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한 줄기 없는 동굴에서 40일 살기..극한환경 적응실험

조회수 2021. 05. 02. 08:1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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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 환경 적응' 연구 활기

4월 24일(현지 시간) 프랑스 남서부에 위치한 ‘롬브리 동굴’ 입구에 등산복을 입은 성인 남녀 15명이 나타났다. 이들은 40일간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지하 동굴 생활을 마치고 이날 처음 땅 위로 올라왔다. 오랜만에 마주한 햇빛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모두 선글라스를 착용했다.


남성 8명, 여성 7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스위스 출신 과학 탐험가 크리스티앙 클로가 이끈 실험 ‘딥 타임(Deep Time)’ 연구 프로젝트의 참가자다. 클로는 극한 환경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연구하기 위해 2015년 ‘인간적응연구소(HAI)’를 설립하고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동굴에서 40일

딥 타임 프로젝트에 참가한 한 여성이 좁고 축축한 지하 동굴에서 가방을 들고 이동하고 있다. HAI 제공

인간적응 연구의 일환으로 이뤄진 딥 타임 프로젝트는 빛과 시간의 흐름, 외부와의 소통이 단절된 환경에서 인간이 시간을 어떻게 인지하는지 알아내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참가자들이 지낸 동굴에는 자연광이 들어가지 않았다. 온도는 10도, 상대습도는 100%로 서늘하고 축축한 환경이었다. 가족이나 친구, 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도 할 수 없었다.

HAI는 첨단 센서 등을 통해 참가자 15명의 수면 패턴, 사회적 상호 작용 및 행동 반응 등을 지켜봤다. 센서 중 하나는 참가자들이 알약처럼 삼켜 체내에서 배출될 때까지 참가자의 체온 변화를 측정하고 데이터를 전송했다.


언제 잠에서 깨고 잠에 들고 먹어야 하는지는 물리적인 시간이 아닌 생체 시계를 따랐다. 예를 들어 하루라는 시간 개념은 시간이 아닌 수면 주기로 계산했다. 


참가자 중 한 명은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동굴에서 지낸 시간이 23일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삶의 한 부분이 멈춘 것 같았다”며 “아무 일도 서두르지 않고 며칠 더 동굴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랐지만 동굴에서 나와 바람을 느끼고 새소리를 다시 들으니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현실로의 빠른 복귀를 원치 않아 며칠 더 스마트폰을 볼 계획이 없다는 이들도 있었다.


실험에 함께 참여한 클로 HAI 이사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인간의 뇌가 어떻게 새로운 해결책을 찾아나가는지 심층적인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파, 홍수, 감염병...극한 환경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HAI는 극한 환경이 극지나 열대습지 등 접근하기 어려운 곳뿐만 아니라 인간 삶의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고 본다. 기후변화와 이상기후로 인한 고립, 전쟁과 경제적 불안정으로 인한 강제 이주 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월 미국 남부 텍사스주에선 영하 22도까지 내려가는 예기치 못한 혹한과 폭설, 폭풍을 동반한 한파에 주민들이 고립됐다. 지난해 7월 중국 남부지역에서는 40일 넘게 지속된 폭우로 최악의 홍수가 발생했다. 2016년 5월 말부터 6월 초까지 퍼부은 집중호우로 독일과 프랑스 등 유럽 전역에서 최소 20명이 숨지기도 했다.


전쟁이나 경제적 불안정 등의 이유로 강제로 이주해야 하는 사람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멕시코를 통해 미국으로 들어가려는 남미 일부 국가 사람이다. 이들은 끊임없는 장애물에 직면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한 비정상적인 적응 능력이 필요하다. HAI는 향후 수십 년 동안 이 같은 이유로 1억4000만 명 이상이 보금자리를 찾아 나설 것으로 분석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같은 감염병 사태에서도 봉쇄와 고립이 반복됐다.

출처: Deep Time 프로젝트 사이트

HAI는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거나 장기적으로 바뀔 때 인간이 과연 잘 적응할 때 인지 생리학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미리 준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클로는 “적응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미치는 모든 생리적·인지적 메커니즘은 물론 생태계 변수를 고려해 실제 상황에 적용하는 연구를 통해 부정적인 영향을 최소화하는 사전 조치 수단을 설계할 수 있다”고 말했다.


HAI는 다양한 실험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25∼48세의 남녀 20명이 지구에서 가장 혹독한 환경 4곳을 연속적으로 탐험하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극한 환경 1곳당 30일씩 진행하는 탐험을 통해 인간의 적응과 관련된 생리적·사회적·심리적 변화를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게 목표다. 지난 겨울엔 거대한 빙하호수인 러시아 바이칼 호수를 30일 동안 탐험했다.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위기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적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프로젝트에도 착수했다. 클로 이사장은 “가장 더운 사막부터 극지 환경, 열대 또는 습한 정글 등 급변하는 환경에 직면한 인간의 적응 능력을 연구하기 위해 모든 유형의 지형과 조건에 대한 과학적 탐험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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