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쪼록 좋아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있었으면..한다는 영화감독

조회수 2021. 01. 11.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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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 팬이라면 기억하고 있는 영화. 스무 살 청년들의 독립을 그린 <경복>(2012)을 연출한 최시형은 영화라는 이름 안에서 자유롭고, 다재다능하다. <춘몽>(2016) <여자들>(2017)에는 배우로 출연하기도 했던 최시형은 자신이 살아가는 찰나와 고민하는 얼굴들을 작가적 색채로 기록하는 감독이다. 


그가 서울 서촌에 문을 연 ‘파움스 서울’은 역시나 영화적인 공간 시네마라운지이다. 2017년 연남동에 홍콩영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낭만적인 루프탑 바이자 상영 공간 ‘남국재견’을 오픈했던 그의 새로운 도전이기도 하다. 영화 책방보다는 어딘가 비밀스러운 아지트 혹은 유토피아라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파움스 서울’에서 그의 고민과 다짐들을 들어봤다. 

파움스 서울이란 이름이 근사해요.

‘파움스’는 인터넷에서 만든 제 첫 아이디였어요. 급하게 만들었지만 아무 뜻이 없어서 좋아했어요. 어딘가 있을 법한데 없는 단어죠. 서울은 제가 태어난 곳. 그 두 개를 합쳐서 그냥 저예요, 저.(웃음)


처음 아이디를 만들 땐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죠.

최고의 가치는 새로움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부터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놓고 고민을 거듭하다 이메일 주소를 하나로 정리했어요. 이 단어의 존재를 10년 동안 잊고 있다가 다시 발견했을 때 기분이 좋더라고요. 실제로 아이디를 만들 당시를 기점으로 제 인생이 나뉠 정도로 특별하기도 했고요.

파움스 서울, 최시형 대표.

파움스 서울에서 영화인으로 활동을 펼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큰 그릇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요즘 ‘부캐’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다르게 말하면 인간의 스펙트럼이 넓어진 것 같아요. 어떤 분야든 한 가지 일만 하는 게 불가능하고 의미도 없다고 생각해요. 영화, 책, 디자인 등 여러 가지 일을 해도 하나의 색으로 묶이는 느낌을 추구해요. 라운지 혹은 스튜디오 형태로 핵심 키워드는 필름과 시네마토그래피입니다.


연출 데뷔작 <경복>(2012)은 영화적 뉘앙스로 인상이 강렬하게 남아 있어요.

<경복>을 촬영하던 2004년은 디지털과 필름이 공존하던 때였어요. 필름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던 시기죠. 당시에 DSLR로 찍은 영화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저는 영화는 실체가 없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아주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해왔어요. 영화적인 것 혹은 해석이나 정서, 온도가 남은 것 같아요. 

영화를 담는 도구가 필름에서 디지털로 바뀌었잖아요. 예를 들어 영화제가 ‘필름 페스티벌’인데 정작 필름은 없는 것처럼 어떤 변화로부터 고민이 시작됐어요. 그 와중에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파움스 서울을 열게 됐어요.

촬영할 때 항상 인지하는 건 ‘사람을 찍는 것’이에요. 하지만 현실을 모방하되, 재연하면 안 돼요.

무언가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해요.

2017년에 연남동에 영화도 상영하고 술도 파는 공간 ‘남국재견’을 열었는데 제가 술을 너무 많이 마시게 되더라고요.(웃음) 한 가지 분명한 건 예나 지금이나 영화랑 관련 없는 일은 10억 원을 줘도 안 해요.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거예요.


단순하고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아요. 이 공간을 구상할 때는 어땠나요.

이곳에 오시는 분들이 영화 유토피아로 느꼈으면 해요. 실제로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시는 분이 많이 오세요. 오시면 편하게 오래 머물다 돌아가시고요. 지금은 구할 수 없는 절판된 영화 책을 더 많이 갖추고, 쉽게 볼 수 없는 영화를 트는 상영회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어요.

영화를 스무 살에 처음 시작해 가끔은 싫어질 때도 있지만 제 주위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면 다시 좋아져요.
아마 제가 제 주위에서 영화를 가장 덜 좋아하는 사람일 거예요. 아무쪼록 여러분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셨으면 좋겠어요.

파움스 서울이 어떤 사람들과 이야기들로 채워지길 바라나요.

제가 오래된 건 좋아하고 낡은 건 싫어해요. ‘뉴웨이브’까진 아니더라도 작은 물결 정도라도 일으키고 싶어요. 앞으로 파움스 서울을 그동안 없던 형태의 분명한 색깔을 가진 회사로 키울 거예요. 계속 새로운 걸 추구하고 싶어요.


어떤 분야에서 앞서간 사람들을 보면 외롭겠다는 생각도 들어요.

오로지 혼자서 일을 제대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가야죠. 주위에서 종종 이런 말을 하면 전 항상 연대해야 한다고 해요. 때로는 희생이 따르기도 하지만요.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질문이 있나요?

‘수익 구조가 어떻게 되나?’ 수익은 주로 영상 제작을 통해 얻어요. ‘지금 알고 있는 것들을 어떻게 다 알고 있나?’ 그야 영화 일을 오래 했으니까 당연한 거죠. 영화를 스무 살에 처음 시작해 가끔은 싫어질 때도 있지만 제 주위 사람들이 영화를 좋아하면 다시 좋아져요. 아마 제가 제 주위에서 영화를 가장 덜 좋아하는 사람일 거예요. 아무쪼록 여러분도 좋아하는 일을 오래도록 하셨으면 좋겠어요.


파움스 서울의 책들은 큐레이션이 명확해서 좋아요.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책이 많고요.

대형 서점에도 영화 관련 도서가 ‘영화’ 카테고리 하나로만 묶여 있는 게 자존심에 걸리더라고요. 제가 추천한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에세이 사진집도 꼭 갖고 싶었는데 도무지 어디서도 실물로 볼 수 없더라고요. 이런 책들은 지인들끼리도 거래해요. 저도 모으면서 만족감을 느낍니다.

지난해 코로나19 인해 영화 시장에도 많은 변화가 찾아왔는데요.

단편영화 같은 경우 시장 자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영화제에 가면 관계자가 더 많아요. 상업 영화도 2020년 흥행작 10위권 커트라인이 관객 150만 명 정도인데 오히려 정상으로 보여요. 아무래도 자본을 많이 들인 곳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죠. 

국내 영화 시장에서 천만 관객은 과했던 것 같아요. 그동안 한쪽에 몰렸던 자본이 순환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당분간 영화는 사라질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는 오히려 나아질 것 같기도 해요.

2021년 이후의 계획이 궁금해요. 

영화의 형태가 바뀌더라도 온전하게 지키려고 노력할 거예요. 그리고 ‘영화적’인 걸 찾고 싶어요. 개인적인 목표는 예순 살이 되어도 영화를 연출하는 거예요.


글/ 정규환, 사진/ 재인

출처: http://www.bigissue2.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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