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무대에서 판소리 전공자들이 뜨는 이유는.."

조회수 2021. 02. 15. 11: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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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기 있는 TV 예능 프로그램 다수가 트롯 경연대회다. 한때 트롯 가요가 일본 대중가요인 ‘엔카’에서 왔다는 인식이 많았다. 그럼에도 트롯은 우리 민족의 한과 신명을 결합해 독특한 한국적 장르로 재탄생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국악 전공자들이 트롯을 그렇게까지 멋들어지게 불러 젖힐 수 있을까. 


이쯤에서 궁금해지는 건 그럼 트롯·엔카·민요·판소리의 매력이 어떻게 같고, 다를까 하는 점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임에도 우리가 잊고 있는 판소리는 언제나 잠에서 깨어날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심청가’ 이수자 오지윤 명창을 찾아갔다.오 명창은 몇 년 전 ‘판페라(판소리+오페라)’ 장르를 만들어 판소리의 현대화, 세계화를 부르짖었던 이다.

오지윤 명창은 판소리의 대중화, 세계화를 위해 오페라 양식을 도입한 ‘판페라’를 처음 시도했다.[지호영 기자]

-트롯 오디션에서 관객을 휘어잡는 이들 다수가 국악 전공 출신들이라 놀랐습니다. 그 이유를 어떻게 보시는지요?


“국악 전공자들이 그만큼 실력이 있다는 걸 증명하는 건데요. 이들은 대개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기 때문에 노래 실력을 쌓을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점도 있어요. 국악 전공자들이 트롯 오디션에 나가는 것은 우리나라에 국악 전공자들이 설 무대가 그만큼 없기 때문이기도 하거든요.”


-트롯은 인기가 있는데, 판소리는 왜 인기가 없을까요?


“19세기의 가왕은 소리꾼이었지만, 20세기 가왕은 이미자와 조용필이라는 건 누구나 인정하는 거잖아요. 어떤 것이든 그 정체성이나 본질에서 벗어나면 원래의 것이 퇴색된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라는 장르는 원래 인간 삶의 본성을 그대로 녹여냈어요. 생로병사(태어남 늙어감 병듦 죽음) 희로애락애오욕(기쁨 노여움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의 본질을 다 담아내는 것이 판소리였어요. 판소리가 탄생될 때는 서민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예술적 풍부함도 넘쳐났지요. 그런데 일제 강점기에 판소리가 권력자들의 ‘안방’으로 들어갔어요. 우리 민중의 애환과 함께 했던 판소리가 서민들보다 여유 있는 사람들의 여흥을 북돋워주는 민요처럼 된 겁니다. 그러면서 판소리의 즉흥성이 많이 줄어들었어요.”


-판소리 전통을 이어온 선배 세대는 이 소리를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이건 매우 아픈 이야기이지만, 판소리의 미래를 위해서도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이건 선배 세대의 탓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불운 탓이었어요. 문화와 예술도 시대적 흐름과 같이 가는 거지, 분리해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과거에는 한동안 판소리가 권력의 입맛에 맞는 예술로 끌려갔다면, 이제는 민주주의 시대이고 민이 주인이 됐으므로 그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봅니다.”


-판소리의 민주화라는 게 결국 많은 사람이 즐기는 장르가 돼야 한다는 건가요?


“지난해 이날치밴드의 ‘범 내려온다’가 큰 인기를 모았잖아요.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판소리를 공부했던 트롯가수 송가인도 크게 기여했고요. 그렇게 관심을 끌어서 진짜 판소리에 대한 관심으로 연결되면 좋겠습니다.”


-판소리가 트롯·K-팝의 원류라고 생각하시는지요?


“판소리는 음악적 깊이가 그만큼 있고, 오랫동안 우리 민족이 즐겨왔기 때문에 요즘 인기 있는 트롯이나 K-팝의 자양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서로 분명히 다른 장르들이지만, 가수들의 DNA에 그런 민족 음악성이 담겨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겠지요.”

“트롯·판소리 인기 비결은 음(陰)의 소리”

-판소리와 민요, 트롯, 엔카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뭔가요?


“역사적 탄생 배경이나 추구하는 가치가 서로 다른 장르들이지만 발성적인 측면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됩니다. 음악적 발성에도 어떤 원리와 구조가 있어요. 그런 측면에서 비슷한 점을 찾는다면 민요와 트롯이 비슷하고, 판소리와 엔카가 아주 유사합니다. 조금 놀라운 이야기일 텐데요. 우리가 일본음악이라고 조금 경시하는 엔카에도 판소리처럼 매우 깊은 예술적 경지가 있어요.”


-판소리와 엔카의 유사성을 어떤 점에서 찾았습니까?


“저는 음악적 발성을 양(陽)의 소리와 음(陰)의 소리로 구분하고 있는데요. 판소리와 엔카는 이 음의 소리가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양의 소리, 음의 소리가 무슨 뜻인가요?


“세상의 다른 이치도 그렇듯 소리에도 음양이 있다고 생각해요. 양의 소리는 관념적 발성이라고 해서 서양식 벨칸토창법에서 나오는데, 복식호흡으로 나옵니다. 일반적으로 ‘샤우팅’해서 크게 소리 내어 부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의 소리는 매우 깊은 소리로 동양적 정신과 신비가 담겨 있어요. 이것은 배꼽 밑 단전에서 나오는 사실적 발성입니다. 음의 소리를 낼줄 알아야 판소리의 다양한 소리를 표현해낼 수 있습니다. 심청, 뺑덕어멈, 심봉사, 춘향이 등 다양한 인물을 양의 소리로만 질러대면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해요.”



기자가 “음의 소리가 뭔지 실제로 들려달라”고 하자 오 명창은 ‘심청가’ 앞부분과 ‘동백 아가씨’를 몇 소절 들려주면서 음의 소리가 무엇인지 구분할 수 있게 했다. 이날 오 명창은 “목소리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며 시연하는 것을 걱정했지만, 그 차이를 파악하는 데는 충분했다.

‘판페라’ 공연 재개, 카네기홀 판소리 공연 추진

-판소리와 오페라를 합친 ‘판페라’를 만들어 국악 세계화를 부르짖었는데, 계기는 무엇이었는지요?

“젊어서 제 뜻을 펼칠 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아 답답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판페라’의 가능성을 봤습니다. 소프라노 친구 김희정의 어머니 칠순잔치에 가서 같이 ‘새타령’을 불렀어요. 제가 1절을 국악식으로 부르고, 친구가 성악식으로 2절을 불렀는데 관객 반응이 대단했어요. 그래서 ‘오, 이거다’ 하고 무릎을 쳤지요. 판소리를 이렇게 크로스오버(융합)해서 대중에게 내놓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 수 있을 것이고, 그 뒤에 진짜 오지윤의 소리를 들려주자고 생각했습니다. 오페라 양식을 빌려서 서곡도 만들고 판소리에서 주요 대목을 5, 6분 떼어서 오페라나 가곡처럼 보여줄 생각을 한 거지요.”

오 명창은 2008년 ‘판페라’를 위해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섞은 오케스트라 아리랑을 만들고 단장을 맡았다.

“오케스트라단을 몇 년 유지했는데, 저 혼자 1인 10역을 하며 끌어가는 게 매우 어려웠어요. 더욱이 제 본연의 정체성인 소리꾼 모습을 잃게 돼 혼란스러워져 중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면서 방황도 하고,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러면서 다시 소리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은 전화위복이 됐어요. 올해 5월의 ‘갈라 콘서트’를 계기로 다시 판페라 장르를 활성화하고, 완성도를 높여서 국가 브랜드로까지 가져갈 계획입니다.”


오 명창은 5월 8일 고양어울림극장에서 판페라와 팝을 섞은 콘서트 ‘효, 심의 소리 심청’을 공연할 계획이다. 10월엔 미국 카네기홀에서 심청가 공연을 추진중이다. 국내에서는 판페라로 판소리에 대한 관심을 끌고, 세계무대에서는 고수와 둘이서 공연하는 판소리 원형을 보여줄 계획이다.


“신은 자신이 하는 일에 삶을 오로지 다 바쳐야 영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소리 연습을 하면서 그것을 더욱 절실히 깨달았어요. 더 노력해서 판소리의 대중화, 세계화에 기여하고 싶습니다.”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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