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보는 일본, 미래를 보는 한국

조회수 2021. 03. 29. 12:0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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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은 메뉴얼을 던지는 일본, 가이드라인 없이 성과를 내라는 한국

1.

일본은 자타가 공인하는 보수적인 나라다. 나는 일본에서 10년 이상을 살았는데, 알게 모르게 끝없이 세뇌적으로 흘러나오는 메시지가 있다. 바로 이런 말이다.

변하지 않는 것이 뭐가 나빠?

즉 왜 변해야 하는가, 변하지 않는 것이 더 좋다는 보수적 목소리다. 이 목소리는 영화에서, 드라마에서, 광고에서 전통적으로 계속 강조한다. 마치 세뇌라도 하고 싶은 것처럼.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변해온 나라라고 부를 수 있는 한국 사람에게는 때로 상쾌하게 들리기도 하는 메시지다. 한국의 변화가 불러온 결과 중 하나가 엄청나게 낮은 출산율이다. 출산율이 낮은 걸 설명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분명한 한 가지는 한국의 속도를 쫓아가기 버겁다는 것이다.


한국처럼 예측 불가능하고 변화가 빠른 나라에서는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는 공포가 생긴다. 아이들을 그냥 키우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엄청난 돈을 들여서 아이를 키우고,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야 한다. 제자리에 서 있으면 현대에 던져진 원시인처럼 쓸모없는 인간이 될 것이다.

2.

일본에는 ‘연호’가 있다. 년도에 이름을 붙여 부르는 것이다. ‘쇼와 시대’는 1926년에서 1989년까지를 말한다. 이 시기는 현재 일본의 노인들이 태어난 시기이며, 일본의 마지막 황금기가 끝나는 시기다. 일본은 그 이후로 쇠락하여 ‘잃어버린 30년’이라는 말까지 탄생했다.


일본의 노인들은 하염없이 쇼와 시기를 그리워한다. 일제시대나 패전 이후의 가난하던 시절을 미화하는 셈이다. 그 시절이 살기 힘들었다고 말하면서도, 그 시절이야말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던 시대였다고 말한다. 그래서 지금의 일본은 당시의 일본을 안간힘을 다해 유지해 놓은 모습에 가깝다. 30년은 낡은 것이다.


이 점이 한국의 정서와 다른 점이다. 한국은 설사 보수라고 불리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과거에 대한 향수 따위는 별로 없다. 노인들이 자신들의 청춘을 그리워하는 모습은 있지만,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은 아직 최고 영광의 시대에 도달하지 못했다.


한국도 젊은이들이 좌절한다. 하지만 오히려 시대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좌절에 가깝다. 일본은 너무 많은 매뉴얼을 던지며 따라 하라고 명령하는 사회라면, 한국은 아무 가이드라인도 없이 성과를 내라고 요구하는 사회다. 한국인들은 공부할 것이 너무 많다. 끝없이 새로운 것이 등장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부담은 젊은 세대에게 뒤집어 씌워진다.

3.

일본은 일본이 원하는 대로 되어가고 있다. 노인들이 그토록 원하고 그리워하던 쇼와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 과거가 그렇게 좋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런 미화를 만들어 낸 쇼와 세대의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무력해져야 일본에는 새바람이 불 수 있을 것이다.


한국도 한국이 원하는 대로 되어 가고 있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먼저 미래에 도달하는 곳이 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개혁의 피로를 누구보다도 빨리 느끼고 있다. 파괴하고 새로 짓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다. 어쩌면 꿈꾸던 미래를 너무 미화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미래가 그렇게 좋기만 한 것은 아닐 수도 있다.


그곳에 도달하는 사람은 아주 소수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낙오하는 것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한국의 자살률은 이미 최고 수준인데, 정확히 따져 보면 노인의 자살률이 말도 안 되게 높다. 그들은 새로운 한국에 적응하기를 실패한 것이다.


원문: 나를 지키는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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