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드라마의 막장 역사왜곡 논란 속 우리가 놓친 한중 외교사의 한 장면
사상 초유의 드라마 폐지
사태를 일으킨
<조선구마사>
그뿐 아니라 한복, 김치, 삼계탕...
온라인에서 쟁점화되고 있는 문제들까지,
지금 여기는 '역사왜곡' 논란으로 뜨겁다.
역사왜곡 이슈의 이면에는 중국의 동북공정과 패권 추구에 대한 반감이 숨어 있다. '패권'을 둘러싸고 이웃 나라가 드러낸 야욕과 막장으로 치달으며 끊임없이 쏟아지는 이슈들 속에서 과연 우리는 한중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한국사를 쭉 훑다 보면 조선 시대 역시 이웃한 강대국과의 이러한 문제에 민감할 수 밖에 없었다는 사실을 쉽게 알 수 있다. 청나라의 패권 추구가 조선 사람들의 깊은 반감을 샀는데, 우리는 그 원인을 '병자호란'에서 찾을 수 있다.
17세기 초, 기존 질서에서 위계의 맨 아래에 있던 오랑캐는단숨에 위계의 꼭대기로 뛰어오른다. 병자호란은 오랑캐의 나라 ‘청’이 중국 땅을 정복하는 과정에서 군신 관계를 요구하며 조선에 침입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군신 관계를 단호하게 거부하던 조선의 국왕 인조는 끝내 한강 남안에 위치한 삼전도에서 청 태조의 아들이자 2대 황제인 홍타이지에게 *삼궤구고두를 올리고, 조선은 청나라의 신하로 전락하고 만다. 이때 홍타이지는 청군의 철수 이후 조선이 이행해야 할 의무사항을 열거한 국서를 보내며, 조선에 사행의 의무를 요구한다. *연공 납부는 물론이거니와 때마다 *표문을 올릴 사신을 파견하라는 것이다.
*삼궤구고두(三跪九叩頭)청대에 시행한 황제에 대한 경례법
*연공(年貢)
승전국이 패전국에 일방적으로 부과한 일종의 전쟁 배상금
*표문(表文)
신하가 황제에게 올리는 일정한 격식을 갖춘 문서
치욕적인 패전에서 사대 외교까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반(反)청 의식은 지배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1780년 열하에서
조선과 청나라의 관계에 있어
전례 없는 특별한 사건이 일어난다.
반청 의식과 사대 외교라는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현상의 공존을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봐야 할까?
지금 우리가 그 해답을 찾기란 어렵겠지만, 1780년의 열하에서 일어난 사건은 2가지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일 테다.
첫째, 몇 세대가 지날 만큼 시간이 흐른 뒤 달라진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왕위에 오른 젊은 조선의 국왕 정조
둘째, 제국 건설을 위해 폭력과 전쟁으로 점철된 과거의 이미지를 개선하고 전무후무한 성세를 자랑하고자 한 청 황제 건륭
양국 관계의 증진과 격상을 이끌었듯,
지금의 한중 관계에서도
각자의 전략에 따라 호혜적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