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하루 아침에 9.11 테러 용의자가 된 남자의 실화

조회수 2021. 3. 17. 09:18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리뷰] '모리타니안' 책임질 누군가를 만들기 위한 손쉬운 선택

“만약 당신들이 틀렸다면요?”
“자유와 용서는 같은 단어”

기소도, 재판도 없이 십 수년 동안 수용소에 수감된 한 남자가 있다. 빈 라덴의 휴대폰으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는 이유로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 몇 평 채 되지 않는 좁은 방 안에 갇혔지만, 언제고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는 그는, 진정 무고한 시민일까 혹은 진실을 숨기는 범죄자일까.

독일 유학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슬라히(타하르 라힘). 그는 9.11 테러와 관련한 조사가 필요하단 이유로 갑작스레 미군에게 연행된다. 금방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으리라 여기며 어머니를 향해 “안심하라”던 슬라히. 허나 미군은 그의 눈과 귀를 가린 채 한 수용소로 향하고, 슬라히는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돼 기소는 물론, 재판도 없이 차가운 독방에 수감되게 된다.

그렇게 수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용의자로 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슬라히. 객관적인 증거는 아무것도 없지만 슬라히는 군검찰에게 기소 당해 사형에 구형될 위기에 처하고, 인권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그런 슬라히를 향해 도와줄 수 있도록 진실을 고백하길 부탁한다. 한편 냉정하고 완고한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기밀이라는 이유로 감춰진 슬라히의 기록을 확인하려 하지만 번번히 막히고, 낸시 역시 은폐된 진실 앞에서 고개를 떨구게 된다.

영화 ‘모리타니안’(감독 캐빈 맥도널드)은 수년간 수용소에 갇혀 있던 한 남자의 첫 번째 재판을 준비하는 변호사 낸시와 군검찰관 카우치가 은폐되어 있던 국가의 기밀을 마주하는 이야기를 담았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14년간 쿠바 남동쪽 관타나모 만에 설치된 미군 기지 수용소에 갇혀있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의 실화가 바탕 된 작품으로, 슬라히는 객관적인 증거 없이 고문에 의한 자백 만으로 9.11 테러의 주동자로 지목돼 수용소에 갇혔다.

영화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슬라히의 증언록 ‘관타나모 일기’에 기반해 만들어졌으나, 억울한 입장에 처한 슬라히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꾸려가진 않는다. 되려 그에 대한 기밀 문서를 보여주는 영화의 중반에 이르기까지, 그가 진정 무고한 시민인지, 변호사를 속이는 테러리스트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변호를 자처한 낸시에게도 무언가를 숨기는 듯한 슬라히의 표정은 사회 고발영화의 무거운 중압감이 아닌 긴장감 넘치는 스릴러의 매력으로 관객을 몰입시킨다.

슬라히가 진정 범인인지 여부를 두고 쫓아가는 추리와 함께, 영화는 끊임없이 비좁고 차가우며, 사방이 막혀있는 수용소의 이미지를 그리며 심리적 압박을 더한다. 특히 미군이 가하던 고문을 묘사하던 장면에선 강렬한 사운드 효과를 활용해 섬뜩함마저 안겼으며, 평화로웠던 지난날을 회상하는 장면은 비참한 현실과 극도로 대비돼 멜랑콜리한 감상을 자아내기도 했다.

보통의 사회고발 영화와는 다른 형식을 취한 연출 기법과 함께 ‘모리타니안’은 배우들의 명 연기에도 제법 빚을 졌다. 조디 포스터와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9.11 테러라는 역사적 대사건과 관련한 사건을 맡는다는 부담감을 여실히 표현해내며 이야기의 무게중심을 잡았으며, 슬라히를 연기한 타하르 라힘 역시 자유를 향한 갈망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 인권을 짓밟힌 분노와 모두를 향한 용서 사이에서 능수능란하게 감정선을 오가며 관객을 납득시켰다.

무고한 시민이 국가의 권력에 의해 모진 고문을 받고, 자백을 강요 받아 범인으로 내몰리는 과정. 그런 그의 무고함과 자유를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끝내 정의를 관철시키는 이야기. 이는 사실 국내 관객에게 크게 신선하진 않을 수 있다. 장준환 감독의 ‘1987’을 비롯해 군사 정권 시기 있었던 사건들을 그린 작품들이 국내에선 줄곧 다뤄진 소재인 이유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리타니안’은 꽤나 극적이고, 신선하게 다가온다. 국가권력의 희생양으로 파괴된 개인의 인권을 담은 것은 동일하나. 지난 국내 영화들이 피해자들의 입장에서 국가의 비인간성을 폭로하며 감정적인 분출을 그리는 것에 집중했던 반면, ‘모리타니안’은 9.11 테러라는 급류에 휘말려 진실을 외면한 이들의 모습까지 균형 있게 그린다. 공감대를 형성하기보다 시대 흐름과 함께 우리가 지녀야 할 도덕성에 대해 정확히 짚는다.


개봉: 3월 17일/관람등급: 15세 관람가/감독: 캐빈 맥도널드/출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조디 포스터, 쉐일린 우들리, 타하르 라힘/수입: ㈜퍼스트런/배급: ㈜디스테이션/러닝타임: 129분/별점: ★★★☆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