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하며 병을 치료할 수 있다고? '디지털 치료제' 개발사 뉴냅스는 어떤 곳?

조회수 2020. 10. 20. 18: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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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하거나 앱을 사용해 질병을 예방, 관리하고 치료까지 할 수 있다고 해요. 


예를 들면, 기능을 잃어버린 뇌세포를 자극하는 게임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고, 뇌세포의 인지 능력을 키우는 것인데요. 이를 치매, 알코올의존증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디지털 치료제'라고 해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 중인 회사 뉴냅스를 창업한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를 만나서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어요.


▶뉴냅스를 창업한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뉴냅스

‘디지털 치료제’ 개발 뉴냅스

환절기에는 혈관이 갑자기 수축할 위험이 있어 ‘뇌졸중’을 주의해야 하는데요. 뇌졸중 증상 가운데 하나가 시야가 평소보다 확 좁아지는 현상이에요. 눈과 시신경의 문제가 아니라 뇌손상 때문에 시야장애가 발생해요. 눈을 통해 들어온 각종 정보가 다양한 경로를 거쳐 뇌의 후두엽에서 인지되는데, 여기서 이상이 생긴 것이죠.

매년 국내에서 뇌졸중으로 시야장애를 호소하는 환자만 2만 명가량이지만 아직 마땅한 치료법이 없어요. 10년 넘게 뇌졸중 환자를 치료하던 강동화 서울아산병원 신경과 교수는 2010년 미국 하버드대 연수에서 접한 ‘지각 학습 프로그램’에서 시야장애를 해결할 실마리를 발견했어요. 지각 학습은 자극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지각 능력이 높아지는 원리예요.

연수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강 교수는 뇌손상 뒤 시야장애를 겪고 있는 환자에게 적합한 학습 도구를 연구했어요. 살아 있지만 비활성화된 뇌세포를 깨우기 위한 최적의 자극을 찾아 뇌졸중 환자를 집요하게 반복적으로 훈련하자 ‘잠든 뇌’가 깨어나기 시작했어요.

“눈은 정상인데 뇌를 다쳐 시야장애가 있는 분들에게 자극을 계속 제공하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처음에는 아예 안 보이는데, 계속 반복하면 보기 시작해요. 죽은 뇌세포 근처에 연결이 끊어진 상태로 고립된 뇌세포가 활성화하는 거니까 엄밀히 말하면 본다기보다 인지하기 시작하는 거죠.”

국내 디지털 치료제 임상 승인 1호

연구 결과를 강의 등을 통해 알리자 동료 신경과 교수들이 ‘환자가 좋아지다니 정말 신기하다’며 ‘나도 빨리 쓰게 해달라’고 요청해왔어요. 소프트웨어는 의료기기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연구실 수준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죠. 2017년 11월 사내창업 (스핀오프) 방식으로 ‘뉴냅스’를 창업하고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들어갔어요.

의료기기의 임상시험 단계는 의약품과 달리 동물을 대상으로 하는 ‘전임상 단계’는 없고, 1상과 2상에 해당하는 ‘탐색 임상’과 3상에 속하는 ‘확증 임상’만 있어요. 탐색 임상은 치료제나 치료법이 임상에서 효과가 있을지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인데요. 가상현실(VR) 기기를 쓴 환자에게 하루 30분씩 가로, 세로, 회전 등의 영상으로 자극을 보내 환자가 이를 판별해 응답토록 했어요.

“일종의 과제를 수행하는 건데 맞히면 점수가 올라가고, 틀리면 내려가면서 환자 상태에 맞게 난이도를 자동으로 조절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게임을 하는 것 같다’는 피험자들도 있는데,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게임은 아니에요. 재미 요소보다는 학습 효과 위주로 하다 보니 단순하긴 합니다.”

뉴냅스가 개발한 ‘뉴냅 비전(Nunap Vision)’의 탐색 임상에 참여한 피험자 절반 이상이 뚜렷한 효과를 봤어요. 탐색 임상에서 입증한 시야장애 개선 효과를 바탕으로 2019년 7월 식약처로부터 확증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죠. 국내에서 임상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뉴냅 비전이 처음이에요.

2021년 상반기 신약 허가 신청 목표

디지털 치료제는 앱(응용 프로그램)이나 게임 등 소프트웨어로 질병을 예방·관리·치료하는 약인데요. 기존의약품과 마찬가지로 임상을 거쳐 의료 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판매할 수 있어요. “애초에 디지털 치료제를 만들려고 한 게 아니에요. 식약처와 논의하다 디지털 치료제라는 용어를 처음 들었는데,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게 디지털 치료제더라고요. 흔히 디지털 치료제를 ‘뇌로 먹는 약’이라고 하는데, 시야장애를 개선하는 뉴냅 비전은 ‘눈으로 먹는 약’인 셈이죠.”

확증 임상은 효과가 있는지 없는지 비교해야 하므로 치료군과 대조군을 무작위 배정해 엄정하게 관리하고 있어요. 그래서 위약(플라세보)이 중요하죠. “컴퓨터에서 무작위로 배정하기 때문에 우리나 피험자도 치료군인지 대조군인지 몰라요. 임상이 끝날 때까지 몰라야 하기 때문에 임상시험은 위약을 잘 만드는 게 중요해요. 신약 임상시험할 때 진짜 약과 위약을 똑같이 느끼게 만들거든요. 저희는 디지털이니까 세부 사항까지 신경써서 위약을 만들었어요.”

확증 임상의 목표 환자는 84명인데 현재 3분의 2쯤 등록한 상태예요. 2021년 상반기에 신약 허가를 신청하는 게 목표죠. 강동화 교수에게 성공 가능성을 묻자 “반반”이라는 답이 돌아왔어요. “성공 가능성은 51%인데, 1%는 제 소망을 더한 겁니다. 신약은 임상시험에서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아요. 3상까지 성공해 시판되는 신약은 몇 퍼센트 안 됩니다. 그만큼 어려운 길을 선택한 거죠.”

말은 조심스럽지만 강동화 교수는 해외 진출까지 함께 준비하고 있다고 해요. 한국에서 승인이 나도 다른 나라의 인허가 과정을 다시 거쳐야 하고요. 대표적 의료기기 시장인 미국은 식품의약국(FDA), 유럽은 유럽공동체마크(CE)의 승인을 받아야 해요. “미국은 FDA에서 승인받으면 바로 시장으로 나갈 수 있는데, 한국은 식약처 허가뿐 아니라 신의료기술평가도 받아야 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수가도 매겨야 해요. 소프트웨어에 대해 얼마나 가치를 매겨줄지 사실 걱정이에요.”

▶VR 기기를 쓴 환자가 ‘뉴냅 비전’으로 훈련하는 개념도│뉴냅스

정부, 디지털 치료제 연구개발 지원 나서

식약처는 2020년 8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국내 업체의 연구개발(R&D)에 도움을 주기 위해 ‘디지털치료기기’ 분야의 허가심사 방안을 마련했어요. 정부가 9월 24일 발표한 ‘디지털 뉴딜 문화콘텐츠산업 성장 전략’에는 게임을 기반으로 치매, 알코올의존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ADHD) 등 다양한 의료 분야에서 활용 가능한 ‘디지털 치료기기’의 연구개발을 검토한다는 내용도 포함됐어요.

“정부가 디지털 뉴딜 정책을 포함해서 많은 걸 활성화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데, 딱 하나만 바꿔야 한다면 (가능한 것만 열거하는) ‘포지티브규제’를 (안 되는 것만 정해놓는)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는 거예요.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만 정해놓고, 그 범주에 들지 않으면 누구도 결정을 안 하는 상황이거든요. 해외에서 성공한 바이오 스타트업과 유니콘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신생 기업) 가운데 30%는 우리나라에서 사실상 불법이라고 하잖아요. 하지 말라는 것만 정해놓고 나머지는 할 수 있게 바꿔야 합니다.”

강동화 교수는 세계적으로 초기 단계인 디지털 치료제 분야에서 한국의 경쟁력을 높이 평가했어요. 정보기술(IT)과 의료가 융합된 결정체가 디지털 치료제고, 한국은 IT와 의료가 동시에 발달한, 흔치 않은 나라이기 때문이죠.

“의료도 우리가 굉장히 강해요. 제가 레지던트였을 땐 외국에 나가서 공부해야 했어요. 요즘에는 젊은 교수들이 해외에 간다고 하면 ‘왜 나가지?’ ‘한국에서 다른 연구진과 협업하는 게 더 나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어요. 이렇게 고품질의 의료 서비스를 얼마 안 기다리고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드문 게 아니고 우리나라밖에 없어요.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이 그렇게 많지 않은데, 디지털 형태의 신약은 IT와 의료가 모두 강한 우리가 도전할 만합니다.”

▶ADHD 치료용 게임 ‘인데버 아르엑스’│아킬리 인터랙티브 랩 누리집
▶약물의존 치료용 앱 ‘리셋’│페어 테라퓨틱스 누리집

‘디지털 치료제’ 개발 어디까지 왔나

2017년 9월 디지털 치료제로는 처음으로 스마트폰 앱 ‘리셋(reSET)’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았어요. 약물의존 환자에게 의사가 처방하는 행동교정 치료 프로그램을 앱으로 옮겨놓은 리셋의 지시에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충동에 대한 훈련을 하게 되는데요.

리셋처럼 주로 반복 훈련으로 환자 행동과 인지를 바꾸는 디지털 치료제는 당뇨·고혈압 같은 만성질환은 물론 조현병,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금연 치료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개발되고 있어요.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증상을 치료하는 앱 ‘프리스피라(FreeSpira)’, 만성 불면증 환자를 위한 앱 ‘솜리스트(Somryst)’ 등이 대표적이죠. 알약에 초소형 센서 칩을 넣어 복용 여부, 복용량 등의 정보를 앱에 표시하게 만든 디지털 알약 ‘아빌리파이 마이사이트(Abilify MyCite)’도 유명해요.

2020년 6월에는 게임 ‘인데버 아르엑스(Endeavor Rx)’가 FDA의 승인을 받아 화제가 됐어요. 공중에 뜨는 호버 보드를 타고 악당을 물리치는 내용인데, ADHD를 앓고 있는 어린이의 주의력과 집중력이 향상되는 효과가 있어요.

디지털 치료제가 1세대 합성의약품(알약)과 2세대 바이오의약품(항체)에 이은 ‘제3의 신약’으로 부상하면서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는데요. 금융정보업체 피치북(Pitchbook)은 최근 보고서에서 디지털 치료제 투자금이 2015년 1억 3400만 달러(약 1580억 원)에서 2019년 12억 달러(약 1조 4000억 원)로 늘었다고 밝혔어요.

국내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임상 승인을 받은 디지털 치료제는 뉴냅스의 ‘뉴냅 비전’이 유일하지만 현재 여러 업체가 개발에 나서고 있어요. 라이프시맨틱스는 호흡기 질환자의 재활 운동 프로그램인 ‘레드필 숨튼’과 암 환자의 예후 관리를 돕는 ‘레드필 케어’ 등을 개발해 임상 신청을 준비하고 있죠. 


착용 가능한(웨어러블) 기기에 생체 데이터를 연동해 불면증을 치료하는 디지털 치료제를 개발하는 에임메드는 연내 임상시험 돌입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게임 요소를 결합한 소프트웨어로 강박장애가 있는 환자의 인지행동치료(CBT)용 디지털 치료제 ‘오씨 프리(OC FREE)’를 개발하는 빅씽크는 미국 진출을 우선 추진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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