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유학생이 아마존 대신 동대문을 선택한 이유

조회수 2020. 11. 20. 05: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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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대문 패션 B2B 거래 플랫폼 터틀체인을 운영하는,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국내 패션 시장의 규모는 50조 원에 달합니다. 그중 동대문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략 15조~17조 원이죠. 전체 시장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거대한 규모입니다. 하루 평균 거래액만 500억 원을 상회하는 큰 시장이지만, 놀랍게도 동대문은 여전히 수기가 대세인 아날로그식 현장입니다.


거북선컴퍼니의 염승헌 대표가 아마존과 마이크로소프트 대신 아날로그의 끝판대장, 동대문 시장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EO가 그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인터뷰

Q. 간략한 자기소개와 함께 '터틀체인' 서비스를 설명해주세요.


안녕하세요. 거북선컴퍼니의 대표 염승헌입니다. 거북선컴퍼니는 동대문의 패션 B2B 거래 플랫폼, 터틀체인을 개발하고 운영하는 회사예요. 터틀체인은 2017년 4월 론칭한 서비스로, 동대문 시장의 도매점과 소매점이 간편하게 거래할 수 있도록 지원합니다.


처음에는 동대문 시장의 주문을 더 간편하고 빠르게 만드는 데서 시작했어요. 이후에 정산 서비스까지 오픈해 동대문 시장의 주문 간편화를 넘어 도매와 소매는 물론, 그 사이를 잇는 구매대행자, 사입 삼촌의 역할이 더 편리하게 바뀔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습니다.


베타 서비스를 론칭한 사업 초기에도 한 달 거래액이 6~7억 원 정도 됐는데, 최근에는 한 달에 150억 원 이상의 주문 거래가 터틀체인에서 일어나고 있고요. 투자 단계로 보면 2019년 총 12억 원 규모의 시드 투자를 받았고, 올해 시리즈 A 투자를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굉장한 자부심을 느끼며 즐겁게 일하고 있습니다.

동대문 평화시장

Q. 정말 궁금했습니다. 왜 동대문 시장인가요?


동대문 시장이라고 하면 대부분 단편적인 '시장'의 이미지만 떠올리는데, 동대문은 하루에 500억 원 이상, 연간 15조 원가량이 거래되는 큰 시장이에요. 이 정도 규모면 전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거대한 시장이죠. 


거기다 수출입까지 이뤄지니까 '여기서 성공하면 충분히 큰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공동 창업자분의 영향도 컸고요. 


공동 창업자분이 보스턴에서 다른 스타트업을 운영한 적이 있는데, 그때 우연찮은 기회로 만나 일을 도운 적이 있어요. 워낙 패션이나 쇼핑몰 데이터를 많이 다뤘던 분이라, 그때부터 "IT 기술을 어떻게 동대문 시장에 접목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인터뷰

Q. 미국에서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창업을 결심한 계기가 있었나요?


밴쿠버와 LA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보스턴대학교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했어요. 대학을 졸업하면서 '어느 조직에 들어가야 재밌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하버드대학교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를 구한다는 공고를 봤어요. 세계 최고 대학은 어떻게 운영되는지 궁금했고, 일을 하며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 석사 과정도 진행할 수 있어서 하버드에 가기로 결심했죠.


하버드에서 교내의 각종 결제 시스템을 관리했는데, 학생과 교직원이 가지고 다니는 ID 데이터는 실제로 캠퍼스 안에서 큰 영향을 미쳐요. 생각해 보면 하버드 내의 각종 데이터를 관리했던 경험이 동대문 시장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다 2016년 무렵 아마존과 블룸버그에서 오퍼를 받았어요. 고심하던 때였는데, 공동 창업자분이 함께 일해 보자고 연락을 하셨죠. 예전부터 같이 일하고 싶다고 생각한 터라 오래 고민하지 않았어요. 그렇게 한국에 들어와 본격적인 창업을 준비했습니다.

새벽 시간에 대기 중인 동대문의 사입 삼촌들

Q. 아마존 대신 동대문을 선택하셨군요. 하지만 동대문 시장이 여러모로 만만치 않은 상대였을 것 같습니다.


사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해도 왜 동대문 시장을 밤 11시에 가야 하는지 몰랐어요. 동대문 시장을 잘 몰랐던 거죠.


처음 동대문 시장에 가던 날, 비가 부슬부슬 왔는데 일하는 분들이 전부 비에 젖은 종이를 꼭 쥐고 큰 대봉을 어깨에 짊어진 채로 계신 거예요. 도매, 소매, 사입 삼촌 간의 소통이 전부 수기라는 걸 그때 알았어요. ‘대체 여기는 뭘까?’ 궁금해지더라고요. 


도매는 옷을 디자인하고 생산하는 일을, 소매는 옷을 판매하는 일을, 그 가운데서 사입 삼촌이 도매와 소매를 연결하며 물건을 배달하는 역할을 해요. 각자의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서 소통이 필요한데, 그게 전부 수기인 거예요. 일하는 모든 분들이 굉장히 피곤해하셨고 지친 상태였어요.


중간자 역할로 일하는 사입 삼촌을 만나면 휴대폰을 3대씩 놓고 계세요. 3대가 번갈아 가면서 울리고 연락이 오가는데, 굉장히 힘들어 보였어요.


당시에는 사입 삼촌분들이 소매에서 주문을 받으면 도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직접 주문을 넣었거든요. '소매에서 주문지를 보내면, 일일이 전화를 걸 게 아니라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주문을 넣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동대문 시장의 데이터는 정돈이 돼 있지 않아요. 수기로 데이터를 그룹화하기는 굉장히 어렵거든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IT로 정리할 때'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어요. IT 스타트업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다고 확신했죠.


하지만 익숙하고 오래된 방식을 바꾼다는 게 정말 쉽지 않더라고요. "동대문 사람이 아니고 외부인이다"라는 말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었던 것 같아요.

동대문의 사입 삼촌과 이야기가 나누고 있는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Q. 변화가 정말 어려운 과정인데, 어떻게 설득하셨는지 궁금해요.


더 편리하게 일할 수 있다고 계속 주장했던 것 같아요. 저희가 서비스를 고민하던 2017년에도 거래를 편리하게 만드는 방법이나 서비스는 이미 존재했어요. 동대문에서 일하시는 분들도 늘 더 잘할 수 있는, 더 쉬운 방법을 찾고 계셨고요.


그런데 막상 새로운 방법을 받아들이고 실제로 사용해야 하는 순간을 맞닥뜨리면 "바꾸기 어렵지 않을까?" 하면서 망설이시더라고요.


하지만 저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매일 같이 시장에 찾아가서 설득했죠. 욕도 먹다 보면 괜찮지더라고요. 무엇보다, 저도 시장의 문제를 찾아내고 해결해야만 먹고살 수 있으니까 시장분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입 삼촌분들에게 간신히 얻은 힌트로 열심히 프로토타입 만들어서 "이런 건 어때요?"라고 여쭤보고, 개선된 방법이 생기면 바로 업데이트해드리러 가는 작업을 계속했어요. 계속 가다 보니까 관계도 풀리더라고요.


사입 삼촌분들의 업무가 보통 새벽 4~5시부터 마무리되거든요. 비가 많이 오는 날이었는데, 그날따라 저희한테 눈길 한 번을 안 주시더라고요. 옆에서 우산 쓰고 일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어요. 그 모습이 조금 딱해 보였는지 트럭으로 들어오라고 하시더라고요.


트럭 안에서 열심히 서비스를 설명해드렸어요. 사입 삼촌이 한참을 들으시더니 "너는 미국에서 왔다면서 하필 동대문 시장에서 사업을 하려고 하냐. 다른 거 할 거 많을 텐데"라고 하시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진짜 속상했어요. 동대문 시장은 글로벌에서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규모인데!


제가 억울해서 이런저런 말씀을 드렸더니 "소주나 한잔하러 가자"고 하시더라고요. 처음으로 아침 7시에 소주를 마셔봤어요. 정말 얼큰하게 드시더라고요.


그때 솔직한 이야기를 많이 나눴던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시장에서 힘들었던 부분도 이야기해주셨고요. '우리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확신한 순간이었어요.

동대문 패션 B2B 거래 플랫폼 터틀체인의 실제 서비스 화면

Q. 아침 7시와 소주, 본격적으로 동대문 거래 플랫폼이 시작된 장면이네요.


그렇죠. 하지만 그 뒤로도 초창기에는 힘들었어요. 사무실 없이 동대문 시장 안에 작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업무를 봤어요. 시장 근처에서 가장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공간이었거든요. 


주문이 들어가면 노트북을 손에 들고 시장에 나가서 "방금 주문 들어갔는데 확인 버튼 좀 눌러주세요"라고 직접 이야기하면서 시장을 돌아다녔어요. 


처음에는 간편 주문 앱으로 시작했지만, 중대형 쇼핑몰 같은 경우는 사무실에 앉아서 데스크톱으로 업무를 처리하다 보니 웹 환경이 더 적합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웹 기반으로 피벗했습니다.


지금은 정산 주기와 정산 금액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정산 서비스가 실제로 동대문 시장의 도·소매업자는 물론 사입 삼촌분들에게도 굉장히 중요한 데이터예요. 터틀체인 플랫폼 안에 도매와 소매, 사입 삼촌까지 총 세 플레이어가 함께 있어야 유의미한 데이터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Q.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웹 기반의 시스템을 안정화하니까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 의류를 판매하는 1인 마켓이나 인플루언서 마켓이 눈에 들어왔어요. 그분들에게 맞는 모바일 플랫폼이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앞으로 1인 마켓을 위한 모바일 플랫폼을 만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또 동대문 시장의 주문과 정산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난 액수의 돈이 터틀체인을 거쳐 가더라고요. 자연스럽게 핀테크 기업과의 접촉도 많아졌어요.


처음에는 핀테크 분야의 지식이 전무했는데 우리은행의 핀테크 랩, 디노랩 프로그램에 들어가면서 전략적 파트에 필요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었어요. 그때 핀테크에 대한 이해도도 높아졌고 네트워크도 쌓였죠. 서비스를 '주문, 결제, 금융' 3단계로 보고, 앞으로 금융으로 사업 영역을 확장할 계획입니다.

거북선컴퍼니 염승헌 대표 인터뷰

Q. 동대문을 태운 거북선이 향하는 곳은 어디일까요?


거북선컴퍼니의 모티브인 거북선이 굉장히 과학적인 동시에 한국적이잖아요. 해외에서도 한국 기술로 그 위상을 인정받았고요. 거북선컴퍼니의 목표도 동대문 시장에 차세대 기술을 도입해, 이 시장을 해외에서 인정받도록 만드는 거예요.


동대문 시장은 지금껏 잘 성장해왔어요. 앞으로는 IT 기술을 바탕으로 더 크게 성장하리라 봅니다. 거북선컴퍼니와 함께 나아가는 동대문 시장의 미래를 기대해주세요.

* 본 아티클은 2020년 3월 공개된 <하버드 유학생이 동대문에서 사업하는 이유>의 내용을 바탕에 두고 있습니다.

👆🏻동대문 패션 B2B 거래 플랫폼 터틀체인을 운영하는 거북선컴퍼니 대표 염승헌 님의 이야기를 영상으로도 만나보세요.


글·편집 이영림






EO(Entrepreneurship & Opportunit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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