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미와 삼산이는 없지만, 난 출근한다

조회수 2021. 03. 10.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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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타트업'을 본방사수 한 이유

저는 스타트업에 다닙니다. 그리고 ‘응? 그 크리에이터 기업 샌드박스에서 만든 드라마인가?’ 싶은 순간의 질문들을 꾹꾹, 눌러가며 드라마 '스타트업'을 보았습니다. 

드라마는 이런 허황된 맛에 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매 화 보는 맛이 났습니다. 도산이(남주혁), 용산이(김도완), 철산이(유수빈), 이 ‘삼산이’들은 RGB색으로 옷을 맞춰 입고 다닙니다. 심지어 해커톤에서 CEO를 영입해야 하는 장면에서는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있는 달미(배수지)가 너무 귀여워서 이불을 발로 뻥뻥 찼습니다.

어쩌다 스타트업 노동자

이직하며 스타트업에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말 그대로 ‘어쩌다 스타트업’입니다. 큰 회사에 다닐 때는 몰랐던 것들이 보였습니다. 더 많은 일, 좀 다른 일, 나만의 일, 주도적인 업무를 해보고 싶어서 스타트업에 뛰어든 것인데,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기 위해서는, 일단 눈앞에 있는 ‘해야만 하는 일들’을 수행해야만 했습니다. 

'스타트업'의 모든 회 차가 좋았지만, 전 그중에서도 특히 13화를 좋아합니다. ‘컴포트 존(심리적 안전지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회 차입니다. 어쩌면 스타트업에서의 매일은, 제가 정해두었던 그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웃’ 당할 수도 있지만, 홈런을 칠 수도 있으니 용기를 내어 배트를 휘두르고, 계란으로 바위도 쳐보고, 와장창 깨지기도 하며, 꽁꽁 닫아두었던 오르골을 결국 열어, 아주아주 근사하게 흘러나오는 음을 들어봅니다. 그 안에서 계속 망설이기만 하면, 결국 나는 소심한 사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스타트업, 업(業)보다 역시 ‘사람’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스타트업은 아주 좋은 배경일 뿐,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현실에는 김선호 배우 같은 ‘엔젤’ 없고, 남주혁 배우 같은 천재 너드 개발자 없고, 배수지 배우 같은 CEO도 없습니다. 하지만 좋은 동료들과 함께라서, 같은 목표를 향해 달려가며 작은 성취들을 연결해나가고 있어서 괜찮습니다. 열정이나 패기만으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도산이와 달미처럼요. 서로의 장점은 더 뛰어난 강점으로, 약점은 터닝 포인트로 삼아 극복할 수 있는 사이, 가까이 있다면 꽉 붙잡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습니다.

현실은 뭣 같아도, 드라마는 이렇게 꿈속 같아야 합니다. 고층부 엘리베이터를 타려다, 학창 시절 편지의 주인공을 따라서 꿈을 찾고 창업을 해서 대표가 되고, 나의 사랑하는 할머니께서 눈이 안 보이게 되시니, 기가 막히는 어플을 만들어줄, 그런 천재 개발자가 내 옆에 있는, 아주아주 허황된 꿈 말입니다. (주변 개발자에게 이런 설정의 가능성에 대해 물어보니, 드라마 보고 말하는 거라면 대답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이미 이런 질문을 많이 받은 걸까요.) 그리고 저는 꿈같은 드라마 속 현실적인 대사에 위안을 얻습니다. “20대잖아요. 좋던 팔자도 꼬일 때죠.” 아마 서른, 그 이상이었다면 스타트업에서 일할 생각 자체를 못 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갈 달미는 없지만, 헤매도 좋으니, 지도 없는 항해를 떠나는 것도 괜찮겠다고 제 자신을 달래봅니다. 스타트업 종사자분들, 모두 파이팅!

글. 김윤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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