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전기차 시대에 부활하는 코치빌더

조회수 2021. 04. 19.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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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보급이 불러올 자동차 만들기의 변화
출처: 현대자동차
전기차 전용 플랫폼

최근 들어 예상을 뛰어넘는 빠른 속도로 전기차가 보급되고 있습니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전기차는 자동차 회사의 연구개발 부서에서나 이야기 되는 남의 일만 같았습니다만, 이제는 우리 주위에서 전기차를 만나는 것은 일상적인 일이 되어버렸을 정도입니다. 


해외의 전기차 전문회사인 테슬라라는 브랜드를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이고, 전통적인 내연기관 자동차를 만드는 대부분의 메이커가 당연하게도 전기차 하나쯤은 라인업으로 갖추고 있을 정도입니다. 정부도 보조금을 지급하거나, 충전 인프라를 확산시키는 등 전기차 보급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죠.


1회 충전 후 주행가능거리, 가격, 충전 인프라, A/S, 배터리 화재, 폐배터리 문제 등 아직은 해결할 일이 여럿 남아있습니다만, 지금 같은 기술발전의 속도라면 가까운 시일 내에 이런 문제들은 쉽게 해결될 수도 있겠습니다.

출처: Audi
다양한 전기차 전용 플랫폼

이렇게 전기차 보급이 빨라지면서 우리나라의 현대자동차와 테슬라, 폭스바겐, 아우디 등 각 자동차 메이커들은 물론이고, 기존에 자동차를 만들지 않았던 여러 회사도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라는 것을 만들어 발표합니다. 자동차의 플랫폼을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쉽게 풀어 설명하자면 '동력원과 구동장치를 갖춘 자동차의 하부 베이스 모듈' 정도로 이야기하면 될 듯합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플랫폼은 배터리, 모터,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을 갖추어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기본 요소가 집적화된 자동차 하부 시스템이라는 뜻인데요. 사진처럼 이 플랫폼 위에 사람이 탑승하거나 짐을 적재하는 공간을 개별적으로 디자인하여 결합하면 경제적으로 다양한 차종의 개발이 가능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자동차마다 별도의 배터리, 모터, 조향장치, 제동장치 등을 따로 설계하여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준이 되는 플랫폼을 만들고 이 플랫폼을 여러 차종이 공유하게 되면 생산효율이 높아지고 비용은 줄어들게 되죠. 그 위에 결합되는 차체 부분(바디 또는 캐빈)은 기능과 목적에 따라 다양하게 디자인하여 결합할 수 있으니 개발 시간도 단축되고 고객 맞춤형의 오더 메이드 생산도 쉬워지게 됩니다.

출처: REE Automotive
OE 공급을 전제로 개발된 전기차 전용 플랫폼

이스라엘의 한 기업은 자동차가 아니라 전기차 전용의 플랫폼만을 개발해 세일즈한다는 전략을 세우고 플랫폼을 발표하기도 했는데요. 21세기 전기차의 본격적인 보급과 함께 가장 큰 화두 중의 하나는 바로 이 플랫폼이라는 단어가 아닌가 싶습니다. 


신뢰할 수 있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공급될 수 있다면, 자동차 산업에는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동차와는 관련이 없었던 많은 회사가 모터나 구동장치, 배터리 등에는 신경 쓰지 않고, 디자인이나 기능에 특화된 자신만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차체를 제작하고 입맛에 맞는 플랫폼을 선택하여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자동차를 만들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 수천 명의 연구, 생산 분야의 직원이 있어야 하고 수백억 수천억 원을 들여야 자동차 하나를 만들 수 있다는 기존의 상식을 뛰어넘어 2~3명 정도 소수의 사람이 모여 자동차 회사를 만들 수도 있고, 법률이 허용한다면 개인이 직접 자신만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도 가능해질 수 있습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3D 프린팅으로 만들어진 전기차

최근 미국의 한 회사는 3D프린터로 만든 자동차를 선보인 바 있는데요. 금형을 만들어 차체 부품 하나하나를 찍어내고 용접을 하고 조립하고 도장하는 일반적인 자동차 제작 공정이 아니라, 컴퓨터와 3D프린터만으로 자동차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물론, 플랫폼은 미리 구성되어 있어야 하지만 말입니다.


앞으로 소비자가 자동차를 살 때에도, 공장에서 미리 생산된 자동차에서 옵션 몇 가지를 선택해 사는 것이 아니라,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수십 종의 자동차 디자인 중에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 하나를 선택하면, 불과 몇 시간 안에 판매점 뒤에 있는 전용 제작실에서 나만의 자동차가 완성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물론, 아직 3D프린터로 만들어진 제품의 강도나 내구성 등에 대해서는 일반 도로를 달릴 수 있는 정도의 자동차를 만들기는 쉽지 않고 법률적으로도 넘어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만, 개념적으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출처: Wikimedia Commons
1915년경 호주의 마차 코치빌더 모습

전기차의 본격적인 보급과 함께 대두되고 있는 이런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자동차 제작방식은 사실 최근의 일이 아닙니다. 무려 수백 년 전, 마차를 타고 다니던 시절부터 있었던 코치빌더(Coachbuilder)가 이런 일들을 해왔는데요. 전기차 전용 플랫폼 이야기가 나오는 21세기가 되면서 역사가 되풀이 되는 셈입니다.


헝가리의 코치(Kocs)라는 지역에는 손기술이 좋은 장인들이 모여 혁신적인 기술을 탑재한 우아한 모습의 마차를 만들었고, 유럽 각국의 부유층이나 왕실의 주문이 몰려들었습니다. 코치빌더라는 단어는 이런 역사에서 유래하였고, 이후 마차가 사라지고 자동차가 출현하게 되면서도 사람이 탑승하는 공간을 만드는 사람과 기업을 코치빌더라 부르게 되었죠.

출처: Boybentley via flickr
영국의 유명 코치빌더 중 하나인 제임스 영의 옛 모습

자동차 산업이 대량생산이라는 키워드에 지배되기 전까지 자동차 메이커는 엔진, 구동장치, 동력장치 등을 가진 섀시 반제품(롤링 섀시)을 만들고, 이 롤링 섀시를 코치빌더에게 제공해 목적과 기능에 맞는 다양한 차체를 만들어 결합하게 했습니다. 롤링 섀시는 내연기관 시대의 플랫폼을 일컫는 말로 전기차 전용 플랫폼과 유사한 개념입니다. 


영국의 제임스 영, 뮬리너 등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코치빌더들인데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도 코치빌더 형태로 자동차 생산을 시작하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영국 재규어는 당시 대표적 대중차였던 오스틴(Austin)의 세븐(7)이라는 차의 보디를 럭셔리하게 바꿔 중상류층을 위한 자동차를 만드는 것으로 자동차 사업을 시작했죠.


백야드 빌더나 카로체리아 등의 소규모 생산자가 많은 영국 및 유럽 각국에서는 타 회사의 베이스 차량을 가져와 독자 디자인의 차체를 제작해 결합하는 경우도 많은데요. 이런 방식으로 자동차를 제작하는 것은 자동차의 A부터 Z까지의 모두를 개발하는 것에 비해 비교적 쉽기 때문에,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의 자동차 제작회사가 탄생하고 사라지기를 반복해 왔습니다.


21세기 전기차 전용 플랫폼의 본격적인 보급은 100여 년 전부터 40~50년가량 자동차 산업을 지배했던 이런 현상을 다시 한번 일어나게 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출처: Bentley
코치빌딩 방식으로 차체를 만든 벤틀리 엠브리코스

클래식카를 사랑하는 사람 중에는 획일화되는 것도 같고 운전하는 재미도 없어지는 전기차 시대의 자동차를 달가워하지 않는 분이 많이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소리도, 진동도, 냄새도 내연기관 자동차를 운전할 때만큼 짜릿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일반적이니까요.


하지만, 수백여 종에 달하는 다양한 플랫폼과 저마다의 특징과 장점이 있는 수천의 보디 메이커(코치빌더)가 만들어 낼 수 있는 다양성의 향연은 전기차 시대가 우리에게 선물하는 큰 축복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기대하게 됩니다.

글 김주용 (엔터테크 대표, 인제스피디움 클래식카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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