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블린의 수장 라비와 <노블레스 맨>이 만났다

조회수 2020. 10. 8. 09:3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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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과 음악, 패션에서 그는 '라비'한다. 오롯이 본인이 꿈꿔 온대로 활약하고 있는 라비를 만났다.
트러커 재킷 Louis Vuitton.

영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에서 헤르미온느는 자신이 지닌 목걸이 ‘타임 터너’로 몇 번이나 시간을 되돌린다. 덕분에 인간에게 주어진, 거의 유일하게 평등한 자원 ‘시간’을 여러 겹으로 겹쳐 쓸 수 있게 된다. 라비는 팬들 사이에 ‘타임 터너’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그는 시간을 여러 번 되돌리는 것처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삶을 살고 있다. 8년 전 아이돌 그룹 래퍼로 데뷔한 뒤 2016년부터는 전곡을 작곡하고 프로듀싱한 솔로 믹스 테이프를 꾸준히 발표했으며, 작년에는 힙합 레이블 ‘그루블린’의 수장이 되어 신진 아티스트 육성에 힘쓰고 있다. 올 상반기에는 1집 정규 앨범을 발매하고, 얼마 전 EP 앨범을 발매하는 사이사이 끊임없이 다른 아티스트와 협업했다. KBS <1박 2일> 등 여러 고정 프로그램에도 출연하고 있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한 자작곡 수만 144곡에 달한다(2020년 상반기 기준).

“라비라는 가수가 200곡째 히트할 수도, 300곡째 히트할 수도 있는데 가보지 않으면 모르지 않을까요?”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던진 말은 라비 삶의 밑바탕에 깔린 믿음이자 이정표다. 화보 촬영장에서 정해진 의상 그대로 입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또렷이 전달하며 상황에 휩쓸려 자신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에서, 다른 아이돌과는 조금 다른 행보를 걷는 라비라는 인물에 한 발 다가간 느낌이었다. 어린 시절 가수라는 꿈을 꾼 이후 한 번도 그 꿈에서 벗어나본 적 없는 외골수. 그는 지금 사회가 정해놓은 성공이라는 잣대보다 스스로의 온도를 유지하는 데 더 관심이 있다. 그가 만들어놓은 끓는점을 넘어 더 펄펄 끓기 위해, 그는 지금도 가슴에 불을 지피느라 여념이 없다.

블랙 니트 톱 Bottega Veneta, 브라운 슬랙스 Celine Homme.

오늘 촬영은 어땠나? 평소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로 촬영을 많이 해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하다. (입가에 미소를 띠며) 좀 어색한 부분도 있었고.

새로운 시도가 불편할 때도 있나? 상황이나 명분에 따라 다른 것 같다.

타임 터너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시간 관리 능력이 대단하다. 요즘 라비의 타임라인은 어떤가. 지금 한창 준비 중인 중대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그건 아직 대외비라.(웃음) 방송 스케줄 소화하면서 음악과 앨범 작업 꾸준히 하고 있고, 그루블린 동료들과 새로운 계획을 위한 미팅도 많이 한다. 죽을 둥 살 둥 하고 있다.(웃음)

라비가 이끄는 힙합 레이블 그루블린이 얼마 전 1주년을 맞았다. 감회가 어땠나. 1주년은 공연으로 기념하고 싶었는데, 아쉽다. 아티스트, 직원들과 시간을 보내는 정도로 소소하게 자축했다. 지금 새로 준비하는 프로젝트가 많은데, 그것이 공개될 즈음 ‘그 사이 그루블린이 많이 성장했다’고 느끼지 않을까 싶다.

전담 스타일리스트가 누누이 말하길, 라비는 굉장히 의리 있는 사람이라더라. 하하하! 정말? (다시 숨 고르고) 의리 있지. 나는 집단의 목표와 동시에 개개인의 동기부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급여일 수도, 성취감일 수도 있을 텐데 그 균형을 잘 지켜주고 싶어 회사를 차렸다. 나도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런 부분에서 솔직히 얘기하려 한다. 그루블린이 가치를 추구하는 집단이었으면 하는데 그러려면 좋은 사람들과 일해야 하고, 좋은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면 가능한 한 잘해주려 한다. 그런 부분에서의 의리를 이야기한 것 같다.

그루블린 전원이 공유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음악 안에서의 선한 영향력. 더 나아가 힙합, 가요 시장에 긍정적 기여를 하는 것. 아직 주목받지 못한 신인이 성장해서 신 안에서 인정받거나, 그간 존재하지 않던 형태의 공연이나 콘텐츠를 만든다면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을까. 가장 중요한 점은 집단 내 모든 사람이 뜨거웠으면 하는 것이다.

콘텐츠나 음악 작업의 아이디어는 주로 누가 만들어 내는가? 회의를 통해. 대개 아이디어의 큰 틀은 내가 짜지만 구체화하거나 또 다른 생각을 더할 때에는 함께하는 아티스트의 도움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내 기획을 ‘까줄’ 사람이 필요하다.

직원들이 사장의 의견을 ‘깐다고’? 많이 ‘까인다.’(웃음) 어차피 그러려고 모인 거니까. 내 맘대로 할 거면 안 했겠지.

요즘 유튜브의 ‘RAVI’s CLOSE UP’(라비가 인터뷰어가 되어 한 뮤지션을 집중적으로 인터뷰하는 시리즈성 콘텐츠)을 흥미롭게 보고 있다.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 아티스트가 오롯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별로 없다. 앨범 홍보 목적 등 그 순간에 본인이 만들어낸 결과물을 다루는 인터뷰에만 치중되어 있으니까. 사람 자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는 콘텐츠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소하지만 뮤지션의 평소 말투나 성향을 자연스럽게 접할 기회도 별로 없지 않나. 아직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지는 못했지만 각 아티스트의 팬들이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되었다”는 피드백을 줄 때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라비스 클로즈업의 인터뷰는 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던데, 라비는 어떤 아이였나? 욕심쟁이였던 것 같다. 꿈이 많고 꿈에 대한 집착도 심했다. 가수라는 꿈만 생각하고 사는 외골수였다.

공통 질문 중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중 누가 더 행복하게 음악을 하고 있나’라는 질문이 있는데, 어떤 의도에서 만든 질문인가? 뮤지션에겐 누구나 음악을 듣는 행위 자체가 신선했던 어린 시절이 있다. 순수하게 음악이 좋아 계속 반복해 듣던 시절. 일이 되고 익숙해진 뒤엔 무뎌져서 아주 좋은 음악을 들어도 그때 감정과는 다르다는 걸 느낀다. 기술적으로 듣고 생각 자체가 순수하지 못한 자신을 자각하기도 하고.

나 역시 질문을 보면서 그 의도를 짐작했는데, 의외로 많은 아티스트가 “지금이 훨씬 행복하다”고 말하던데?(웃음) 다 잘된 아티스트라 하는 말이고.(웃음) 아무래도 전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겨 음악적으로 더 시도할 수 있는 부분이 생기고 지금 사랑을 주는 팬들에 대한 감사 때문인 것 같다.

코트, 슬립, 팬츠 모두 Gucci.

1년 전쯤 한 인터뷰에서 과거 공황장애를 겪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요즘은 좀 어떤가. 거기서 완벽하게 빠져나왔다고 할 순 없다. 심리적으로 고장 난 것 같은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최악일 때보다는 낫다. 괜찮아지려 노력한다.

스스로에게 처방전 같은 게 있다면? 무대가 약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오히려 고장의 원인인지, 사실 요즘은 잘 모르겠다. 지금은 파악해나가는 과정이다. 무대에 서고 팬들과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이 분명 행복하기에 약이 되는 것 같은데, 한편으로는 무대에 서기 위해 책임과 명분을 계속 만들어가기 때문에 소모적이기도 하다. 준비 없는 무대를 팬들에게 선물이라고 우길 수는 없으니까.

온전히 쉼을 위한 시간은 없나? 뭘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음악이 일이자 취미인 걸까? 아직은 쉰다는 게 마음이 편하지 않은 것 같다. 불안함이 나를 계속 움직이게 한다.

어떤 성질의 불안함일까? 무한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과 실제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아직 안정적이라 느끼지 못하는 것. 무대에 서는 건 책임이 필요한 일이자 가수로서 계속 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격이 없는 거지. 이 불안을 넘어서려면 아직 거쳐야 할 과정이 많은 것 같다.

작업으로 토해내는 부분이 있다면 채워야 하는 부분도 있지 않나. 성격상 여러 작업을 시간 차를 두고 계속 진행하기에 시원하게 ‘끝났다’ 하는 시점이 없다. 그래서 작업으로 토해낸다는 말도 내겐 맞지 않다. 작업의 영감은 따로 채우기보다는 아직까지는 삶에서 느끼는 것들로 충분하다.

올 상반기에 첫 정규 앨범 를 냈다. ‘Rockstar’의 가사에서 라비가 좀 더 자유로워졌다는 느낌이 들던데, 스스로는 어떤 생각으로 만들었나. 록스타는 듣기에 신나지만, 가사에는 나름대로 메시지를 담으려 했다. 특정한 뭔가만이 특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흔히 “평범하다”, “일반적이다”라고 말할 때 그 가치를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는데, 개개인 모두 충분히 가치 있고 특별한 존재라고 느꼈으면 하는 생각이었다. 적어도 이 노래를 듣는 사람만큼은 뭔가에 지나치게 얽매여 인내하지 않았으면, 더 나아가 스스로의 가치를 높게 보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다.

사회가 요구하는 성공의 기준보다 스스로의 동기부여가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나? 그 기준을 자신이 버틸 수 있거나 그것에 성과가 있다면 모르겠지만, 굳이 모두가 그것을 따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언제부터 든 생각인가?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숫자로 정리되는 것이 어느 순간 슬프게 느껴졌다. 저녁 6시에 음원을 발표하고 1시간 안에 평가받는 느낌도 참 별로였고. 성적에 따라 음악이 저평가되거나 혹은 더 훌륭한 음악으로 평가받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다. 음악뿐 아니라 어디에서나 마찬가지다. 중요한 건 누구나 스스로 가슴 뛰는 일에 가치를 두는 것이 아닐까. 가사를 쓸 때 그런 생각을 많이 담는다.

라비는 명언 제조기로 유명하다(“고기와 밀가루를 멀리하면 오래 살 수 있지만 그러면 굳이 오래 살 필요가 없어”, “대가 없는 소고기는 없다. 선심은 돼지고기까지다” 같은 명언도 유명하지만 “라비라는 가수가 200곡째 히트할 수도, 300곡째 히트할 수도 있는데 가보지 않으면 모르지 않나.”, “아이돌 문화를 사랑해주는 팬들은 충분히 그 행위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데 ‘빠순이’로 비하해 표현하지 않았으면 한다” 등 소신 발언도 서슴지 않았다. ‘DamnRa’라는 곡에서는 여성 비하를 당연시하는 래퍼에게 일침을 날리기도 했다. _에디터 주).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걸 당연하게 보지 않는 시선 때문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한 말이 대단한 명언처럼 짤로 돌아다니는 걸 보면 부끄러울 때도 있다. 내가 대단히 깨어 있거나 이미 완성된 사람이라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나 또한 변하고 싶고 그 변화에 자연스러워지고 싶어서 하는 표현이다. 내 생각 역시 앞으로 바뀔 수 있고, 평생 완벽해지지 않을 수도 있다.

브라운 슈트, 레더 톱 모두 Givenchy.

스스로 한계나 부족함이 느껴질 땐 그 문턱을 어떻게 넘으려고 하나? 한계를 한계라고 느끼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지나가는 것 같다. 어떤 상황이든 원래 하던 것과 할 수 있는 것을 꾸준히 하다 보면 나 스스로 바뀌어 있고, 주변도 점차 변해간다. 굳이 성공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 내가 하는 노력 중 하나다. 노력해도 안 되는 부분에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으려 한다. 성공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좋아하는 것을 꾸준히 한다. 특정 롤모델을 두고 누구처럼 되기를 원하기보다는, 내가 되고 싶은 내 모습이고 싶다.

라비가 되고 싶은 라비는 어떤 모습인가. 다양한 방면에서 내 모습이 더 구체화되는 것이다. 너무 다양해서 한 가지로만 말하기는 어렵다.

결국 끝이 없다는 거네. 스스로 경계하는 부분은 없나? 경계하는 건 없다. 굳이 말하자면, 경계하는 것을 경계하는 것 같다. 다만 나쁜 사람만은 경계하려고 한다. 회사에 좋은 사람만 있으면 좋겠다.

아까부터 좋은 사람 이야기를 많이 한다. 라비가 정의하는 좋은 사람은 뭘까. 뜨거운 사람, 능동적이고 목적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 각자 잘 섞여서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좋은 기운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호흡을 맞추다 보면 금세 알게 된다. 아니다 싶으면 빠르게 ‘Bye’ 하고 정리하는 편이다. 그런 이별은 두렵지 않다. 어차피 재미있게 일하려고 모인 거니까.

라비는 지금 뜨겁나? 그렇다. 하지만 언젠가는 차가워지겠지?

그건 좋은 징조일까? 아니. 그러면 재미없어질 테니까. 내가 나를 알아가는 뜨거운 과정에서 노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웃음)

너무 빨리 알게 되면 재미없지 않나. 그렇지. 아마 평생 모를 것 같다.(웃음)


에디터 전희란(ran@noblesse.com)

사진 김희준

메이크업 수연(알루)

스타일링 권수현

어시스턴트 최고은

장소 협찬 몬드리안 호텔 이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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