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베이 본사에서 러브콜을 받은 한국인 개발자 이야기

조회수 2020. 10. 6. 19:0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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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 워터폴과 애자일의 차이를 말한다, 이베이 코리아 강경구·조유준 개발자

90년대 후반 혹은 2000년대 초반에 청소년이었다면 집 전화로 온라인 게임 캐시를 결제하고, 부모님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기억이 심심치 않게 있을 겁니다. 이때부터였을까요?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다양한 수단으로 결제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베이 코리아에서 개발한 스마일페이도 있는데요. 이 간편 결제 서비스를 개발한 두 사람은 국내 지사에서 인정받다 못해 본사에서까지 일하게 됐다고 합니다. 기분 좋게 실리콘밸리의 이베이 본사로 건너간 두 남자, 이베이 코리아의 개발자 강경구 님과 조유준 님을 EO가 만나보았습니다.

왼쪽부터 이베이 코리아 개발자 강경구, 조유준

Q.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경구 이베이 코리아에서 침묵을 맡고 있는 강경구입니다. 일할 때 말을 거의 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많이 심심해해요.


유준 경구 님과 함께 이베이 코리아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는 조유준입니다. 경구 님은 사실 평소엔 조용하고 순해 보이지만, 약간 키보드 워리어 같은 스타일이라 채팅으로 속마음을 과격하게 표현하는 편이에요.

Q. 어떻게 실리콘밸리의 이베이 본사로 파견 근무를 하러 가시게 된 건가요?


유준 저희가 외국계 회사이기 때문에 많은 직원분이 본사에서 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입사했을 텐데요. 그런데 실제로는 그럴 만한 기회가 많이 없는 편입니다.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이번에 새로운 기회를 튼다는 생각으로 오게 됐어요.


경구 유준 님은 유학 생활을 하셨고, 영어도 잘하시기 때문에 회사에서 걱정 없이 보내지 않았을까 싶어요. 반면에 영어에 능숙하지 않은 저는 약간 실험적인 타깃 아니었을까요? '영어를 잘하지 못해도 코드만으로 대화하면서 적응을 잘할 수 있지 않을까?' 같은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회사에서 실리콘밸리에서만 느낄 수 있는 문화를 한국 지사에 정착시키기 위해 저희를 이곳에 보낸 게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이베이 코리아가 외국계 기업이다 보니 직원들이 어떤 행동을 할 때 '아, 우리 외국계 기업이지'라고 생각하며 좀 더 좋은 방향으로 가려고 하는 편이거든요. 최근에는 서로를 직책으로 부르지 않고 이름을 부르기로 했는데도 크게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한국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여기는 이래서 안 돼'라고 생각하면서 실리콘밸리의 좋은 문화를 도입하려는 시도가 흐지부지될 때가 많아요. 제가 여기서 많은 걸 경험하고, 한국과 실리콘밸리를 동시에 경험한 사람으로서 이곳의 문화를 전하면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 반대로 두 분이 한국에서 스마일페이를 개발한 기술력을 인정받아 실리콘밸리에 오신 만큼 이베이 본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요.


유준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일단 스마일페이에 관해 설명해 드리면, 스마일페이는 가맹점 사이트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간편 결제 시스템입니다. 온라인에서 구매할 때 다른 페이지로 이동하지 않고 사이트에 로그인만 되어 있으면 비밀번호만 입력하고 결제할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오프라인에서도 비밀번호를 입력하면 바로 결제가 되고요.


경구 그동안 이베이 본사에서는 무조건 페이팔을 통해서만 결제를 했는데요. 페이팔이 분사하면서 이베이가 새로운 결제 시스템을 만들었다 보니 스마일페이를 만든 저희를 부른 게 아닐까 싶기도 해요.


유준 사실 한국이 결제 수단 측면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보다 발전되어 있어요. 한국에서는 휴대폰이나 교통 카드 등 결제 수단이 다양한데, 미국은 신용 카드와 계좌 이체 딱 두 가지 방식만 지원하거든요. 그러다 보니 스마일페이 같은 시스템이 기술력 측면에서 인정받은 거겠죠.

Q. 일하는 방법론에 있어서는 실리콘밸리에서 무엇을 배우고 있나요?


경구 한국과 다른 애자일* 프로세스를 경험할 수 있는 게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이베이 코리아에서는 주로 워터폴** 방식으로 개발을 했어요. 워터폴은 미리 다 정해놓고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방식이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 정해진 계획만 따르기보다 주기 혹은 환경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

** 설계, 구현, 시험, 통합, 유지보수의 단계를 순차적으로 해나가는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세스


유준 한마디로 촘촘하게 짜인 일정에 맞춰서 개발만 하면 됩니다.


경구 워터폴이 속도가 빠르긴 해요. 문제는 중간에 변경점이 생기면 수정이 힘들어요. 수정 사항을 반영하기 어려우니 처음에 설계할 때부터 빠진 게 없나 정말 꼼꼼하게 봐야 하죠. 그만큼 개발하는 과정에서 뒤통수가 가렵고 불안에 시달려요.


그런데 애자일 방식으로 일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처음에 목업*을 통해 일부 기능만 구현하고, 그다음에 실제 기능을 만들어서 목업을 조금씩 없애가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 디자인 검토를 위해 실물과 비슷하게 시제품을 제작하는 프로세스 혹은 그 작업의 결과물


유준 그렇게 유연하게 업무를 진행하면 중간에 바뀐 게 있을 때 바로 바꿔볼 수 있는데요. 그 방식이 꼭 모두에게 맞는다고 할 수 없는 게, 실컷 다 해놨는데 또 바꿔야 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가 나름대로 있어서인 것 같아요.


경구 솔직히 말하면 애자일을 하려면 시간이 좀 필요합니다. 개발하는 시간 외에도 계획을 세우고, 매주 또는 격주로 무엇을 했는지 점검하고, 뭔가 잘 안 됐으면 왜 안 됐는지 알아보는 등 여기저기 자잘하게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 많거든요. 아침마다 미팅도 꼭 한 번씩 해야 하고, 오늘 뭐 할 건지, 어제 뭐 했는지 이슈 있으면 공유하고요.


일정이 충분히 주어지면 그런 과정이 합리적이고 괜찮을 텐데, 한국에서는 시간적 여유가 많이 없다 보니 애자일을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한국에서는 애자일에 해당하는 행동들을 시키면 사람들이 더 귀찮아하죠. 할 일이 너무 많은 와중에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니까요.


결론적으로 정리하면, 워터폴을 지향하는 이베이 코리아에서는 빠르게 만드는 법을, 애자일을 지향하는 본사에서는 견고하게 만드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제는 빠르게 만들다 보니 생긴 문제를 넘기던 예전과 달리 작은 문제라도 끝까지 고민할 줄도 알고요.

Q. 한국과 실리콘밸리의 차이점을 조금 더 짚어보면 또 어떤 것이 있을까요?


경구 실리콘밸리는 사람이 일하는 걸 최후의 수단으로 봅니다. 한국은 코드 혹은 기능을 만드는 데 집중하는 편인데, 실리콘밸리는 거기서 더 나아가 테스트까지 자동화합니다. 자동화까지 하고 나면 테스트를 해도 불안했던 한국과는 달리 마음이 편해요. 제가 테스트를 직접 다 해보지 않아도 되니까요.


유준 저는 조금 다른 측면에서 차이점이 보이는데요. 미국에서는 사람들이 한국에서 제가 느낀 압박감 같은 감정을 대체로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실력 면에서는 압박이 강한 한국에서 더 빨리 배울 수 있긴 하지만요. 서로 배움의 분야가 다른 게 아닌가 싶습니다.

Q.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보니 실리콘밸리의 삶에 적응하는 기간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유준 저는 여러 가지 문화를 많이 배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인도나 중동 사람 중에는 채식주의자들이 많은데요. 하루는 모든 사람의 식성에 맞게 레스토랑 예약을 해야 하는데, 누구는 우유를 안 먹는 채식주의자이고, 또 누구는 계란을 안 먹는 채식주의자인 거예요.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서 확실히 다양한 문화를 고려할 줄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경구 저는 여기 오는 게 꿈이었기 때문에 계획에도 없던 결혼을 빨리 하기도 했는데요. 정말 좋긴 한데, 제가 이전까지 외국에 나가서 살아보거나 어학연수를 가본 적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듣기 읽기만 열심히 연습해도 되는 한국의 정규 교육 과정만 받은 채로 갑자기 말하기, 쓰기까지 하는 게 초반에 정말 힘들었습니다.


특히나 아나운서의 정확한 발음으로 또박또박 말하는 영어만 듣다가 다양한 억양의 영어를 듣고 이해하는 게 가장 어려웠어요. 다행히 옆에 한국말을 할 줄 알고 영어에도 익숙한 유준 님이 많이 도와줬고, 팀원들이 제가 영어를 능숙하게 하지 못함을 알고 참을성 있게 들어주고 천천히 말해주어서 적응할 수 있었습니다.

Q. 마지막으로 한국에 돌아가면 도입해보고 싶은 실리콘밸리의 업무 문화를 하나씩만 꼽아주세요.


유준 저는 유연근무제를 적용하고 싶어요. 여기서 내 일정에 맞춰 일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좋았거든요. 무슨 일이 있으면 조금 일찍 일을 시작해서 낮에 퇴근하거나 조금 늦게 출근해서 밤에 일을 더 하는 거죠.


경구 저는 아무래도 앞서 말씀드렸던 모든 업무를 사람이 하기보다 자동 시스템을 만드는 것, 업무 자동화를 가장 한국에 도입해보고 싶네요.

* 본 아티클은 2018년 8월 공개된 영상 '실리콘밸리로 날아간 이베이 코리아 개발자들 | 이베이 개발자 강경구, 조유준 [리얼밸리 시즌 2 EP 02]'의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스마일페이를 개발하고, 본사로 건너간 이베이 코리아의 개발자 강경구, 조유준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김정원

melo@eoeoe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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