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12월 31일, 현대 세계의 탄생

조회수 2021. 02. 01. 17: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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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세계를 발명한 전기와 내연기관의 정치경제사

1879년 12월 31일, 이날은 어떤 역사적 전쟁이 발발하거나 끝난 날도 아니었고, 위대한 정치인이 탄생하거나 죽은 날도 아니었다. 하지만 이날은 현대 시대를 열어젖힌 가장 중요한 날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대서양의 양편에서, 오늘날의 문명을 만들어갈 가장 중요한 두 발명품의 모습이 구체화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19세기, 산업혁명을 열어젖히고 과학의 최전선을 달리며 근대 국가 시스템을 고안한 나라는 단연코 영국이었다. 이 나라는 17세기 네덜란드와의 경쟁을, 18세기 프랑스와의 경쟁을 물리치고 당시 세계 혁신의 대동맥이던 북대서양 지역의 패권을 장악한 나라였다. 영국의 패권은 발전한 산업, 상업, 기술, 군사적 역량과 국가 시스템에 힘입은 덕이 컸는데, 영국의 패권은 다시금 각 분야에 있어서 영국의 우위를 공고히 하는 데 역할을 했다.

어떻게 서구가, 그리고 그 중에서 하필 영국이 떠오르게 되었는가에 대해서는 어림잡아 수백 권의 책으로도 모자랄 이야기니 생략하자. 다만 한창 패권을 누릴 당시 영국이 기대고 있던 기술적 우위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점검해볼 수 있다.

19세기 영국, 기술의 압도적 우위

사실 19세기 전반에 걸쳐 영국이 압도하고 있던 기술적 분야는 단순히 ‘제1차 산업혁명’이라는 말로 요약 가능할 것이다. 1차 산업혁명 당시 가장 중요했던 산업은 당시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던 의류 소비를 뒷받침해줄 방직업·방적업, 즉 면화산업이었다. 영국의 장인들은 놀랍도록 효율적인 의류 생산 기계를 만들어 자국의, 나아가 세계 각지의 면공업 장인들을 대체해나갔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CC BY SA 3.0
19세기 이전에 이미 영국의 발명가 제임스 하그리브스(1720~1778)는 1768년 ‘제니 방적기’를 발명한다. 사진은 제니 방적기의 모델 중 하나. 독일 박물관에 전시되고 있는 모습.

물론 그 정도로 효율적인 기계는 인간의 손으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전에는 쓸 수 없던 강렬한 동력이 필요했다. 처음에는 수력이, 그 다음에는 석탄으로 구동하는 증기기관이 각광받았다. 즉 영국은 증기 동력으로 운영되는 강력한 면직업을 통해 세계 경제를 거머쥐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끝으로, 석탄과 의류와 식량 등을 제국 각지로 운송시켜줄 새로운 교통 인프라까지 더할 필요가 있다. 바로 급속히 늘어난 철강 생산량의 결과물로 확장되기 시작한 영국의 방대한 철도 네트워크다. 철도의 부설은 석탄 생산을 촉진했고, 더 많은 동력은 더 많은 철과 기계, 면직물을 의미했다. 영국 시스템이 구축한 이 우위는 다른 어느 국가도 복제할 수 없던 것이었다.

출처: 미상
19세기 후반 블랙컨추리(Black Country) 지역을 묘사한 그림

후발주자, 독일과 미국

물론, 기존의 룰로 경쟁이 힘들다면 새로운 룰을 만들어서 해결하면 될 일이다. 그래서 영국의 경쟁 국가들은 그렇게 했다. 처음에는 물론 어설펐다. 일단 관세 장벽을 설치하고 막강한 영국 산업으로부터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만 했다. 그 뒤 영국이 주도하는 자유무역 질서 속에서 어떻게든 더 이익을 얻어내야 했다. 산업스파이를 통해 기술 도면을 빼돌리거나 영국 엔지니어를 좋은 대우를 통해 모셔와야 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산업혁명은 점차 유럽 대륙과 북미로 확산되었다.

일단 유럽 대륙과 북미 대륙으로 퍼져나가자, 산업혁명은 제각기 다양한 지역적 변형을 만들어내었다. 그리고 이들 국가는 후발국의 이점을 활용할 수 있었다. 영국이 해낸 시행착오는 최소화할 수 있었고, 대신 더 발전된 기술과 방법론을 도입해 자국 특색에 맞는 모델을 만들어나갔던 것이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국가들이 있었으니, 바로 대서양 양안의 독일과 미국이었다.

독립 이후 부침을 거듭하긴 했지만 꾸준히, 또 빠른 속도로 발전하던 미국은 국내의 인프라를 정비하면서 대륙을 하나의 시장으로 재편하며 발전 속도를 폭발적으로 끌어올렸다. 풍부한 노동력과 막대한 자연자원, 그리고 미국의 정신으로 일컬어질‘호환 가능한 부품을 신봉하는 효율적 산업 자본가들이 맞물려 각종 산업 생산물이 크게 증대되었다.

무엇보다 산업혁명으로 도입된 기술이 북미 대륙의 잠재력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주는 동인이었다. 내륙 수운을 용이하게 해준 증기선과 육지의 거리를 없애준 철도가 도입되면서, 중서부의 평원이 곡창지대로 변했고 닿지 않을 것 같은 캘리포니아의 태평양이 지근거리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한 번 그 광대한 개척지에 농장과 공장이 들어서자 그 기세는 멈출 줄을 몰랐던 것이다.

출처: 위키미디어 공용
1908년 미국 공장의 아동 노동자

유럽 국제 정치의 피비린내 나는 무대였던 독일도 빠르게 산업을 진흥시켰다. 독일은 영국과 같은 제국도, 미국과 같은 개척지도 없었지만, 그들에게는 강력한 인적자원이 있었다. 프로이센은 군대와 교육을 접목시킴으로써, 국민을 교육에 대규모로 ‘동원’한 국가 중 가장 성공적인 성취를 보여주었다. 동유럽에 산개해있는 수많은 도시들의 식자층들이 쓰는 언어가 독일어인 것도 중요한 부분이었다.

화학을 비롯한 각종 과학, 기계류 개발을 비롯한 공학 면에서 독일은 다른 국가들을 제치고 선도적 역량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런 기술적 우위가 독일의 강력한 기업조직 방식과 결합되자 독일 산업도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였다. 특히 유관 업체들을 대규모 기업집단의 이름 아래에 묶고, 화이트칼라 관리직들의 지도 아래에 가장 효율적 방식으로 규모의 경제를 추구하는 데 있어서 독일의 콘체른(Konzern: 법적으로는 독립돼 있지만, 경제적으로는 통일된 지배를 받는 기업 집단. ‘위키백과’)들은 유난히 탁월하였다.

출처: 폭스바겐, 도이치방크, 지멘스
폭스바겐, 도이치방크, 지멘스 등 독일의 대표기업들의 기업 형태가 바로 ‘콘체른’이다.

1879년 12월 31일, 현대 세계의 탄생

따라서 1879년 12월 31일의 두 발명품이 이 두 국가에서 출현한 건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하겠다. 먼저 미국에서는,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멘로파크에서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백열전구를 대중들 앞에서 시연한 일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빛이 어둠을 몰아낸 그 순간을 기억했다.

대서양 반대편의 독일에서는 그보다 조금 조용했지만 역사적 의미는 결코 뒤지지 않을 다른 발명이 있었다. 독일의 기술자 카를 벤츠가 1년여 동안 매진하던 2행정기관 개발이 마침내 완료된 것이다. 그는 이 발명을 발전시켜 곧이어 최초의 상업적으로 의미 있는 자동차를 만들게 될 것이었다.

출처: 미상
1879년 12월 31일 에디슨은 상업적으로 의미가 있는 백열전구를 처음 시연했다. 그리고 같은 날 카를 벤츠는 오토와 다임러, 마이바흐의 엔진을 참조하여 독자적인 2행정 기관을 발명하여 특허를 획득했다. 벤츠는 이 기술을 보완해 자신만의 독자적인 4행정 기관을 발명했고, 이를 적용한 최초의 자동차(1886)를 생산했다.

20세기 역사를 규정지을 가장 중요한 두 기술인 전기와 내연기관이 정확히 같은 날에 중요한 변곡점을 통과했다는 것은 상당히 재밌는 우연이라 하겠다.

물론 이 두 발명품은 무에서 창조된 것은 아니었고, 에디슨이나 벤츠도 절대 개념과 시제품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 둘은 없던 개념을 창조해내는 공상가 타입보다는 상업적으로, 기술적으로 의미 있는 양산을 고려하였던 실용적 엔지니어이자 기업가들이었다. 따라서 당대 영국과 프랑스 같은 19세기 초반의 선도국들에서 발전하던 기술적 개념들을, 당대 폭발적 기세로 뻗어나가던 미국과 독일이라는 공간에서 만개시킨 것에 가까웠다. 마치 그 두 국가 선도한 ‘2차 산업혁명’의 전반적 모습이 그러했듯 말이다.

전기와 내연기관, 세계를 혁명하다

어찌되었든, 1880년이 되었다고 그 즉시 신세계가 펼쳐진 것은 아니지만, 전기와 내연기관은 서로 손을 맞잡고 세계를 혁명적으로 바꾸어나갔다. 먼저 전기는, 기름이나 가스등에 의지하여 빛을 밝히던 도시에서 어둠을 몰아냈고 인류의 시간 활용 양상을 완전히 바꾸었다. 백열전구가 처음에 의도했던 바였다.

하지만 전기의 함의는 이보다 훨씬 큰 것으로 드러났다. 전기의 장점은 그 무궁무진한 활용력에 있었다. 전기는 생각지도 못했던 정보 전달이나 가사 노동 같은 분야에서도 대혁명을 주도했다. 그 결과 정치인이 대중과 관계 맺는 방식이 바뀌고 여성이 일터와 가정에서 살아가는 모습도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 전기가 가능하게 해준 다른 기술인 엘리베이터는 20여년 전에 개발된 철근 콘크리트와 결합하여,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하늘을 찌르는’ 마천루를 상용화시켰다. 이처럼 현대 문명은 그야말로 전기 문명이라고 하겠다.

이 같은 변화만큼 중요했던 것은 또 경제의 주요 기관차인 제조업 공장의 동력원이 바뀌었다는 데 있었다. 증기기관 시대에 비교해서 훨씬 안전하고 깔끔해진 전기모터 공장은 노동자들의 작업조건을 크게 개선시켜주었다. 전기 기계 사용에 대한 숙련이 중요해지고, 전기를 통해 대형화된 공간에 모인 노동자들이 협상력을 발휘함으로써, 중간 숙련으로 고임금을 누릴 수 있는 대규모 인구집단이 탄생했다. 이는 제1차 산업혁명 당시 영국과 세계에서 막대한 빈곤층, ‘산업 프롤레타리아’들이 양산된 것에 비하면 천지차이인 일이었다.

출처: 미상
전기의 상용화는 제조업 공장의 동력원을 ‘전기모터’로 교체했고, 숙련된 고임금 노동자의 탄생을 가져왔다.

‘모타운 클러스터’

반면 그 성격상 내연기관은 전기처럼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운송수단의 주요 동력원으로 채택되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 다른 모든 걸 제치는 강력함을 보여줬다. 내연기관이 장착된 자동차는 그간 인력이나 축력에 의존하였던 인간의 이동 방식을 급속도로 바꾸어놓았다.

물론 그 이전 증기기관이 증기선과 철도를 통해서 ‘공간을 제거함으로써’ 근대의 이동 양식을 먼저 보여준 바가 있었다. 하지만 내연기관 이전의 교통은 여전히 과거 시대와 단절하지 못하고 있었다. 철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철도를 탈 수 있는 곳으로 가려면 여전히 소와 말, 인간의 발 따위에 의존해야했다. 당대 유럽의 도시 안에서는 말들이 끄는 마차들이 워낙 많아 분변에 사람들이 질식할 지경이었다.

출처: 미상
1912년 시내 외각에 쌓여진 말똥 무덤

그러나 내연기관의 단순하지만 강력한 힘이 도래하자 비로소 이 모든 것들이 바뀌었다. 철도보다 훨씬 유용하게, 더 개별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 내연기관 자동차는 인간이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전부 뒤집어놓았다. 드넓은 교외지역이 택지로 개발되었다. 놀라운 효율을 보여주는 트랙터는 기존 가축이나 인간이 하던 일을 강력한 엔진의 힘으로 대체하여 훨씬 적은 인력으로 훨씬 넓은 경지를 경작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이로써 농업에서 해방된(혹은 퇴출된) 노동력들은 도시로 끊임없이 유입되어 전기 모터로 구동되는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서야만 했다.

얄궂게도 많은 이들이 그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만든 물품은 자동차였다. 자동차는 제조업의 꽃으로서, 무수한 부품을 연계하고 통합하면서 엄청난 고용을 창출하는 산업이었다. 또한 도시화와 교육 확대, 높아진 임금 등이 맞물리면서 탄생한 중산층 핵가족에게 자동차와 자동차를 타고 떠나는 여름 휴가는 점차 삶의 필수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그 결과 자동차 수요가 급증하였고, 자동차 공장은 더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게 되었다.

포드 컨베이너 벨트 조립라인 (1913년)

이처럼 전기와 내연기관이라는 두 기술 혁신은 생각지도 못한 파급효과를 만들어냈고, 그 파급효과끼리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효과는 더욱 크게 증폭되게 되었다. 서로 의존하는 이 기술과 제도, 문화의 클러스터를 몇몇 역사가들은 ‘모타운 클러스터’라고 한다. 전성기 세계 최대의 자동차 생산지였던 모타운, 디트로이트로 상징되는 기술 체제가 등장한 것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현대가 시작된 ‘단 하루’를 꼽는다면 그 날짜는 마땅히 위대한 기술 혁신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1879년 12월 31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전기와 내연기관이 만들어낸 세계는 숱한 도전을 겪어야 했고, 뒤이어 등장할 시대에 자리를 내주는 자연스러운 운명을 맞이해야 했다. 따라서 1879년 이래로 모타운 클러스터의 흥망성쇠야말로 지난 140년의 현대 세계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1차 세계대전과 산업혁명의 ‘적통’

또 재밌는 숫자의 장난이 있다. 1879년 이래로 정확히 100년이 지난 1979년, 미국의 제조업 고용 인구는 고점을 찍고 하락하기 시작한다. 실제로 전기와 내연기관은 여전히 우리 문명의 골간이지만, 작금의 기술을 선도하는 그런 위상은 이제 전혀 없다. 다시 말해, 새로이 최전선에 놓여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기술에게 어느 시점에선가 왕좌를 이미 넘겨줬다는 말이 되겠다.

그럼 지난 4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 때문에, 모타운 클러스터는 다른 기술 클러스터에게 자리를 넘겨주게 된 것일까? 어떤 기술 클러스터가 지금의 사회를 조성해온 것일까? 사실 이런 질문은 오늘날의 문제와 앞으로 마주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일단 오늘은 전기와 내연기관이 만들어낸 모타운 클러스터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미국과 독일에서 각각 이 시대를 상징하는 발명품을 만들어낼 정도로, 두 국가는 당대 산업과 과학을 선도하는 국가들이었다. 미국은 포드를 통해 내연기관을 갖추었고 독일은 지멘스를 통해 전기를 갖추며 서로 다르면서도 유사한 산업, 경제 혁명을 전개하였다. 따라서 지금까지 이야기만 보면 영국이 점점 노쇠한 사자라는 것이 드러나게 되자 이 늙은 패권국의 빈자리를 누가 계승하는지를 두고 미국과 독일이 첨예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 자연스럽다. 한 손에는 전기를, 다른 한 손에는 내연기관을 들고서 말이다.

실제 역사도 그처럼 전개되는 것처럼 보였다. 제1차 세계대전 전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경제는 미국 경제가 되었고, 독일이 그 뒤를 따라붙으면서 영국은 3위로 전락하게 된다. 전쟁은 기존 패권국이 물러가는 틈을 타 더 공격적으로 나오는 신흥국 독일을 누르고자 다른 모든 국가가 연합하는 모양새를 띠었다. 미국도 그 연합국에 포함되었고 말이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인간의 기계문명이 최초로 자신에 대한 전 지구적 대량 살상을 가져온 첫 번째 체험, 제1차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총력전’이었다.

하지만 독일은 패배했음에도 모든 국가를 전율하게 할 놀라운 산업 조직력, 군사 동원체제를 보여주었다. 이는 당분간 20세기의 패권 경쟁을 계속해서 독일이 주도하게 되리라는 예고편이나 다름 없었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더이상 국제적 대응 능력을 상실한 영국은 이제 조연으로 전락하고,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누가 2차 산업혁명의 적자인지’를 두고 투쟁하게 되리라.

여기까지도 맞았다. 독일과 미국 사이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이름으로 모종의 투쟁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혀 다른 경과와 결과를 가져오긴 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과 미국의 투쟁은 전쟁의 주된 이야기조차 아니었다. 독일은 예상치 못했던 전혀 다른 국가에 발이 묶였고, 그 국가와 2차 산업혁명에 누가 더 잘 적응했는지를 두고 싸우다가 모든 국력을 소진해버렸다. 따라서 미국이 독일에게서 승리하긴 했어도, 2차 산업혁명의 완전한 적자임을 보여주었다고 선언할 수는 없었다.

러시아의 등장, 그 미스터리

그 대신 독일의 자리를 앗아간 전혀 다른 나라가 등장해서 이제 자신들이 창조해낸 모델이 새로운 시대의 표준이 될 것이라고 자신있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바로 제1차 세계대전에서 산산조각 나서 파괴된, 그래서 경쟁에서 탈락했다고 생각된 러시아가 그 주인공이었다.

1879년 12월 31일 시작된 전기와 내연기관 시대의 투쟁사는 그런 이유로 1945년 5월 9일(‘2차 대전 유럽 전승 기념일’)을 기점으로 미국과 독일의 전반전을 마무리하고 미국과 소련의 후반전으로 접어들게 된다.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소비에트 러시아는 카를 벤츠의 내연기관과 지멘스의 전기, 바스프의 화학비료를 갖춘 독일을 물리칠 수 있었을까? 프랑스 자본과 독일 엔지니어에 의존하던 러시아 제국은, 그마저도 산산조각난 잔해를 붙들고서 어떻게 단기간에 그런 놀라운 대 추격을 이루어낼 수 있던 것일까?

이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1879년으로 다시 돌아갈 필요가 있다. 1879년 러시아 제국에서 주목해야 했던 것은 많다. 수도 페트로그라드 근교의 공장과 과학 연구에 매진하는 교육받은 엘리트는 이 나라의 산업적 잠재력을 보여준다. 동쪽으로 투르케스탄을 남하하여 뻗어나가는 철도망도 미국과 같은 ‘아대륙 제국’으로서 러시아의 군사적, 경제적 위용이 어디까지 확대될 수 있을지를 미리 보여준다.

하지만 러시아의 기술적 변천은 이런 것들로 설명될 수 없다. 기술관료와 엔지니어들의 질과 양은 독일이 훨씬 앞서 있었고, 아대륙 제국으로서 지리적 이점은 거미줄처럼 뻗은 수계망과 위협이 될만한 국가가 없는 지정학적 환경, 국토에 더 넓게 펼쳐져 있는 풍요로운 기후대 등 무엇으로 보아도 미국이 유리했다. 러시아의 비밀을 풀기 위해서는 따라서 전혀 다른 곳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사실 그 비밀의 해답이 있는 곳은 엄밀히는 러시아도 아니었다. 제국 남쪽의 그루지야라는 지역, 고리라는 작은 마을에 그 비밀이 있었다. 이 마을에는 이오시프 주가시빌리라는 한살배기 아이가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 소소라는 아명으로 자주 불렸었고, 후에 동료들 사이에서는 코바라는 이름으로도 유명했다. 물론 우리에게 훨씬 유명한 그의 진짜 이름은 바로 강철의 사나이, ‘스탈린’이라는 이름이다.

출처: 미상
스탈린(1879-1953)은 코카서스 3국 중 하나인 조지아의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공식 기록 상 그는 1878년에 태어났다고 되어 있다. 반면 그는 자신이 1879년에 태어났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1949년, 소련이 미국의 뒤를 이어 발전소와 전력망, 자동차 공장과 거대한 석유 산업뿐만 아니라 우라늄에서 핵 연쇄반응을 끌어내 막대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마법까지 부릴 수 있게 된 그 해, 그의 ’70주년 생일 축하식’이 성대하게 거행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뭐, 사실 그가 태어난 게 1878년인지 1879년인지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그가 그와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두 기술, 전기와 내연기관을 각각 한 손에 들고서 지구 육지의 6분의 1의 운명을 전적으로 바꾸어냈다는 사실이다. 그 무렵은 진정으로 세계 역사가 뒤흔들리고 있던 때였다.

(계속… 언제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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