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이 제일 싫었던 30대 직장인, 이젠 운동하려고 삽니다

조회수 2021. 03. 25. 1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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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직장인 클라이머 '르미'

"이거 하려고 오늘도 버텼다!"


취미생활은 곧 힘이다. 지루한 일상을 지속하게 해 주는 원동력이자 내일을 기대하게 만드는 소중한 꿈. 그래서 어떤 직장인들은 퇴근 후에 ‘변신’한다. 가방에서는 슈퍼히어로 망토 대신 운동복이 나오고, 요술봉 대신 붓을 잡으며 ‘또 다른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시작된다. ‘취미활동 하는 재미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취미에 진심인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클라이밍(암벽등반) 영상을 올리는 유튜버 ‘르미TV’ 운영자 정아름(34) 씨는 스스로 ‘클라이밍 하려고 산다’고 할 정도로 운동에 푹 빠져 산다. 낮에는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퇴근하면 날아갈 듯 재빠르게 클라이밍센터(암장)로 달려간다.


클라이머들은 벽에 달린 홀드를 붙잡고 목표 지점까지 올라가는 데 성공하는 것을 ‘문제를 풀었다’고 표현한다. 예를 들어 수많은 홀드들 중 빨간색만 잡고 올라가기로 정했다면 암벽 밑에서부터 동선과 자세를 계획하는 ‘두뇌 풀가동’이 시작된다. 


머리로 짠 동선대로 몸이 움직여 목표를 달성한 순간의 성취감은 하루 종일 쌓인 피로와 우울함을 단번에 날려준다. 산에 가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인사를 나누듯, 서로 거리낌 없이 “파이팅!”, “나이스!”를 외치며 격려해 주는 분위기도 클라이밍의 매력이다.

안녕하세요,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87년생 정아름입니다. 유튜브에선 ‘르미TV’로 활동하고 있고요. 쇼핑 앱 ‘지그재그’에서 PR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영상을 보면 긍정적인 기운이 느껴지는데, 원래 성격이 밝은 편이신가요.


밝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기는 해요. 웃음이 많은 편이라 그런 것 같아요. 사실 기본적인 기질이나 성격은 다소 내성적이고 조용한 편이었는데, PR(Public Relation) 에이전시에 취직한 뒤로 약간 바뀌었어요.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보니 매일 처음 만나는 분들과 이야기 나누는 게 일과거든요. 그러다 보니 성격도 점차 외향적으로 바뀌었습니다.

퇴근하고 운동한다는 게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운동 열심히 하는 직장인들을 보면 크게 두 부류인 것 같아요.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더 찌뿌둥하다는 분들과 '살려고 운동한다'는 분들로 나뉘는데 르미님은 어떤 편이신가요.


처음에는 살려고 운동했어요. 하루 종일 앉아서 일하고 집에 오면 스트레스 푼다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다 보니 살이 정말 많이 쪘거든요. 위기감을 느끼고 헬스장에 등록했지만 결국 돈 내고도 운동을 안 나가는, ‘헬스장 기부천사’가 되고 말았죠.


제가 진짜 운동을 못하고 싫어해요. 고등학생 때 300명 넘는 전교생 중 체육 꼴찌를 했던 경험이 트라우마처럼 남았을 정도로 체육을 극도로 싫어했어요. 걷고 뛰는 것도 잘 못 하고 자전거도 못 타고요. 물을 무서워해서 수영도 못 하고 근력이 하도 없어서 필라테스나 요가 같은 것들도 동작을 못 따라하겠더라고요.


살은 계속 찌고 체력은 점점 사라져가는데 혼자서는 도저히 운동을 못 하겠어서 PT(운동 개인강습) 50회를 등록했어요. PT받으면서 7kg 빼고 운동법도 배웠는데 막상 혼자 운동해보려고 하니 안 되는 거예요. 


이걸 어쩌나 하던 차에 클라이밍 1일 체험을 해보자는 친구의 제안을 받았어요. 그렇게 엉겁결에 클라이밍 맛보기를 하게 됐는데 재미있는 거예요. 그렇게 2019년 5월에 클라이밍센터에 등록하면서 삶이 확 바뀌었습니다. 원래는 살려고 운동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운동하기 위해 사는 사람이 됐어요.

클라이밍을 시작하기 전, 정 씨는 ‘취미 유목민’ 이었다. 홍보 업무 특성상 하루에도 몇 번씩 예상치 못 했던 일들이 일어나고 수시로 급한 요청도 들어오니 시간이 어떻게 가는 지 모를 정도로 바쁜 날이 많다. 원래도 성격이 급한 편인데 일하는 환경까지 빠르게 돌아가다 보니 스스로도 점점 여유가 없어진다는 걸 느꼈다.


마음을 차분하게 가다듬을 수 있는 취미를 가지면 스트레스가 풀릴 거란 생각에 정적인 활동 위주로 찾아다녔다. 캘리그라피 6개월, 드로잉 2개월을 거쳐 공방에 다니며 나무와 액세서리도 만져 봤다. 그럭저럭 재미는 있었지만 오랜 시간 꾸준히 하고 싶을 정도로 끌리지는 않았고 생각보다 힐링이 되지 않았다. 


이런저런 시도 끝에 자신에게는 승부욕을 자극하고 도전과 성취가 있는 활동이 더 잘 맞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현재 그의 유일한 취미는 클라이밍인데, 클라이밍만 하기에도 시간이 빠듯해 다른 취미 생각은 나지 않는다고.

“’몸치’도 가능, 클라이밍의 매력 알리고파”

클라이밍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한데 영상 제작까지 하면 그만큼 운동할 시간이 줄지 않을까. 유튜브 활동을 시작한 이유를 묻자 정 씨는 “원래 사진이나 영상을 좋아하기도 하고, 나 자신의 운동 기록을 남기면서 클라이밍의 매력도 알리고 싶었다”라고 답했다. 


클라이머들 사이에서는 자신이 완등에 성공한 영상을 찍어 기록하고 공유하는 문화가 있다. 자신의 움직임(무브)을 영상으로 확인하면서 부족한 점을 고치고 남의 영상을 통해 본받을 점을 배우는 것. 1년 반 동안 거의 매 주 한 편씩 꾸준히 영상을 올리면서 구독자도 조금씩 늘었다.

사진=르미TV 영상 캡처

클라이밍에 관심 있는 직장인들이 생각보다 많습니다. 따로 강습을 받아야 하는지, 초기비용은 얼마나 되는지, 다칠 위험은 없는지 등을 궁금해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저는 처음 1회 체험하고 그 후 강습을 꽤 오랫동안 받았어요. 1회 체험 시 클라이밍장 이용비+기본 교육비+신발대여비 포함해서 2만원~3만원 사이에 가격이 형성돼 있습니다. 클라이밍의 기본 자세, 하강 방법, 에티켓 등에 대해 배울 수 있어요.


이후 본격적으로 클라이밍을 시작하게 되면 암벽화를 별도로 구매해야 돼요. 암벽화는 10만원~20만원 정도입니다. 클라이밍 센터를 한 곳으로 정해서 이용권을 결제하게 되면 월 10만원 정도 비용이 들어가고, 강습까지 받게 되면(주 2회 수업 기준) 15만원~20만원쯤 됩니다.

출처: 사진=르미TV 영상 캡처

운동 센스가 좋은 사람이라면 1회 체험 후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영상 보고 배워도 되고요. 보통은 잘 못하면 주변 사람들이 다 알려줘요. 근데 평범한 사람이라면 3개월은 강습 듣는 것을 추천합니다. 클라이밍에 여러 기술이 있어요. 발 기술만 해도 인사이드 스텝, 아웃사이드 스텝, 하이스텝 등 여러가지이고 힐 훅, 토 훅, 카운터 밸런스, 다이노 등 기술이 많습니다. 홀드마다 잡는 방법도 달라요. 이런 건 체계적인 강습을 통해 익히는 게 좋겠죠.


저는 운동을 워낙 못하는 사람이라 강습을 1년 이상 들었어요. 주 2회 강습 들었고, 강습 없는 날에도 꾸준하게(평균 주 3회) 나가서 연습했어요. 그래서 그나마 지금 남들만큼 하게 됐습니다. 전 재능 1도 없는 완전한 노력형이에요. 웬만한 사람이 저만큼 했으면 지금 선수가 됐을지도...


다칠 위험은 솔직히 조금 있기는 한데, 내 수준을 제대로 이해하면서 욕심 안 부리고 하면 안전합니다. 다치는 사람은 보통 욕심 많은 사람이에요. 저는 욕심이 많기에 발목 다쳐서 6개월 이상 고생했는데... 욕심 안 부리면 안 다쳐요. 

출처: 사진=르미TV 영상 캡처

클라이밍 하면 허리에 줄 감고 10m 넘는 암벽을 올라가는 모습부터 상상했었는데요. 알고 보니 스포츠 클라이밍에도 분야가 몇 개로 나뉘더라고요. 볼더링은 비교적 입문장벽이 높지 않은 것 같은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보통 클라이밍센터는 지구력 벽과 볼더링 벽으로 나뉘어 있는데요. 지구력 벽에선 클라이밍 기본 동작들을 익히면서 말그대로 지구력 향상을 위한 긴 루트를 등반해요.


볼더링은 짧은 루트를 순간적인 힘을 발휘해 오르는 형태인데 난이도에 따라서 루트가 다양합니다. 입문자, 초보자를 위한 루트도 많아서 장벽이 낮아요. 클라이밍을 해본 적 없는 사람들도 누구나 가볍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암벽화만 있다면 별도의 장비가 필요하지도 않고요. 재밌는 홀드도 많고, 다이나믹한 동작들도 많아서 초보자도 재밌게 즐길 수 있습니다.


말씀하신 허리에 줄 감고 10m 넘는 암벽을 오르는 건 초급자가 하기에는 힘들어요. 어느 정도 지구력과 기본 스텝 정도는 익혀야 가능합니다.


코로나 시국인데 암장 방문이 걱정되지는 않으시나요. 얼마나 자주 암장에 가시는지. 마스크 쓰고 운동하면 힘들지 않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주의하고 있어요. 저는 주3회 정도 암장에 갑니다. 평일 2회, 주말 1회요. 클라이밍(특히 제가 하는 볼더링)은 땀이 엄청 많이 나는 운동은 아니에요. 순간적인 힘으로 치고 올라가서 완등하는건데, 내려오면 또 한참을 쉬어요. 그래서 마스크가 많이 불편하진 않아요. 또 대부분 암장이 넓은 편이라 사람들이랑 가까이 붙어 있지도 않죠. 마스크 안 벗고, 방역 수칙 지키며 조심해서 운동하고 있습니다.

“클라이밍, 솔직히 불공평한 운동이지만…”

학창시절 자타공인 ‘운동치’였던 정 씨가 클라이밍에서 대체 불가능한 재미를 느꼈듯, 사람마다 잘 맞는 분야와 맞지 않는 분야가 다르다. 클라이밍에 잘 맞는 성격이나 신체 특성이 따로 있을까.


“일단 키 크고 팔다리 길고 날씬하면 확실히 유리해요. 저는 클라이밍이 세상에서 제일 불공평한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클라이밍은 다양한 신체 조건을 가진 사람들이 같은 루트를 등반하거든요. 당연히 키 크고 팔다리 길고 몸 가벼운 사람이 유리하겠죠. 하지만 그래서 더 재미있어요. 신체적으로 불리해도 보란 듯이 완등하면 더 멋있잖아요.”


신체적 조건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도전적이고 승부욕 있는 성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 정 씨의 생각이다. 주변 사람이 끝까지 올라가는 것을 보면 ‘나도 하고 싶다’라는 마음이 끓어오르고, 안 풀리던 등반 문제를 풀어냈을 때의 짜릿함과 사람들의 응원 소리를 듣는 기쁨을 즐기는 타입이라면 클라이밍에 잘 맞을 확률이 높다. 반대로 팔과 손아귀 힘이 유난히 없는데 승부욕도 그리 강하지 않은 사람은 재미를 못 느낄 수도 있을 거라고 한다.

클라이밍으로 만난 동네친구들과 부산으로 볼더링 원정(크루명 : 뼈대없는 클라이밍 가문 '클가네'). 가장 왼쪽이 르미

클라이밍을 열심히 하게 된 뒤로 어떤 점이 달라졌나요.


가장 큰 변화는 일상에 활력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점점 성취감을 잃고 있었거든요. 연차가 낮을 때에는 작은 성과에도 보람을 느꼈었는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모든 게 당연한 일이 되면서 일희일비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낯설고 마음 설레는 일이 없던 일상에 클라이밍이 들어왔고, 클라이밍은 저를 신입 마인드로 돌아가게 해 줬어요. 클라이밍 할 때 만큼은 일희일비 했어요.


이 운동은 몸을 죽어라 혹사시키는 운동이 아니에요. 대신 머리로 생각하고 탐구하게 만듭니다. 저 문제를 풀기 위해 발과 손을 어디에 놓고 어디에 힘을 줘야 할지 생각해야 해요. 그 전략대로 몸으로 부딪쳐보고, 실패하면 또다시 생각하고. 친구들과 의논하면서 다른 사람의 무브를 세세히 살펴봐요, 그리고 마침내 성공해내죠. 계속 못 오르던 루트를 완등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장난 아니에요. 


클라이밍을 하며 얻는 작은 성공들과 짜릿함, 성취감이 저를 두근거리게 만듭니다. 자존감을 높여주고 일상에 활력을 줬어요. 일을 잘 하려고 시작한 게 아닌데도, 클라이밍을 통해 얻은 자신감이 일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더라고요.

클가네 일부멤버와 등산. 가운데가 르미

두 번째로는 몸의 변화예요. 몸무게가 크게 변하지 않는다는 건데, 이게 어떻게 보면 가장 큰 변화예요. 유산소와 무산소 운동이 동시에 되다 보니 먹으면서도 체중 유지가 된 것 같아요. 근육량도 약간 늘었습니다. 클라이밍을 더 잘 하고 싶어서 간헐적으로 식단 조절을 하고 인터벌 훈련을 주2회 꾸준히 했는데 결과적으로 더 건강해진 느낌입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네트워크, 새 친구들이 생겼다는 것도 즐거운 변화입니다. 클라이밍 시작하기 전까지는 학창시절 친구들이나 회사 사람들, 일하며 알게 된 지인들 등 나이도 하는 일도 비슷비슷한 사람들만 알고 지냈는데요. 클라이밍센터에서 만난 ‘동네친구’들은 나이도 직업도 다 달라요. 클라이밍에 푹 빠져 있다, 같은 동네에 산다. 이 두 가지 말고는 공통점이 없죠. 오히려 그래서 더 잘 맞아요.


매 주 같이 달리고, 운동하고, 가끔 등산도 해요. 운동하다 만난 분들이라 그런지 다들 밝고 선해요. 새로운 취미가 가져다 준 새 인맥 덕에 제 생활 자체가 굉장히 건강해지고 건전해졌답니다.


이예리 기자 celset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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