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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트로피 하나는 꼭 가져갈 실화 영화

조회수 2021. 4. 22. 11: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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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자의 영화영수증]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Judas and the Black Messiah, 2021)
글 : 양미르 에디터
출처: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의 스포일러(실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는 1990년 1월 방영된 다큐멘터리, <아이즈 온 더 프라이즈 2>에 출연한 윌리엄 오닐의 증언으로 시작된다.

약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영화는 1968년의 미국 시카고를 잡아준다.

'윌리엄 오닐'(키스 스탠필드)은 가짜 FBI 배지를 꺼내 들고 차를 절도하던 중 진짜 FBI에게 체포된다.

FBI 요원 '로이 미첼'(제시 플레먼스)은 '오닐'의 '깡다구'를 높게 보며, 일 하나를 제안한다.

흑표당 일리노이주 지부장으로 활동 중인 '프레드 햄프턴'(다니엘 칼루야)에게 접근해 감시하라는 것.

그렇지 않으면, 감옥에서 7년 동안 수용되어야 한다는 말에 '오닐'은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흑표당은 1966년 대학생이던 바비 실과 휴이 P. 뉴턴이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창설한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이자, 흑인 민권 운동 단체였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일원인 '블랙 팬서'도 이 흑표당(블랙 팬서)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법을 전공한 바 있는 '프레드 햄프턴'은 단순히 흑인 민권에만 신경 쓰지 않았다.

지역사회를 위한 봉사 활동을 진행했고, 흑인 사회뿐 아니라, 히스패닉계, 아시아계, 아메리카 원주민 거주 지역에 찾아가 빈곤층을 하나로 엮어야 한다고 했다.

아이들을 먼저 먹여 살려야 하고, 무료 의료 서비스를 진행해야 한다고 주장한 그는 1969년 '무지개 연합'을 창설한다.

그러나 FBI 국장 'J. 에드가 후버'(마틴 쉰)는 흑표당과 '햄프턴'을 '미국 국내 안보의 가장 큰 위협'이라 불렀다.

1924년부터 죽을 때까지 FBI의 국장으로 활동했던 그는 갱스터와 마피아의 소탕, 제2차 세계대전의 '나치' 스파이 색출, 냉전 시기의 반공 인물 사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와의 갈등 등 여러 공과를 남긴 바 있다.

특히 그는 공포가 주는 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기에 이를 무기화했고, 자신이 적이라 믿었던 이들을 국가의 적으로 돌리고자 했다.

놀랍게도 '후버'가 '햄프턴'을 노린 이유는 '준군사조직'이 아닌 '무료 조식 프로그램' 때문이었다고. (훗날 그가 남긴 메모에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이유로 인해 '오닐'은 '햄프턴'의 감시를 위해 흑표당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된다.

'오닐'은 FBI로 대표되는 기성 미국의 힘과 변화를 추구하는 흑표당의 힘 사이에서 고민한다.

'프락치'라는 의혹을 조금씩 벗어던진 '오닐'은 점차 '햄프턴'으로부터 동화하고, 일리노이주의 지부 보안 책임자까지 오른다.

그리고 1969년 12월 4일 새벽, '블랙 메시아'로 칭송받던 프레드 햄프턴은 경찰에 의해 20대 초반의 나이로 살해당했다.

그렇게 '윌리엄 오닐'은 예수의 제자 중 하나로, 예수를 배신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유다'가 됐다.

경찰이 '오닐'로부터 받은 아파트 평면도를 숙지해 기습을 진행했던 것.

이 암살은 일리노이주의 사회·정치적 변화로 이뤄졌다.

1972년 주 지방검사인 에드워드 핸러한은 축출됐고, 해롤드 워싱턴이 시카고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당선됐다.

흑표당은 1982년 해체됐으나, 도시의 빈민을 위한 지원 활동은 'NGO'를 통해 계승됐다.

훗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 출신인 버락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미국 대통령이 된 것 역시 프레드 햄프턴의 유산과 맞닿아 있었다.

한편, '윌리엄 오닐'은 1973년 경찰의 기습에 연루된 것이 밝혀지면서, 연방 증인 보호 프로그램에 들어갔고 '윌리엄 하트'라는 이름과 함께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1976년에서야 FBI는 '뉴욕 타임스'를 통해 시카고 습격에 가담했음을 인정하고, 1983년 연방 판사는 습격 생존자와 유가족에 대해 185만 달러의 합의금 지급을 승인한다.

윌리엄 오닐은 1984년 증인 보호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시카고로 돌아왔다.

그렇게 FBI에서의 행적을 모두 이야기한 '푸티지 다큐멘터리'의 방영이 끝나고, 윌리엄 오닐은 고속도로에 몸을 던져 사망했다.

이후, 미국 정부가 햄프턴을 살해했다는 내용은 '정규 교육 과정'에선 제외됐지만, 햄프턴이 남긴 것들은 '흑인 민권 운동'에 계속해서 영감을 불어넣었다.

지난해 여름에 들불처럼 번진 '블랙 라이브스 매터' 운동이 대표적인 예겠다.

그렇다면, 영화적인 완성도는 어떨까?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에선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스타일의 연출이 느껴졌다.

특정한 실재 인물 한 명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그 인물이 자신이 몰랐던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서, 마치 예정된 비극이나 사건을 향해 움직이는 캐릭터들의 모습이 깊이 있게 펼쳐진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예를 들면, <무간도>(2002년)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2006년)처럼 주인공이 다른 조직에 침투되는 서사가 있겠고, <아이리시맨>(2019년)처럼 주인공의 '회한'이 느껴지기도 했다.

일부 관객에겐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빈 틈을 서스펜스로 채우는 연출도 유사했다.
한편, '프레드 햄프턴'을 맡은 다니엘 칼루야는 그야말로 <겟 아웃>(2018년) 이후 자신의 연기 정점에 선 모습을 보여줬다.

작품을 위해 프레드 햄프턴의 영상을 참고하며 억양 코치와 함께 3개월간 연습에 돌입했던 다니엘 칼루야는 오페라 가수에게 노래 수업을 받으며 연설 장면을 준비했다.

그 결과, 다니엘 칼루야의 연설 장면은 '프레드 햄프턴'의 모습 그 자체로 느껴졌다.

이런 연기 변신 덕분에, 다니엘 칼루야는 아카데미의 전초전이라 할 수 있는 골든 글로브, 배우 조합상,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모두 남우조연상을 받으며,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2021/04/05 롯데시네마 건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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