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째 직장 없지만 업계에서 최고참입니다"

조회수 2021. 03. 24. 09:2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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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째 직장은 없지만 일 안해본 회사 찾기가 힘들어요"

23년째 직장이 없다. 하지만 백수는 아니다. 23년간 계속 쉬지 않고 일했다. 그것도 삼성, LG, 대한항공 등 대기업부터 국립박물관 같은 국립기관, 조선일보, JTBC 같은 신문, 방송사까지 이름만 들어도 모두 아는 곳과 일을 했다. 그녀의 직업은 프리랜서 만화가. 많은 사람이 프리랜서에 로망을 가지고 있다. 업계 최고참 프리랜서는 자신의 삶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23년간 직장 없이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고 있는 신예희(46) 씨를 만났다.

출처: 신예희 씨 제공
신예희 씨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23년 차 프리랜서 신예희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6개월 정도 조직 생활을 경험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지금까지 어디에도 속하지 않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삼성, 엘지, 아모레퍼시픽, 대한항공, 아시아나, 국립국어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민속박물관, 한겨레, 조선일보, CJ, JTBC 등 여러 기업과 협업해왔습니다. 그림을 전공했고, 만화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일하다 보니 글 쓰는 쪽에 재능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현재는 그림 작업은 물론이고 글 쓰는 일과 번역 일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에 만화를 올려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인터넷이 흔치 않던 시기에 만화를 올리신 계기는요.


“그 당시 저는 대학을 졸업했지만 직장은 없어 불안했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위로받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제 삶을 담은 이야기를 만화로 그려 인터넷에 올렸습니다.


운이 좋게도 그때 저에게는 와콤 태블릿이 있었습니다. 싸이월드 미니홈피 같은 개인 인터넷 공간 사이트인 '프리챌'에 제 만화를 하루 한 장씩 올렸습니다. 요즘 말로는 생활툰이라고 하죠. 그때는 웹툰이라는 단어도 없고, 인터넷이라는 개념 자체를 모르는 사람도 있던 시기였습니다. 제가 만화를 그려 올리는 것은 정말 새로운 시도였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개인 일기를 왜 인터넷에 쓰냐고 말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혼자 끄적이면서 그렸던 그림들이 1년이 흐르고 나니 365개의 포트폴리오로 변했습니다. 그걸 본 기업 담당자들이 같이 일하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그렇게 기업들과 협업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출처: 신예희 씨 제공
작업하고 있는 신예희 씨

-일을 시작한 초창기에 어땠나요.


“회사에 미팅하러 가면 직원 카드를 목에 걸고 있는 직원분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분들이 멋있어 보이고 부럽더라고요. 지금도 이 감정을 느끼는데 20년 전에는 더 심했습니다. 아르바이트로 외주를 하러 갈 때마다 저 자신이 너무 작고 보잘것없어 보였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기업과의 협업은요.


“2005년도에 삼성그룹 사원 교육용 콘텐츠를 만든 것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정말 힘들었지만 뿌듯했거든요. 경제경영 철학 관련 콘텐츠를 제작했습니다. 하지만 담당자도 사실은 들어가야 할 내용이 뭔지 모르신다는 거에요. 단순히 만화는 이해가 잘 될 것 같다면서 손바닥 크기만 한 경영서적 한 10권을 저에게 건넸습니다. 정말 난감했지만 이 일이 잘 풀리면 제 경력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머리숱이 빠지도록 열심히 일 했습니다. 경영철학 교육 자료 10권을 만화로 만들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그 후 큰 기업들에 외주 연락을 많이 받았습니다.”

출처: 신예희 제공
(좌)삼성과 협업하며 그린 만화 작업, (우)아모레 퍼시픽과 협업하며 그린 만화

-가장 위기였던 외주는요.


“항상 작은 위기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크게 기억할 만한 위기는 없었습니다. 제가 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계속 피드백을 주고받고, 마감 시간을 어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 못할 것 같으면 최대한 빨리 이야기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크게 위기 없이 23년째 이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재 수입은요.


“1년간 수입이 아예 없어도 지금까지 모아둔 여유자금으로 먹고살 수 있는 정도는 되는 것 같습니다. 초창기 때는 수입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보다 수십 배는 더 벌고 있습니다. 대출을 끼고 30평대 아파트도 하나 장만했습니다. 어지간한 기업체 부장 정도 번다고 생각합니다.”


-수입이 없었을 때는 많이 힘들었을 것 같아요.


“저는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감정은 억울함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 외부 연재를 했을 때 제 이름을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3년간 페이를 거의 받지 못했는데도 계속 연재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연재하는 동안에는 항상 일을 그만두고 자유시간을 갖는 게 나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을 그만두면 아직 못 받은 돈을 영영 못 받을 것 같았습니다.


한 번은 제가 돈 때문에 업체에 메일을 보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담당자가 제 메일을 다른 직원들과 공유했습니다. 그분이 실수로 받는 사람에 저를 포함해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공유 메일에는 제 욕이 적혀있었습니다. 그 메일을 보면서 아무 대응도 하지 못한 채 속상해하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다른 연재처들이 조금씩 생겨나면서 이 일을 그만뒀습니다. 물론 돈은 한 푼도 못 받았습니다.


몇 년 후 한 대기업이 그 업체를 인수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못 받은 돈을 한 번에 돌려받았습니다. 기쁘면서도 어이없었습니다. 그때 마지막까지 남은 자가 이기는 자라는 교훈을 얻었습니다.”

출처: 신예희 씨 제공
한겨레 신문에 실린 작업

-친한 사람이 프리랜서를 하겠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프리랜서로 일하는 건 저에겐 오랜 시간 동안 몸에 맞게 수정해 온 편한 옷입니다. 하지만 주변인에게 추천하라면 망설여집니다. 만약 조직에서 나와 프리랜서를 하는 경우, 조직 안에서 최대한 면역력을 키우라는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조직 생활을 하다가 혼자 일하면 생각보다 내가 생각보다 많이 조직에 의지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월급뿐 아니라 4대 보험, 회사 복지 같은 혜택이 사라집니다. 세상은 그냥 신예희보다 어느 회사의 신예희에게 더 친절할 가능성이 큽니다. 다시 말해 대우가 달라집니다. 이런 상황 변화를 견딜 정신력이 있어야 합니다. 혹시 대출을 받아야 한다면 조직에 있을 때 미리 받는 편이 좋습니다. 또 신용카드도 한 장 더 만들고 나오는 것도요. 프리랜서는 대출받기가 어렵습니다. 신용카드 만들기도 쉽지 않아요.”


-프리랜서를 하기 위해 필요한 마음가짐은요.


“조직 생활을 못하고 인간관계에 자신이 없어서 프리랜서를 꿈꾸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직업은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합니다. 인간관계도 정말 중요하고요. 어려운 돈 얘기까지도 혼자 말해야 합니다.


저는 항상 연락이 오면 받을 준비가 되어있습니다. 그러기 위해 항상 노력합니다.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업체와 협업하는 경우, 저도 그 출퇴근 시간을 같이 지키려고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소통을 할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프리랜서는 일과 휴식의 경계선이 흐릿한 것 같습니다. 그 경계를 어떻게 긋는지요.


“제 일상은 정말 잔잔하게 흘러갑니다. 저만의 출퇴근 시간을 정해서 지키려고 합니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합니다. 또 혼자지만 출근을 하면 출근했다고 외치고 일을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루를 시작하는 느낌이 듭니다. 퇴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또 휴식 시간을 항상 챙기려고 애쓰는 편입니다.”


-앞으로의 목표는요.


“단기목표는 24년 차 프리랜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오래오래 하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글 jobsN 왕해나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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