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지로 그려내는 '더스트 아트' 찰떡 소화한 배우

조회수 2021. 04. 28. 15:5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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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트맨' 배우 우지현

'더스트맨'의 태산(우지현)은 집 없이 떠돌며 먼지가 있는 곳에 그림을 그린다. 입김 한 번에 날아갈지 모르는 먼지에 손으로 길을 내어 그리는 과정은 그 결과물보다도 경이롭다. 먼지를 재료 삼아 그림을 그리는 태산의 그림은 잿빛 유리와 차체를 더 이상 먼지 낀 ‘죽은 공간’으로 칭할 수 없게 만드는, 세상에 단 하나뿐인 창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뚜렷하게 파악하고 연기하길 원하는 배우 우지현의 결정이, 길 위에서 사는 생활을 선택한 태산을 통과해 영화로 완성됐다 어느 자리엔 두툼하게 내려앉아 그 자리를 지키고, 종종 가볍게 흩날려 공기 중 구석구석에 머무는 먼지, 그리고 태산의 속성은 배우 우지현에게도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지난해 말 영화 '겨울밤에' 극장 개봉 이후 몇 달 만에 주연작인 '더스트맨'이 개봉했다. 소감이 궁금하다. 일상을 어떻게 보내고 있나?


지금은 영화를 선보이는 마지막 단계에 접어들어 기쁘고 설렌다. 부담도 있었지만, 특히 극장에서 시사회를 하고 관객들을 만나는 게 좋다. 민감한 시기지만 모두 건강하게, 무리 없이 개봉이 잘 진행되면 좋겠다.

미디어에서 홈리스를 주인공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기도 하고, 주인공이라 해도 홈리스에서 벗어나는 것이 서사의 결말로 제시되곤 한다. '더스트맨'은 그것만을 결론으로 보지 않는 듯해서 좋았다. 이런 이야기의 진행은 어떻게 다가왔나?


촬영 전에도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태산의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시나리오가 좋았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만든 상세한 설정이 ‘도구’로 사용되지 않고, 인물이 겪는 온전한 경험과 삶의 일부로 다뤄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먼지라는 소재의 특성에도 닿아 있는 것 같다. 또 중요하게 얘기한 건 홈리스 생활을 끝내는 걸 결론으로 제시되면 안 된다는 거였다. 홈리스 생활은 태산이 겪는 과정의 일부고, 그 안에서 ‘모아’(심달기)를 만나 삶의 방향을 긍정하게 되는 것이지, 이후 태산의 생활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보여주는 건 영화 안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봤다. 

영화에서 태산을 비롯한 인물들이 집이 아닌 공간에서 생활하며 따뜻한 음료를 마시거나, 아프지 않게 서로를 챙기는 등 일상을 꾸려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감독님이 준비를 굉장히 많이 하셨다. 논문, 수필집, 영상 자료 등을 모으고 필요한 사람들과 공유했다. 만약 잘 봐주셨다면, 감독님이 준비를 열심히 하셔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웃음) 우리 영화가 홈리스분들의 생활을 왜곡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이야기에 녹여낼 방법에 대해서 여러 차례 논의했다.

태산은 먼지에 그림을 그리며 잊고 있던 감각들을 되살린다. 더스트 아트는 손에 어떻게 힘을 주는지에 따라 선의 느낌이 달라지는데, 이런 장면에서 보여주려고 한 것은 무엇인가?


시나리오를 읽고 태산이 ‘핑계 대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에게 남은 상처나 죄책감을 스스로 감당하기 위해 선택한 생활의 방식이 홈리스라고 봤다. 그러니까 사실 태산은 태산 그대로 별문제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중이다. 그러다 모아를 만나 그간 애써 눌러왔던, 꺼내려고 그다지 노력하지 않았던 삶의 의지나 그 안의 유한한 가치를 다시 느낀다고 생각했다. 심달기 배우가 연기한 모아의 에너지나 싱그러움, 한 사람을 편견 없이 대하는 마음 등이 두 사람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끼치지 않았나 싶다. 

먼지는 한 번의 실수로 흩어질 수 있고, 건드리지 않으면 영원히 쌓여 있는 게 가능한 존재다. 이런 특성을 활용한 더스트 아트를 어떻게 이해했나?


사람은 위태로울 때도 있고, 자신을 무가치하게 느낄 때도 있지 않나. 그때 먼지로 비유되는 ‘우리’가 짧은 삶 속에서 즐거움을 찾고, 타인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생소할 수 있는 분야인 더스트 아트를 영화의 주요 소재로 소개하는 것이 좋았다. 러시아 작가 프로보이닉 님과 한국 작가 이자윤 님이 협업해주셨다. 준비하는 단계에선 이자윤 작가님의 도움을 받아 더스트 아트를 익혔고, 직접 그려야 하는 건 시안을 받아 연습하고, 현장에서 짬 날 때 구석에서 그려보곤 했다. 태산과 모아가 재회하는 장면에서 등장하는 부엉이 그림은 미리 연습을 많이 했다. 

SNS에 종종 업로드하는 짧은 만화는 취미로 그리는 건가? '더스트맨' 팬 아트 응원 만화도 재미있었다. 왠지 태산의 모습도 떠올랐다. 


진짜 전 잘 그리는 게 아니고….(웃음) 도준 역의 강길우 배우가 '더스트맨' 팬 아트 공모전에 참여했는데, 그림을 너무 잘 그린 거다. 똑같이 그림으로 참여하면 안 되겠다 싶어 만화로 도망을 쳤다. 올리는 만화들은 한번 해볼까 싶어 몇 번 그렸던 것들이다. 소재 같은 건 메모장에만 적어놨다. 또 그려달라는 요청이 그렇게 많진 않아서…(웃음) '더스트맨' 관객 1만 명 공약으로 만화 그리기를 정해둔 상황이긴 하다. 많이 봐주시지 않더라도 나중에 기회가 되면 영화 촬영장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구동구’ 역으로 출연하고 있는 tvN '마우스'는 장르물의 성격이 강한데,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장르별로 다른 흐름 속에서 최적의 포지션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잘 아는 상태에서 연기하고 싶다. 맡은 배역이 어떤 기능을 해야 극에 도움이 되는지, 어떻게 해야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내 몫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위치나 역할을 고민하면서 막힐 때는 없나?

 

많다. 친구들에게 물어보기도 하는데, 결국 스스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방향으로 밀고 나가는 것 말고는 방법이 딱히 없는 것 같다. 하루는 촬영 후 ‘오늘 좀 잘했다!’ 하고 생각하면서 개운한 마음으로 돌아오고, 또 하루는 ‘왜 그렇게 했지?’ 하면서 패배한(웃음) 사람처럼 돌아온다. 왔다 갔다 한다.

'더스트맨'을 어떤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가? 


스스로와 다투고 계신 분, 자신이 부족하게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한 분들이 영화를 보며 조금이라도 위안을 얻는다면 큰 영광일 것이다. 꼭 그러지 않더라도 즐겁게 봐주셨으면 좋겠다.

글. 황소연

사진. 박기훈

전문은 빅이슈 249호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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