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 필요했는데' 홍대 미대생의 기발한 아이디어

조회수 2021. 03. 25. 16:3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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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하베스팅 스타트업 '커널로그'

리모컨으로 켜고 끄는 멀티탭 개발

건전지 필요없이 누르는 힘으로 자체 발전 리모컨


최근 무인매장에 놓인 키오스크를 다루지 못한 어머니가 눈물을 흘려 가슴 아프다는 딸의 사연이 온라인을 달궜다. 이 사연을 계기로 세대 간 디지털 기술 양극화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기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젊은 세대와 그렇지 못한 노인 세대 간의 디지털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여기 모든 이용자에게 친숙한 IoT(사물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 디지털 격차를 줄이고자 하는 기업이 있다. 생활밀착형 IoT 기기를 제조하는 스타트업 커널로그 이야기다. 커널로그의 제품에는 복잡한 소프트웨어가 없다. 어린 아이나 노인 모두 쉽게 쓸 수 있다. 커널로그의 제품을 설계한 함형선 디자이너를 만나 ‘생활 속 혁신’에 관해 들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디자이너 꿈꾸던 미대생

출처: 더비비드
커널로그의 함형선 디자이너


커널로그는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생활 가전용품을 만든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대학원 석사 과정에서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연구하던 김은서 대표가 창업했다. 에너지 하베스팅이란 일상에서 버려지는 에너지를 모아 재활용하는 기술을 말한다.


대표 상품은 무선 스위치 ‘쿠키’와 ‘비스킷’, 무선 제어 멀티탭 ‘버터’다. 누르는 에너지를 전기 에너지로 바꿔주는 장치 ‘압전소자’를 스위치에 적용했다. 압력에서 발생한 에너지를 블루투스 무선 네트워크로 주고받는다. 편리함과 감각적인 디자인을 모두 갖춰 인테리어 소품으로도 인기다. 온라인몰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출처: 커널로그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커널로그의 스위치 '쿠키'와 무선 제어 멀티탭 '버터'


함 디자이너는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했다. 어릴 적부터 미술 입시를 위해 석고 데생을 그리고 정물화를 그렸다. “아버지가 미술 교사이셨습니다. 그림과 디자인을 가까이하며 성장했죠. 중·고등학생 때 친구들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내가 만든 제품을 많은 사람들이 쓰면 행복하겠다’ 생각이 들었어요. 그대부터 제품 디자이너를 목표로 삼았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홍익대학교 산업디자인과에 진학했죠.”


2016년에 한 디자인 에이전시에 취업했다. “산업디자인을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습니다. 고객사의 요구에 맞춰 그들의 제품, 브랜드 등에 맞는 디자인을 제공하는 곳이었죠. 배울 점이 많았지만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클라이언트 요청대로 일을 하다 보니 제 기준에는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 많았거든요. ‘내 제품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을 것 같은데’라는 아쉬움의 연속이었죠. 제가 원하는 일인가 의문이 들어 1년 만에 퇴사했습니다.”


◇배터리 없이 작동하는 신기한 스위치 개발

출처: 커널로그
함 디자이너


퇴사 후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경력을 쌓았다. 2018년 초 커널로그로부터 협업 제안을 받았다. “사람이 앉고 일어서는 움직임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로 작동하는 센서를 디자인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씰(Seal)’이라는 이름의 센서였죠. 완성된 씰을 서울대 중앙도서관 열람실 의자에 부착해 스탠드와 연동할 계획이었습니다. 누군가 앉으면 불이 들어오고 일어서면 불이 꺼지는 방식이었죠. 3개월 간 커널로그 구성원들과 씰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교내에 제품을 설치하는 것까지 함께 했어요.”


외주 인력으로 참여한 프로젝트였지만 감흥이 남달랐다. “제가 디자인한 제품을 학생들이 실제로 이용하는 모습이 신기했어요. 에이전시에서 근무할 때는 작업물을 클라이언트에게 전달하기만 하면 끝이었거든요. 제품 탄생부터 소비자에게 제품이 닿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함께하는 스타트업에 매력을 느꼈죠. 프로젝트 후에도 인연을 이어가다 2018년 6월 정식 직원으로 입사하게 됐어요.”

출처: 커널로그
2018년 커널로그에 합류한 함 디자이너는 입사하자마자 신제품 구상에 들어갔다.


합류 후 커널로그 구성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신제품 구상에 들어갔다. “신제품에 반영돼야 하는 두 가지 요소부터 고려했어요. 회사의 핵심 기술인 압전소자를 활용하면서, 사람들에게 편의를 줘야 했죠. 씰 처럼 몸무게로 누르는 힘을 이용하는 방식도 좋지만, 보다 간단한 동작으로 제품을 작동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나섰어요.


손가락으로 누르는 힘만으로 에너지를 발생시키면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스위치와 멀티탭 형식이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곧바로 잠들고 싶은데 불이 켜져 있어서 억지로 일어났던 경험, 누구나 있잖아요. 선풍기를 끄기 위해 잠에서 깬 기억도 한 번쯤 있을테고요. 간단한 조작으로 먼 거리에 떨어진 기기를 제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커널로그
제품 실험 모습
출처: 커널로그
제품 기획 단계에서 다양한 모양의 테스트 제품을 제작했다.


2018년 배터리가 필요 없는 스위치와 멀티탭 개발에 돌입했다. “스위치 이름은 ‘비스킷’이에요. 작고, 예쁘고, 손에 잘 들어온다는 뜻이죠. 비스킷과 짝궁인 멀티탭은 '버터'예요.”


비스킷 하나로 버터에 연결된 여러 기기를 제어할 수 있다. “비스킷은 손가락으로 누르는 힘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기 때문에 별도 배터리 없이 버터에 기기 제어 신호를 보낼 수 있습니다. 10m 이내면 어디서든 가능해요. 당연히 충전할 필요도 없고요. 편리함과 에너지 절약 두 마리 토끼를 잡은 거죠.


비스킷엔 닷과 대시라는 버튼이 있는데요. 이 두 개 버튼의 누름 조합을 이용해 버터에 연결된 기기를 제어해요. 예를 들어 닷 1번, 대시 2번 이런식으로요. 총 14개 조합을 만들 수 있어요. 버터 1구당 저장 가능한 조합 수는 8개고요. 버튼 조합을 등록한 후 버터에 연결된 스탠드, 가습기, 공기청정기 등의 기기 전원을 비스킷으로 제어할 수 있습니다.”

출처: 더비비드
비스킷(노란색 스위치)와 쿠키(흰색 스위치)를 설명하는 함 디자이너


함 씨는 사용자 편의와 트렌드를 주안점에 두고 제품을 디자인했다. “멀티탭은 '생김새가 다 거기서 거기고, 못 생겼다'는 인식을 바꾸고 싶었어요. 문제는 플러그 선 때문이에요. 멀티탭을 책상 위에 올려놔도 플러그 선이 보이지 않게 플러그 소켓을 옆에 뒀어요. 스위치의 경우 벽에 붙여 쓸 수 있는 둥글 납작한 모양으로 디자인했고요. 버터와 비스킷의 색상은 요즘 인테리어 트렌드인 우드, 화이트톤과 잘 어울리는 흰색과 노란색으로 결정했습니다.”


팀원들이 합심해서 제품 개발을 끝냈더니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제품 양산 비용이 예상보다 많이 나왔던 것이다.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어요. 들어가는 부품 수도 많았고요. 하지만 모두 엎고 처음으로 돌아가는 건 큰 손실이라고 판단해서 일단 제품을 출시해보기로 했습니다.”


◇양산 비용 절감 위해 엔지니어링 관여

출처: 커널로그
제품 실험 모습


2019년 3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버터와 비스킷을 첫 공개했다. 당시 2800만원가량을 판매했다. 이후기능을 개선해 2019년 10월정식 판매를 시작했다. 


양산 비용을 낮추는 방법을 찾는 데에도 주력했다. “공정 과정을 단순화하는 방향으로 두번째 스위치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디자이너였지만 제품 엔지니어링 과정에도 관여했어요. 제품 외형뿐만 아니라 회로의 위치, 조립, 생산 과정까지 고려해 두번째 스위치를 설계했죠. 부품 수를 줄이고 버튼은 두개에서 하나로 통합했습니다. 덕분에 공정 비용과 제작 기간을 줄일 수 있었어요.”


2020년 8월 기존의 비스킷을 개선한 스위치 ‘쿠키’를 출시했다. “버튼을 하나로 만드니 훨씬 사용하기 쉬워졌다는 피드백을 받았습니다. 한 디자인 페스티벌에 참가해서 제품을 시연했더니 소비자들이 스위치에 건전지가 필요 없다는 점에서 열광하더군요. 편한데 예쁘기까지 한 아이템이 있다는 소문이 알음알음 나면서 판매처를 늘려 나갔습니다. 웬만한 오픈마켓 뿐만 아니라 다양한 온라인몰에서도 저희 제품이 판매되고 있어요. 비스킷, 버터, 쿠키는 지금까지 1만개 넘게 팔렸습니다.”


◇무선 제어 전구 출시…에너지 하베스팅 기술 보급화 목표

출처: 커널로그
비스킷, 버터, 쿠키만 있으면 여러개의 기기를 손쉽게 제어할 수 있다.


함 씨는 제품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제품의 용도와 본질을 정립하면 이미지는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만약 깊게 고민하지 않았더라면 기존의 네모난 리모컨과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을 했겠죠. ‘간편하면서도 예뻐야 한다’는 철학을 지키기 위해 곡선을 많이 썼고요. 이용자가 직관적으로 기기를 제어할 수 있도록 한, 두개의 버튼만 적용했습니다.”


스타트업 디자이너에게 꼭 필요한 미덕으로 ‘다른 구성원의 입장을 잘 이해하는 것’을 꼽았다. “엔지니어는 어떻게 일하는지, 이 제품이 어떤 취지로 기획된 건지, 경영자의 입장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의사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큰 회사에선 이런 고민을 대신하는 사람이 있지만 규모가 작은 스타트업은 그렇지 않으니까요. 저는 항상 좋은 디자인, 엔지니어링, 금전적 문제, 생산성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해서 작업합니다. 그래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어요.”


앞으로도 에너지 하베스팅 기술을 필두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일 계획이다. “오는 4~5월 중에 무선 제어 전구가 출시됩니다. 올 여름 전에는 태양광 기술을 적용한 신제품도 내놓을 예정입니다. 제품군을 점차 넓히면서 궁극적으로는 에너지 하베스팅 제품 사용을 보급화 하고 싶습니다. 회사 이름 ‘커널로그’는 연결(connection)과 아날로그(analog)라는 단어의 합성어예요. ‘아날로그 감성으로 세상을 스마트하게 만들겠다’는 뜻이죠. 이름처럼 기술 장벽을 낮춰 많은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전달하겠습니다.”


/진은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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