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 드라이빙 메모리 (4) - 캐딜락 드빌 컨코어

조회수 2021. 04. 19. 17:46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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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차에 대한 편견에 좌초한 캐딜락의 기함

프롤로그 - 미국 차들이 한국 시장에 진출할 당시의 시행착오

1970년대 초반, 두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이 가져온 자동차 생태계의 변화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어진 미국 자동차 산업의 우월적 지위로 이어졌다. 그나마 미국차들은 세계 최대 규모 단일시장이었던 내수 덕에 근근이 버틸 수 있었지만, 1980년대 들어서는 텃밭까지 수입차들에 밀리면서 생존의 위기를 맞고 있었다.

출처: Ford
1980년대 미국 자동차 업계의 위기의식을 반영했던 포드 토러스

미국은 위기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았다. 미국 시장에서 일본 차가 빠르게 늘어가는 원인을 일본 메이커들의 높은 품질과 생산성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분석 대신 일본 엔화의 가치가 너무 낮기 때문이라며 환율 전쟁을 벌여 거의 강제로 엔화 환율 조정을 끌어냈다. 엔화의 교환가치가 올라가면서 주춤했던 일본 차의 공세에 뒤이어 한국 차들이 몰려들자, 미국은 다시 한번 한국을 공격하기로 했다. 

미국이 내세운 전략은 무역 균형론이었다. 매년 수백만 대를 수출하는 나라에서 자동차 수입을 법적으로 막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논리로 마침내 우리나라의 자동차 수입제한을 풀어냈다. 하지만 수입차 개방의 열매는 유럽 차들이 다 가져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미국 차의 낮은 상품성이라는 근본적 원인을 외면하고 높은 배기량, 다기통 엔진 그리고 휠베이스(2,750mm) 기준으로 매겨지던 우리나라의 자동차세 기준을 걸고넘어졌다. 미국은 배기량 단일기준의 자동차 세제를 만들도록 강요했고 우리 정부는 이런 요구를 들어주었다.  

물론 미국 차 제조사들도 70년대부터 비롯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하긴 했다. 하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을 읽지도 못했고 그런 흐름을 따라갈 차를 내놓지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차들은 경제성을 내세운 다운사이징에 힘썼다. 하지만 노력의 수준은 한심했다. 배기량 6,000cc 내외의 8기통 엔진을 5,000cc 내외로 바꾸는 수준이었고 그간 미국 시장에서 인기가 없었던 중형차의 비중을 높이는 정도였다. 소형차의 경우 크기만 소형일 뿐 유럽 소형차나 일본 소형차에 한참 뒤지는 조악한 수준이어서, 제휴 관계에 있는 한국산 소형차를 들여와 소형차 라인업을 꾸리는 수준이었다. 

출처: GM
국내 진출에 처참하게 실패한 캐딜락 드빌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에 첫 도전으로 투입된 미국 차가 바로 캐딜락이었다. 물론 포드 계열의 머큐리 세이블도 들어왔지만, 파트너인 기아의 OEM 형식으로 수입되어 기아 세이블이란 이름의 국산차(?)로 데뷔했다. 그나마 세이블은 ‘국산 차인 듯 국산 차 아닌 듯’한 수입차로, 그리고 3,000만 원에 못 미치는 저가격(?)으로 시장에 자리 잡았지만 캐딜락은 당시 대우상사를 통해 정식 수입차로 드빌을 내놓아 힘겨운 수입차 시장에 데뷔했다. 

캐딜락의 톱타자였던 드빌은 80년대의 어설픈 다운사이징 캐딜락으로 성능이나 품위는 물론 안전성조차 뒤떨어진, 그래서 상품성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는 차였다. 결국 ‘미국을 대표하는 고급차’를 기대했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비친 캐딜락 드빌은 판매는 물론 캐딜락의 이미지마저 깔끔하게 말아먹고 철수했다. 

첫 신세대 캐딜락, 드빌 컨코어

첫 실패 이후, 캐딜락은 드빌 컨코어(이하 컨코어)를 내세워 1993년에 다시 우리나라 수입차 시장에 돌아왔다. 세계적 자동차 판매 회사 인치케이프를 통해 롤스로이스, 재규어 그리고 미국서 생산된 토요타 아발론과 함께 재도전에 나선 셈이었다. 

출처: GM
신세대 캐딜락으로 등장한 캐딜락 드빌 컨코어

몇 년 전 실망만 안겨준 드빌의 기억이 남아, 별 기대 없이 시승을 시작했다. 이미 외신을 통해 캐딜락의 변화를 접하긴 했지만 이미 세계 자동차 트렌드에서 뒤처진 미국 차가 변신을 해봐야 거기서 거기라는 선입관이 여전했기 때문이다. 

처음 마주한 컨코어의 스타일링은 확실히 달랐다. 차체가 5m를 넘는 차라곤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W140)와 BMW 7시리즈(E32) 밖에 없던 시절에 5,326mm라는 긴 차체는 확실히 미국 차다웠다. 여기에 격자무늬의 방패형 그릴과 세로형 핀 타입 테일라이트라는 캐딜락의 디자인 공식을 더한 차체는 실제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여기에 휠베이스는 2,890mm로 비교적 짧아, 지루하게 느껴질 만큼 긴 오버행이 미국 차 느낌을 더욱더 강하게 풍겼다. 

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미국 차의 유럽 차 따라하기가 컨코어에서도 여전히 드러났다. 분명 80년대 미국 차들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스타일링이었다. 

출처: GM
컨코어의 스타일링은 1980년대 미국 차들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실내로 들어서자 디지털 계기가 자리한 대시보드와 가로로 길게 퍼진 우드 트림에 가죽으로 감싼 스티어링 휠과 시트가 눈에 들어왔다. 특히 시트는 불할형 벤치시트가 두줄 놓여 미국차 다운 6인승 배치에 컬럼 마운트 시프트 레버까지, 미국 차의 구조에 유럽 고급차의 꾸미기 요소를 잘 결합했다. 

드러난 모습은 확실히 신세대 캐딜락이었다. 여기에 OHV 엔진을 고집하던 캐딜락이 심혈을 기울여 개발했다는 '노스스타' V8 4,564cc DOHC 엔진을 얹고 4링크 타입이던 뒤 서스펜션을 더블 위시본으로 바꾸고 노면 감응식 댐퍼를 더했다. 섀시 구성 또한 신세대다운 모습이었다. 

운전석에 올랐다. 운전 자세는 전형적인 미국 대형세단의 느낌이 여전했다. 시동을 걸자 조금 거친듯한 미국산 8기통의 느낌과는 조금 다르다. 유럽산 8기통 엔진처럼 아주 조용하고 매끄러운 건 아니지만 역동감과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반응을 보여준다. 확실한 건 DOHC 구조의 노스스타 엔진이 이전 미국산 OHV 엔진의 느낌을 일부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주차장에서 나와 용인 스피드웨이로 향했다. 도심 구간을 달리면서도 큰 차체에 대한 부담은 전혀 없다. 시야도 좋고 각 잡힌 차체 덕에 너비 2m 가까운 차체로도 복잡한 구간에서 신경 쓰이는 부분이 없다. 액셀러레이터 반응도 좋다. 벤츠와 BMW의 중간 어디 즈음의 반응이나 벤츠 쪽에 가깝다. 그렇다고 운전자가 갑갑함을 느낄 정도의 둔중함은 아니다. 

출처: GM
컨코어의 승차감은 부드러움이 두드러졌지만 고급스러운 느낌이 있었다

고속도로에 올라 시속 100km 정속주행에 들어가니 부드러움이 두드러진다. 이 부드러움 역시 80년대 미국 차와는 다른 부드러움이다. 마치 시트로엥 같은 프랑스 차의 승차감이다. 어떤 진동도 하체에서 다 걸러낸다. 그래서 코너링에서 차체가 쉽게 기울어진다. 그러나 명확한 한계가 있어 기울어지면서도 안정감이 느껴진다.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그간 미국 차들을 타고 느꼈던 코너링에서의 불안감이 컨코어에서는 편안함으로 바뀐다. 독일식 견고함에 익숙한 사람에겐 어색한 부드러움이지만 확실히 달라진 신세대 미국 고급차의 느낌을 만들어 냈다. 

1950~60년대의 영광스러웠던 캐딜락의 모습을 되찾겠다는 캐딜락의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본 캐딜락이 바로 컨코어였다. 

에필로그 - 실패했음에도 과거 미국 차의 좋은 시절을 생각케 한 차

미국 차만의 색깔 그리고 미국 고급차의 대표인 캐딜락만의 모습을 새롭게 선보인 컨코어는 선배 드빌만큼 끔찍한 실패는 아니었지만 우리나라 수입차시장에서는 또 하나의 실패였다. 우리나라 고급차 시장에는 독일 차가 아니면 입장할 수 없을만큼 독일 기분이 확고한 시절이었다. 

중년의 부유층 오너드라이버를 위한 고급차였던 컨코어는 차체만 클 뿐 국산 고급차들보다 못한 편의장비(특히 뒷좌석)에 세금만 비싼 큰 배기량의 엔진을 가진 기름 먹는 하마 취급을 당했다. 컨코어의 필자 이용연비는 시내 6~7km/L, 고속도로 10km/L 정도로 당시 현대 뉴 그랜저나 기아 포텐샤 6기통 모델들에 뒤지지 않는 연비를 냈다.

출처: GM
컨코어는 2차대전 후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 차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다

80년대부터 시작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유럽화 움직임은 많은 소비자에게 미국 차가 유럽 차에 비해 열등하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미국 차만이 가지고 있는 편안함과 듬직함 그리고 부담없는 여유로움 또한 높은 가치다. 비록 대다수가 인정하진 않지만....

지구온난화라는 환경적 재앙 앞에 자동차의 방향이 친환경이라는 하나의 목표로 향하면서 점점 자동차의 국가적 색채가 사라지고 있는 요즘. 돌아보면 27년 전 등장했던 캐딜락 컨코어는 제2차 세계대전 후 수십 년간 세계를 이끌어 왔던 미국 차의 모습을 되돌아보게 해주었던 차다.

글 한장현 (자동차 칼럼니스트, 대덕대학교 자동차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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