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미생·피겨 은퇴자·입양인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

조회수 2021. 02. 01. 16:3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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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The ABCs of Our Relationship, 2019)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 ⓒ (주)시네마달
독립 다큐멘터리 촬영감독 '박민규'(은해성)는 직업 특성상 수입이 불안정한 탓에 항상 생활고에 시달린다. 아르바이트와 독립 다큐멘터리를 병행한다고는 하지만, 월세도 밀리며 집주인의 독촉을 받는 상황에서 자신이 아끼던 카메라를 팔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상황에서 '민규'는 몸을 사리지 않는 다큐멘터리 감독 '상규'(장준휘)와 사실을 찾기 위해 포기하지 않는 다큐멘터리 감독 '태인'(김지나)을 통해 조금씩 성장해 나간다. '민규'는 실향민인 '앵두'(강애심)의 인터뷰 촬영을 진행하고, '태인'의 다음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태인'의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 중인 '해외입양 문제'로, '태인'은 자신의 뿌리를 찾기 위해 한국으로 온 프랑스 입양인 '주희'(이서윤)를 취재한다. 어린 시절 입양됐기에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주희'의 통역을 위해서 '앵두'의 손녀인 '한나'(오하늬)가 고용된다.

'한나'는 어린 시절 캐나다로 피겨 유학을 떠났고, 선수 생활을 하다가 은퇴하고 한국에 돌아오고 말았다.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채로 선수 생활을 강제 종료 당한 셈이라, 다소 우울한 나날을 보낸 '한나'는 다시 '민규'를 만나게 되면서, '민규'의 일상을 따라다닌다. 당돌하고 솔직한 성격의 '한나'는 '민규'가 하는 일에 점차 호기심을 갖는다.
한편, '주희'의 친생부모에 대한 유일한 단서는 어린 시절 아쿠아리움에서 찍힌 사진 한 장뿐이었다. '주희'는 자신을 '제3자'로 칭하면서, 아무런 정보를 제공할 수 없다는 입양 기관 담당자의 말에 막막함을 느낀다.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은 각자 '다른 출발점'에서 모인 세 명의 청춘이 한자리에 만나 관계를 맺으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간다는 내용을 담은 '극영화'다. '극영화'에 작은따옴표를 붙인 이유는 작품이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느낌을 진하게 받았기 때문.

영화는 부당 해고 이후 고공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 친부모의 뿌리를 찾고자 한국을 찾은 입양인, 6.25 전쟁 당시 남으로 피난을 내려와 70년이 넘게 북에 있는 가족을 그리워하는 실향민 등 한국 사회의 이슈들이 청춘들의 사연과 맞물려 펼쳐진다.

이는 다양한 작품의 단편 극영화와 독립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온 이인의 감독의 개인적 경험도 묻어나 있다. 영화 속 '민규'와 '상규'의 이야기는 이인의 감독이 겪었던 실제 사건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다큐멘터리를 작업하면서 노동자, 입양인, 실향민을 만났고, 그런 이슈를 통해 픽션을 만들어보자고 했다.
작품의 제목은 다소 의미심장하다. 흔히 관계라 하면 수직적인 갑과 을로 대변되겠지만, 영화는 수평적인 가나다(영어 제목은 ABC)를 선택했다. 이인의 감독은 "실향민 인터뷰를 하던 중에, 어떤 할머니께서 전쟁 이전 북에서 남편과 같이 살 때 남편이 한글을 가르쳐준 이야기를 들려줬다"라고 말했다.

"우리가 처음 한글을 배우는 것처럼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를 배우신 거였다"라면서, 이 감독은 "할머니는 그 기억을 평생 간직하면서 긴 세월을 버텨오셨고, 여전히 남편을 찾기 위해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라고 회상했다.

"이런 생각들을 하던 중 '한글에도 순서가 있듯이, 사람의 관계도 순서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라고 밝힌 이인의 감독은 "더불어 사회 이슈를 처음 알게 되는 세 사람이 서로를 처음 알게 되는 순간, 그리고 서로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의 첫 순간들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라고 영화의 제목을 정한 이유를 소개했다.

또한, '콜트콜텍' 노조의 이야기를 다룬 실화를 극화한 배경에 대해, 이인의 감독은 "당시 사진, 판화, 다큐멘터리, 연극, 음악까지 전 장르의 작업이 진행됐다"라면서, "그중 라이브카페 '빵'에서는 10년 넘게 콜트콜텍 수요문화제 공연이 진행됐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 감독은 "시위 현장은 소리치고 던지고, 피가 나는 것처럼 폭력적이거나 극단적일 거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라면서, "그런데 수요문화제 현장을 보면 뮤지션들이 나와서 노래를 한 뒤에 관객과 대화를 나눈다"라고 밝혔다.

"콜트콜텍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지 물어보고, 모른다고 하면 설명해 주면서 가볍게 관객들을 끌어들인다"라고 경험담을 소개한 그는 "투쟁이나 노동 이슈를 무겁지 않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래야 친숙하게 다가오고, 타자화시키지 않을 것 같았다. 같은 이슈를 가지고도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연출했다"라고 전했다.

그래서 영화 <관계의 가나다에 있는 우리는>에는 콜트콜텍 문화 투쟁 당시 고공농성 당시의 현장을 보고 만든 '한강 송전탑 위엔 사람이 살았어' 노래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민규'와 '상규'의 이야기와 상황을 더욱 잘 전달해 냈다.

또한, 이장혁, 에몬, 소히 등 인디음악 씬에서 주목을 받는 가수들이 참여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예를 들어, '상규'와 '민규'가 맥주를 마시며 푸념을 나눴던 공중캠프에서 이장혁 음악감독과 공연을 하던 뮤지션 에몬은 관계에 관한 이야기들을 음악으로 담아내며 관객에게 위로와 공감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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