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 단역 배우가 폭로한 당시 촬영장의 복지 수준

조회수 2021. 03. 13. 18:3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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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새롭게 추가된 비하인드 & 트리비아 11부

*스포주의! <기생충>의 결말이 그대로 나옵니다.

1. 독일 관객을 빵 터지게 한 이 대사

지하에 갇힌 기택(송강호)이 새로운 독일 가족의 눈을 피해 겨우 생존하는 장면.


-이때 기택이 기우(최우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독일인들이라고 맥주랑 소세지만 먹는 게 아니더라"

라는 문장이 있다. 뮌헨 영화제에서 독일 관객들이 이 대사를 듣고 너무 웃겨서 모두 웃고 난리가 났다고 한다. 우리 입장에서 본다면 

한국인들이라고 김치만 먹는 게 아니더라"

와 같은 대사였기 때문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2. 모스 부호에 열과 성을 다한 스태프의 노력이 만들어낸 결과물

극 중 전등을 통한 모스 부호는 오거돈이라 불린 연출부 스태프가 직접 전등을 눌러서 완성한 장면이다. 나름 모스 부호 전문가였기에 정확하게 신호를 전달하려고 했다. 감독과 다른 스태프들은 너무 디테일 있게 할 필요 없다고 했는데 나중에 보이, 걸스카웃 출신 관객들이 영화를 보고 

어떻게 모스부호까지 정확하게 만드셨냐?"

라고 칭찬받자 봉준호 감독이 그의 노력에 감탄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3. 문광이 수목장 된 곳이 영화에 등장했다?

극 중 상상으로 박사장의 집을 산 기우가 기택과 정원에서 재회한 장면.


-이 장면에서 나무들이 있는 곳에 꽃이 피어있는데, 영화의 설정상 이 꽃이 있는 자리가 바로 기택이 문광(이정은)을 수목장으로 묻어준 곳이다. 그래서 제작진 사이에서 이 꽃을 '문광화'라고 불렀다.


-칸 영화제 당시 마지막 두 부자의 포옹 장면이 등장하고 페이드 아웃되자 이게 영화의 끝인 줄 알고 기립박수가 나왔다. 그다음 기우의 현실을 장면을 보고 다들 웃었다고…


4. 놀라운 문광 & 근세 부부의 비하인드와 설정

봉준호 감독은 각본을 함께 쓴 한진원 작가에게 문광, 근세 부부와 건축가 남궁현자에 대한 구체적인 설정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이에 한진원 작가는 거의 자서전 형식으로 이들에 대한 배경을 완성하게 된다.


-한진원 작가가 설정한 근세(박명훈)는 충북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온 경제학도로 군대는 면제받았으며, 아버지가 금산 지역의 유지여서 어린 시절부터 사회초년생이 되기까지 풍족하게 살았던 것으로 되어있다.


-이후 근세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금융업에 종사해 지역은행인 충청은행에 취직했는데, 하필 그 시기에 IMF가 터져서 곧바로 실업자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를 극복하고 새로운 일을 찾으려 한다. 

-아버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근세는 미래 계획을 위해 하숙 생활을 하기로 결정한다. 그렇게 청주의 한 하숙집에 들어갔는데, 하숙집 주인의 딸 문광을 만나 연인으로 발전하게 된다.


-문광은 서울의 유명 대학교 연극영화과에서 연기를 전공하는 학생이었다. 하지만 학부 수업에 매력을 느끼지 못해 연극계로 발을 들여 배우가 되고자 했다. 그래서 이 당시 상류층의 여러 사람과 어울리며 친하게 지냈고, 이 같은 친화력과 경험은 향후 박사장 집의 상류층과 어울리는 계기가 된다.


-근세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출마하다 낙선하고, 사업실패에 도박빚까지 지게 되면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


-당시 근세는 문광과 부부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가 남긴 빚을 아내에게까지 짊어지게 하고 싶지 않아서 법적인 혼인관계를 유지하지 않은 채 그대로 부부 형식만 유지하며 살아간다.


-이후 두 부부는 근면 성실하게 일하며 돈을 모아 당시 유행하던 대만 카스테라 장사를 하게 된다. 그때까지 잘 살았는데, 본의 아니게 2017년 한 종편 방송채널의 억지성 짙어 보이는 이상한 보도로 모든 매장들이 큰 피해를 보게 되면서 망하게 된다. 


아버지의 빚에 사업실패로 인한 사채빚까지 떠안은 근세는 결국 도망자 신세가 되어 버리게 된다. 그러다 유명인의 집에 있으면 안전하다 싶어 문광이 유명 건축가 남궁현자의 가정부로 오게 되고, 그 지하에서 근세가 생활하게 된다. 

5. 알고 보니 프랑스계 한국인 건축가였던 남궁현자

영화에서는 사진으로만 등장했던 남궁현자는 사실 프랑스계 한국인 건축가였다.


각본상 그는 1952년생으로 본명은 피에르 남궁이다. 부산 출생으로 한국전쟁을 취재하러 온 프랑스인 종군기자인 어머니와 한국인 미술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1953년 휴전 협상 후 두 부부가 피에르 남궁을 데리고 프랑스로 가게 되고, 남궁현자는 그렇게 프랑스에서 유년기를 보내다 미국과 여러 나라를 오가며 건축학적인 마인드를 키우게 된다.


놀랍게도 한진원 작가는 남궁현자에 대한 설정 외에도 어떤 매체와 인터뷰를 나눈 장문의 가상 인터뷰 기사까지 만들었다. 그가 완성한 설정은 극 중 박사장 집을 만드는데 큰 참고 대상이 되었다. 

6. 단역 배우가 폭로한 당시 촬영장의 복지 수준

온라인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당시 촬영장의 복지 수준에 대한 이야기.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글에 <기생충> 단역배우였던 유저가 직접 증언한 글이다.


-해당 단역 배우는 기태가 박사장 운전기사로 취직하기 전 IT 회사 장면, 수재민 체육관 장면, 길거리 장면 등에 등장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촬영 현장이 절대 하루에 10컷 이상을 찍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매우 철저히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 상황속에서도 한 컷 한 컷 디테일하게 찍으려는 감독과 제작진의 노력이 큰 인상을 남겼다고 한다. 

-화제가 된 대목이 체육관 장면이었는데 글쓴이는 

새벽 촬영이어서 사정상 아침, 점심 식사 제공이 안 된다고 직접 준비하라고 했는데, 막상 현장에 오니까 제작진이 단역 출연자 한 명 한 명에게 비닐봉투를 건내주었다. 뭔가 하고 봤더니 봉투 안에 각종 주전부리를 포함한 끼니를 때울 수 있는 음식 등이 넉넉하게 있었다."

라고 말해 절로 감탄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여러 번 단역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이렇게 좋은 복지 수준으로 작업한 것은 <기생충>이 처음이었다며 크게 칭찬했다.


영화의 완성도만큼 출연진의 복지도 수준급으로 잘 관리한 영화였던 셈이다.


1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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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CJ엔터테인먼트/ ※저작권자 ⓒ 필 더 무비.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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