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대박날지 모르고 영화판 떠난 남자, 뜻밖의 현재 모습

조회수 2021. 02. 22. 15:4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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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V 파장으로 세균 파괴하는 가정용 살균기기

영화 스태프하다 파라과이 다녀와 창업

온라인몰 10만개 판매 돌파


성공한 사업가 상당수가 ‘진정성’을 강조한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진정성을 어떻게 보여줬는지 물으면 제대로 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영화계에 있다가 가정용 살균기기 제조 스타트업 ‘퓨어리브’를 창업해, 열과 성을 다해 단기간에 성장했다는 정수관 대표를 만나 사업가의 진정성이 뭔지 물었다.


◇영화계 있다가 무작정 파라과이행

출처: 퓨어리브
퓨어리브 정수관 대표


퓨어리브는 가정에서 편하게 쓸 수 있는 자외선 살균 제품을 만든다. 살균빔 클리너, 포켓 살균밤, 칫솔 살균기 등 제품이다. UV 파장이 세균을 파괴하는 원리를 활용했다. 10~30분이면 현관, 욕실, 주방, 옷장 등 내가 원하는 공간을 살균시킬 수 있다.


코로나 팬데믹 국면과 맞물려 대박이 났다. 대유행이 있던 작년 8~9월, 12월 온라인몰에서 두 차례 주문량이 폭증했다. “깨끗한 생활공간에 대한 수요가 급증한 덕인 것 같습니다.”


왕년에 ‘예술 청년’이었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고 졸업 후 영화를 만드는 회사에 들어갔습니다. 영화 후(後)보정 컬러리스트로 일했죠. 신과 함께, 범죄도시, 버닝, 기생충 등 유명 영화에 참여했습니다. 제 비중이 크지는 아니었지만 즐겁게 일했습니다.”

출처: 퓨어리브
욕실, 침실 등에 적용된 살균빔 클리너


2년 일하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갈망이 솟구쳤다. “30년 일산 토박이입니다. 한 지역에서만 오래 살다 보니, 새로운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부족하다고 느꼈습니다. 저 자신을 낯선 곳에 던져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왕 떠나는 거 지구 반대편에 가기로 했습니다.”


미련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무작정 남미 파라과이로 떠났다. “사표낸 게 기생충 개봉 전이었는데요. 나중에 영화를 보니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이 올라있더군요. 이미 떠난 후였지만 감사하고 뿌듯했습니다.”


낯선 땅 파라과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뭐라도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강아지 집을 만들어 팔고 생과일 주스 사업도 했습니다. 말이 잘 안 통하는 곳에서 제 사업을 운영하고 생존하는 경험을 해본 거죠.”


◇고교 동창과 공동 창업, 더러운 화장실에서 아이디어

출처: 퓨어리브
파라과이에서 사업하던 시절의 모습


처음부터 파라과이에서 승부를 보자는 생각은 아니었다. 적응력에 대한 자신감을 얻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친구를 만났다.


-무슨 얘기를 했나요.

“고등학교 동창이었습니다. 학교다닐 때부터 각자 하고 싶은 일을 털어놓곤 했죠. 각자 진로는 갈렸습니다. 윤가람 공동 대표는 법대를 나와 법무법인에서 회계 일을 했고요. 저는 사진과 영화를 공부했죠. 분야가 완전히 다르죠. 그런데 그게 오히려 무기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합치면 오히려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긴 거죠. 그길로 공동 창업을 결의했습니다.”


허름한 사무실을 하나 빌렸다. 전에 참기름을 만들어 팔았던 곳이었다.


아이템 기획부터 시작했다. 생활 속 불편이 실마리를 줬다. “사무실 화장실이 끔찍하게 더러웠어요. 어느 날은 윤 대표가 화장실 가운데 두면 알아서 청소되거나 깨끗해지는 물건이 있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공기청정기를 뜻하는 거냐 물으니 ‘공기 청정기는 냄새만 없앨 뿐 더러운 세균은 못 없앤다’고 투덜댔어요”

출처: 퓨어리브
퓨어리브의 공동창업자 2인은 과거 참기름집이었던 터에 사무실을 차렸다.


식당의 자외선 컵 살균기가 떠올랐다. 자외선이 컵을 살균하는 것처럼, 자외선으로 공간을 소독하는 기계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상품성 확보하고 제품 라인 세분화


일반 가정에서 쉽게 쓸 수 있도록 합리적인 가격대에 제품을 공급하자는 목표를 세웠다. 핵심 부품인 자외선 램프 공급 업체부터 찾았다. “시장 조사를 하니 처음부터 난관이었습니다. 자외선 살균 램프가 독과점 시장이었던 거죠. 그 기업의 제품을 쓰면 램프 원가만 15만원을 넘겠더라고요. 그러면 이윤을 아무리 낮게 설정해도, 가격이 20만원을 훌쩍 넘게 됩니다. 도저히 승부하기 어려운 가격이죠.”


단가를 낮추기 위해 우회로를 택했다.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대체 공급처를 찾기로 했습니다. 안전성, 살균력, 좋은 소재 등 세 가지 조건을 충족하는 램프 공장 목록을 뽑고, 그 중 18 곳과 접촉해 세부 협의를 진행해서 가장 잘 맞는 곳을 하나 찾았습니다.”

출처: 퓨어리브
공장에서 생산 중인 포켓 살균밤


상품성을 위해 디자인과 편의성에 많은 신경을 썼다. “기왕이면 인테리어 효과도 나도록 깔끔하고 예쁘게 디자인했습니다. 편의성을 위해서는 전원버튼을 누른 후 15초 후에 작동하도록 만들었습니다. 자외선 살균이다 보니 아무래도 바로 작동하기가 꺼려지는데요. 버튼을 누른 후 기기에서 벗어나면 작동되도록, 15초의 여유를 뒀습니다. 리모컨으로도 구동할 수 있게 했습니다.”


4~5평 공간에 적합한 살균빔 클리너와 1~2평 좁은 공간에 적합한 포켓 살균밤으로 라인업을 세분화했다. “살균빔 클리너는 주방, 욕실, 침실, 옷장 등 한 공간을 살균하는 데 맞고요. 포켓 살균밤은 그보다 좁더 좁은 공간에 맞습니다. 어린이 장난감 등 살균하고 싶은 물건을 박스에 한 데 모은 후 작동하는 데도 좋죠. 휴대하고 다니면서 사무실 책상 주변 등을 깨끗이 하는 데도 좋도록 했습니다.”


◇1000번째 고객까지 감사 전화


살균, 배터리 안전, 전자파적합 등 안전과 기능 관련한 각종 인증을 받은 후 제품을 출시했다. 의욕 넘치게 인터넷 쇼핑몰을 만들고. 제품 사진을 직접 찍는 등 상세페이지를 직접 만들었다. “유명 커뮤니티에 홍보 게시물도 올리고요. 할 수 있는 홍보는 다 했습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더군요. 첫 일주일 동안 단 하나도 팔리지 않았습니다.”

출처: 퓨어리브
살균램프인증서(왼쪽)과 플라스틱안전소재인증서(오른쪽)


결과적으로 ‘손님 귀하다’는 교훈은 빨리 얻었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진정성 있게 소비자 대하는 법을 알게 됐다. “첫 주문이 들어오던 날, 신이 나서 사무실을 방방 뛰어다녔습니다. 다음 날 물건을 보내고 고객에게 전화를 걸어 잘 받으셨는지, 사용감은 어땠는지, 아쉬운 점은 무엇이었는지 등을 물어봤습니다. 무척 좋아하시더군요. 그렇게 최초의 고객 1000명에게 같은 전화를 걸었습니다. 곧 ‘사장님이 직접 연락해서 좋다’는 후기가 올라왔고, 주변 분들에게 직접 홍보해주시는 분이 늘었습니다. 아파트 단지 같은 곳에서 공동구매 요청도 들어왔습니다.”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겠죠.

“초반에 일주일 정도 배송이 지연된 적이 있습니다. 한 고객이 화나서 전화를 하셨어요. ‘나도 사업하는 사람인데 이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고 항의하셨죠. 면목이 없어서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습니다. 그날 사무실을 뒤져보니 샘플이 하나 있어서 새벽 두 세 시에 운전해서 그 분 집까지 찾아갔어요. 문 앞에 샘플을 두고, 다음날 아침 ‘새벽에 물건을 놓고 갔다’는 연락을 남겼죠. 지금은 그분과 매일 연락할 정도로 가까운 사이가 됐습니다. 가족과 친척,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겠다고 30개 대량 구매도 하셨습니다. 온라인으로 물건을 팔더라도 결국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이라는 걸 매일같이 느낍니다. 처음 불만을 가졌던 사람을 누구보다 가까운 존재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이 일의 묘미입니다.”


◇성공한 감독과 사업가의 공통점

출처: 퓨어리브
정 대표는 두 제품의 디자인에 각별히 신경을 썼다고 강조했다.


간판 상품 ‘살균빔 클리너’는 온라인몰에서 8만개 판매에 육박했다. 포켓 살균밤도 온라인몰에서 누적 판매량이 3만개에 육박한다.


-앞으로 계획과 목표는요.

“미국, 남미, 호주 등 해외에서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데요. 아직 조심스럽습니다. 국내 시장부터 완전히 자리 잡고 진행하는 게 맞지 않나 싶어서요. 국가마다 인증 기준 같은 게 달라서 해외 진출하게 되면 신경 써야 할 일이 많거든요. 아직은 저희의 능력치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 안에서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무조건적인 확장은 경계하며, 회사 수익과 소비자 만족 사이의 균형을 지키며 성장하는 게 목표입니다.


국내 시장 강화를 위해 신규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입니다. 유유즈(UUZ)란 프리미엄 생활 가전 브랜드인데요. 3월 초 이 브랜드의 첫 제품으로 무선 청소기 '감탄 청소기'를 출시합니다. 유명 브랜드 품질의 제품을 반 값 이하로 내놓기 위해 정말 많이 고생했습니다. ‘구매 실패 경험이 없는 생활 가전 브랜드’라는 회사의 방향성에 맞춰 계속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회의 중인 퓨어리브 구성원들


-영화 일을 하다가 사업가로 전향하니 어떤가요.

“분야는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면서 일의 본질은 굉장히 비슷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일’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요. 제가 패션 사진이나 영화계에서 일하며 만났던 일 잘하는 사람들과 잘 나가는 사업가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아요. 예를 들어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감독 등 유명한 감독들은 아침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앉은 자리에서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집중력과 자기 일에 대한 몰입도가 엄청나지요. 자신의 회사를 위해 밤낮없이 달리는 사업가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죠.”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조언이 있다면요.

“저희가 요즘 판매량이 늘고 있는데, 오히려 판매 채널의 숫자를 줄이고 있습니다. 왜냐구요? 진부하게 들려도 좋습니다. 저희에겐 소비자 만족이 최우선입니다. 구매자가 많아지고 판매채널이 다양해질수록, 고객 응대와 CS 부분에 구멍이 생기게 됩니다. 소비재를 판매하는 업체가 소비자 목소리를 등한시하면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 회사는 믿어도 된다’는 신뢰를 주려면 치열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저희는 CS 채널을 한 데 모아 보다 긴밀하게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 중입니다. 소비자 목소리를 최우선에 둬야 진정 오래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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