동차 개발 스타트업 죽스(Zoox)에서 근무 중입니다.

👆🏻강태훈 엔지니어가 들려주는 실리콘밸리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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