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과연 '완벽한 일기장'일까 '지옥의 감시자'일까?

조회수 2021. 2. 10.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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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활동하는 다양한 메타버스* 에는 우리가 인지하고 있지 못하는 순간에도 우리 삶에 관한 기록이 나날이 쌓이고 있다. 그런 기록에는 양 날의 검과 같은 속성이 있다. 이번 글에서는 그 '양 날'을 살펴보겠다.

*메타버스(metaverse)는 meta에 세상을 뜻하는 universe의 verse를 붙인 말이다. 현실을 초월한 세상, 새로운 가상 세상 정도를 의미한다. 

완벽한 일기장

미국인 영어 교사 로버트 실드(Robert Shields)는 1972년부터 1997년까지 자신의 25년 삶을 5분 간격으로 기록했다. 그가 기록한 텍스트의 분량은 대략 3700만 단어 정도인데, 책으로 보면 수백 권은 되는 분량이다. 5분 단위로 자신의 삶을 기록하려면, 자기 삶의 내용을 '편집해서 기록하기'는 거의 불가능했으리라 짐작한다.

출처: 스토리콥스
로버트 실드(1918-2007)가 생전에 썼던 일기장 이미지

로버트 실드처럼 자기 삶을 꼼꼼히 기록했다면, ‘내가 그날 뭐 했더라?’ 같은 궁금증을 쉽게 풀거나, 범죄 사건에 연루된 경우 알리바이 증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한 나를 돕는 디지털 휴먼(인공지능)에게 나를 더 깊게 이해하도록 학습시키는 목적으로도 쓸모가 있다.

출처: 핀터레스트, 필자 제공
로버트 실드

스페인 그라나다 대학 연구팀(David Griol Barres외 3명)은 메타버스에서 디지털 휴먼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대화 상대의 신상정보를 활용하였고, 결과적으로 대화에 관한 만족도 평가가 높게 나타났다. 물론 이 연구에서 사용한 정보는 로버트 쉴드가 만든 수준의 엄청난 기록물은 아니지만, 제공하는 정보의 규모가 커질수록 디지털 휴먼은 마치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오래된 친구처럼 나를 대할 테다.

이런 기록물은 사회적 차원에서도 쓸모가 있다. 상황 판단력이나 소통력이 미숙한 아이들의 경우 그들의 정보를 상세하게 기록해두면 유괴, 학대 등의 범죄가 발생할 경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복잡한 법률적 분쟁이 발생한 경우에도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지옥의 감시자

2018년, IEEE Technology and Society Magazine에 벤 팰척 연구팀은 흥미로운 논문을 발표했다. 페이스북 스페이스, 알트스페이스 VR, 하이 피델리티 등과 같은 가상 세계 메타버스에서 내 아바타를 누군가가 모니터링하여 내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연구팀은 사용자의 프라이버시를 개인정보(의료, 경제, 문화, 사회적 정보들), 행동(습관, 행위, 선택 등), 커뮤니케이션(개인이 소통할 때 내놓는 말과 정보들)의 세 가지로 나눠서 설명한다. 타인이 조정하는 아바타나 프로그래밍 된 '에이전트' 형태의 아바타가 나를 감시하면서 정보를 수집하고 내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 필자 주) 벤 팰척 연구팀의 논문에는 이에 관한 대응책도 제시하고 있으니, 관심있는 독자들은 찾아보기 바란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벤 팰척 연구팀이 제시한 내용은 사진, 텍스트 위주의 소셜미디어에서 이미 나타나고 있는 문제들이다.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에 게시한 개인 정보를 누군가가 장기간 수집하고 분석하여, 마케팅이나 범죄에 악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디지털 환경에서 작동하는 메타버스는 이런 형태의 불법적 정보 수집, 분석, 악용에 취약한 구조다. 동의 받지 않은 채 개인정보, 행동, 커뮤니케이션 기록을 수집하고, 수집에 동의했더라도 분석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는 경우가 흔하다. 분석한 결과를 동의한 목적과 맞지 않게 사용하기도 한다.

메타버스가 제공하는 완벽한 일기장의 장점을 잘 활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한층 더 공정(법적 분쟁 해결)하고 안전(범죄 예방 및 대응)해질 것이다. 반면 '지옥의 감시자'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사생활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 '빅 브라더'의 이익을 위해 개인의 삶이 유린당하는 무서운 세상이 될 것이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완벽한 기억 vs. 희미한 추억

프레드릭 바틀렛은 실험을 통해 인간은 기억을 '복원'하지 않고, 재생산 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1932년 미국 원주민의 이야기를 담은 ‘유령 전쟁’이라는 글을 영국인들에게 읽게 하고, 일정 기간 후 줄거리를 말해 보라고 했다. 피실험자들은 회상할 때마다 내용을 조금씩 바꿔서 말했다. 예를 들어 이야기의 내용 중 피실험자들은 낯선 바다표범 사냥을 낚시로 바꿨고, 카누를 보트로 바꾸어 이야기했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지식의 틀에 맞춰 기억을 왜곡한다.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틀에 맞춰 기억을 미묘하게 바꾼다.

‘왜곡’이라는 단어가 이런 상황을 나쁘게만 인식시킬 수 있으나, 어쩌면 그런 왜곡이 쌓인 게 우리가 가진 추억의 일부이기는 하다. 있었던 일 중 일부는 잊고, 일부는 그대로 기억하고, 일부는 조금 왜곡해서 간직한 결과가 바로 우리의 추억이다.

메타버스는 우리의 추억을 더 아름답게 해줄까? 아니면 추억이 가진 희미한 따스함에 찬물을 끼얹을까? 필자의 부족한 지식과 경험으로 결론을 내기가 어렵다. 이에 관해서는 독자들께 의견을 구해보며 이번 글을 마친다.


편집자 주) 독자여러분 안녕하세요, 인터비즈입니다. 지난해 12월 8일부터 연재한 ‘김상균의 뜨는 것들의 세상’은 2월 한 달 간 잠시 휴식한 뒤 3월엔 더 풍부하고 깊이 있는 콘텐츠로 여러분을 찾아갈 예정입니다.

이와 관련해 김 교수가 저희 인터비즈 독자분들을 위해 보내주신 메시지를 아래와 같이 공유합니다.

안녕하세요, 10회에 걸쳐 메타버스를 주제로 주간 연재를 진행한 인지과학자 김상균입니다. 제 식견, 소통력이 부족해 독자분들에게 더 좋은 글을 전해드리지 못한 점 아쉽습니다.

저는 잠시 휴재 기간을 가지며, 제 지식과 생각을 채워서 좀 더 좋은 글로 연재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그동안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고, 다양한 의견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필자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전공 교수

-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자문교수
- 삼성인력개발원 자문교수
-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 자문교수
- 저서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가르치지 말고 플레이하라> <기억거래소>
인터비즈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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