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이것'만 성공했어도 제2차 세계대전은..

조회수 2021. 02. 12. 17: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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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뒤바꾼 결정적인 사건 2
열쇠가 없어서 가라앉은 타이타닉

1912년 첫 항해에 나선 타이타닉 호가 침몰했다.

침몰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설계상의 결함으로 꼽힌다.

타이타닉은 선체가 연철로 만들어졌다.

문제는 연철이 낮은 온도에서 잘 부서진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타이타닉은 구부러지는 그 지점에서 두 동강이 났다.

한편 타이타닉이 빙산을 우회하지 않고 살짝 비껴가기로 한 이유에 대해 의문이 많았다.

이는 생존 승무원 중 한 사람의 증언에 의해 밝혀졌다.

감시원이었던 프레드 플리트는 배에 쌍안경이 없어서 맨눈으로 바다를 살펴야 했다고 증언했다.

과연 그 말은 사실이었을까?


아니다, 쌍안경은 있었다.

다만 자물쇠가 채워진 보관함에 얌전히 들어 있었다.

그런데 열쇠가 없어서 보관함을 열지 못했다.

본래 타이타닉에 승선할 예정이던 일등 항해사가 보관함 열쇠를 가지고 있었는데 항해사가 교체되면서 후임 항해사에게 열쇠를 인계하지 않았던 것이다.


보관함을 깨부수고 쌍안경을 꺼냈으면 됐을 텐데, 누구도 그렇게 할 만큼 신경을 쓰지 않았다.


‘쌍안경이 없으면 어때?

어차피 우리 배는 가라앉지 않을 텐데.’

결국 열쇠 하나가 없어서 타이타닉은 가라앉았다.

그리고 잃어버린 보관함 열쇠는

2014년에 경매에 매물로 나와 팔렸다.


그림을 팔지 못해 독재자가 된 히틀러

10대 청소년 시절 히틀러의 최대 관심사는 그림이었다.

1903년, 누군가 자신의 재능을 알아봐 주길 바라며 히틀러는 빈으로 갔다.


그는 빈 미술학교에 진학해서 부족한 실력을 다듬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입학시험에서 낙제하면서 꿈은 좌절되었다.

그 이후, 그는 반유대주의 노선의 기독사회당에 흠뻑 빠졌고 당원으로 입당했다.

그러다 제1차 세계대전이 터지자 군에 자원입대했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났을 때, 미술학도를 꿈꾸던 히틀러는 약간 냉소적인 청년이 되어 있었다.

출처: Bundesarchiv, Bild 102-10460 / Hoffmann, Heinrich

이후 히틀러는 독일노동자당에 입당했고, 베르사유조약을 규탄하는 연설을 수십 차례 하는 동안 군중을 선동하는 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다.


한번은 5만 명 이상 군중 앞에서 연설하면서 자신과 독일노동자당 동지들이 추구하던 운동에 새로운 이름을 부여했다.

바로 나치당이었다.

‘빈 미술학교가 그를 입학시켜주었더라면?’

‘젊은 히틀러가 그림 한 점을 팔 수 있었더라면?’


그의 손에서 희생된 1,200만 명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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